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27화 (127/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27화

43. 데뷔(3)

오연우에게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 광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이들의 생각을 묻는 것이었다.

광고에 출현하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었고, 만약 하기 싫어하거나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면 바로 거절할 생각이었다.

“나는 할래. 또 광고 찍고 싶어!”

예전에 광고를 한 번 찍어본 경험이 있는 티아의 경우, 광고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티아에게는 광고를 찍는 일 자체가 굉장히 즐거웠던 추억이었고.

추가로 회사에서 보내준 수많은 선물을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상황을 원하는 것 같았다.

반면 이엘은 광고에 대한 개념도 확실치 않아서 광고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을 해줘야만 했다.

숲속에 사는 엘프 소녀에게는 약간 어려운 개념이기는 했지만, 정확히 이해하고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끈질기게 설명해 줬다.

“광고 찍으면 아저씨도 좋은 거예요?”

“나도 좋긴 한데.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이엘이 하고 싶은지 아닌지가 제일 중요해.”

“광고 찍는 일이 아저씨가 좋은 거면 해볼래요.”

“아니. 나는 신경 안 써도 된다니까. 이엘의 마음이 제일 중요한 거야.”

“아저씨가 좋으면 저도 좋아요.”

“…….”

내가 좋은 일이면 상관없다며 이엘은 싱긋 웃어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보호자인 아르엘에게도 광고에 대한 것을 물어보았는데.

“세진 님이 좋은 일이라면 이엘이 해도 상관없어요.”

“아니. 아르엘 님. 물론 저도 좋은 일이긴 한데…….”

“이엘에게 안 좋은 일이었다면 처음부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으셨겠죠. 저는 세진 님을 믿고 있습니다.”

“…….”

아르엘이 나에게 보내는 절대적인 신뢰를 확인하며 이엘이 광고에 출현하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두 엘프 모녀가 나에게 보내는 절대적인 신뢰에 왠지 모를 부담감을 팍팍 느끼며 일을 진행했다.

일단 아이들이 균열 밖으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균열 안에서 일을 진행해야 했다.

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오는 것을 원치 않았고, 만약 온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원만 오도록 조정해 달라고 회사 쪽에 요청했다.

다행히 회사 측에서는 먼저 예상이라도 한 듯이 우리의 의견을 수용해 주었다.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생겨났는데.

“그러니까 숲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네.”

“꼭 숲속에서만 불러야 해?”

“저는 숲에서 노래를 부를 때 제일 잘 부르거든요. 안 될까요?”

숲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이엘의 부탁.

난감한 부탁에 나는 물론이고 옆에 있던 오연우도 난색을 보였다.

“연우아. 보통 이런 일은 그 스튜디오던가? 그런 곳에서 하지 않냐?”

“당연하죠. 거기다 이 정도 크기의 회사 광고면 보통은 엄청 비싼 스튜디오에서 작업하죠.”

“근데 숲에서 노래 부르고 싶다고 하면 들어줄까?”

“미쳤냐고 하지 않을까요?”

“…….”

솔직히 음악 녹음이나 스튜디오 같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던 나라도, 숲에서 노래를 녹음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부탁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꼭 숲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이엘의 부탁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연우야. 그래도 한번 회사 측에 물어봐봐.”

“진짜로요?”

“그래. 이엘이 그렇게 하고 싶다는데. 어쩔 수 없지.”

“만약 안 된다고 하면요?”

“그럼 어쩔 수 없지. 미안하다고 하고 광고를 포기해야지.”

“끄으응. 이제 이 회사랑은 더는 광고 못 찍겠네.”

사실상 광고를 거절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오연우는 앓는 소리를 냈지만 결국은 내 말에 따르기로 했다.

회사 측에 우리의 요청이 다시 전해지고.

이번에는 저번 요청과는 달리 회사 측에서도 굉장히 당황한 듯 보였다.

저번과는 다르게 바로 답변을 주지 못하고 내부적인 회의가 필요할 것 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

그 뒤로 추가적인 연락이 없자, 우리는 당연하게 회사 측에서 반대할 줄 알았는데.

