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22화 (122/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22화

41. 두 번째 도전(7)

순식간에 퍼져나간 냉기는 맹렬하게 돌진해오던 랫맨의 움직임을 점점 느리게 만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냉기의 영향을 받은 모든 녀석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생각보다 훨씬 위력적인 새로운 마법에 나는 씨익 웃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뒤로 물러나 있던 일행들도 강력한 마법의 위력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기다 문양의 힘까지 사용해 강력한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아티팩트에는 큰 무리가 가지 않은 듯했다. 당장에라도 다른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마워요. 지아 씨.’

나는 마음속으로 뛰어난 아티팩트를 만들어준 신지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내 마법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었던 일행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각자 맡은 랫맨의 특징을 잘 기억하면서 얼어서 저항하지 못하는 랫맨을 천천히 처리했다.

모든 랫맨을 쓰러뜨리고.

시체가 사라짐과 동시에 다시 또 다른 랫맨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시 적들이 나타납니다.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일행은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으며 랫맨 무리를 맞이했다.

-키익!

정신없이 랫맨과 전투를 이어나가던 와중에 선우가 손을 번쩍 들면서 외쳤다.

“찾았어요! 마지막 정답 찾았어요!”

“오오. 잘했어!”

“모두 집중해요. 이제 놈들을 처리하기만 하면 되니까.”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일행은 마지막까지 집중을 잃지 않고 랫맨 무리를 상대해나갔다.

-끼에에엑!

하나 남은 마지막 랫맨이 아윤의 화살에 꿰뚫려 쓰러지고.

땅바닥에 있던 모든 시체들이 사라지며 핀테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무리의 랫맨 사이의 다른 부분을 다섯 가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제한 시간은 3분입니다.

아까 말했던 네 가지의 정답과

“단검을 들고 있던 랫맨의 앞니 중 한쪽이 두 번째에는 살짝 부러져 있었어.”

마지막으로 선우가 정답을 말하면서 다섯 가지의 정답을 모두 말할 수 있었다.

-정답입니다.

-축하합니다. 모든 정답을 맞추셨습니다.

-보상으로 금화 300개를 지급합니다.

“휴우우. 드디어 끝났네.”

성공을 알리는 핀테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아저씨는 방패를 바닥에 찍으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일행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모두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금화 300개를 얻은 건 좋은 일이지만, 난이도도 확실히 어려워진 것 같네요.”

서율희의 약간 염려가 뒤섞인 말에 모든 일행이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난이도가 확 어려워졌다.

두 배의 난이도 상승이었는데, 체감상 3배는 더 힘들어진 것 같았다.

-드르르륵!

다음 도전으로 향하는 통로가 개방되고.

자리에 앉아 있던 일행은 하나둘씩 몸을 일으켜 다음 도전을 위해 다시 준비를 시작했다.

* * *

통로를 통해 도착한 곳에는 일행을 다시 한번 당황스럽게 만드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이거 노래방 기계 아니에요?”

“맞는 것 같은데?”

“…….”

나는 저번 핀테일 던전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번 도전이 무엇일지 빠르게 예측할 수 있었다.

-여섯 번째 도전은 던전 노래자랑입니다.

-임의로 지목된 인원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머지 분들은 기계와 노래 부르는 사람을 보호해야 합니다.

-기계가 공격받아 부서지면 도전 실패.

-노래 점수가 75점을 넘지 못하면 다시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또다시 기상천외한 도전이 시작되었지만, 일행은 이제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는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곧바로 대응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이거 무조건 부르기 쉬운 동요나, 애국가 부르면 되는 거 아닌가?”

“맞아요. 근데 애국가는 4절까지 있어서 너무 오래 걸리니까, 무조건 짧은 동요 불러요.”

정 씨 남매의 논리적인 꽤 그럴듯한 의견을 내자 나머지 사람들은 빠르게 동의했다.

하지만.

“아앗!”

서율희 앞에 마이크가 생겨남과 동시에 노래방 기계에서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뭐야? 우리가 곡 선택하는 거 아니었어?”

