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12화 (112/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12화

39. 성덕이 된 그녀(2)

성덕!

흔히 성공한 덕후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직접 만나거나, 꾸준한 취미 활동을 통해 성공하는 경우를 말한다.

서율희는 예전부터 너튜브의 이런저런 영상을 시청하며 많은 영상물을 보며 시간을 보냈지만, 딱히 챙겨본다거나 영상을 기다리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녀에게는 단지 시간 보내기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우연히 한 채널의 귀여운 슬라임을 보게 되면서 그녀의 너튜브 이용 패턴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매일 새로운 영상이 채널에 올라왔나 확인하고, 라이브 방송을 챙겨보는 것은 물론 후원까지 돈을 아끼지 않았다.

영상이 금방금방 올라오지 않았던 탓에 예전에 보았던 것도 재탕, 삼탕은 기본이었고, 얼마나 봤으면 영상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채널에서 만들어 낸 캐릭터 상품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그 슬라임과 비슷하게 생긴 인형을 구매할 정도로 애정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마치 연예인을 추종하는 소녀처럼 자신의 팬심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남몰래 애지중지 키워오던 그녀의 팬심이 보답 받는 순간이 찾아왔다.

활짝 열린 현관문이 열리고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안쪽에서 아이들의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얘들아. 손님이랑 같이 왔어!”

전세진의 외침과 함께 안쪽에서 아이들의 앙증맞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도도도도!

선물을 잠시 내려놓고, 신발을 벗은 그녀의 눈앞에 영상으로 만 보던 귀여운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들은 곧바로 전세진에게 달려가 매달렸고, 그는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아이들을 한 명씩 쓰다듬어 줬다.

옆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서율희의 시선은 오로지 투명하고 말랑거리는 존재에게 고정됐다.

“퓨이?”

“……!!”

천진난만한 표정의 슬라임과 서율희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녀는 온몸에 전율이 일어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쳐올랐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굉장히 조심스럽게 퓨이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퓨이는 그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전세진의 다리 뒤쪽으로 쏙 숨어버렸다.

“아…….”

처음 보는 사람을 경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지만, 서율희는 왠지 모르게 자신을 피하는 퓨이의 모습에 살짝 마음에 상처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전세진은 표정을 흐리는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슬쩍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에게 그녀를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

“얘들아. 이분은 서율희 씨고, 그러니까…….”

서율희와의 관계를 설명하려던 전세진은 그녀와의 관계를 설명하려다 잠시 고민해야 했다.

“대훈 아저씨 가족과 비슷하게 가끔 같이 일하는 분이야.”

짧은 고민 끝에 아이들에게 익숙한 정 씨 가족의 예를 들어 그녀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전세진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은 그의 품을 빠져나와 서율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하자, 서율희는 온몸이 빳빳하게 굳는 느낌을 받았다.

“안녕!”

티아가 가장 먼저 나서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서율희는 살짝 굳은 얼굴에 겨우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안녕하세요. 티아 공주님.”

“어?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야?”

“너튜브 영상에서 자주 봤거든요.”

“그렇구나!”

생각보다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던 도중 서율희는 많은 선물 사이에서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꺼내 티아에게 건넸다.

“이거 티아 공주님 드리려고 사 온 거에요.”

“민트 초코 맛이야?”

“네. 저도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 좋아하거든요.”

그녀도 민트 초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에 티아는 조금 남아 있던 경계심 따위는 날려버리고 한껏 기분 좋아진 얼굴로 그녀 곁에 다가갔다.

“헤헤. 고마워.”

순식간에 티아의 호감도를 얻은 서율희는 약간 긴장감이 풀리는 듯했다.

“후모?”

그다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간 것은 모렛이었다.

슬금슬금 모렛이 다가오자 이번에는 선물들 속에서 여러 종류의 맥주가 담긴 봉투를 꺼내 보였다.

“후모!!”

수많은 종류에 맥주가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한 모렛은 흥분한 소리를 내면서, 초롱초롱해진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자! 이건 전부 모렛 주려고 사 온 거야.”

“후모! 후모!”

한참 동안 맥주를 둘러보던 모렛은 하나를 골라 전세진 쪽으로 달려갔다.

“후모?”

마치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일단 하나만이야.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나중에 먹어야 해.”

“후모!”

전세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능숙하게 맥주캔을 딴 모렛은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후모!”

모렛은 맥주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서율희에게 다가가 바지를 잡아당기며 감사 인사를 표했다.

만족하는 모렛의 모습을 보고 서율희도 밝은 미소를 지었다.

다음으로 그녀에게 다가온 것은 이엘이었다.

“안녕하세요?”

낯을 많이 가리는 엘프 소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상기시키고, 약간 우물쭈물 인사를 건넸다.

예전에 영상으로 봤을 때는 한국말이 조금 서툰 느낌이 들었는데, 오늘 직접 보니 이제는 아주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마치 훌쩍 커버린 조카를 보는 것처럼 훈훈한 기분을 느끼던 서율희는 이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

그녀는 귀여운 동물 인형과 엘프 인형을 꺼내 보였다.

평소에도 동물에 관심이 많던 이엘은 금방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인형 앞으로 다가갔다.

서율희는 천천히 다가오는 이엘에게 인형들을 건네줬고, 인형을 품에 안은 이엘은 입가에 순수한 미소와 함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언니!”

“아…….”

서율희는 귀여운 이엘에게서 듣는 언니라는 호칭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아 순간 현기증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고 왠지 부끄러워진 이엘은 인형들을 꼭 껴안고 전세진의 등 뒤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퓨이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서율희는 고대하던 순간이 다가오자 입가에 침이 마르고, 미세하게 손이 떨려왔다.

“퓨이?”

