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20화 (120/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20화

41. 두 번째 도전(5)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된 진실 게임은 모든 일행이 황당한 감정에 빠지게 했다.

“오빠. 이거 진짜 하는 거예요?”

“허허허.”

정아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고, 아저씨 역시 마찬가지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나머지 일행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행 간의 대화를 주고받거나, 신호를 주고받으면 즉시 질문은 오답 처리하겠습니다.

-질문에 진실로 대답할지, 거짓으로 대답할지는 본인의 자유입니다.

핀테일의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눈앞에 대답을 적을 수 있는 작은 칠판과 펜이 생겨났다.

-제한시간은 1분입니다. 1분 이내에 대답을 칠판에 적어주십시오.

일단 칠판과 펜을 잡아 든 일행은, 저마다 묘한 표정을 지으며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펜을 잡고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오래 전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첫 키스라…….’

벌써 희미해지기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 기억.

친구를 통해 소개받은 여학생과 사귀면서 했던 키스가 내 인생 첫 키스였다.

몸이 붕 떠오르는 기분과 간질간질했던 느낌이 떠오르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18 숫자를 적고, 두 번째 질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누가 가장 일찍 첫 키스를 경험했을까?’

일단 느낌상 아저씨와 임진혁은 정답에 제외했다. 선우도 평소에 상대해본 이미지상 정답이 아닐 것 같았다.

남은 사람은 정아윤과 서율희.

둘 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미인이어서 학생 시절부터 인기가 많았을 것 같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는 서율희를 정답으로 적었다.

-시간이 모두 지났습니다. 이제 칠판을 공개해 주십시오.

각자의 칠판이 공개되고.

나와 정씨 남매는 서율희를 지목했고.

아저씨와 임진혁은 나를 지목했다.

마지막으로 서율희는 임진혁을 지목했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은 서율희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은 그녀의 칠판을 확인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녀가 들고 있던 칠판에는 X라고 적혀 있었다.

“…….”

“…….”

나는 뒤늦게 그 뜻을 알아차리고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전혀 예상외의 대답에 지목한 정씨 남매 역시 굉장히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진실을 대답했지만, 지목에는 실패했습니다.

-50개의 금화를 회수하겠습니다.

핀테일의 실패를 알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나는 나머지 사람들의 칠판을 둘러봤다.

‘아저씨 22살, 진혁 형 18살, 아윤이 20살, 선우…….’

“13살?!”

정선우의 칠판에 적힌 믿기 힘든 숫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선우의 가족인 아윤과 아저씨도 놀란 표정으로 선우의 칠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13살이면 초등학생 아닌가?’

일행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쏠리자, 선우는 정말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렸을 적에 누나 친구가 귀엽다고 꼬드겨서…….”

선우의 말을 들은 아저씨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고, 자신의 친구와 했다는 이야기에 아윤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임진혁은 나직하게.

“요즘 애들은 엄청 빠르네.”

라고 중얼거렸다.

한편 서율희는 굉장히 침울한 표정으로 짓고 있었고, 나는 최대한 그녀를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지금껏 이성과 사귀었던 횟수를 적고, 가장 많은 경험이 있을 것 같은 사람을 지목하십시오.

-제한시간은 1분입니다. 1분 이내에 대답을 칠판에 적어주십시오.

두 번째 역시 굉장히 난감한 질문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뿌드득.

뭔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서율희 쪽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최대한 그녀 쪽으로 시선이 가지 않게 몸을 기울였다.

반대편에서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도 연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연애 경험이라.’

내 연애 경험은 총 3번이었다.

고등학교 때, 20대 초반, 사업이 한창 잘나갔을 때.

나는 칠판에 숫자 3을 적고, 두 번째 질문의 대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옆자리의 반응을 봐서 서율희는 제외.

나이가 제일 어린 선우도 제외.

남는 사람은 아윤과 아저씨, 임진혁이었다.

세 사람 중에서 고민을 하던 나는 찍는 기분으로 임진혁의 이름을 칠판에 적었다.

-시간이 모두 지났습니다. 이제 칠판을 공개해 주십시오.

핀테일의 지시에 따라 각자의 대답을 적은 칠판이 공개되었다.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는 서율희의 칠판에는 또 X라고 적혀 있었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거짓말은 하지 않고 꿋꿋하게 답변을 적어내는 그녀의 모습에서, 일행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나머지 일행도 그녀의 뜻을 알기에 일부러 그녀의 칠판을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일행의 지목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임진혁이었다.

나와 아저씨, 서율희의 지목으로 총 3표를 받았다.

