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10화
38. 골렘 균열(4)
갑자기 돌진해 오는 거대 골렘.
그리고 골렘을 저지하려다 오히려 쓰러지는 서율희.
이 모든 것이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나는 힘없이 쓰러지는 서율희를 부축하며 외쳤다.
“괜찮아요?”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입을 달싹거렸다. 뭔가 내게 말하고 싶은 듯했지만 결국 전해지지 않았다.
-쿵! 쿵! 쿵!
둔중한 땅 울림소리에 고개를 들어 앞을 응시했다.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향해 직진하는 거대 골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등 뒤로 일행의 고함이 들려왔다.
하지만 잠시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골렘은 그 짧은 순간에 우리 코앞까지 다가와 무지막지한 주먹을 내려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지?’
도망친다고 해도 덩치에 비해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저 골렘을 피하기 힘들어 보였다.
거기다 쓰러진 서율희까지 생각한다면, 골렘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아티팩트로 쉴드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금방 그 생각을 접어야 했다.
방금 서율희의 마법도 순식간에 깨버린 저 녀석이라면, 문양의 힘으로 강화된 쉴드 마법이라고 할지라도 금방 깨뜨려버릴 게 분명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고, 그 순간에도 골렘의 거대한 주먹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더는 시간이 없다고 느꼈을 때.
오늘 쓰러뜨리고 살펴보았던 골렘들의 내부 회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골렘 유적지에서 봤던 거대 골렘의 회로와 오늘 쓰러뜨렸던 골렘에게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들의 회로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동안 추측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일반 골렘이든, 거대 골렘이든.
결국, 모두 누군가의 명령을 받기 위해 설계된 존재라는 점. 그리고 그 명령의 전달 과정에 아르키트 언어가 필요하다는 점.
‘가능할까?’
확신은 없었지만, 이미 거대 골렘의 주먹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상황.
선택지는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서율희를 감싸고 있던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골렘의 회로를 머릿속으로 계속 떠올리며, 모든 것을 쏟아내듯 외쳤다.
“Pusta!!”
외침과 동시에 몸에서 어떤 기운이 뭉텅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허탈한 기분에 휩싸였다.
기운이 빠져나가 온몸이 부들거렸지만, 떨어지려는 고개를 억지로 들어 골렘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그그극!
골렘은 내 외침에 반응하며, 절대 멈출 것 같지 않던 거대한 주먹을 멈췄다.
그리고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숙였던 몸을 다시 일으키더니, 원래 위치했던 곳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하아…….”
나는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면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잡고 있던 서율희도 놓쳐버릴 뻔했다.
뒤쪽에서 일행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정 씨 가족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풀려버린 긴장과 온몸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에 마음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때.
없는 힘으로 겨우 끌어안고 있던 서율희가 몸을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몸에 충격이 남았는지 신음과 함께 얼굴을 찡그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주변을 살피듯 눈동자를 굴리던 그녀는, 지켜보던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괜찮아요?”
* * *
서율희는 아주 힘겹게 눈을 떴다.
급하게 시전 했던 마법이 동시에 터져나가면서 엄청난 충격이 그녀를 뒤덮었고, 아직도 그때의 충격으로 온몸이 욱신거리는 상황이었다.
겨우 눈을 뜬 그녀의 눈앞에 전세진의 모습이 보였다.
“괜찮아요?”
아까와 똑같은 질문.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을 이전 상황과 혼동하기 시작했다.
‘아…… 이제 끝인 건가?’
거대 골렘의 공격은 이미 막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녀는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충격으로 몽롱한 정신 속에, 그녀는 마지막 후회가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생에 마지막 순간이라 생각한 서율희에게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한쪽 손을 들어 남자의 얼굴에 가져가면서, 며칠 동안 끙끙 앓으며 참았던 그 질문을 던졌다.
“세진 씨는…… 균숙자인 건가요?”
“……?!”
멍한 표정을 짓던 눈앞의 남자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대답을 확인한 서율희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마지막 인생의 목표라도 달성한 것 같은 시원한 미소였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일행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갑작스러운 거대 골렘의 공격은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들며 일단락되었다.
많은 사람이 사상자 없이 마무리되어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몇몇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부조장인 윤동현은 평소의 서글서글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차가운 표정으로 서율희를 대신해 조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 씨 가족도 겨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에게 달라붙어 계속 이상이 없는지 물어봤다.
“괜찮아요. 아저씨. 아까 골렘이 그냥 돌아가는 거 보셨잖아요.”
“걱정돼서 그러지. 저기 조장 아가씨는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린 것 같던데.”
“형. 정말 괜찮은 거예요?”
“오빠. 조금이라도 이상한 곳 있으면 빨리 말해.”
아까 느껴졌던 허탈함과 공허한 기분만 제외하면, 특별히 이상한 곳은 없었다.
“괜찮아요. 너무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요.”
정말 친가족처럼 걱정해 주는 정 씨 가족의 행동은 정말 고마웠지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이야기에 표정에서 걱정을 조금 덜어낸 정 씨 가족은 슬슬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아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빠. 아까 그건 어떻게 된 거예요?”
