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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129화 (129/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29화

44. 새 권능(2)

새롭게 등장한 털 뭉치는 전체적으로는 모렛을 닮았으나.

크기가 훨씬 크고 검과 방패 그리고 약간 앙증맞게 느껴지는 병사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 뒤에는 가죽 갑옷과 석궁을 든 털 뭉치, 로브를 두르고 마법 지팡이를 든 털 뭉치까지.

“티아. 설마 이 녀석들이 병사인 거야?”

“응. 맞아.”

“쿠모! 쿠모!”

내 물음에 티아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검을 든 털 뭉치도 내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울음소리를 냈다.

처음 모렛을 소환했을 때처럼,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병사 모습에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일단 모렛을 닮아서 전체적으로 귀여운 느낌이기는 했지만.

아무리 봐도 잘 싸우는 병사 느낌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지고 놀 만한 장난감 캐릭터 같았다.

티아가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목소리를 높여 녀석들을 대변해 줬다.

“이렇게 보여도 아르키트 왕국의 정예 병사들이야. 엄청난 실력을 자랑한다고.”

“쿠모!”

검을 든 녀석이 티아의 말에 방패를 탕탕 두드리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했다.

뒤에 석궁과 지팡이를 든 녀석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알았어.”

나는 일단 티아의 말에 수긍하는 척 반응했다.

저번에 모렛을 처음 소환했을 때도

겉모습만 보고 굉장히 실망했었지만, 모렛의 본 실력을 확인하고 그것이 굉장히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그럼 이 녀석들은 뭘 할 수 있는 거야?”

“병사니까 당연히 싸우는 일이지. 세진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부르면 같이 싸워줄 수 있어.”

“오오.”

아직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부르면 나와서 같이 싸워준다는 것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럼 이 녀석들은 얼마나 강한 거야?”

“으으음…….”

내 질문에 티아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마 강함의 기준을 제대로 설명하기 힘든 듯했다.

한동안 끙끙거리며 고민을 하던 티아는, 순간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마 세진보다는 강하지 않을까?”

“…….”

티아의 답변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애초에 아티팩트가 없으면 전투 능력이 전혀 없는 나를 비교해 봤자…….’

우리가 이 털 뭉치들의 전투 능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세진아. 이 녀석들은 뭐야?”

집에서 나온 임진혁이 우리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 형!”

“모렛이랑 닮은 친구들이네? 형제 같은 건가?”

“그게…….”

나는 티아의 새로운 능력과 이 모렛과 닮은 세 녀석이 그 능력으로 소환된 병사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었다.

“병사라고? 흐음.”

찬찬히 털 뭉치들을 살펴보던 임진혁은.

“별로 세 보이지는 않는데. 그냥 귀여운 마스코트 같은 거 아닌가? 왜 부대마다 있는 마크처럼 말이야.”

나와 비슷한 감상평을 내놨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들은 털 뭉치가 흥분하며

털이 날릴 정도로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쿠모! 쿠모!”

씩씩거리듯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임진혁을 노려봤다. 뒤에 있던 두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형. 아무래도 귀엽다고 해서 화난 것 같은데요.”

“하하하.”

임진혁은 그 모습도 귀엽다고 느꼈는지 여유롭게 웃음을 터뜨렸다.

털 뭉치는 그의 웃음소리에 더 자극을 받았는지 이제는 검까지 꺼내 들어 임진혁을 향해 겨눴다.

“쿠모! 쿠모!”

검을 든 녀석이 나를 향해 뭔가를 강하게 요구하듯 말했다.

나는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옆에서 티아가 그 뜻을 해석해 줬다.

“세진. 아무래도 이 녀석이 직접 싸워보고 싶다는데.”

“뭐?! 진혁 형이랑 싸워보겠다고?”

“쿠모!”

녀석은 귀여운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강렬한 투지를 불태우며 임진혁을 노려봤다.

진지하게 승부를 걸어오는 모습에 임진혁도 여유로운 표정을 지웠다.

“그럼 한번 몸이나 풀어볼까.”

“형. 괜찮겠어요?”

“걱정하지 마. 심하게 하지는 않을 거니까.”

갑자기 성사된 대결에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 * *

우리는 집 뒤편 널찍한 공터로 자리를 옮겼다.