“거기다 이거 최신 여자 아이돌 노래잖아?!”

“저 이 노래 모르는데…….”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반주의 정체를 알아챈 남매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고.

서율희는 마이크를 손에 쥐고 허둥지둥.

핀테일의 무자비한 선곡에 일행은 한 방 먹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불러보세요. 저희가 최대한 막아볼 테니까.”

“으으…….”

서율희는 자신없는 표정으로 마이크를 꽉 붙잡았다.

-키륵. 키르륵

사방에서 튀어나온 녹색 고블린들은 기분나쁜 울음소리를 내며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최대한 기계를 방어할 테니까. 나머지는 서율희 씨를 보호해.”

우리는 아저씨의 지시에 따라 위치를 잡고 고블린들과 전투를 준비했다.

“처. 처음 널 본 순간…….♪”

서율희의 노래가 시작됨과 동시에 고블린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 영악한 고블린들은 집요할 정도로 기계와 서율희를 노려서 공격했다.

거기다 움직이지 못하는 보호 대상 때문에 생기는 약점을 노리고, 계속 치고 빠지는 전략을 사용해 우리의 대응을 느리게 만들었다.

거기다

노래를 모르는 서율희는 거의 노래를 만들어 부르다시피 하고 있었다.

여기가 노래방이었다면 겨우겨우 음정, 박자를 따라가며 애쓰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웃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이 지독한 놈들.”

“왼쪽 조심해요!”

어찌어찌 고블린들의 공세를 막아내며 서율희의 힘겨운 노래가 끝나가고.

노래방 기계 화면에 점수가 표시됐다.

[두두두두둥! 빠밤!]

[56점! 좀 더 연습하셔야겠어요.]

예상했던 대로 목표에 전혀 미치지 못한 점수.

“죄송해요. 제가 노래를 잘 못해서…….”

서율희는 정말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미안한 얼굴을 보였다.

“괜찮아요. 어차피 저도 모르는 노래였어요.”

“선곡이 너무 어려웠어요.”

그녀가 일행에게 위로를 받는 사이, 마이크가 다시 새로운 주인 앞에 나타났다.

“이번엔 내 차례인가?”

다음 마이크의 주인은 무덤덤한 표정의 임진혁.

그가 마이크를 잡자마자 노래방 기계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경쾌했던 첫 번째 노래와는 상반되는 아주 부드럽고 감미로운 발라드 음악.

“형. 뒤쪽으로 빠져요.”

“아냐. 괜찮아.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기계나 지켜.”

“……??”

마이크를 든 임진혁은 기계 쪽으로 빠지지 않고, 오히려 고블린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그의 행동에 일행이 당황하는 사이.

전주가 끝나고 본격적이 노래가 시작됐다.

“당신에게서 하루라도…….♪”

임진혁은 고블린과 전투를 이어나가는 동시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

도저히 전투 중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안정적인 음정,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

최소 10년 차 베테랑 가수의 노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뛰어난 노래 실력이었다.

입으로는 감미로운 사랑 이야기를 노래하면서,

온몸에는 붉은 기운을 두르고 고블린의 머리에 발차기를 꽂는 모습은 묘하게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기인열전에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거의 묘기에 가까운 임진혁의 활약에 우리는 좀 더 수월하게 고블린들을 막아낼 수 있었다.

노래가 끝이 나고 노래방 기계에는 다시 한번 점수가 표시됐다.

[두두두두둥! 빠밤!]

[89점. 와우! 가수 하셔도 되겠어요.]

-축하합니다. 도전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금화 300개를 지급합니다.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인 대가로 금화 200개를 추가로 지급합니다.

성공을 알리는 핀테일의 목소리와 함께 모든 고블린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전 성공과 추가 보상까지 얻은 기쁨에 일행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이번 도전에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임진혁에게 모든 관심이 쏟아졌다.

“형. 경찰 되기 전에 가수 준비했어요? 노래를 왜 이렇게 잘 불러요?”