“무슨?”
“아니 왜 있잖아요. 우리가 막 도착했을 때 그거!”
“…….”
나는 아윤의 질문 의도를 깨닫고 입을 꾹 다물었다. 내 반응에 오히려 더 다급해졌는지 곧바로 질문을 이어나갔다.
“오빠. 언제 조장님이랑 그런 관계가 된 거예요?”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우리가 봤던 그 장면은 뭐에요?”
“…….”
나도 그때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거대 골렘이 돌아가고.
나와 서율희 곁으로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들은.
정 씨 가족 그리고 윤동현과 김유미였다.
우리와 가까이에 있었고, 또 가장 걱정을 하던 사람들이었기에 가장 먼저 우리에게 달려온 것인데.
그들은 우리 곁에 도착하자마자 꽤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 얼굴에 손을 올리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서율희와 그런 그녀를 내가 껴안고 있는 상황.
아저씨와 선우도 그 장면이 꽤 충격적이었는지, 아까부터 계속 내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정 씨 가족의 무언의 압박감이 점점 거세지려 할 때.
“세진 씨.”
“부조장님?”
윤동현이 이쪽으로 다가와 나를 불렀다.
“조장님이 깨어나셨는데. 잠시 와주실래요?”
“아…… 예.”
평소보다 딱딱한 표정의 윤동현을 보며 조금 당황했지만,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나섰다.
정 씨 가족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멀어져가는 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린 서율희 곁에는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는 사람과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김유미가 함께했다.
서율희의 상태를 확인하던 사람은 이상이 없다고 판단하고, 윤동현에게 고개를 숙인 뒤 자리를 벗어났다.
“조장님. 괜찮으신 거 맞죠?”
“정말 괜찮아요. 유미 씨. 조금 충격만 받은 것뿐이에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이게 왜 유미 씨 잘못이에요.”
서율희가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김유미는 계속 불안한 표정으로 서율희를 살폈다.
“유미씨. 본래 자리로 돌아가세요.”
“하지만…….”
“아직 균열 클리어가 끝난 게 아닙니다.”
“……예. 알겠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냉정한 윤동현의 반응에 김유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어색한 분위기에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자.
앉아 있던 서율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앉아주실래요? 계속 올려다보기가 조금 힘들어서.”
“예.”
나는 일단 부탁대로 그녀의 곁에 앉았다. 윤동현은 마치 우리를 호위하듯 뒤쪽에 서서 주변을 계속 경계했다.
“고마워요. 세진 씨. 덕분에 이렇게 무사할 수 있었네요.”
“예? 아뇨. 애초에 제가 골렘을 살펴보려고 하다가 생긴 일이니, 제가 오히려 더 죄송하죠.”
내가 당황하며 그녀의 감사 인사를 거절하자, 뒤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윤동현이 조금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
“이건 세진 씨 잘못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도 누나를 구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윤동현이 서율희를 누나라 칭하며 고마움을 표했고, 나는 민망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서율희는 아직은 약간 창백한 얼굴로 힘겹게 말을 이었다.
“본래 거대 골렘은 먼저 공격을 하지 않으면 절대 위험한 존재가 아니에요. 아까 세진 씨는 못 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 거대 골렘을 공격했어요.”
“도대체 누가…….”
“쉬고 있던 일행 중 한 명이겠지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왜 이런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은 앞선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저를 노렸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골렘을 움직이게 만든 사람은 세진 씨를 큰 곤경에 빠뜨리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아아…….”
“지금 부조장을 통해 수상한 사람을 찾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서율희와 윤동현 모두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다.
어쩌면 사건의 범인이 그들의 동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주변을 에워쌌다.
“부조장님. 준비 끝났습니다.”
“세진 씨. 잠시만 조장님 좀 부탁드릴게요.”
윤동현이 다른 조원과 함께 자리를 떠나가고.
나와 서율희만 침묵 속에 남겨지게 되었다.
뭔가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 속에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며 난감해하고 있을 때.
“세진 씨.”
“네?”
“그…… 아까 이상한 행동을 해서 죄송해요.”
서율희는 얼굴을 붉히며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정신이 없었던 그 순간을 다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아뇨. 괜찮습니다. 정신이 없으셨을 테니까요.”
“…….”
“…….”
“그런데 그때 제가 한 질문 기억하세요?”
“……네.”
그녀는 내 대답에 살짝 눈빛을 빛내며 다시 물었다.
“그럼. 그때 하신 대답은……?”
내가 균숙자냐고 물었던 질문.
그때는 나도 정신이 없었고, 품 안에 안겨 있던 그녀의 표정이 너무 절박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지금도 서율희는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하는 와중에, 계속 내 눈치를 살피며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녀는 내 대답에 작은 미소와 함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뒤로 윤동현이 돌아올 때까지
서율희는 그동안 참아왔던 질문을 계속 쏟아냈고,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질문에 대답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