털 뭉치들과 임진혁이 거리를 두고 대치했고, 우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대치을 지켜봤다.

석궁과 지팡이를 든 친구들은 나서지 않고 검을 든 털 뭉치가 혼자 임진혁 앞으로 나섰다.

“뒤에 있는 친구들은 같이 안 싸워도 되겠어?”

“쿠모!”

임진혁의 물음에 검을 든 털 뭉치가 마치 나 혼자서 충분하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시작해 볼까?”

“쿠모!”

대결이 시작되고 두 대전자 사이에 잠시 긴장감 넘치는 적막이 흘렀다.

이 무거운 적막을 깨고 먼저 움직인 존재는 검을 든 털 뭉치였다.

“쿠모!”

힘찬 울음소리와 갑옷에 매달린 망토를 휘날리며, 털 뭉치가 임진혁에게 돌진했다.

움직임이 둔해 보일 것 같은 외형과는 전혀 다르게, 매우 빠르고 위협적인 돌격이었다.

임진혁도 의외라는 눈빛을 띠면서 재빨리 붉은 기운을 끌어올렸다.

-휘이익. 깡!

털 뭉치가 휘두른 검과 임진혁의 붉은 기운이 맞부딪치면서 강한 충돌음을 냈다.

털 뭉치와 임진혁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힘겨루기하다가 동시에 살짝 거리를 벌렸다.

방금의 격돌로 살짝 서로의 힘을 가늠해 본 것 같았다.

“흐읍. 타앗!”

이번에는 임진혁이 기합과 함께 털 뭉치를 향해 쇄도했다.

흉흉한 기운의 주먹을 방패로 능숙하게 흘려내면서, 유연한 동작으로 측면으로 이동해 빈틈을 찌르는 털 뭉치!

임진혁은 그 공격을 왼손으로 막아내면서 바로 오른손으로 반격을 가했다.

그러자 털 뭉치는 빠르게 몸을 빼면서 그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우와…….”

정말 순식간에 이루어진 살벌한 공방에 나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같이 핀테일 던전에 들어갔을 때 싸우는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자세히 그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거기다 털 뭉치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 실력을 보여주며 놀라움을 더했다.

임진혁의 붉은 기운과 털 뭉치의 검에서 반사된 백광이 쉴 새 없이 부딪치며, 치열한 공방이 계속 이어졌다.

“생각보다 대단한데. 털 뭉치 친구?”

“후모.”

임진혁이 털 뭉치의 실력을 인정하고, 털 뭉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의 실력을 인정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공방이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고.

털 뭉치와 임진혁은 승부의 마지막을 준비하듯 천천히 숨을 골랐다.

둘의 대결을 지켜보던 나와 아이들도 덩달아 숨소리를 죽이며 긴장된 모습으로 지켜봤다.

“후모!!”

강한 기합을 내지르며 먼저 움직인 털 뭉치.

녀석은 방패를 앞세우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임진혁에게 달려들었다.

“흐읍!”

임진혁도 호흡을 고르면서 힘을 모았고. 순간 온몸에서 붉은 기운이 폭사하듯 뻗어 나왔다.

털 뭉치는 주변으로 뻗어 나오는 흉흉한 붉은 기운에 전혀 밀리지 않고, 방패를 앞세워 임진혁에게 똑바로 직진했다.

-꽈앙!!

엄청난 충돌음과 함께 임진혁의 신형이 살짝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털 뭉치는 자연스럽게 방패를 내던지며 양손으로 검을 잡아 임진혁의 빈틈을 노리고 공격해 들어갔다.

균형을 잃은 상태에서 방어가 쉽지 않은 임진혁이 매우 위태로워 보이는 상황.

털 뭉치는 승리를 확신하며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허억!”

보기만 해도 심장이 떨리는 상황에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막혀 거친 숨소리를 냈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위기처럼 보이는 상황.

임진혁은 내 예상과는 다르게 무너지는 균형을 자연스럽게 이용해 몸을 비틀었다.

그와 동시에 왼발을 들어 올려 털 뭉치의 팔을 아주 부드럽게 밀어냈다.

털 뭉치의 팔이 임진혁의 발에 의해 밀리면서 검의 궤적이 흔들렸고, 임진혁은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쿠모?”

