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18화
41. 두 번째 도전(3)
처음 시작은 내가 아저씨에게 임진혁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 시작됐다.
전날 파티에 참여하고 싶다고 의중을 밝힌 임진혁의 의사를 아저씨에게 전달했고.
-흐음. 그 임진혁이라는 친구가 우리 파티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고?
“네. C등급 균열까지는 상관없다고 말하는데.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보지 뭐. 어차피 6인 던전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눌 생각이었으니까. 겸사겸사 이야기해 보면 되겠네.
아저씨는 생각보다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며, 직접 만나보겠다며 내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시원시원한 아저씨의 반응에 어젯밤 걱정했던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아저씨와의 통화가 끝나고 이 소식을 진혁 형에게 전하려고 할 때.
♩∼♬∼♪
우연의 일치인지 아저씨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서율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세진 씨.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신가요?
“네? 무슨 일로?”
-저번에 부탁하셨던 던전에 대해서 이야기 좀 나누려고요. 잠시 집에 방문해도 될까요?
“아. 오늘 대훈 아저씨가 집으로 오기로 했는데…….”
-잘됐네요. 어차피 한 번은 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했으니까요. 저도 오늘 시간 맞춰서 갈게요.
나는 딱히 서율희의 방문을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그녀의 방문을 허락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딱히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이른 오전 시간.
먼저 집에 도착한 아저씨가 진혁 형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다.
“정대훈이라고 합니다. 여기 세진이랑 같이 파티를 이루고 있습니다.”
“임진혁입니다. 세진이랑 형, 동생하는 사이니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둘 다 시원시원한 성격답게 금방 인사를 끝내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파티에 들어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원래는 경찰이었다고?”
“예. 얼마 전에 퇴직했습니다.”
“흐음. 그럼 균열에서 괴물들과 싸워본 경험은 있고?”
“경찰로 일할 때 D등급 균열까지는 경험해 봤습니다. 공식적으로 C등급 균열에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실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만만한 임진혁의 태도에 아저씨는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각성자의 실력을 가늠하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균열을 경험했는지가 꽤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신중한 태도로 말을 꺼냈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 좋지만. 경험이 아직 없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네.”
“…….”
“그래도 세진이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추천했으니까. 다음 균열에 함께 참여해 보고 결정하기로 하지.”
“그래도 되겠습니까?”
“뭐. 실력만 충분하다면 안 될 것도 없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한번 해보겠습니다.”
일단 확정적으로 파티에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아저씨는 실력을 확인해 보고 결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진혁 형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생각보다 훨씬 이야기가 잘 풀린 것 같아서 나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 임진혁, 아저씨.
이렇게 3명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서율희가 뒤늦게 도착했다.
이미 서로 얼굴을 알고 있는 나머지와 다르게, 오늘 서로 처음 만난 서율희와 임진혁을 서로 소개해 줬다.
두 사람이 약간 무미건조하게 인사를 나누고.
서율희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오늘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세진 씨가 입장하려고 계획 중인 6인 던전에 대해서 논의를 하기 위해서인데.”
그녀는 임진혁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저분도 참여하시는 건가요?”
“이 분은…….”
“가능하면 저도 참여하고 싶습니다만.”
진혁 형이 내 말을 가로막으며 대답했다.
그가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자 서율희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죄송하지만 경력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D등급 균열에 몇 번 들어간 것 외에는 딱히 경력은 없습니다.”
임진혁의 솔직한 대답에 그녀는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런 경력도 없으시면 이번 파티에 참여하시는 건 힘들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실력은 꽤 자신 있으니까요.”
여기서부터 시작된 신경전은 끝을 모르고 이어지다가, 결국 나에게 불똥이 튀었다.
원래 파티의 리더였던 아저씨도 나에게 결정권을 미뤄버렸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매섭게 나를 향했다.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진땀을 흘리다가, 생각을 정리해 꺼내 놓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번 던전에는 최대한 믿을 만한 사람을 데려가고 싶어요. 서율희 조장님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저는 진혁 형을 신뢰하고 있어요.”
내 말에 서율희는 약간 불만을, 임진혁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만약에 실력만 확실하다면 저는 형과 함께 던전에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내 말이 끝나자 임진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실력만 보여주면 괜찮은 거지?”
그리고 그는 서율희를 바라보며 약간 도발적으로 말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그녀도 임진혁의 기세에 밀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일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 나와 아저씨는 난처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 * *
우리는 집 뒤쪽에 있는 공터로 나왔다.
여유로운 표정의 임진혁과 냉담한 표정의 서율희가 마주 보고 있었고.
나와 아저씨는 옆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아저씨. 이거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흐음. 일단 두고 보자.”
“네?”
“임진혁. 저 친구 실력이 궁금하기도 하고. 또 서율희 조장 정도 실력이면 큰 사고는 안 일어나겠지.”
일단 지켜보자는 아저씨의 말에 나도 입을 다물고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봤다.
