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23화 (123/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23화

41. 두 번째 도전(8)

-쿵! 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오는 거대 골렘.

마치 산이 나를 뒤덮는 느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골렘 균열에서 봤던 거대 골렘보다 조금 더 작은 녀석이었지만 겉모습은 완전 똑같았다.

불쑥 다가오는 녀석을 보고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이런!”

나는 빠르게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매직 미사일

-파앗! 콰지지직.

바로 두 개의 문양의 힘을 사용한 매직 미사일을 시전해 골렘에게 발사했다.

강렬한 빛과 뇌기를 내뿜으며, 5발의 매직 미사일이 골렘의 몸에 직격했다.

-콰콰쾅!

-기우뚱.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골렘의 몸체가 살짝 불안정하게 흔들거렸지만, 녀석은 곧바로 균형을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꽤 강한 위력의 마법이었는데도 아주 약간의 피해만 줬을 뿐. 골렘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나는 일단 골렘에게 멀어지기 위해 뒤쪽으로 달리며 중얼거렸다.

“미치겠네.”

보통 골렘의 외견만 본다면 물리 방어만 강할 것 같다고 많이 생각하는데.

물리 방어도 비교할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로 높지만, 골렘은 물리 방어보다 마법 저항이 훨씬 지독한 놈들이었다.

문양의 힘으로 마법 관통력과 위력을 늘린 매직 미사일로도 겨우 피해를 입힐 정도였다.

골렘은 느릿하지만 끈질기게 나를 뒤쫓아왔다.

몸이 거대해서 그런지 아무리 내가 열심히 뛰어도, 녀석이 몇걸음 걸으면 어느새 거리가 좁혀져 있었다.

-아이스 필드!

-촤자자자작!

나는 잠시라도 놈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서 아이스 필드를 사용했다.

맹렬하게 뻗어 나간 냉기는 놈의 움직임을 느리게는 했지만, 괴물 같은 마법 저항 때문에 랫맨들 같이 완전히 얼어붙게는 만들지 못했다.

거대 골렘의 나를 향한 추격이 잠시 늦춰진 사이.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라. 생각해라. 생각!’

베른하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껏 해왔던 골렘에 관한 공부와 연구들을 떠올리며.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 나섰다.

‘거대 골렘이라고 해도, 중심의 핵만 다를 뿐. 기본 구조는 다른 골렘들과 똑같아.’

일반 골렘과 거대 골렘의 약점은 똑같았다.

중심부의 핵을 부술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의 방법이겠지만, 골렘 핵은 가장 완벽하게 보호받는 부위이기 때문에 공략이 힘들다.

그다음으로 취약한 부위는 관절 부위.

특히 복잡하고 많은 회로가 지나가는 어깨 관절.

지금 상황에서 그나마 노려볼 만한 약점은 그곳 하나였다.

‘할 수 있을까?’

신지아가 신경을 써서 만들어준 아티팩트가 아직은 잘 버텨주고 있지만, 조금씩 부담이 쌓이고 있었고.

아티팩트가 언제 과부하로 고장을 일으키게 될지 몰랐다.

그리고 아무리 화력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놈의 팔 한 짝 못 쓰게 만드는 게 한계일 것 같았다.

절대적으로 화력이 부족한 상황.

골렘이 갑자기 미쳐서 자신의 손으로 핵을 내려치지 상황이 아니라면 도저히 방법이…….

‘잠깐만? 자신의 손으로?’

머릿속에서 뭔가 떠오른 순간.

아이스 필드의 영향을 벗어난 골렘이 다시 한번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점점 다급해지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머릿속에 떠오른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에 한 번 걸어보기로 했다.

-매직 미사일

-파앗! 콰지지직.

나는 다시 한번 매직 미사일을 발동시켰다.

5발의 매직 마사일은 차례로 거대 골렘의 오른쪽 어깨 부분을 향해 날아갔다.

-콰쾅!

연속적인 폭발음과 함께 약간 손상을 입은 녀석의 어깨 부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나는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때부터는 계속 도망치고, 공격하고의 반복이 이어졌다.

나는 녀석의 오른쪽 어깨가 완전히 손상될 때까지 집요하게 공격을 이어나갔다.

-지지직.

계속된 문양의 힘을 포함한 마법의 사용으로 아티팩트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초조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계속 공격을 이어나갔다.