임진혁의 칠판에 적힌 연애 경험 숫자는 5번.

대충 다른 사람들의 칠판을 둘러보며 이번 지목은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핀테일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모든 사람이 진실을 대답했지만, 지목에는 실패했습니다.

-50개의 금화를 회수하겠습니다.

‘또 실패라고?’

실패를 알리는 핀테일의 목소리에 다시 다른 사람들의 칠판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선우의 칠판에 시선이 멈춰 섰다.

“7번?”

또다시 예상치 못한 선우의 숫자에 나는 허를 찔린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자신에게 일행의 시선이 몰리자, 선우는 평소와 같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선우야. 너 이런 이미지였니?’

아저씨보다는 아주머니의 미모를 닮아, 아이돌 같은 곱상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 어느 정도 인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내 예상보다 훨씬 화려한 활약에 나는 묘한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봤다.

아저씨는 다시한번 헛기침을 했고, 아윤은 약간 질린 표정으로 자신의 동생을 바라봤다.

어찌 됐든 벌써 두 번의 지목 실패로 총 100개의 금화를 회수당하고 말았다.

일행의 분위기가 점점 묘해지는 가운데.

다시 핀테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지금껏 이성에게 고백을 받았던 횟수를 적고, 가장 많은 고백을 받았을 것 같은 사람을 지목하십시오.

-제한시간은 1분입니다. 1분 이내에 대답을 칠판에 적어주십시오.

일행은 이제 질문에 당황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칠판에 대답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선 두 개의 질문 때와는 전혀 다르게, 서율희는 약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칠판에 뭔가를 적어나갔다.

아까 축 처져 있던 모습에서 180도 변한 모습이 조금 귀엽게 보일 정도였다.

나는 일단 고백을 받은 경우가 없었다. 세 번의 연애 모두 내가 먼저 고백을 해 시작했다.

보통은 남자가 고백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아저씨와 임진혁도 비슷할 거로 생각했다.

그럼 여자인 아윤과 서율희가 남는데.

앞선 두 질문에서 숨어 있던 다크호스로 떠오른 선우를 무시할 수 없었다.

저 곱상하고 귀여운 외모로 얼마나 많은 누나의 고백을 받았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짧은 고민을 하다가 나는 서율희의 이름을 칠판에 적었다.

-시간이 모두 지났습니다. 이제 칠판을 공개해 주십시오.

각자의 칠판이 공개되고, 이번 질문에서는 서율희가 가장 많은 지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서율희의 칠판에 적혀 있는 고백을 받은 횟수는 총 7번. 다른 누구보다 높은 숫자였다.

-모든 사람이 진실을 대답하고, 지목에 성공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보상으로 100개의 금화를 지급합니다.

축하 메시지가 들려오고, 정답을 맞힌 대가로 우리는 회수당했던 100개의 금화를 다시 가져올 수 있었다.

-세 번째 도전을 통과하셨습니다.

-새롭게 개방된 통로를 따라가 다음 도전을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행은 핀테일의 안내에 따라 주춤 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굉장히 이상했던 질문 때문에 일행의 주변에는 숨이 막히게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저번에 퓨이, 티아와 함께 이 도전을 통과했을 때는 굉장히 훈훈하게 마무리가 됐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훈훈함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아무튼.

우리는 다음 도전을 위해 다시 통로를 따라 다음 도전을 향해 나아갔다.

* * *

통로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계단을 따라 내려갈 수 있는 널찍한 원형 공간이 존재했고, 그 공간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오우거 한 마리가 쇠사슬에 묶여있었다.

-세 번째 도전은 투기장 승부입니다.

-일행 중 한 사람만이 원형 경기장으로 내려가 오우거와 1:1로 상대해야 합니다.

-오우거를 쓰러뜨리면 도전 성공. 오우거의 공격에 진행 불능 상태가 되거나, 포기할 시 도전 실패입니다.

오우거를 쓰러뜨리라는 굉장히 단순한 도전.

핀테일의 설명이 끝나자, 서율희가 가장 먼저 나서서 나머지 일행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도전하고 싶은데. 괜찮겠죠?”

무표정한 얼굴로 도전의 의사를 밝힌 서율희.

그녀의 말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압박감에, 나를 포함한 나머지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여유도 주지 않고, 서율희는 성큼성큼 계단을 따라 원형 경기장으로 내려갔다.

그어어억.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쇠사슬에 묶여 앉아 있던 오우거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오우거를 구속하던 두꺼운 쇠사슬들이 모두 풀려나고. 떨어져 나간 쇠사슬을 확인한 오우거는 자유의 기쁨이 담긴 포효를 내뱉었다.