간단히 손과 발을 털며 몸을 푸는 임진혁에게 서율희가 말했다.
“무기는 안 꺼내시는 건가요?”
“저는 원래 맨손으로 싸웁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나중에 구차한 변명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아서요.”
“하하.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테니. 어서 시작하죠.”
자신만만한 임진혁의 모습에 서율희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변에 기묘한 마법진이 생겨남과 동시에 커다랗고 기괴한 촉수 하나가 임진혁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휘이익!
빠른 속도로 뻗어 나간 촉수는 날렵한 임진혁의 움직임에 허공을 강타했다.
서율희는 이에 멈추지 않고 곧바로 두 번째 촉수를 소환해 임진혁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휘익! 휘익!
촉수의 거친 공격에도 임진혁은 여유로운 몸놀림을 보여주며 모든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표정을 살짝 찌푸린 서율희는 세 번째 촉수를 소환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집요한 세 촉수의 공격에 임진혁도 약간 버거운 듯 보였으나. 그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솟아남과 동시에 움직이는 속도가 눈에 띄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허허.”
“우와…….”
엄청난 스피드로 촉수의 공격을 피해내는 임진혁의 모습에 아저씨는 너털웃음을, 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의 공격이 임진혁의 옷깃도 스치지 못하자, 결국은 네 번째 촉수까지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임진혁의 주변으로 더욱 진하고 강렬한 붉은 기운이 솟아나기 시작했고, 움직임은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빨라졌다.
“언제까지 피하기만 하실 거죠?”
서율희의 뾰족한 외침에 임진혁이 순식간에 촉수와 거리를 벌리며 대답했다.
“이제 공격하겠습니다. 조심하시길.”
공터에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무거운 침묵을 깨고 네 개의 커다란 촉수가 임진혁을 노리고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촉수를 피해 움직이던 그는 촉수의 공격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더니.
임진혁의 온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멀리 떨어져 지켜보고 있던 내가 움찔거릴 정도로 흉포하고 거친 기운이었다.
촉수의 공격이 뒤덮는 순간, 그의 신형이 붉은 섬광을 뿌리며 사라졌다.
그리고.
-파아앗!
모든 촉수가 붉은 기운을 버텨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크흑!”
파괴된 촉수의 반동으로 서율희가 신음을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붉은 섬광과 함께 사라졌던 임진혁은, 어느새 다시 나타나 살짝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세진아.”
“네.”
“저 사람 얼마 전까지 경찰이라고 하지 않았었냐?”
“맞아요.”
“근데 무슨 B등급 균열도 씹어먹을 정도로 강하냐?”
“…….”
아저씨의 합리적인 의문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임진혁이 경찰에 퇴직하기 전에 몇 번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기는 했지만, 저 정도로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도대체 잠시 못 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물론 서율희가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임진혁이 보여준 실력은 상상 이상의 실력이었다.
“이 정도면 던전에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
임진혁의 질문에 서율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반응을 확인한 그는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임진혁의 의도를 짐작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임진혁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원래 파티였던 정 씨 가족과 나.
거기에 추가로 포함된 서율희와 임진혁까지.
이렇게 총 6명이 6인 던전에 들어가기로 결정된 순간이었다.
* * *
각자의 일정을 고려해 던전 입장 날짜가 정해졌다.
서율희는 조장의 경험을 살려 일행의 준비를 꼼꼼히 도왔다. 임진혁도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그녀의 지시에 따라 철저히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예정됐던 던전 입장의 날이 밝았다.
임진혁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행에게는 익숙할 수밖에 없는 골렘 균열에 도착했다.
일행은 사원 안 던전의 입구 앞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팔에 착용 된 새로운 아티팩트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며칠 전 미래 그룹 직원을 통해 전해 받은, 신지아가 새롭게 만들어 낸 아티팩트였다.
-중요한 일이 있으실 거라고 혜린 씨한테 전해 들었어요. 조금 일찍 말해주셨으면, 듣자마자 급하게 아티팩트를 만들어 봤어요. 문양 작업만 직접 완성하시면 바로 사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P.S. 아직 부족하지만, 이번 아티팩트는 꽤 튼튼하니 마음껏 사용하셔도 될 거에요.
직접 쓴 편지까지 같이 보내준 그녀의 정성이 느껴져서, 아티팩트를 보기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서율희가 나서서 일행을 둘러보며 마지막 점검했다.
“모두 준비 다 끝났죠?”
일행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앞장서지.”
아저씨가 가장 먼저 던전 입구로 향했고, 그 뒤를 따라 나머지 일행이 차례로 입구를 통과했다.
어두컴컴한 통로를 지나서 던전의 방 안에 일행이 도착했다.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방이었다.
일행이 호기심을 가지고 방안을 둘러보는 와중에 들어왔던 통로의 입구가 스르륵 닫혀버렸다.
통로가 막혀버리자 일행이 긴장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아주 익숙한 고블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핀테일’의 던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곳의 던전 마스터. ‘핀테일’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핀테일 던전의 도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