-매직 미사일

-파앗! 콰지지직.

다시 한번 매직 미사일이 골렘의 오른쪽 어깨에 명중하고.

-기기긱!

거대 골렘의 오른팔이 고장 난 듯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됐다!”

1차 목적을 달성하고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순간.

거대 골렘이 왼팔을 크게 휘둘러 나를 공격했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 완전히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스치듯 녀석의 공격에 휩쓸렸다.

“크억!”

나는 온몸에 느껴지는 엄청난 충격에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뒹굴었다.

-안 돼!

-꺄아악! 세진 오빠!

-세진 형. 얼른 일어나요!

-세진 씨! 힘들면 포기하세요.

-세진아!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 일행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모두 한결같이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나머지 일행들은 어디선가 내 도전을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힘들 것 같으시면 포기하셔도 됩니다. 물론 던전 클리어는 실패로 끝나겠지만요. 후후.

-쿵. 쿵.

얄미운 핀테일의 목소리와 함께 거대 골렘이 다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를 꽉 깨물고 살짝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났다.

골렘은 오른팔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지 축 늘어진 상태 그대로였고, 다시 왼팔을 들어 나를 공격하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아이스 필드!

-촤자자자작!

다시 한번 더 아이스 필드로 녀석의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그리고 이번에는 뒤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거대 골렘 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지.”

자신만만하게 외친 나는 아티팩트로 새로운 마법을 사용했다.

연속된 마법의 사용으로 아티팩트가 불안정하게 떨려왔다.

‘한 번만 버텨줘.’

-헤이스트! <바람(Suru)>

-후우웅.

바람에 기운이 휩싸이면서 온몸이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스 필드와 헤이스트 마법의 영향으로 나는 골렘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며, 녀석의 축 늘어져 있는 오른팔을 향해 뛰어갔다.

-탓!

가볍게 뛰어오른 나는 골렘의 오른팔에 달라붙어 어깨 쪽을 향해 기어 올라갔다.

아이스 필드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당황을 한 것인지.

골렘은 기어 올라가는 나를 한동안 가만히 두었고, 그 덕분에 나는 무사히 녀석의 어깨 부근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어깨 부분을 보호하던 장갑이 전부 손상되어 내부의 회로가 고스란히 드러난 상태였다.

나는 재빨리 아티팩트의 내부를 개방해 안쪽에 장착되어 있는 마정석을 꺼냈다.

‘미안해요. 지아 씨.’

거칠게 뜯어내느라 아티팩트의 회로가 완전히 망가져 버렸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한 손에는 아티팩트의 마정석을, 그리고 반대편 손은 골렘 어깨 회로 부분에 가져갔다.

-찌릿!

회로를 만진 손을 통해서 찌릿한 전기가 통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참아냈다.

그리고

“Sanye(질서)”

나는 질서 문양의 힘으로 골렘 회로에 의식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오른팔에 연결하던 손상된 회로가 느껴지고 그 너머로 녀석의 핵이 느껴졌다.

아주 잠깐 녀석의 핵을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곧바로 단념하고 원래 목적을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내가 하려는 것은

직접 골렘의 오른팔 회로에 접촉해 내 의지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공격으로 회로가 손상되어 중심핵과 연결이 끊어진 상태라면, 적절한 마력과 명령 체계로 녀석의 오른팔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게 가능할 거로 생각했다.

나는 아티팩트에서 꺼낸 마정석을 통해 마력을 끌어와 골렘 오른팔 회로에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팔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마력의 흐름에 온몸이 뻐근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내 고통에도 오른팔 회로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내가 녀석의 어깨에서 끙끙거리고 있을 때.

-부웅!

아이스 필드의 효과가 끝났는지, 골렘의 왼팔이 나를 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눈앞으로 거대한 골렘 손바닥이 덮쳐왔다.

‘제발. 제발. 움직여!!’

그 순간.

-우우웅.

내 의식이 오른팔 회로에 연결되면서 굉장히 기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팔 하나가 더 생긴 듯한 느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새로 생겨 난 팔을 최대한 빠르게 휘둘렀다.

-콰앙!

골렘의 오른팔과 왼팔이 부딪치며 강한 충돌음이 발생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오른팔의 움직임에 왼팔이 허공에 버둥거리고 있을 때.