“형…… 숲에서 녹음해도 된다는데요?”

“응??”

“원하는 대로 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대로 진행해달래요.”

“원래 이렇게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건가?”

“절대 아니죠.”

“너 혹시 저쪽 회사 쪽에 약점 잡은 거라도 있냐?”

“당연히 없죠.”

관대해도 너무 관대한 회사의 처우에 오히려 우리가 민망해질 정도였다.

그렇게 회사 측의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은 계속 진행됐고.

노래 녹음을 위해 곡을 쓴 작곡가가 직접 방문해 숲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티아와 이엘 모두 처음에는 불안한 모습이 있었지만, 작곡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순조롭게 노래를 준비할 수 있었고.

처음 두 아이의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크게 감동을 받았다.

티아와 이엘의 호흡도 좋고, 노래도 너무 좋았지만.

자연스럽게 노래를 감싸는,

숲에서 흘러나오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노래의 멜로디, 가사, 아이들의 목소리.

거기다 신비로운 숲의 기운까지 더해져서 하나의 완벽한 예술을 보는 것 같았다.

왜 이엘이 숲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부탁을 했는지,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세진. 세진. 우리 노래 어땠어?”

“아저씨. 노래 안 이상했어요?”

나에게로 달려와 기대의 눈빛을 보내는 아이들.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한 기분에, 그 마음을 그대로 담아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다.

“너무 잘 불렀어. 최고야. 최고!”

* * *

노래 제목은 ‘숲속 이야기’로 정해졌다.

원래는 작곡가가 다른 제목을 생각해 뒀었는데. 티아와 이엘이 숲속에서 직접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급하게 제목을 변경하게 되었다.

모든 광고 작업이 끝나고.

TV와 인터넷을 통해 광고가 공개됐다.

처음 광고가 공개되었을 때는 막 엄청난 반응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노래 나쁘지 않네.

-이거 누가 부름? 신인 가수가 부른 거임?

-무슨 너튜브 채널에 나오는 아이들이 불렀다는데.

-가수 아님? 노래 무지하게 잘 부르는데.

처음 노래를 접한 사람들 대부분이 노래가 나쁘지 않다는 반응으로 시작했다.

유명한 인기를 자랑하는 가수가 부른 노래도 아니었고 홍보 활동을 한 것도 아니니까.

그냥 지나가는 광고에 깔린 좋은 노래 정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숲속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좋네.

-나는 요즘에 이 노래 나오면 광고 스킵 안 누르고 그냥 끝까지 들음.

-ㅋㅋㅋ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목소리가 너무 좋아. 진짜 웬만한 가수보다 노래 더 잘 부르는 듯.

-ㄹㅇ 이 광고 노래가 요즘 노래들 다 씹어먹는다.

-민트 초코는 개극혐인데. 노래는 인정할 수밖에 없네.

점점 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많은 음원 사이트에서도 ‘숲속 이야기’의 순위가 치솟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 제품의 화제도가 올라갔고, 제품의 판매량도 덩달아 상승했다.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이 적당히 뜨거워졌을 때쯤.

‘균숙자네 퓨이’ 채널에 하나의 영상이 업로드됐다.

바로 티아와 이엘이 숲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아무런 편집 없이 그대로 올린 영상이었다.

-아니. 진짜로 노래를 숲에서 녹음했다고??

-엘프는 숲에서 노래 부르면 버프라도 받나? 왜 이렇게 노래를 잘 불러.

-엘프 옆에 저 작은 여자애. 목소리 죽이네.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런 목소리가 나오지?

-근데 이 노래 작업한 사람도 대단하네. 무슨 생각으로 숲에서 작업을 한 거지?

영상을 직접 보고서도 믿기 힘든 숲속에서의 노래.

사람들의 높은 관심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인터넷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각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계속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사람들의 그런 높은 관심에도 정작 노래를 부른 당사자나, 작곡가에 대한 소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처음으로 이 노래의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았던 박태민의 인터뷰 기사가 인터넷에 공개됐다.

