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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117화 (117/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17화

41. 두 번째 도전(2)

정말 오랜만에 듣는 임진혁 경사의 목소리에 나는 절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번호를 변경하고 따로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그랬었군요.”

나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임 경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경찰을 퇴직하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해외여행을 꿈꾸던 그의 모습이, 그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해외여행 가신다고 하셨는데. 혹시 이제 한국에 오신 겁니까?”

-뭐…… 지금은 한국입니다.

그는 내 질문에 대답을 잠시 망설였다. 조금 묘하게 느껴지는 대답이었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세진 씨, 시간 괜찮으시면 오늘 잠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이요?”

-네. 혹시 바쁜 일정이 없으시다면, 꼭 좀 뵐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시계를 확인해 보니 조금 있으면 벌써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아이들 저녁을 챙겨줘야 하는데…….’

임 경사를 만나러 나가기는 애매한 시간.

그렇다고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휴대폰 너머로 말을 전했다.

“그럼 임 경사님. 우리 집에서 만나도 괜찮겠습니까?”

* * *

임 경사를 집으로 초대한 나는.

그를 마중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큰 도로 교차로 앞에서 임 경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휴대폰 화면으로 약속 시각이 가까워졌음을 확인한 순간, 도로 건너편에서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퇴근 시간이라 붐비는 인파 속에서도 특유의 위압감을 뿌리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임진혁 경사.

여전한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걸렸다.

내가 건너편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자, 나를 발견한 임 경사도 같이 크게 손을 흔들어줬다.

차도의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고,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들어오자 수많은 인파와 함께 임 경사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성큼성큼 내 쪽으로 다가와 나를 와락 껴안았다.

나를 향한 그의 반가움이 느껴져 나도 그에 호응하듯 그를 껴안았다.

잠시 후.

서로 떨어진 우리는 웃는 얼굴로, 서로의 모습을 살피며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입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얼굴이 더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내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그의 말에 나도 그의 모습을 살피며 칭찬을 꺼내려 했다.

“임 경사님은 더 남자다워지셨네요. 수염도 기르셨고, 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터프한 느낌을 주는 턱수염이었다. 경찰이라는 직업 때문에 항상 깔끔한 느낌이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저기. 임 경사님?”

“……?”

“해외여행이 아니라, 해외 파병을 다녀오신 건가요?”

“하하하하하.”

그는 내 질문에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저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가까이서 본 임진혁 경사의 모습은 절대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변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든든하고 위압감 넘치는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위압감은 약간 줄어들었지만, 훨씬 날카로워진 느낌이었다.

분위기뿐만 아니라 살도 조금 빠진 것 같고 몸도 훨씬 날렵해진 느낌이었다.

해외 파병을 다녀왔냐는 농담도 섞여 있었지만, 정말 진심도 담긴 질문이었다.

“심심해서 조금 단련을 한 정도입니다.”

임 경사는 조금 단련을 했다는 말로 대충 질문을 넘겼고, 나도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실까요?”

나는 그를 이끌고 사람들이 없는 골목으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막다른 골목에서 집으로 향하는 균열 입구를 열었다.

“오오. 이건 새로운 능력입니까?”

“네. 예전에 그 능력에서 조금 발전했죠.”

임 경사는 내가 생성한 균열 입구를 보고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균열 입구를 통과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란 표정을 보여줬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지금 내가 이런 능력을 갖추게 된 첫 계기가 임 경사의 배려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는 나에게 굉장한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이쪽으로.”

나는 정신 없이 주변 풍경을 구경하는 그를 이끌고 통나무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우르르 몰려드는 아이들을 보고 임 경사는 약간 어색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안녕?”

하지만 처음 본 손님인 데다가.

저번에 봤던 서율희와는 다르게, 쉽게 다가가기 힘든 그의 분위기에 아이들은 그 자리에 멈춰 움찔거렸다.

아이들의 반응에 임진혁 경사가 머쓱한 반응을 보이고 있을 때, 퓨이가 그에게 다가가 관심을 표했다.

“퓨이?”

“너는 예전에 봤던 슬라임이구나.”

“퓨이! 퓨이!”

“그때 상처를 치료해 줘서 고마워.”

‘아아. 맞다. 퓨이랑 임 경사님은 만난 적이 있구나.’

서로를 알아보는 퓨이와 임 경사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아주 오래전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스스럼없이 임 경사에게 다가가는 퓨이의 모습에 다른 아이들도 조금씩 경계를 풀기 시작했다.

집으로 들어온 나는 곧바로 저녁 준비를 시작했고.

임진혁 경사와 아이들은 같이 거실에 앉아 어색한 대치를 이어나갔다.

퓨이는 상대적으로 친근감을 드러냈고, 티아는 약간의 호기심을 가지고 그를 살펴봤다.

모렛은 별로 관심이 없는지 그냥 멀뚱멀뚱 쳐다봤고, 이엘은 아직 그를 경계하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눈치를 살폈다.

그도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주기 싫었던지,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하면서 느릿느릿하게 행동했다.

아이들과 임진혁 경사가 어색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나는 저녁 식사 준비를 끝마쳤다.

손님을 의식해 최대한 신경 써서 차린 져녁 식사가 끝나고, 나는 어두워지기 전에 이엘을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조금 예상외의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우와아.”

“퓨우우.”

“후모!”