나는 곧바로 오른팔을 다시 움직여 골렘의 중심부, 핵이 있는 곳을 강하게 내리쳤다.

-꽈아앙!!

골렘의 무지막지한 오른팔 공격이 그대로 가슴 쪽에 적중하고.

강렬한 충격에 골렘의 몸이 휘청거렸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한번 더 오른팔을 움직여 골렘의 가슴을 내리쳤다.

-꽈아아앙!!

아까보다 더 강한 충격이 발생하면서 골렘의 몸이 크게 뒤틀리며 천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어깨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나는 충격과 함께 쓰러지려는 골렘을 피해 옆쪽으로 몸을 던졌다.

-쿠웅!

-털썩!

나는 골렘과 동시에 땅바닥을 나뒹굴었고.

바닥에 부딪힌 충격과 무리하게 마정석으로 마력을 끌어올린 후유증을 동시에 느끼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정신을 잃기 직전.

핀테일의 목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 * *

“…….”

“…….”

귓가에 들려오는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에 의식이 돌아온 나는 아주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처음으로 보이는 광경은 아주 높은 천장이었다.

고개를 살짝 돌려 주변을 둘러보니, 수많은 물건이 가득 찬 방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저번 던전에서 마지막으로 도착했던 방과 같은 곳인 듯했다.

온몸이 물에 젖은 것처럼 늘어져서, 고개도 가누기 힘겨워하고 있을 때.

“어?! 형. 정신 들었어요?”

“으응.”

“아빠! 세진이 형 일어났어요.”

옆에 있던 선우가 내 상태를 확인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얼마나 크게 외쳤던지 내 머리가 울릴 정도였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세진아. 괜찮냐?”

“오빠. 괜찮아요?”

아저씨와 아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다음으로 임진혁과 서율희가 뒤따라 모습을 보였다.

모두 한결같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몸에 힘이 없는 것만 빼면 괜찮아요.”

“이것 좀 마셔봐. 아까 너 정신을 잃었을 때, 마시게 하고 남은 거다.”

아저씨는 내 상체를 살짝 받쳐주고, 정체불명의 액체를 입으로 흘려보내 주었다.

거부할 힘도 없었기에 나는 순순히 그 액체를 받아 마셨다.

달콤한 액체가 목구멍을 넘어가 뱃속에 들어가자.

뜨끈한 느낌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활력이 약간 돌아왔다.

정체불명의 액체 덕분에 나는 순식간에 혼자서 몸을 일으킬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고마워요. 아저씨. 이거 무슨 약이에요?”

“나도 몰라. 그냥 빨리 약 달라고 하니까 주던데.”

“......?”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뒤쪽에서 핀테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상급 포션입니다. 한 병에 금화 100개죠.”

“에엑. 그럼 금화 100개 쓴 거예요? 아깝게…….”

내가 놀라며 금화를 아까워하자, 아저씨는 내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이며 핀잔을 줬다.

“이놈이. 너 아까 골렘이랑 같이 쓰러져서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거기다 양팔도 퉁퉁 부어올라서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아저씨 말이 맞아. 세진아. 금화가 너보다 중요할까.”

임진혁도 아저씨 의견에 동의하며 말했다. 다른 일행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민망해진 나는 볼을 긁적거렸다.

뒤쪽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핀테일이 손뼉을 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짝. 짝.

“자. 세진 님도 일어나셨으니. 이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

“세진 님께서 마지막 도전에 성공하시면서 금화 600개를 얻으셨고. 포션값 하나를 제외하고 총 금화 1,800개를 얻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들 눈앞에 6개의 주머니가 생겨났다.

“어떻게 금화를 분배하실지는 여러분 자유지만, 일단 금화 300개씩 나눠 담았습니다. 금화의 개수가 허용하는 만큼 자유롭게 물품을 구매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저에게 얼마든지 물어주십시오.”

주머니를 확인해 보니 하나당 300개의 금화가 들어 있었다.

아윤과 선우 남매는 금화를 보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무언가를 호소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서율희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금화를 응시했다.

분위기를 읽은 아저씨가 먼저 나서서 말했다.

“공평하게 주머니 하나씩 가지는 거로 하면 되겠지?”

“그게 좋겠죠?”

“저는 불만 없어요.”

“저도 찬성!”

“저도!”