그리고 온 힘을 다한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이번에는 털 뭉치의 신형이 크게 흔들렸고.

그사이 빠르게 자세를 잡은 임진혁이 웅크렸던 몸을 용수철처럼 튕기며 털 뭉치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의 왼 주먹이 짧고 강하게 털 뭉치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콰악!

“쿠우욱!!”

털 뭉치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검을 놓쳤고, 공격의 반동으로 땅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털썩!

땅바닥에 털 뭉치가 널브러지고, 뒤에서 지켜보던 동료 털 뭉치들이 후다닥 달려와 그를 살피기 시작했다.

나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재빨리 털 뭉치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

누워 있던 털 뭉치는 나를 발견하고 큰 두 눈을 끔뻑거리더니, 주변의 도움으로 금방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는지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거렸다.

“쿠모…….”

아까 자신만만했던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안쓰러운 모습에 나는 황급히 녀석을 위로해 줬다.

“아냐. 괜찮아. 정말 잘 싸웠어.”

“맞아. 정말 멋있었어!”

“퓨이!”

“후모! 후모!”

옆에 있던 아이들도 나를 따라 녀석을 응원해 줬다.

“쿠모?”

“그래. 진짜로 너무 잘 싸워서 놀랐어. 아까 네 실력을 의심해서 미안해.”

나는 먼지투성이가 된 털을 털어주며, 두 손으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쿠모. 쿠모.”

녀석은 내 위로에 기운을 차렸는지 다시 씩씩한 표정으로 울음소리를 냈다.

녀석이 다시 일어나고.

임진혁은 땅에 떨어져 있던 방패와 검을 가져와 털 뭉치에게 건넸다.

“여기. 받아.”

“쿠모.”

“아까 무시해서 미안했어. 마지막 공격은 정말 대단한 공격이었어.”

검과 방패를 받아든 털 뭉치는 임진혁의 칭찬에 살짝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서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존경의 뜻을 전달했다. 뒤에 있던 동료들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들고 임진혁을 바라보는 털 뭉치들의 눈빛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

검을 든 털 뭉치가 임진혁에게 뭔가를 말하려는 듯 울음소리를 냈다.

“쿠모. 쿠모.”

“……?”

옆에 있던 티아가 털 뭉치의 말을 해석해 줬다.

“얘가 나중에 또 대결해달래.”

“아. 물론이지. 언제든 환영이야.”

“쿠모!”

“나중에는 뒤에 있는 친구들도 실력을 봤으면 좋겠네.”

그의 말에 뒤쪽에 두 털 뭉치들도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멋있는 대결 끝에 아주 훈훈한 마무리를 하고.

나는 먼지투성이가 된 털 뭉치 녀석들과 땀을 흘린 임진혁을 데리고 온천으로 향했다.

같이 기분 좋은 온천물에 몸을 담가 피로를 풀고 더러워진 몸을 씻어낸 다음.

상쾌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서 시원한 캔맥주를 꺼냈다.

“쿠모…….”

털 뭉치 친구들은 본능적으로 캔맥주를 알아보고 시선이 캔맥주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겉모습만 똑같은 게 아니라 맥주를 좋아하는 것까지 똑같은 것 같았다.

덩치 큰 녀석들의 하는 짓이 귀엽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핫. 녀석들.”

나와 임진혁의 몫뿐만 아니라, 녀석들의 몫까지 넉넉하게 캔맥주를 꺼내 녀석들에게 건네주었다.

우리가 캔맥주를 따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녀석들은, 처음에는 헤매다가 곧잘 캔맥주를 따고 마시기 시작했다.

“쿠모!!”

맥주의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녀석들은 허겁지겁 맥주를 들이켰다.

순식간에 맥주 한 캔을 마셔버린 녀석들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내 눈치를 슬슬 살폈다.

‘이거 덩치만 커졌지 하는 짓은 모렛이랑 똑같네.’

나는 냉장고에 남은 맥주를 모두 꺼내 녀석들에 나눠주었다.

“쿠모. 쿠모.”

녀석들은 내가 꺼내준 맥주를 보며 기쁨의 울음소리를 냈다.

나와 임진혁은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여운 녀석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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