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09화 (109/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09화

38. 골렘 균열(3)

첫 번째로 골렘과 전투가 무사히 끝나고.

일행은 약간의 휴식 시간 뒤, 곧바로 멀리서 보이는 사원을 향해 계속 전진해 나갔다.

나는 움직이면서도 쉬는 시간에 잠시 살펴본 골렘 내부 회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 골렘들에게도 핵이 존재했지만, 베른하르가 원하는 종류의 골렘 핵이 아니었다.

베른하르가 찾는 골렘 핵은 복잡한 명령과 학습을 가능케 하는, 중추적인 시스템 역할의 핵을 원했다.

조금 전의 골렘들이 가지고 있는 핵은 마력 공급과 아주 단순한 명령 체계만 입력할 수 있는 핵이었다.

물론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골렘들과는 다르게, 좀 더 멀쩡한 상태의 회로를 살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기는 했어도.

골렘 핵에 관한 실마리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살펴본 골렘들을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하던 와중, 일행의 앞쪽에서 또 다른 적을 발견했다는 신호가 전해졌다.

그리고 또다시 골렘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계속된 골렘과의 전투로 일행은 상대법에 조금씩 익숙해졌지만, 그와 동시에 나타나는 적의 숫자와 위력이 점점 강해졌다.

수많은 골렘을 때려눕히고 멀리서 보이던 사원 가까이 왔을 때.

우리는 사원 주변을 지키는 정예 골렘들과 그 한가운데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는 거대 골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골렘들을 봤을 때 트럭 같은 느낌이었다면, 거대 골렘은 정말 집이 움직이는 것 같은 압박감을 주었다.

거기다 처음 만난 골렘들과는 달리, 거대 골렘 주변을 지키는 녀석들은 양손에 방패와 창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위협적이었다.

여러 번의 골렘 전투를 부상자 없이 완벽하게 진행했지만.

이번만큼은 두 파티원뿐만 아니라 오성 길드의 조원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도 조장인 서율희의 설명이 이어졌다.

대부분 앞의 골렘들과 비슷한 내용이었고, 딱 하나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 있었다.

-절대 뒤쪽의 거대 골렘을 공격하지 마라.

일반 골렘과는 달리 공격을 하거나, 사원 가까이에만 접근하지 않으면 먼저 움직이지 않으니 무조건 가만히 두라는 내용이었다.

몇 번이고 당부하는 서율희의 말에 모든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이 끝나고.

이번에도 앞선 전투와 마찬가지로 탱커진이 먼저 골렘들의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다.

창과 방패를 든 골렘들은 모두 다섯 마리.

빨리 골렘의 숫자를 줄이지 못하면 당연히 탱커진의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화력을 집중하세요!”

서율희의 지시에 따라 골렘에게 모든 딜러진이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골렘은 느릿하게 방패를 들어 올리면서 일부 공격을 막아냈고, 이전과는 다르게 손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골렘을 빠르게 쓰러뜨리지 못하자 나머지 골렘들을 막아주던 탱커진 쪽에서도 점점 부담되기 시작했다.

결국

“한 마리 빠져나간다.!”

탱커진에서 막아내고 있던 골렘 중 한 마리가 뒤쪽을 향해 돌진해 왔다.

다가오는 골렘은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이미 다른 골렘과 전투 중이던 후방 진형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쩝. 이건 쓰기 싫었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아티팩트에 정신을 집중하며 마법을 발동했다.

-매직 미사일

두 개의 문양의 힘을 사용한 매직 미사일 5발이 마력 파동과 함께 눈앞에 생겨났다.

-파아아앗!

그리고

5발의 매직 미사일은 곧바로 달려오는 골렘을 노리고 쏘아졌고, 그대로 녀석의 방패와 몸체를 관통해 버렸다.

-꽝!

-그그그긍…… 쿵!

굉음과 함께 골렘의 몸체가 땅바닥에 쓰러지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일행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골렘을 한 방에?”

“뭐야? 그냥 매직 미사일 아니었나?”

“누가 쓰러뜨린 거야?”

일행들 사이에 잠시 소란이 일어났지만, 서율희의 벼락같은 외침에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금방 정리됐다.

“아직 전투 안 끝났어요! 집중하세요. 집중!”

다행히 내가 나선 덕분에 먼저 싸우던 골렘도 무난하게 정리할 수 있었고, 차례로 나머지 골렘들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나는 두 개의 문양의 힘을 사용한 대가로 심하게 달아오른 아티팩트를 살펴보았다.

최대한 마력을 조절한다고 조절했는데도 아티팩트는 비명과 같은 소리를 내며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휴우. 다행이네.’

다행히 회로에 약간 무리가 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조금 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힘들었던 전투가 끝나고.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전투의 승리를 기뻐했다.

앞쪽에서 진땀을 흘리며 주저앉은 탱커진들이 보였고, 그중에는 거친 숨을 내쉬는 대훈 아저씨도 보였다.

“세진 오빠!”

“응?”

오늘 처음 만난 김유미가 불쑥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까 골렘을 쓰러뜨린 매직 미사일. 오빠가 한 거 맞죠?”