공평하게 한 사람당 주머니 하나, 금화 300개를 나눠 가졌다.

“고블린 아저씨. 활! 활 어딨어요?”

“후후. 이쪽입니다.”

가장 먼저 아윤이 핀테일을 앞세워 활을 둘러보기 위해 사라졌고, 선우와 서율희도 뒤를 따랐다.

“너 혼자서 괜찮겠냐?”

“전 괜찮아요. 아저씨도 얼른 물건 둘러보세요.”

“흠흠. 그럼 나도 다녀올게.”

아저씨도 꽤 기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금화 주머니를 가지고 빠르게 물건들 사이로 향했다.

남은 사람은 나와 임진혁뿐이었다.

“형? 형은 안 가요?”

내가 묻자 그는 자신의 주머니를 내 주머니 옆에 툭 내려놓았다.

“형?”

“난 필요 없다. 내 몫까지 네가 써.”

“예? 아니 저쪽에 귀한 물건 엄청 많아요.”

“처음부터 널 도와주러 온 거고. 난 딱히 필요한 게 없어.”

“그래도 밖에서 팔아도 되는데…….”

내가 선뜻 주머니를 받지 못하자, 임진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 신경 쓰이면 나중에 나가서 부탁 하나만 들어줘.”

“부탁이요?”

“그래. 너무 어려운 부탁은 아닐 테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부탁을 하겠다는 말에 나는 일단 임진혁의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고마워요. 형.”

“됐고. 빨리 너도 필요한 물건이나 구매해라. 애초에 이것 때문에 여기 온 거지?”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두 개의 주머니를 가지고 익숙한 위치로 향했다.

그곳에는 저번에 구매하지 못한 ‘아르키트 회로 중급 이론서’가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흐뭇한 미소로 이론서를 바라보는데

“이론서를 구매하시겠습니까?”

-깜짝.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아르키트 회로 중급 이론서’는 금화 200개입니다.”

“음…… 잠깐. 200개?”

“네. 금화 200개입니다.”

“저번에는 금화 120개였던 것 같은데?”

“아쉬우시면 그때 사셨어야죠.”

“…….”

핀테일의 능글능글한 대답에 들고 있던 금화 주머니를 던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금화 200개를 꺼내 핀테일에게 지불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아르키트 회로 중급 이론서’를 획득했습니다.]

[아르키트 회로 중급 이론서][유일][귀속]

-아르키트 왕국에 전해 내려오는 회로 이론.

-능력치 지능 30, 집중 30 필요.

-책을 끝까지 읽으면 스킬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약간의 트러블이 있을 뻔했지만.

결국에 손에 들어온 중급 이론서를 바라보며 나는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혹시 더 필요하신 것은 없습니까?”

핀테일의 질문에 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물었다.

“혹시 ‘거대 골렘의 핵’ 구할 수 있을까?”

“물론 있죠.”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어디선가 커다란 붉은 구슬을 가져와 내게 건넸다.

[온전한 거대 골렘의 핵][전설][재료]

-아르키트 왕국의 마도 공학의 결정체.

-최고 등급의 골렘까지 운용할 수 있습니다.

-가격 : 금화 1,500개

핵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에 아주 잠깐 기분이 좋았다가, 가격을 확인하고 곧바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핀테일은 낙담하는 내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빙글빙글 웃음을 지었다.

“못 사는 거 알면서 왜 가져다 준거야?”

“필요하신 물건을 보여드리는 게 제 역할이니까요. 금화를 구해오시는 건 손님의 역할이지요.”

“…….”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해서 더 얄미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대신 이건 어떻습니까?”

“응?”

핀테일은 나에게서 핵을 가져가면서 대신 또 다른 책을 하나 건네주었다.

[골렘 제작 이론서][영웅][유일]

-골렘 제작에 관련된 기초적인 지식을 담은 이론서.

-‘아르키트 회로 중급 이론’ 습득 필요.

-책을 끝까지 읽으면 스킬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가격 : 금화 350개.

또 다른 이론서.

그것도 골렘에 관한 이론서였다.

거기다 가격도 금화 350개.

아직 남은 금화가 400개이니 아직 충분히 구입할 수 있었다.

“이 이론서를 익히면 골렘 핵도 만들 수 있는 건가?”

“아이템에 대한 설명은 거기 나와 있는 정보가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전부입니다.”