꼬리를 살랑 흔들며 말을 거는 퓨이의 모습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서율희는 이전보다 훨씬 당황한 몸짓으로 선물을 찾아 퓨이에게 건넸다.

퓨이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아주 푹신한 마약 방석이었다.

그녀가 긴장한 표정으로 건넨 마약 방석을 퓨이가 신기한 표정으로 둘러보다, 폴짝 방석 위로 뛰어올랐다.

-푸욱.

푹신한 기분과 함께 자연스럽게 방석이 퓨이의 몸을 편안하게 떠받쳤다.

“퓨우우.”

퓨이도 방석이 편안한 듯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서율희는 뭔가 갈등하는 표정으로 두 손을 움찔거렸다.

그러다 그녀는 애절한 표정으로 전세진에게 물었다.

“세진 씨. 퓨이 한번 만져봐도 되나요?”

절박함마저 느껴지는 그 질문에 전세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퓨이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

그녀는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방석 위의 퓨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마침 그녀를 올려다보는 퓨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서율희는 마른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긴장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퓨이에게 물었다.

“퓨이야. 한 번 만져봐도 될까?”

혹시 거절당하지 않을까? 마음 졸이던 그녀의 걱정이 무색하게 퓨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퓨이!”

“아아…….”

퓨이의 허락이 떨어지고.

그녀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 드디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서율희는 아주 조심스럽게 퓨이를 향해 두 손을 움직였다. 투명하고 윤기가 흐르는 퓨이의 몸에 살짝 손을 올렸다.

매끈하고 부드러우면서, 따스한 느낌이 두 손을 통해 느껴졌다.

손에 힘을 조금 줘서 퓨이를 잡으려고 하니, 너무 부드러워서 혹시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주물주물.

그녀는 정신을 놓은 채 계속 퓨이를 만지작거렸다.

아마 만지는 마약이 있다면, 지금 손안에 있는 귀여운 슬라임이 그것일 거라고 확신할 정도로.

퓨이를 만지는 두 손을 엄청난 중독성이 느껴졌다.

한동안 그녀의 손길을 느끼던 퓨이는 돌연 그녀의 품속으로 폴짝 뛰어올랐다.

“퓨이!”

“어머!”

갑작스러운 퓨이의 행동에 그녀는 당황하면서도, 재빠르게 팔을 움직여 퓨이를 품 안에 안았다.

온몸으로 퓨이를 껴안자, 만지는 것과는 다르게 색다른 기분이 느껴졌다.

따뜻하면서 부드럽고, 기분 좋은 흐물거림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슬라임 한 마리를 안고 있을 뿐인데 모든 근심과 걱정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아…… 행복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성인이 된 이후로 한 번도 지어보지 못했던, 정말 순수하게 행복한 미소를 얼굴에 보였다.

아마도 오늘은 그녀에게 있어 최고로 행복한 날이 될 것 같았다.

* * *

“근데 제 선물은……?”

“아앗!”

그녀답지 않은 사소한 실수가 있긴 했지만, 그렇게 큰일은 아니었으니…….

* * *

나는 아이들과 서율희를 거실로 데려가 자리에 앉혔다.

그녀는 사 온 선물 중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제과점 과자를 꺼내 아이들과 나눠 먹기 시작했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퓨이가 올라가 있었고, 주변에는 아이들이 달라붙어 재잘거렸다.

그녀는 아이들 사이에서 굉장히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약간 칠칠맞은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평소에 균열에서 보여줬던 완벽하고 절제된 모습으로, 수많은 조원을 이끌던 그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도 ‘균숙자네 퓨이’ 채널의 애청자였다는 말이 정말 거짓이 아니었는지.

아이들의 사소한 취향 하나하나를 생각해 선물도 준비하고, 정신없는 아이들 틈에서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니 약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내 선물은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 충격이었지만…….’

나는 부엌에서 아이들이 마실 음료수와 서율희에게 줄 엘프차를 준비해 거실로 향했다.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것이 많은지 서율희 곁에 달라붙어 이것저것 계속 질문을 해대고 있었다.

“얘들아. 손님을 너무 귀찮게 하면 안 돼.”

내 이야기에 아이들이 움찔하자, 서율희가 오히려 나서서 아이들을 두둔했다.

“저는 괜찮아요. 아이들한테 뭐라고 안 하셔도 돼요.”

“그래도…….”

“정말 괜찮아요.”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나는 더 할 말이 없어, 준비했던 마실 거리를 앞에 꺼내놨다.

“엘프차에요. 한번 드셔보세요.”

“와아. 이게 그 유명한 엘프차인가요?”

“네. 이엘이 만든 엘프차에요.”

이엘은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쑥스러운 고개를 숙였다.

서율희는 그런 이엘이 귀여운지 싱긋 미소 짓다가, 찻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갔다.

깊고 은은한 향과 엘프차 특유의 시원하고 맑은 맛이 느껴지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네요. 왜 사람들이 그렇게 엘프차에 열광했는지 알겠네요. 너무 맛있어요.”

그녀가 엘프차의 맛을 보고 극찬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이엘이 귀를 쫑긋거리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조금 챙겨드릴게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괜찮아요. 집에 많이 있거든요. 그리고 오늘 선물도 이렇게 많이 사 오셨는데 이 정도는 당연히 드려야죠.”

“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서율희는 엘프차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엘프차를 챙겨주겠다는 말을 끝까지 거절하지는 않았다.

“세진. 우리 밖에 놀러 가자.”

집 안에 있는 것이 지루했는지 티아가 대뜸 밖으로 나가자고 제안했다.

나머지 아이들도 밖으로 나가고 싶었는지 눈을 빛냈다.

내가 서율희 쪽으로 시선을 보내자, 그녀도 괜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오히려 저도 주변 풍경을 둘러보고 싶었거든요.”

“그럼 모두 나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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