구어어어억!

멀리 떨어진 나에게도 느껴질 만큼 강한 외침에도, 서율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대한 오우거를 노려봤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서율희가 이상했는지, 막 일어난 오우거는 서율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서율희의 주변에 이제는 익숙해진 기묘한 마법진들이 생겨났고, 거대한 촉수 4개가 소환되어 오우거를 순식간에 속박해 버렸다.

냉정한 얼굴로 또 다른 주문을 외우자.

그녀의 주변으로 검은 기운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 검은 기운들은 오우거를 뒤덮기 시작하더니, 섬뜩한 비명이 오우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뿌득. 뿌드드득.

크허헝. 커헉!

생생하게 들려오는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동시 들려오는 오우거의 고통에 찬 비명.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기운으로 뒤덮였던 오우거는 굵은 팔다리가 기형적으로 뒤틀려 땅바닥 위에 널브러졌다.

우리는 오우거에게 행해지는 가차 없는 실력행사에 오성 길드의 검은 마녀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머릿속에 새길 수 있었다.

-속박되어 있던 오우거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보상으로 100개의 금화를 지급합니다.

서율희는 어딘가 후련해진 표정으로, 오우거의 시체가 쓰러져 있는 원형 경기장을 떠나 계단을 올라왔다.

그녀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한 우리는 약간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 * *

서율희 덕분에 네 번째 도전을 속전속결로 끝내고, 우리는 새롭게 개방된 통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던 우리는 통로 끝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의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저씨가 먼저 나서 한 손으로는 방패를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뒤따라 오라는 아저씨의 손짓에 따라 문을 통과한 우리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생뚱맞게 튀어나온 고급스러운 방에 일행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나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 방의 정체를 기억해 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급스러운 정장과 중절모를 눌러쓴 고블린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는 이곳 던전을 운영하는 던전 마스터 핀테일입니다.”

핀테일은 한 손으로 중절모를 벗으며,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와는 다르게 처음 핀테일의 모습을 본 일행은.

신기함, 흥미로움, 놀라움, 무관심, 냉정함.

갖가지 감정을 내보이며 신기한 고블린의 모습을 살폈다.

핀테일은 일행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게 방 한가운데에 있는 테이블로 우리를 인도했다.

테이블에는 저번과 같이 갖가지 간식들과 시원한 음료들이 가득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이 테이블에 앉지 않고 머뭇거리자 핀테일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는 도전과 상관없는 휴식 공간일 뿐이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세진 님?”

핀테일은 씨익 웃으며 내게 질문했고.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먼저 의자를 꺼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눈치를 보던 나머지 일행도 나를 따라 테이블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자. 자. 마음껏 드십시오.”

“…….”

처음에는 약간 경계를 하던 일행은 나를 따라 하나둘, 음식과 음료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훨씬 맛있는 음료와 간식에 일행은 조금씩 긴장을 풀며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일행의 모습을 보며 짙은 미소를 짓던 핀테일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여러분들. 벌써 금화를 500개나 모으셨더군요.”

그는 금화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진 님을 제외하고, 나머지 분들은 이 금화가 어디에 사용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

“……?”

갑자기 금화의 사용처에 관해 묻자, 일행은 눈에 호기심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직 던전이 종료되지 않았지만, 여러분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금화가 어디에 사용될지 잠시 보여드리겠습니다.”

딱!

핀테일이 손가락을 튕기자.

우리 주변으로 수많은 아이템이 마치 환상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화려한 방패, 마법 지팡이, 날카로운 무기, 신비로운 분위기의 활, 광채가 나는 방어구까지.

그리고 그 아이템들 사이에는 아주 오랜만에 다시 보는 ‘아르키트 중급 회로 이론서’도 존재했다.

한눈에 봐도 귀해 보이는 아이템에 계속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서율희도 살짝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각자 관심을 가지는 아이템에 손을 뻗자 아이템의 정보와 함께 가격이 떠올랐다.

최소 이, 삼백 금화를 넘나드는 아이템의 가격에 일행의 눈빛에 아쉬움이 깃들었다.

앞으로 도전이 남아 있지만, 생각보다 훨씬 비싼 아이템의 가격에 쉽게 구하기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어렵게 던전까지 오셨는데. 모두 원하는 아이템 하나씩은 가지고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행의 시선이 핀테일을 향해 모여들었다.

“여기서 조금 더 금화를 얻으실 기회를 드리고자 하는데. 한번 도전해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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