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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116화 (116/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16화

41. 두 번째 도전(1)

“흐음.”

나는 복잡한 회로 모형이 적혀 있는 노트를 내려다보다, 깊은 한숨과 함께 덮어 버렸다.

노트를 대충 옆에 던져두고 고개를 들어 눈앞에 쓰러져 있는 거대 골렘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골렘 균열을 클리어하고 그 균열의 소유권을 얻어 골렘을 조사한 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뭔가 눈에 띌 만한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도움이 될 만한 서적도 뒤져보고, 신지아에게도 도움을 청해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기본적인 골렘의 동작 원리나, 기초적인 회로 구성 방식에 대한 것은 이미 완벽할 정도로 해석이 끝났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골렘 핵에 대해서는 전혀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베른하르가 약속을 남기고 떠나간 지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고, 이제 그가 돌아오기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지금 내 능력으로는 이게 한계다.’

노력이나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지금 내가 가진 지식의 한계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머리를 벅벅 긁은 나는 거대 골렘 옆을 지나서 사원 쪽으로 향했다.

사원의 입구 통로를 지나, 어두컴컴한 사원 안쪽에는 원래 균열핵이 꽂혀 있었던 받침대가 보였다.

저 받침대에서 균열핵을 제거하는 순간 모든 골렘의 핵이 파괴되어버렸다.

잠시 균열핵 받침대를 바라보던 나는 그곳을 지나서 사원의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익숙한 구조물.

골렘 균열의 소유권을 획득하고, 균열 탐색에 성공해서 발견한 던전의 입구.

내가 던전 입구 앞에 서자 눈앞에 알람이 떠올랐다.

[‘핀테일’의 두 번째 던전]

[<난이도 : 중하><위험도 : 중><규모 : 중간>]

[던전 입장을 위해서는 6명의 인원이 필요합니다.]

[던전을 클리어할 시에 각자 보상을 얻고, 실패할시 패널티가 부과됩니다.]

[던전의 난이도는 참가인원의 레벨 수준에 따라 조정됩니다.]

예전에 D등급 균열에서 발견했던 ‘핀테일 던전’의 두 번째 발견이었다.

퓨이, 티아와 함께 던전을 클리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위험한 던전은 아니었지만, 이상한 느낌의 관문이 꽤 많았었던 기억이 났다.

또 아쉽게도 금화가 모자라서 ‘아르키트 회로 중급 이론서’를 얻지 못한 던전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 이 던전에 대해 잊은 채 지내고 있었는데.

정말 우연치고는 굉장히 공교롭게도, 딱 필요한 순간에 다시 눈앞에 등장해 주었다.

‘중급 이론서만 있다면 골렘의 핵에 대해서 뭔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속으로는 핀테일 던전으로 뛰어 들어가 ‘아르키트 회로 중급 이론서’를 얻어내고 싶은 게 굴뚝같았지만.

이번에는 저번 던전과는 다르게 생각해봐야 할 점이 많았다.

저번 핀테일 던전은 <난이도 : 하>, <위험도 : 최하>였다. 위험한 전투나 어려운 함정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난이도 : 중하>, <위험도 : 중>.

거기다 필요한 인원이 6명.

어떤 위험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던전에 나를 제외한 5명의 인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마 나 혼자 들어가도 되는 던전이었다면 이미 던전에 입장하고도 남았겠지만, 필요 인원 6명이라는 제한 때문에 던전 입구를 눈앞에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같은 파티에 소속되어 있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정 씨 가족이었다.

물론 대훈 아저씨나 남매의 성격을 생각해 봤을 때, 내가 부탁을 한다면 큰 고민 없이 들어줄 확률이 높았다.

정 씨 가족이 이 던전 탐험에 합류해 준다고 해도 총 4명, 던전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모자랐다.

나머지 자리를 채울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와중에 떠오른 사람은 최근에 가까워지게 된 서율희였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나에게 빚이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고.

능력적으로 봤을 때, 어린 나이에 오성 길드의 조장직을 맡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자였다.

만약 일행에 합류해 준다면 누구보다 든든한 팀원이 돼줄 거라 쉽게 예상 가능했다.

