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14화 (114/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14화

40. 컨텐츠 만들기(1)

어느 평일 오전.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날에 오연우가 찾아왔다.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덕분에, 녀석은 강제로 나에게 끌려가 약초밭 일일 노동자로 임명되었다.

아직 한 번도 약초밭 일을 해보지 않은 오연우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색한 손놀림으로 약초밭 일을 도왔다.

“형. 이거 굉장히 비싼 약초 아니에요?”

“비싸지. 아무래도 균열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약초니까.”

“와…… 그럼 이게 다 얼마야.”

그는 내 대답에 일하느라 굽어진 허리를 펴고 약초밭을 쭉 둘러봤다.

나와 어르신 그리고 정 씨 가족이 열심히 계속 일한 덕분에. 지금은 처음 나 혼자 약초밭을 만들었을 때보다 훨씬 규모가 커졌다.

당연히 수입도 그에 따라 늘어나서, 텅텅 비어 있던 통장 계좌에 약초를 수확할 때마다 묵직하게 돈이 쌓이는 중이었다.

“약초밭은 영상 컨텐츠로 못 만들겠죠?”

“아무래도 힘들지. 알 사람은 다 알지만. 아직은 이 약초밭의 존재는 비밀로 유지하고 있으니까.”

“흐으음.”

“일단 딴생각하지 말고 일해. 얼마 안 남았어.”

허리를 펴고 계속 딴생각을 하는 오연우를 재촉하며 오전 밭일을 계속했다.

서툴기는 했지만 오연우의 도움으로 원래 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오전 밭일이 마무리됐다.

“으억. 생각보다 힘드네요. 매일 이렇게 일하는 거예요?”

“다른 날에는 도와주러 오시는 분들이 있어서 괜찮아. 이거 받아라.”

나는 그늘 밑 평상에 퍼져버린 오연우에게 시원한 물과 수건을 건넸다.

그는 인사할 힘도 없는지 고개만 까딱하고 내가 건넨 것을 받아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뭐하러 온 거냐?”

“아니. 뭘 또 물어요. 이제 척하면 척이지.”

오연우가 찾아오는 경우는 대부분 한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바로 너튜브 영상에 관련된 일.

굉장히 최근에 영상을 찍은 것 같은 기분인데, 벌써 새 영상을 찍어야 하는 날이 돌아왔다.

“벌써 그렇게 됐나? 엊그저께 영상 찍었던 것 같은데.”

“무슨 소리예요. 저번 주에는 바쁘다고 못 오게 했으면서.”

“…….”

다시 생각해 보니까. 저번 주는 골렘의 핵을 조사하고, 균열도 다녀오느라 영상을 찍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굉장히 바빴다.

약초밭은 매일 관리해 줘야 했고.

아직 골렘 핵에 관한 실마리를 찾지 못했는데, 벌써 베른하르와 약속한 시각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오연우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선수 쳐서 말했다.

“아앗! 오늘도 바빠서 안 된다고 하면 정말 화냅니다. 그것 때문에 일부러 밭일도 도와준 거라고요.”

“미리 만들어 둔 영상 없어?”

“아, 진짜. 그런 거 없으니까. 빨리 새 영상 찍을 준비나 해요. 나랑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영상 찍기로 약속했잖아요.”

“쩝. 알았으니까. 화내지 마라.”

내가 또 어물쩍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이자. 오연우는 격렬히 화를 내며 내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너튜브를 통해서도 무시할 수 없을 만한 수입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다. 남아 있던 빚을 다 갚는데에도 너튜브 수입이 꽤 많은 도움이 됐다.

촬영, 편집, 기획, 채널 운영까지.

많은 일을 도맡아 처리해 주고 있는 오연우의 공이 컸다.

처음 녀석과 만났을 때는 겨우 영상 몇 개 편집해 올린 경력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수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을 무리 없이 운영하고 있었다.

새삼 오연우에게 느껴지는 고마움에 오늘은 녀석의 말대로 영상 촬영에 집중하기로 했다.

‘가끔은 쉬어가는 날도 있어야 하니까.’

“그럼. 오늘은 무슨 영상을 찍을 건데?”

“잠시만요.”

내가 의욕을 보이자 오연우는 신난 표정으로 자신이 가져온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왔다.