임진혁 경사의 주변으로 퍼져나온 붉은 기운이 아이들의 장난감을 휘감고 있었고, 그 장난감들은 그의 손길을 따라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아이들은 신기한 그 모습에 경계심 따위는 모두 잊어버리고 눈을 초롱이며 쳐다봤다.

나도 그의 신기한 묘기를 보며 살짝 감탄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와. 임 경사님. 언제 이런 능력을 얻으신 겁니까?”

“원래 있던 능력인데, 조금 수련을 하면서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된 겁니다.”

혹시 마법인가 싶어서 자세히 관찰하였지만, 아무래도 저 순수하게 붉은 기운은 그의 고유한 능력인 것 같았다.

한동안 임 경사의 신기한 재주로 잠시 시간을 보내고.

흥미가 떨어져 TV로 시선을 돌린 아이들을 거실에 두고, 나와 임 경사는 부엌 식탁에 캔맥주 한 캔씩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캔맥주를 살짝 부딪치며 건배를 나누고, 각자의 맥주를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켰다.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와 근황을 안줏거리로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세진 씨. 언제까지 경사라고 부르실 겁니까? 제가 경찰을 퇴직한 지가 언젠데.”

“하하. 죄송합니다. 워낙 입에 붙어버려서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입으로는 계속 그 호칭이 튀어나오네요.”

“이 기회에 서로 편하게 호칭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연장자가 먼저 시범을 보여야죠.”

“흠흠. 그럼 편하게 한다. 세진아?”

“좋아요. 진혁 형.”

갑자기 바뀐 호칭에 약간 낯간지러운 느낌도 들었지만, 알딸딸한 술기운 덕분인지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호칭이 편해지자 좀 더 친밀한 느낌이 들면서 술자리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밤이 깊어 아이들을 침실에 재우고 난 뒤에도 우리의 술자리는 계속되었다.

“세진아. 너 요즘에도 균열에 들어가냐?”

“네. 자주는 아닌데 파티에 소속돼서 가끔 들어가요.”

“혹시 파티에 남는 자리 없냐?”

“예? 형도 파티에 들어오시려고요?”

내가 놀란 기색을 보이며 되묻자, 임진혁은 남은 캔맥주를 탈탈 털어 마시며 말을 이었다.

“쩝. 나도 일을 하긴 해야 하는데. 딱히 배운 것도 없고,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차라리 각성 능력을 가지고 이쪽 일을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

조금은 의외긴 했지만, 그가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랑 같이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부담스러웠다면 미안하다.”

“아뇨. 부담스러운 건 아닌데…….”

솔직히 그의 말을 듣고 부담스럽다거나 난처한 기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들어가야 하는 던전의 인원수가 6인이고.

지금 확보된 파티는 5인.

믿고 같이할 만한 1명이 필요한 시점에, 갑자기 임진혁이 파티에 함께하고 싶다는 부탁을 해왔다.

‘이것도 우연인가?’

잠시 생각을 정리한 진지해진 말투로 물었다.

“형. 일단 내가 파티의 리더가 아니라서 확답은 못 줘요. 그리고 경험이 아예 없으면, 우리 파티에 들어오기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전달했다. 아무리 좋은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아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을 파티에 추천할 수는 없었다.

“그건 괜찮아. 나도 나름대로 경험은 쌓았거든.”

“……?”

“아마 C등급 균열까지는 무난하게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이 정도로도 부족해?”

“어. 부족하지는 않은데…….”

“그럼 됐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파티 리더라는 분한테 한번 말이라도 꺼내 봐.”

C등급 균열까지는 가능하다는 그의 말에 나는 살짝 불신이 생겨났지만, 대놓고 그에게 질문을 던질 수 없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술자리를 정리했고, 임진혁을 손님방으로 안내해 줬다.

생각지도 못한 부탁을 받아 나는 심란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몸을 뒤척이다가.

‘일단 내일 아저씨한테 말이라도 꺼내 보자.’

임진혁의 말대로 말이라도 꺼내 보자고 생각을 정리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 생각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 * *

“…….”

“…….”

“…….”

“…….”

거실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의 서율희.

평소처럼 여유로운 모습의 임진혁.

둘을 살피며 나에게 눈치를 주는 아저씨.

그리고 난감한 표정의 나까지.

뭔가 이야기를 꺼내기 힘든 분위기에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서율희였다.

“세진 씨.”

“네?”

“혹시 사람이 더 필요하시다면, 제가 길드에 요청해서라도 인원을 구해볼게요.”

그녀는 냉정한 표정으로 임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세진 씨의 지인이라고 해도, 아무런 경력도 없는 사람들 일행으로 데려갈 순 없어요.”

“진혁 형을 던전에 데려간다는 게 아니라. 일단…….”

“뭐. 경력이 없더라도, 실력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결정은 일행의 리더가 해야 하는 게 맞겠지요. 그쪽이 아니라.”

임진혁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으로 서율희의 말을 받아쳤다. 그의 발언에 눈썹을 꿈틀거린 그녀는 아저씨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연히 거절하실 거죠? 아무런 경력도 없는데 실력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죠.”

그녀의 매서운 눈길에 아저씨는 슬슬 말을 돌렸다.

“내가 파티장이긴 한데. 이번 6인 던전은 세진이 중심으로 기획된 거니까, 세진이가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아저씨. 그게 무슨?!”

아저씨는 두 사람의 시선을 나에게 돌리고 자연스럽게 뒤로 빠졌다. 내가 당황하며 쳐다보자 아저씨는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임진혁과 서율희의 눈빛을 받으며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니.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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