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21화
41. 두 번째 도전(6)
마치 엄청난 기회를 준다는 말투로 우리에게 제안을 건네는 핀테일.
지금까지는 금화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조금 전 화려한 아이템들을 눈으로 직접 목격한 탓인지 일행들의 눈에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편. 이미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 본 나로서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내 기억이 맞는다면 간신히 본전을 유지해서 이 방을 빠져나갔던 거로 기억하는데.’
“흠흠. 일단 뭔지 한 번 들어나 볼까?”
슬쩍 아저씨가 운을 띄우자, 나머지 일행도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동의했다.
이 모습을 본 핀테일은 진득한 웃음을 흘리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주 간단한 게임을 하나 할 겁니다. 만약 운이 좋으시다면 최대 3배 더 많은 금화를 획득하실 수 있을 겁니다.”
3배 더 많은 금화.
그 말을 들은 일행의 시선이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핀테일은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우리 앞에 꺼내 놓았다.
-또르르륵.
빨강색, 파랑색.
바로 2개의 주사위였다.
“주사위?”
“……?”
겉모습은 아주 평범하게 생긴 주사위였으나, 일반적인 주사위와 달리 겉면에 적힌 숫자가 달랐다.
핀테일은 테이블에 놓인 파란색 주사위를 한 손으로 들어 보이며 말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아주 단순한 주사위 게임입니다. 기회는 딱 1번. 이 파란색 주사위를 굴려 나오는 눈의 표시만큼 금화를 더 드리겠습니다.”
그가 들어 보인 파란색 주사위에는
‘으음? 이 정도면 꽤 해볼 만한데?’
그의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제가 여러분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탓인지, 지금까지 도전이 너무 싱거운 것 같더군요.”
핀테일은 나머지 한 손으로 빨간색 주사위를 보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금화를 추가로 더 드리는 대신 이 빨간색 주사위의 눈금만큼 앞으로 도전의 난이도가 상승할 겁니다.”
마지막까지 설명을 들은 일행의 표정이 조금 미묘하게 변했다.
“그 주사위를 좀 살펴봐도 될까?”
“얼마든지 살펴보셔도 됩니다.”
주사위를 살펴보겠다는 아저씨의 말에 핀테일은 친절한 미소로 두 개의 주사위를 건네주었다.
나머지 일행의 시선이 모두 아저씨의 손에 놓여진 두 개의 주사위로 향했다.
아저씨는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게 테이블 앞쪽에 주사위를 놓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파란색 주사위에는 각가지 숫자의 배수가 적혀 있었다.
‘×0.5, ×1, ×2, ×3, ×4…… 해골?’
6개의 겉면 중에 불길하게 생긴 해골 표시를 발견했다.
아저씨도 해골 표시를 발견하고 핀테일에게 바로 질문을 했다.
“이봐. 이 해골 표시는 뭐지?”
“아. 그 표시가 나오면 곧바로 도전에 실패하시게 되는 겁니다. 보상이 있으면 그만한 위험도 있어야겠죠?”
생각보다 훨씬 값비싼 대가에 일행의 표정이 굳었지만, 딱히 항의를 하거나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핀테일의 말대로 보상도 확실한 주사위였으니까.
다음으로 살펴본 빨간색 주사위에도 비슷하게 숫자의 배수가 젹혀 있었다.
×0.5, ×1, ×1.5, ×2, ×2.5 ×3
최소 절반부터, 최대 3배의 난이도 상승.
지금껏 지나온 던전의 난이도가 매우 어렵다고 할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난이도가 3배까지 상승한다면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었다.
“게임에 참가하는 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그냥 쉬시다가 바로 다음 도전을 진행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설명을 끝마친 핀테일은 아주 여유로운 표정으로 앞에 놓인 과자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반면 우리는 눈앞에 놓인 두 개의 주사위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나는 아르키트 이론서만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많은 금화는 필요 없었다. 딱히 탐나는 아이템도 없었고.
하지만 다들 믿고 따라와 주었는데, 온 김에 좋은 아이템 하나씩 챙겼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서로 눈치를 보며 선뜻 말을 하지 못하는 중에
서율희가 침묵을 깨고 먼저 의견을 냈다.
“저는 그냥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세진 씨가 얼마나 금화가 필요하신지는 모르겠지만. 부족한 게 아니라면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그녀도 아까 본 아이템을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저는 했으면 좋겠어요. 아까 본 아이템도 조금 욕심이 나기도 하고. 확률상으로 봐도 딱히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누나 의견이랑 같아요. 아직은 던전 난이도도 별로 안 어려운 것 같고.”
정 씨 남매는 차례로 찬성 의견을 내보였다.
“난 조장님이랑 같이 반대. 나도 아이템이 욕심나기는 하지만 주사위를 잘못 굴려서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 앞으로 도전이 너무 힘들어질 거야.”
서율희처럼 아저씨도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의견은 2:2로 나뉘게 되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임진혁이 타이밍 좋게 입을 열었다.
“저는 아무 상관 없어요. 세진이한테 맡길게요. 부탁한다.”
임진혁은 담담한 표정으로 옆자리에서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마지막 결정을 내가 내리게 되었다.
딱히 다수결로 정하자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일행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말하는 대로 결론이 날 것 같았다.
“으으음.”
쉽지 않은 결정에 내 고민은 길어졌고.
나머지 사람들의 시선은 내 얼굴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핀테일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드는지 과자를 오물거리며 싱글벙글거렸다.
나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다가 마지막으로 2개의 주사위에 시선을 고정했다.
손을 뻗어 주사위들을 움켜쥐며
‘또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핀테일을 쳐다보며 말했다.
“못 먹어도 고(Go)!”