‘그렇다면 마지막 1명은 어떻게 해야 하지?’

6명 중에 나머지 한 자리의 주인을 생각해 보고 있을 때, 주머니의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이혜린

“여보세요.”

-세진 오빠. 나 혜린이야.

휴대폰 너머로 이혜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어. 잘 지냈어?”

-나는 잘 지냈지. 오빠는?

“나도 별일 없지.”

평범한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뒤.

이혜린은 곧바로 전화를 건 용건을 말했다.

-혹시 오빠 안 바쁘면 잠시 시간 내줄 수 있을까?

“지금?”

-응. 저번에 전해준 약초 때문에 할 말이 있거든.

“왜? 혹시 약초에 문제가 있었어?”

내 걱정스러운 물음에 이혜린이 재빨리 대답했다.

-아냐.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오빠 오늘 바빠?

그녀의 물음에 나는 오후에 하려고 했었던 일을 떠올렸다.

원래는 이곳에서 골렘을 살펴보며 골렘 핵에 관해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지금 상태로는 시간 낭비일 것 같았다.

“아냐. 특별한 일 없어.”

-그러면 저번에 만났던 곳으로 30분 뒤에 만날까?

“알았어.”

-그럼 좀 이따 만나.

이혜린과의 통화가 종료되고. 나는 노트와 가방을 챙긴 뒤에 사원을 빠져나왔다.

* * *

일전에 약초를 건네주기 위해서 만났던 카페로 나가니, 똑같은 자리에 이혜린이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나는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일찍 왔네?”

“아냐. 나도 방금 도착했어.”

카페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종업원은 나와 이혜린은 번갈아 쳐다보며 살짝 이상한 표정을 짓다가 주문을 받아 돌아갔다.

아무래도 정갈한 정장 차림의 이혜린과 굉장히 편한 복장의 내가 같이 앉아 있으니, 조금 이상해 보였나 보다.

‘조금 챙겨입고 올 걸 그랬나?’

내 복장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

이혜린은 주문한 음료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본론을 꺼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오빠한테 시간을 내달라고 한 건 저번에 건네받은 약초 때문이야.”

“……?”

“약초의 약효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약초값으로 꽤 비싸게 돈을 받고, 거기다 골렘에 관한 정보도 받았었기 때문이다.

“돈 돌려줘야 할까?”

“아냐, 오빠. 그런 것 때문에 부른 건 아니야.”

그녀는 다급하게 양손을 내저으며 내 말을 부정했다.

“단지 회장님의 상태가 더 안 좋아져서 조금 더 좋은 약효를 가진 약초가 필요하거든. 처음 오빠가 팔았던 약초처럼 말이야.”

“…….”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말없이 생각에 빠졌다.

처음 판매한 약초와 이혜린에게 주었던 약초는 모두 똑같이 내가 채취한 약초였다.

차이점이라면 단 하나.

처음 채취했던 약초는 호수 주변의 결계 내에 있었던 약초라는 점이었다.

이 두 가지의 차이점이 어떻게 그런 결과를 낳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으로써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유일한 추측이었다.

“당장은 그런 약초를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래도 최대한 한번 찾아볼게.”

“고마워. 오빠.”

확실한 대답은 주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혜린은 만족한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잠시 후 종업원이 주문한 음료를 테이블 위에 올려주었고, 나와 이혜린은 각자 주문한 음료로 잠시 시선을 돌렸다.

“오빠. 혹시 부탁할 일 있으면 뭐든지 말해. 회사 차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도울 일이 있으면 뭐든지 도와줄게.”

그녀의 말에 나는 문뜩 떠오른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혹시 미래 그룹에서도 전투 능력이 있는 각성자를 데리고 있어?”

“그건 왜 물어보는 건데?”

내 질문에 이혜린은 약간 표정을 굳히며 되물었다.

“내 개인적인 일로 일행을 좀 모아야 하는데, 믿을만 한 사람을 찾기 쉽지 않아서.”

“위험한 일이야?”

“나도 정확히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모르는데. 꼭 필요한 일이야.”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짧은 순간 눈을 빛냈다.