원래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작곡가인 박태민.

그는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겸손한 인터뷰 내용으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내 프로듀싱 능력을 칭찬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는데. 너무 부끄러울 정도다.

-오히려 그 아이들 속에 잠재된 실력을 전부 끌어내지 못해서 좌절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나도 숲에서 진행한 녹음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온다면, 또 숲에서 녹음할 생각이 있다.

-마지막으로 그 아이들의 실력은 진짜다. 내 음악 인생을 모두 걸고 보증할 수 있다.

박태민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면서도 노래를 부른 아이들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인터넷 기사가 공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숲속 이야기’는 처음으로 음원 사이트에서 정상에 서게 된다.

* * *

“형. 또 연락 왔는데요.”

“또? 이 사람들은 질리지도 않나.”

내 짜증에 오연우도 머리를 긁적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지금 완전 난리 난 거 형도 아시잖아요.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겠는데 꾸역꾸역 연락이 들어온다고요.”

“그렇게 거절했는데도…….”

나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티아와 이엘이 부른 노래 덕분에 광고가 대박이 난 것까지는 좋았는데.

생각보다 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

“어쩌겠어요. 저쪽 입장에서는 그 아이들을 잡기만 하면 무조건 대박이니. 포기 못 하겠죠.”

“끄응. 언제쯤 잠잠해지려나.”

수많은 인터뷰 요청부터, 방송 출연 제의까지.

그리고 가장 지독한 곳은 연예기획사였다.

수많은 연예기획사에서 티아와 이엘을 노리고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는 유명 연예인이 넘쳐나는 거대 연예기획사부터, 그 정체가 의심되는 작은 곳까지.

정말 대한민국의 모든 연예기획사 쪽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우리 쪽으로 연락을 보내는 중이었다.

물론 연락을 받을 때마다 전혀 그런 쪽으로 아이들을 보낼 생각이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제발 한 번만 만나주시면…….”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하겠습니다. 이런 조건 어디서도 못 보실 겁니다.”

“아이들의 의견은 물어보셨습니까? 아이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게 해주시죠.”

애원하는 사람부터, 막무가내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생떼를 부리는 사람까지.

내 입장에서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거기다가,

-세진 씨. 저번에 했던 제안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번에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곡을 써봤는데. 아이들에게 한 번 들려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아는 기획사 사장님께서 한번 뵙고 싶다고 하시는데. 혹시 시간내주실…….

저번에 노래 녹음을 하러 균열에 방문했던 박태민에게서도 끊임없이 연락이 왔다.

거짓말이 아니라 하루에 두세 번씩 메시지와 전화가 걸려왔다.

‘아오. 그때 연락처 주고받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연락처를 주고받던 때를 떠올리며 후회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

누구에게는 축복받은 상황이겠지만, 조용히 균열 안에서 아이들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나에게는 저주나 다름 없었다.

“세진! 이거 봐봐!”

“아저씨. 이것 좀 보세요. 여기 우리 노래가 나와요.”

허겁지겁 뛰어온 티아와 이엘이 내 팔을 한쪽씩 붙잡고 거실로 데려갔다.

거실 TV에 노래방 기계가 연결되어 있었고, 화면에는 아이들이 부른 노래 ‘숲속 이야기’가 표시됐다.

[숲속 이야기]

노래_ 티아, 이엘

작사_ 박태민

작곡_ 박태민

아이들은 자신이 부른 노래가, 그것도 이름까지 표시되어, 흘러나오는 것이 신기한지 흥분한 모습이었다.

티아와 이엘은 각자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숲속에서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아니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한동안은 이 노래 때문에 굉장히 귀찮아지겠지만.

미소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런 걱정은 순식간에 사소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감상하다가.

문득 수많은 사람이 환호하는 무대 위에서, 예쁜 무대의상을 입고 티아와 이엘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것도 나쁘지 않으려나?’

잠시 그 모습을 상상하다가 이내 머릿속에서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나만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에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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