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13화
39. 성덕이 된 그녀(3)
서율희를 데리고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집 앞마당을 빠져나와 호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여기 영상으로 본 적 있어요. 그때 세진 씨가 낚시하던 곳이죠?”
“네. 기억하시네요?”
“너튜브 영상으로 호수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더 대단한 것 같아요.”
그녀는 호수의 풍경을 둘러보며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담담하게 호수를 둘러봤지만, 호수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속 시원한 기분은 도시에서는 쉽게 느껴볼 수 없는 기분이다.
내가 서율희와 잔잔한 호수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어디선가 납작한 돌을 가져와 물수제비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간다!”
-휘익!
티아가 작은 몸집에 어울리는 작은 돌멩이를 가지고 기세 좋게 팔을 휘둘렀지만, 돌멩이는 얼마 가지 못하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히잉…….”
“후훗.”
생각보다 물수제비가 잘되지 않아 실망하는 티아를 보며 서율희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후모!”
다음으로 모렛이 나섰다.
짧은 팔을 휘두르며, 특유의 강한 힘으로 돌멩이를 빠르게 수면 위로 날렸다.
-풍덩!
하지만 너무 강하게 던진 탓에 돌멩이는 수면 위로 튕겨 오르지 않고 수면 아래로 통과해 버렸다.
“후모…….”
모렛 역시 실망한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여 뜨렷다.
다음으로는 수줍게 앞으로 나선 이엘.
엘프 소녀는 신중하게 돌멩이를 고르더니, 능숙하게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날렵한 몸동작으로 돌멩이를 안정적으로 수면 위로 던졌다.
-파바바밧!
경쾌하게 튀어 오르는 소리와 함께 돌멩이는 생각보다 훨씬 멀리 날아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우와!”
“후모! 후모!”
이엘의 능숙한 물수제비 실력에 티아와 모렛이 탄성을 질렀다. 나와 서율희도 수줍은 모습과는 전혀 다른 실력에 감탄을 표했다.
이엘은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면서도, 주변 반응이 싫지만은 않은지 방긋방긋 웃었다.
“퓨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선 퓨이!
퓨이도 이엘과 마찬가지로 신중하게 돌멩이를 고르더니, 약간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표정으로 호숫가에 섰다.
“퓨우우.”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처럼, 퓨이는 신중하게 자세를 잡고 돌멩이를 집어 든 꼬리를 휙휙 휘둘렀다.
그리고 원심력을 이용해 가속이 붙은 돌멩이를 폴짝 뛰어오르면서,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처럼 수면 위로 뿌렸다.
-파아아아앗!!
빠르게 쏘아진 돌멩이는 물 위를 튕기는 게 아니라, 마치 호수를 반으로 가르듯 질주했다.
“오오!”
이 정도면 세계 신기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한 퓨이의 물수제비에.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와 서율희도 감탄을 터뜨렸다.
“퓨우우! 퓨이!”
멋진 물수제비를 성공시킨 퓨이는 우쭐한 표정으로 몸을 들썩거렸다.
“와아! 대단하다. 나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줘!”
“후모! 후모!”
화려한 물수제비에 홀딱 반한 아이들이 퓨이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훈훈하게 쳐다보고 있던 서율희가 뭔가 생각이 난 듯 내게 물었다.
“아. 세진 씨. 혹시 아이들이랑 같이 사진 찍어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인터넷에 올리시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습니다.”
“고마워요. 그럼…….”
“제가 찍어드릴까요?”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죠.”
나는 서율희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아 호수를 배경으로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줬다.
호숫가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몽. 몽. 몽.
-몽. 몽. 몽.
그곳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슬라임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손님을 발견한 녀석들은 서율희 주변을 맴돌았다.
그중 예전에 그녀를 만난 적이 있던 두 녀석이 그녀에게 다가가 친근함을 표했다.
“어머! 이 아이들 예전에 봤던 그 아이들 맞죠?”
“네. 맞아요.”
“다시 만나서 반가워.”