지켜보던 내가 순간 움찔거릴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그리고 다시 원래의 눈빛으로 돌아온 이혜린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미래 그룹에서 전투를 위해 공식적으로 계약을 맺은 각성자는 없는 거로 알고 있어. 보통 필요하면 길드 쪽이나 협회에 협조를 부탁하거든.”

“그렇구나.”

아무래도 미래 그룹에 도움을 얻기는 힘들 것 같아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이혜린이 묘한 미소를 띠며 내게 말했다.

“조금 기다려 보는 게 어때? 혹시 오빠를 위해 나서줄 만한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잖아.”

“……?”

아리송한 말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혜린은 말을 아끼며 앞에 놓인 아이스티를 마셨다.

* * *

이혜린과 만남 뒤.

나는 본격적으로 ‘핀테일의 던전’을 함께 입장할 일행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연락을 한 사람은 역시 대훈 아저씨였다.

-그러니까. 던전에 함께 들어가 달라고?

“네. 참가인원의 레벨에 따라 난이도가 조정된다고 했으니까, 엄청 어려운 던전은 아닐 거예요.”

-흐음.

아무래도 던전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다 보니, 아저씨는 약간 고민이 되는 것 같았다.

잠시 고민을 하던 아저씨는 시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괜찮다. 아윤이랑 선우에게는 따로 물어봐야겠지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지 불러.

“고마워요. 아저씨.”

내 감사 인사에 아저씨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고맙긴 뭘. 근데 파티가 6명이 되어야 한다고?

“네. 입장 조건이 6명이에요.”

-우리 애들까지 합해도 4명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 좀 해볼까?

“일단 제가 아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해 보려고요.”

-그래? 혹시 일행을 더 못 구하면 나한테 이야기해. 2명 정도는 구해올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아저씨. 꼭 연락할게요.”

-오냐. 나중에 보자.

아저씨는 필요하면 나머지 일행도 구해주겠다는, 아주 든든한 말을 남기고 통화를 종료했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에 아무런 조건 없이, 흔쾌히 참여하겠다는 아저씨의 모습에 절로 마음이 훈훈해졌다.

아저씨에 대한 고마움은 잠시 뒤로하고.

나는 곧바로 다른 연락처로 전화를 연결했다.

-그러니까. 6명 인원이 들어갈 수 있는 던전에 참여해 달라고요?

다음으로 연락을 받은 사람은 오성 길드의 조장 서율희.

“네. 혹시 가능할까요?”

-길드에 일정에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저는 괜찮아요.

너무 쉽게 부탁을 수락해 버리자, 나는 당황한 말투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렇게 쉽게 허락하셔도 되는 거예요?”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세진 씨에게는 갚아야 할 빚이 있으니까요. 일정만 맞춰주신다면 상관없어요.

“아. 그럼 나중에 일정 잡히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 연락 기다리고 있을게요.

생각보다 훨씬 짧은 통화가 끝나고.

너무 쿨한 서율희의 태도에 오히려 부탁한 내가 허망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뛰어난 실력과 풍부한 경험을 보유한 서율희가 일행에 참여했으니, 벌써 던전을 클리어한 것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남은 자리는 한 자리.

마지막으로 참여할 일행을 구하기 위해, 나는 휴대폰의 연락처를 뒤지기 시작했다.

‘각성자 협회에 연락해 볼까? 아니면 각성자 관리 센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강조하던 최동호 팀장과 박선영이 떠올랐다.

고민 끝에 휴대폰 연락처 하나를 골라 통화를 연결하려는데…….

♩∼♬∼♪

통화를 연결하기 직전에 휴대폰으로 전화가 결려왔다.

화면에 뜬 번호를 확인하니 모르는 번호였다.

생소한 전화번호를 보며 잠시 기억을 더듬던 나는 화면을 터치해 전화를 연결했다.

“여보세요?”

-아. 세진 씨?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네. 전데요. 누구세요?”

-하하. 저 벌써 잊으신 겁니까?“

호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굵직한 목소리로 묻는 남자.

나는 위압감 넘치는 한 남성의 모습이 머릿속에 번뜩 떠올랐다.

”혹시. 임 경사님?“

-오랜만입니다. 세진 씨.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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