“뭐…… 어렸을 적부터 운동이랑 노래 부르는 게 취미라서. 별로 대단한 실력은 아니야.”

“대단한 실력이 아니긴. 엄청나게 잘 부르던데.”

내 칭찬에 임진혁은 약간 쑥스러운 듯 볼을 긁적거렸다.

나뿐만 아니라 나머지 일행도 감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특히 아윤은 마치 연예인을 만난 것 처럼, 엄청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 *

여섯 번째 도전까지 끝낸 우리는 잠시 휴식 후 다음 도전 장소로 향했고, 여느 때처럼 핀테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곱 번째 도전입니다.

-잠시 도전에 앞서 여러분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선택의 기회?’

나를 포함한 일행 모두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남은 도전은 총 3개입니다.

“끄응.”

“…….”

3개의 도전이 남았다는 말에 일행은 침음을 흘렸다.

초반부는 꽤 할 만한 도전들이었지만, 난이도가 상승한 이후에는 도전 하나하나가 꽤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남은 3개의 도전 대신에 다른 길을 선택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다른 길은 1개의 도전만 성공하면 던전은 클리어됩니다. 대신 1명만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핀테일의 설명이 끝나자 일행은 생각에 잠겼다.

‘모두 같이 3개의 도전을 이어가느냐, 아니면 한 명이 1개의 도전을 시도하느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모두들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핀테일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도전하실 분은 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뭐야? 무슨 글자야?”

“글자가 아니라 그림인 것 같은데요.”

정체불명의 글자가 허공에 떠오르자 일행은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글자였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

오직 나만이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눈 앞의 글자는 바로 아르키트 문양!

나는 더욱 깊어진 눈으로 눈앞의 글자를 응시했다.

글의 해석은 어렵지 않으나.

핀테일의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건 나에게 도전하라는 뜻이나 다름없는데. 왜 이런 짓을 한 걸까?’

일행 중에 아르키트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나 한 사람 뿐이며.

핀테일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설명할 때는 모두에게 기회가 듯 말했지만, 사실 나에게만 전하는 메시지였다.

나는 조용히 일행을 둘러봤다.

계속된 힘겨운 전투와 황당한 도전들로 많이 지쳐 보이는 상태였다.

시종일관 담담한 표정의 임진혁도, 얼굴에서 숨길 수 없는 피곤함이 느껴졌다.

세 번의 도전을 더 이어나가는 것은 힘들어 보이는 상황.

마음속으로 결심을 굳힌 나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한 명이 도전하는 거로 하죠. 세 번이나 더 도전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아요.”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진이 말이 맞긴 하는데. 저 글자를 못 읽으면 도전을 못 하는 거잖아.”

“맞아요. 암호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도저히 무슨 글자인지 모르겠어요.”

글자를 뚫어지라 살피던 아저씨와 아윤이 살짝 불만을 터뜨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슬쩍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서율희가 내게 물었다.

“세진 씨. 설마 저 글자 읽으실 수 있는 거예요?”

“세진 오빠? 진짜예요?”

“……?”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 몰리자,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결자해지라고. 내가 일을 시작했으니 마지막은 내가 해결해야 하지 않겠어?”

일행은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지만, 이미 나는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임진혁이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 쪽으로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다른 일행들도 응원과 걱정이 뒤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 너무 걱정하지마. 앞에 했던 도전처럼 별로 위험하지는 않고 황당한 도전일 테니까.”

나는 예능감 충실한 던전 마스터의 취향을 생각하며 가볍게 웃은 뒤, 허공에 떠 있는 글자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Bertha(도전)!”

외침과 동시에 나는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순식간에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

약간 어지러운 느낌에 고개를 흔들며 눈을 떴다.

“…….”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설마……?“

-마지막 도전입니다.

-적을 쓰러뜨리십시오.

예능감 충실했던 던전 마스터의 갑작스러운 궁서체 진지 도전 과제.

당황스러움을 넘어서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우우웅. 쿵!

“이건 좀…….”

내 기분이야 어찌 되었든.

눈앞의 거대 골렘이 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