“오늘 무슨 영상을 찍을지 정하고 온 건 아니라서. 여기 노트에 제가 생각해 온 기획들이 많이 있거든요. 형이 한번 확인해 보세요.”

녀석이 건넨 노트에는 수많은 내용 들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너튜브에 유행하고 있는 컨텐츠들도 엄청 많이 조사했는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인기 컨텐츠들도 꼼꼼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그 뒷장에는 오연우 스스로가 생각한 단편적인 아이디어들이 약간은 어수선한 느낌으로 기록돼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노트를 꺼내 그때그때 기록을 해둔 듯했다.

“으음. 엘프차 만드는 영상?”

“아무래도 최근에 우리 채널 가장 핫한 주제어가 엘프차니까요. 그에 관련된 영상을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아아. 그렇긴 하지. 문제는 너무 뜨거워서 문제였지만.”

그의 말대로 엘프차는 우리 채널에 굉장히 뜨거운 주제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엘프차 이벤트로 열렬한 반응을 얻어냈었다.

구독자들의 너무 열렬한 반응 때문에.

유명한 식품 쪽 대기업에서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이 엘프차를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해 보자는 제의도 들어왔지만.

아직 어린 이엘이 만들 수 있는 양은 한정돼 있었기 때문에 그 제의는 당연히 거절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엘프차를 맛보지 못해 계속 추가 이벤트를 요구했고, 한동안은 이엘과 나무 정령의 힘을 빌려 쉬지 않고 엘프차를 만들어야 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엘프차 이벤트를 바라고 있지만, 추가 이벤트는 계획이 없다고 못을 박아둔 상태였다.

물론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착한 이엘은 순순히 엘프차 만드는 일에 도움을 주겠지만.

아직 어린 이엘에게 그런 부담스러운 일을 떠맡기고 싶지 않아서, 요즘은 최대한 자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건 패스! 당분간은 엘프차에 대해서 언급을 자제할 생각이야.”

“형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아무래도 찍기만 하면 조회수는 무조건 보장되어 있는 영상 기획인데, 내가 거절하자 오연우는 약간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나는 그의 반응을 모른척하며 다른 아이디어들을 살펴봤다.

“응? 모렛의 열악한 복지 개선 영상? 이건 도대체 무슨 아이디어야?”

“형. 기억 안 나요? 모렛이 처음 라이브 방송에 나왔을 때, 무임금으로 노동 착취해서 사과하고 그랬잖아요.”

“아아. 그거?”

오연우의 설명에 나는 저번 라이브 방송 때 기억을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그때 이엘의 원치 않았던 등장으로 난리가 났었는데, 그 전에 모렛도 라이브 방송에 처음 출연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었다.

그리고 내가 무임금 노동 착취, 악덕 사장으로 몰려서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시청자와 약속했었다.

시청자와 약속한 것도 있고, 딱히 어려워 보이지 않아서 이 아이디어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럼 일단 이걸로 해볼까?”

“좋아요.”

나와 오연우는 약초밭을 떠나 곧바로 모렛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 * *

집에 도착한 우리는 간단히 몸을 씻고. 모렛을 데려와 앞에 앉혀뒀다.

“후모?”

귀여운 털북숭이는 왜 불렀냐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와 오연우를 번갈아 쳐다봤다.

우리는 모렛이 이해할 수 있도록 차분하게 설명해줬다.

설명은 간단하게 통나무집을 짓는다고 수고했으니,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설명을 들은 모렛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

“…….”

“후모!”

냉장고로 달려가 시원한 캔맥주 한 캔을 꺼내왔다.

“모렛. 맥주 말고 다른 거.”

“후모오오…….”

맥주가 안 된다고 말하니 모렛은 축 처져서 슬픈 기색을 드러냈다.

“……일단 가져온 맥주는 마셔도 돼.”

“후모! 후모!”

내 허락이 떨어지자 녀석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맥주캔을 따 시원하게 들이켰다.

마치 맥주 광고에 한 장면처럼 맛있게 맥주를 마시는 모습에 나와 오연우는 입맛을 다셨다.

“형. 일단 우리도 한 캔씩 할까요?”