그녀는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감싸 들어 올렸다.
-몽. 몽. 몽.
-몽. 몽. 몽.
연두색과 노란색 슬라임은 서율희의 손 위에서 몸을 움직이며 기분 좋은 향기를 내뿜었다.
달콤하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향기에 서율희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 * *
집에서 준비해 왔던 돗자리를 깔고, 서율희가 선물로 사 온 과자를 꺼내 작은 슬라임들과 나눠 먹었다.
과자를 먹던 티아는 따스한 햇볕에 졸리는지 내 품에 안겨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모렛은 소리소문없이 내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이엘과 퓨이는 작은 슬라임들과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살짝 넋이 나간듯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서율희에게 내가 말을 걸었다.
“저기…….”
“네?”
“오늘 원래 하실 일이 있으시지 않나요?”
“아앗!”
서율희는 내 말을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뾰족한 소리를 질렀다.
아무래도 그녀는 아이들에게 모든 관심이 쏠려 오늘 여기에 온 목적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죄송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그녀는 민망한 표정으로 내게 사과했다.
애초에 그녀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아이들과 만나려는 게 주목적이 아니었다.
저번에 균열에서 있었던 석연찮은 사건 이야기와 내 개인적인 부탁이 오늘 만남의 목적이었다.
솔직히 서율희와 내 관계가 집으로 초대할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녀가 내 정체를 알고 굉장히 간절하게 부탁했기 때문에 집으로 초대한 것이었다.
그녀는 당황하며 잠시 허둥대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표정을 회복했다.
“흠. 흠. 일단 저번 균열에서 있었던 일은 길드 자체적으로 조사를 해봤어요.”
“거대 골렘 이야기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때 누군가 골렘에게 공격을 가했다는 증언은 확보했지만, 결과적으로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는 찾아내지 못했어요.”
“흠…….”
“대신 최근에 굉장히 미심쩍은 소식을 하나 찾아왔어요.”
“……?”
서율희는 아주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혹시 벤전스 길드 아시나요?”
“네. 들어본 적은 있죠.”
“이번에 세진 씨 파티 말고, 교육에 참여했던 파티원 중에 벤전스 길드에 가입한 사람이 있어요.”
“……?”
“그렇게 갑자기 가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 사람은 특이하게도 뛰어난 실력이나 뒷배경 없이,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간단히 길드에 가입했어요.”
“설마…….”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정확한 물증이 있는 것도 아니라 확답은 못 드리지만. 아무래도 균열에서 있었던 일은 제가 아니라 세진 씨를 노린 것 같아요.”
나는 이전에 각성자 협회의 박선영과 미래 그룹의 이혜린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약초밭에서 재배되는 아스타나 약초 때문에 내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물론 서율희의 말대로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날의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리면 계속해서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내 눈치를 살짝 보다가 은근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오성 길드에 들어오시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길드에 가입해 주신다면 당연히 이런 일이 생겼을 때, 길드가 나서서 보호해 줄 수 있는데.”
“지금 가입을 권유하시는 거죠?”
“네. 거기다 아직 정식으로 연락이 가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세진 씨의 파티원 모두에게 공식적으로 제안이 갈 예정이에요.”
“흐음.”
지금까지는 길드 가입에 대해서 딱히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길드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계속해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나 혼자의 힘으로는 헤쳐나가기 힘들지도 모른다.
거기다 정 씨 가족 모두 길드에 가입하는 것이라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일인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볼게요.”
“네.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그래도 부정적이지 않은 내 반응에 그녀는 싱긋 웃으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저번에 제가 부탁드렸던 일은…….”
“거대 골렘에 관한 이야기 말씀이시죠?”
내가 그녀에게 부탁한 것은 바로 거대 골렘에 관한 것이었다.
저번 균열에서 결국 거대 골렘의 핵을 살펴보지 못했고, 그 핵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거대 골렘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거대 골렘을 쓰러뜨릴 방법에 대해 문의를 했는데.