핀테일의 애매한 답변에 뭔가 찝찝했다.

“골렘에 관한 상품은 이게 다야?”

“더 있습니다만, 아마 세진 님께서 필요하신 상품은 아닐 겁니다.”

골렘 이론서를 들고 꽤 오랫동안 고민을 이어갔다.

핀테일은 내 앞에서 여유롭게 기다려 주었다.

“좋아. 이것도 구매하겠어.”

“감사합니다. 고객님.”

금화 350개를 지급하고 아르키트 이론서와 함께 골렘 이론서도 같이 챙겨 넣었다.

주머니에는 이제 50개의 금화만 남게 되었다.

나머지 금화 50개를 사용하기 위해 다른 상품들을 둘러보았지만, 딱히 살만한 물건을 찾지 못했다.

‘그냥 하급이나 중급 포션이나 사둘까?’

다른 일행들도 거의 다 원하는 물품을 구매하고 남은 금화를 사용하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여러분. 잠시 이곳으로 와 보시겠습니까?”

그때 핀테일이 우리를 한 곳으로 불러모았다.

그의 목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투명한 유리통 안에 주먹만 한 구슬들이 가득 담긴 기계가 있었다.

“이건 뭐지?”

“뽑기 기계입니다. 아마 많은 분이 금화가 조금씩 남아서 고민이신 것 같은데. 여기 뽑기 기계를 사용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한 번 구슬을 뽑는데 금화 10개입니다.”

“오오!”

재미있어 보이는 뽑기 기계 등장에 일행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기계를 살펴보았다.

“내가 먼저 해볼래.”

가장 먼저 아윤이 나서서 뽑기 기계에 금화 10개를 투입했다.

“옆에 있는 레버를 당기시면 됩니다.”

“이거? 읏차!”

-드르륵!

아윤이 레버를 당기자 구슬이 담긴 유리통이 한 번 휙하고 회전하더니, 구슬 하나가 도르륵 굴러 나왔다.

구슬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아윤이 환하게 웃으며 소리 질렀다.

“상급 포션 5개!”

“오오!”

“축하드립니다.”

아윤은 첫 번째부터 바로 당첨을 뽑아 상급 포션 5개를 챙겼다.

그녀는 불이 붙었는지 곧바로 2번 더 금화를 넣고 기계를 돌렸지만, 나머지 2번은 모두 꽝이 나왔다.

그 뒤로 다른 일행도 남은 금화를 사용해 구슬을 뽑았고

“상급 포션 1개!”

“핀테일이 추천하는 간식 세트!”

“효과가 뛰어난 피로회복제 2통!”

자잘한 상품들에 당첨되었다.

“진혁 형. 형도 한번 뽑아보실래요? 여기 금화 50개 남았는데.”

“그럼 나도 한 번 해볼까? 20개만 줘봐.”

임진혁은 나에게 금화 20개를 받아 뽑기 기계로 향했다.

-드르륵!

첫 번째로 나온 구슬은

“꽝이네.”

꽝이었다.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남은 금화 10개를 기계에 투입했다.

-드르륵!

레버를 당기자 기계가 돌아가고 두 번째 구슬이 튀어나왔다.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던 임진혁이 구슬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살짝 표정의 변화가 생겼다.

“영웅 등급 아이템 교환권?”

“오! 좋은 상품을 뽑으셨군요? 그 교환권을 사용하시면 원하시는 영웅 등급의 아이템으로 교환해 드립니다. 대신 본인이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만 허용됩니다.”

핀테일의 설명을 들은 일행은 임진혁을 향해 부러움의 시선을 보냈다.

아이템이 필요 없다고 했던 임진혁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아 보였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남은 금화는 30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기계에 금화를 투입했다.

-드르륵!

기계가 돌아가고 튀어나온 첫 번째 구슬은

“꽝…….”

다시 금화를 투입하고.

-드르륵!

“으음. 또 꽝이네.”

두 번째 구슬도 꽝이었다.

‘포션 같은 거라도 나와라.’

나는 마지막 금화 10개를 투입하고 뽑기 기계의 레버를 당겼다.

-드르륵!

튀어나온 마지막 구슬.

별다른 생각 없이 마지막 구슬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기계 옆에 서 있던 핀테일을 바라봤다.

그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얼굴에 진한 미소를 띠며 내 눈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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