나는 대답 없이 냉장고에서 시원한 캔맥주와 간단한 안줏거리를 꺼내왔다.

금방 밭일을 하고 와서 그런지 맥주가 완전 꿀맛이었다.

* * *

영상 촬영은 까맣게 잊은 채,

모렛과 신나게 맥주를 마시던 우리는 뒤늦게 정신을 되찾았다.

하지만 모렛은 이미 더 바랄 게 없다는 표정으로, 완전히 만족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렛. 맥주 말고 더 필요한 거 없어? 하고 싶은 일이라든지.”

내가 애원하듯 다시 질문하자 모렛은 다시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

“…….”

“후모! 후모!”

털 속에서 연장을 꺼내 들고 내 쪽을 향해 들어 보였다.

녀석의 의도를 깨달은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형. 이건?”

“일하고 싶데…….”

“우와…… 말로만 들었는데. 진짜로 타고난 일꾼이네요.”

“후모! 후모!”

오연우는 기묘한 표정으로 모렛을 바라보며 말했고, 모렛은 타고난 일꾼이라는 말에 칭찬을 들은 것처럼 기뻐했다.

“아오. 이 맥주랑 일밖에 모르는 녀석을 어떻게 하지?”

일을 열심히 한 대가로 새로운 일을 달라고 하는, 대책 없는 모렛의 요구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때 뭔가를 생각해낸 오연우가 손뼉을 치며 내게 말했다.

“형. 마당에 있는 나무 테이블도 모렛이 만들었다고 했죠?”

“어. 맞아.”

“그러면 약간 취미 쪽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취미?”

“후모?”

오연우는 가져온 노트북으로 뭔가를 검색하더니, 나와 모렛에게 보여주었다.

“모렛. 너 이런 거 할 수 있어?”

노트북 화면을 통해 보여준 것은 나무 공예, 조각과 관련된 이미지와 자료가 나오고 있었다.

나무로 직접 만드는 가구부터, 섬세하게 만들어진 나무 조각들까지.

사진을 본 모렛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가슴을 탕탕 쳤다.

“후모!”

“이거 한번 해볼래? 이런 거면 모렛이 좋아할 것 같은데.”

“후모! 후모!”

모렛은 굉장히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해결책을 찾은 우리는 바로 모렛과 함께 마당으로 나갔다.

오연우가 잠시 촬영 셋팅을 하는 사이에

모렛은 어디선가 커다란 통나무를 가져와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톱을 꺼내 들더니 쓱쓱 통나무를 알맞게 자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보다 약간 크게 나무를 잘라내더니, 이번에는 품속에서 작은 조각칼을 꺼내 나무를 조금씩 파내기 시작했다.

오연우가 카메라 셋팅을 끝내고, 우리는 조금 떨어져 조용히 모렛의 작업을 지켜보았다.

-사각. 사각.

“…….”

“…….”

굉장히 집중해서 섬세하게 작업을 진행하는 모렛.

문제는 생각보다 작업이 엄청나게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점이었다.

조용히 지켜보던 오연우가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형. 일단 다시 집으로 들어가죠.”

“알았어.”

작업에 열중한 모렛을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형. 아무래도 다른 촬영도 동시에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게.”

나는 다시 오연우의 노트를 집어 들어 뒤적거렸다.

노트를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하나를 발견했다.

“낚시 먹방?”

“아! 맞다. 형. 우리 지금 당장 낚시하러 가죠.”

내 혼잣말에 오연우가 반응해서 소리쳤다.

“끄응. 저번에 낚시 반응 안 좋다고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었냐?”

“계속 재미없게 낚시만 하고 있으니까 그렇죠. 이건 낚시랑 같이 잡은 물고기로 요리까지 해서 먹어볼 거에요.”

오연우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저번 집들이 때, 대훈 아저씨가 해줬던 생선구이 기억나세요?”

“아. 그거 정말 맛있었지.”

“저도 그때 먹어보고 꼭 직접 만들어서 영상으로 찍어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확실히 아저씨가 만들어 줬던 생선구이는 생생하게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그때 맛을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침이 고이면서 의욕이 샘솟았다.

“그럼 이걸로 해볼까?”

“오케이. 바로 시작해 보죠.”

우리는 낚시채비를 갖춰 다시 집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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