서율희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최대한 길드의 정보를 이용해서 알아봤는데. 그 거대 골렘을 쓰러뜨렸다는 자료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아예 없다고요?”
“네. 대부분 거대 골렘을 직접 싸워서 쓰러뜨린 게 아니라, 균열핵을 제거해서 쓰러뜨린 경우밖에 없어요.”
“예전 자료를 보니까 싸웠던 기록이 있던데.”
“초장기에 전투한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쓰러뜨린 기록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아요.”
그녀는 계속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세진 씨가 부탁하신 대로 만약에 그 거대 골렘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팀을 짠다고 가정하면, 최소 B등급 균열을 클리어 가능한 멤버가 필요할 거라는 결론이 나와요.”
“끄응.”
“거기다 거대 골렘을 잡는다고 해서 큰 이익이 있는 게 아니라서. 나설만한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을 거예요.”
생각보다 훨씬 높은 조건에 나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B등급 균열을 클리어하기 위한 전력은 웬만한 길드가 아니고서야 가지기 힘든 전력이었다.
돈으로만 따져도 그만한 인원을 고용하려면 적지 않은 금액이 깨질 것이다.
“제가 조장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조원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만약에 그 거대 골렘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도전하신다면 큰 도움을 드리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렇군요.”
“제 개인적인 도움은 가능하니,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나는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뛰어난 실력의 서율희가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니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으으응.”
내 품에 기대자고 있던 티아가 몸을 뒤척이며 일어났다.
옆에 있던 모렛도 어느새 일어나 눈을 껌벅거렸다.
“일어났어?”
“응. 세진. 나 배고파.”
“후모!”
둘은 일어나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하늘을 보니 벌써 해가 조금씩 산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나는 서율희와 이야기하던 복잡한 일은 잠시 접어두고, 아이들을 챙겨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요?”
“네.”
그녀는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내 말에 따라 일어나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저녁 준비를 했다.
서율희는 너무 오래 있었다며 돌아가려 했지만, 새로 온 손님이 마음에 들었던 아이들이 그녀에게 달라붙어 저녁을 먹고 가라고 애교를 부렸고.
아이들의 애교에 마음이 약해진 그녀는 결국 저녁 식사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드디어 헤어질 시간이 찾아왔다.
“저녁 식사까지 대접을 받고. 너무 민폐를 끼친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이 정도는 당연히 대접해드려야죠. 오늘 아이들 선물 정말 고마웠어요.”
그녀는 현관문을 나서기 직전에 배웅을 나온 아이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눴다.
“다음에 또 놀러 와.”
“후모!”
“인형 소중히 가지고 있을게요. 언니.”
“퓨이! 퓨이!”
아이들의 진심 어린 인사에 그녀는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현관문 앞에서 머뭇거려야 했다.
나도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겨우 현관문을 빠져나온 그녀는 마당을 걸으면서 아쉬움이 남는지 계속 아이들이 있는 집을 뒤 돌아봤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작게 웃던 나는 챙겨왔던 것을 꺼내 서율희에게 건넸다.
“이거 받으세요.”
“……?”
“엘프차에요. 아까 챙겨드린다고 했잖아요.”
“아.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엘프차를 건네받은 그녀는 아쉬웠던 표정을 조금 지워냈다.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예?”
“아이들도 손님이 찾아오는 걸 좋아하거든요. 물론 길드 일로 바쁘시겠지만…….”
“아뇨. 안 바빠요. 충분히 시간 낼 수 있어요!”
그녀는 다급히 내 말을 끊으며 바쁘지 않다는 것을 어필했다.
갑작스러운 격렬한 대답에 내가 멍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뒤늦게 ‘아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혔다.
그녀의 반응에 나는 속으로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시간 날 때 가끔 연락해 주세요.”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대신 다음에 오실 때는 오늘처럼 너무 과하게 선물을 준비하지 마시고요.”
“네. 그렇게 할게요. 고마워요. 세진 씨.”
서율희는 벌써부터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아쉬운 표정은 전부 지워버리고,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