화끈한 내 도전 선언에 정 씨 남매는 환한 미소를
서율희는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 아저씨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고, 임진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명심하십시오.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
진지한 핀테일의 경고에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손안에 있는 주사위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주사위를 테이블 위로 굴렸다.
-도르르르르륵!
주사위는 특유의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를 구르기 시작했고, 나를 포함한 일행의 시선이 정신없이 주사위를 쫓았다.
‘제발. 해골은 안돼!’
나는 초조한 표정으로 아직 윗면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주사위에 대고 기도했다.
파란색 주사위가 먼저 멈추고 윗면을 드러냈다.
“와아! 3배!”
“좋았어!”
나쁘지 않은 결과.
일단 해골도 피했고 배수도 나쁘지 않았다.
남은 것은 던전의 난이도롤 결정할 빨간 주사위.
빨간 주사위 역시 파란 주사위가 멈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움직임을 멈췄다.
“…….”
빨간 주사위가 보여준 윗면은 ×2배.
결과를 확인한 사람들은 파란색 주사위 때처럼 환호성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이제부터 주사위의 결과대로 던전의 난이도는 2배 더 상승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획득하실 금화는 3배 늘어납니다.”
핀테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방에는 다음 도전으로 갈 수 있는 통로가 생성되었다.
* * *
개방된 통로를 따라 방을 빠져나온 우리는 다음 도전이 시작될 공간에 도착했다.
-다섯 번째 도전은 아직 밝히지 않겠습니다.
-곧 공격이 있을 예정이니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그럼 건투를 빌겠습니다.
다른 도전들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도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이 곧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찌익. 찍찍!
-킥. 키킥.
사방에서 달려드는 랫맨 무리.
아까 주사위로 난이도 상승이 있었기 때문인지 전투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진형을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공격을 막아내고, 모든 적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스르륵.
쓰러져 있던 랫맨의 시체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휴우.”
일행들이 전투를 끝내고 잠시 한숨을 돌리는 사이.
-다시 적들이 나타납니다.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찌익. 찍찍!
-킥. 키킥.
“으윽. 또?”
일행 중 누군가 불만을 토해냈지만, 다시 나타난 랫맨은 그런 불평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맹렬하게 돌격해 왔다.
‘근데 뭔가 이상하네. 데자뷰인가?’
나는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지만,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 쓸데없는 생각은 잠시 뒤로 미뤄뒀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투를 종료했다.
“후흡. 후우.”
일행이 첫 번째보다 조금 더 거칠어진 숨을 내쉬고 있을 때, 핀테일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 이제 다섯 번째 도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조금 전 공격해 온 두 무리의 랫맨을 기억하실 겁니다.
-두 무리의 랫맨 사이의 다른 부분을 다섯 가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제한시간은 3분입니다.
“뭐, 뭐라고?”
“……!?”
숨을 돌리던 일행은 또다시 핀테일의 어이없는 요구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1분 지났습니다. 2분 남았습니다.
당황하는 사이 금방 1분이 지나버렸고, 우리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어. 어어. 맨 앞에 있던 랫맨의 무기가 달랐어. 첫 번째는 한 손도끼였는데. 두 번째는 검을 들고 있었어.”
-정답입니다. 4개 남았습니다.
용케도 다른 부분을 기억해 낸 아저씨 덕분에 정답 1개를 맞출 수 있었지만, 나머지 4개의 정답은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모든 정답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다시 적들이 나타납니다.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이런 미친…….”
다시 나타난 랫맨 무리가 우리를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서율희가 외쳤다.
“자기가 쓰러뜨린 녀석은 꼭 기억해두세요. 두 번째 공격 때도 똑같이 자기가 쓰러뜨린 녀석을 잡는 거예요!”
“조장님 말씀 잘 들었지? 제대로 보고 쓰러뜨려.”
우리는 서율희의 지시대로 각자 쓰러뜨리는 랫맨의 모습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신없이 달려드는 녀석들을 막아내며, 그 모습까지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시 적들이 나타납니다.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첫 번째 무리에 이어 곧바로 두 번째 랫맨 무리의 공격이 시작됐다.
우리는 서율희의 작전대로 첫 번째와 똑같이 두 번째 무리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힘겨운 전투가 끝나고.
계속된 전투에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거칠어진 숨을 내쉬었다.
-두 무리의 랫맨 사이의 다른 부분을 다섯 가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제한시간은 3분입니다.
우리들은 한 명씩 기억을 떠올리며 정답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까 말했던 제일 앞에 있던 녀석 무기가 달라.”
“제가 활을 맞췄던 랫맨의 가죽 갑옷이 달랐어요.”
“왼쪽 편에 있던 랫맨 하나가 첫 번째는 양손에 장갑을 끼고 있었고, 두 번째는 한 손만 끼고 있었어.”
“가장 뒤편에서 석궁을 왼손 들고 있던 랫맨이 두 번째에는 오른손으로 들었어요.”
-정답입니다. 1개 남았습니다.
“으으. 더 없나?”
“마지막은 도저히 모르겠어요.”
“…….”
-모든 정답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다시 적들이 나타납니다.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아아…….”
“긴장 풀면 안 돼! 다시 준비해.”
이제 진절머리가 날 것 같은 핀테일의 경고와 함께 다시 랫맨 무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위험해.’
연속된 전투를 이어나간 탓에 일행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아무리 랫맨이라고 해도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큰 부상을 입을 위험이 너무 컸다.
“모두 뒤쪽으로 물러나세요!”
나는 지쳐 있는 일행에게 외치며 아티팩트에서 새로운 마법을 발동시켰다.
-아이스 필드!
-촤자자자작!
내 주변에서 엄청난 냉기가 폭발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