아무래도 가까이에 있었던 김유미는 내가 아티팩트로 매직 미사일을 사용한 것을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딱히 나서서 자랑할 생각은 없었지만, 티가 나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 정말 대단하네요. 그거 아티팩트로 마법 사용하신 거 맞죠? 어떻게 그런 위력이 나오는 건가요?”

“하하…….”

오늘 만난 사이치고는 굉장히 공격적으로 붙어서 질문 공세를 펼치는 김유미.

내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난감해하고 있을 때.

그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아윤이 나를 구해내 주었다.

“유미야, 진정해. 세진 오빠도 좀 쉬어야지.”

“아! 죄송해요. 오빠. 제가 조금 흥분했죠? 너무 대단한 걸 목격해버려서…….”

살짝 얼굴을 붉히며 사과하는 김유미의 모습에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나는 일단 진정된 김유미를 피해 쓰러진 골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형. 저도 같이 가도 돼요?”

“으음? 별로 재미있는 건 없을 건데.”

“그래도 저도 구경해 보고 싶어서요.”

“그럼 따라와. 상관없어.”

아까부터 계속 골렘을 살피던 내 모습이 궁금했는지 선우가 내 뒤에 따라붙었다.

이번에도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윤동현에게 허락을 맡고 쓰러져 있는 골렘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윤동현도 선우처럼 내 뒤에 따라붙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뭘 하시는지 궁금해서요. 불편하시면 저는 원래 있는 곳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근데 뭐 딱히 특별한 걸 하는 건 아닌데.”

상관없다는 표정을 짓는 윤동현의 모습에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골렘 가까이 붙어 살피기 시작했다.

-Sanye(질서)

골렘의 내부를 살펴보니 정예 골렘들은 일반 골렘보다 조금 더 복잡한 회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조금 더 진화한 느낌?

회로 중심부의 골렘 핵도 일반 골렘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확실히 싸우면서 느꼈지만, 창과 방패를 사용하는 것과 별개로 움직임이 훨씬 까다로웠다.

아마 그 모든 것이 이 골렘 핵과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새로운 발견에 가슴이 두근거림과 동시에.

이것 역시 베른하르가 원하던 골렘 핵에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저 녀석을 잡아야 하는 건가?’

나는 고개를 들어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거대 골렘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마치 죽은 것처럼 가만히 서 있는 녀석을 응시하며 나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 * *

조금 위험했던 전투를 끝낸 뒤.

서율희는 부상자가 없는지 확인하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탱커진이 놓쳤던 골렘 한 마리가 뒤쪽 진형으로 돌격해 왔을 때는 그녀도 아찔하다 생각했을 정도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물론 그 상황을 바로 인지하고 서율희 역시 신속하게 대응하려 했다.

아마 전세진의 활약이 없었더라도 그녀의 능력으로 골렘을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처럼 일격에 쓰러뜨리지는 못했겠지만…….’

무지막지만 매직 미사일의 위력으로 골렘을 쓰러뜨렸고, 그로 인해 전투가 쉽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녀는 저쪽에서 쓰러진 골렘을 살펴보고 있는 전세진을 바라봤다.

확실히 길드장이 직접 부탁을 할 정도로 탐나는 존재이긴 했다.

저런 위력의 아티팩트를 직접 만들 수 있다니…….

만약 오성 길드에 전세진이 합류를 하고, 저 정도 위력의 아티팩트를 계속 공급해 준다면.

균형을 이루고 있는 5대 길드의 판도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서율희는 전세진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점점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도 전세진의 회유에 뭔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길드장이 크게 실망할 가능성이 컸다.

거기에 사사건건 그녀의 트집을 잡는 꼰대 같은 다른 조장들도, 회유 실패에 신나서 그녀를 헐뜯을 것이다.

머릿속에 훤히 그려지는 끔찍한 미래를 상상하자, 그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은 전세진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그녀를 주목하고 있던, 김유미와 정아윤도 거의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엇? 길드장님? 유미 씨도?”

윤동현은 갑자기 모여든 세 명의 여자들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서율희는 살짝 헛기침을 하며 변명아닌 변명을 했다.

“흠흠. 너무 저 거대 골렘 가까이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아서. 나도 여기에 있으려고.”

김유미는 정아윤과 함께 눈을 빛내며 뭔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여기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부조장님.”

“…….”

윤동현은 뭔가 이상한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편.

전세진은 다른 사람들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골렘만 살펴보고 있었다.

무서운 집중력과 함께 진지한 얼굴을 한 그의 모습에 쉽게 말을 걸기 어려워 보였다.

서율희는 전세진과 이야기할 상황이 나오지 않자 초조한 기색을 드러내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김유미가 팔꿈치로 정아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서로 눈빛 교환을 끝낸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우야. 나랑 같이 아빠가 괜찮으신지 보러 가자.”

“응? 괜찮으신 것 같던데?”

“아냐. 많이 힘들어 보이셨어. 빨리! 아까부터 계속 이야기도 제대로 못 나눴잖아.”

“어어. 알았어.”

정아윤이 보채자 정선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따라 그곳을 벗어났다.

“부조장님.”

“……?”

“저 다리가 좀 아픈 것 같은데. 저기서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갑자기요? 아까 부상자 확인할 때 아무 말도 안 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좀 아픈 것 같아요.”

김유미가 얼굴을 찡그리며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윤동현은 다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조장님. 저는 유미 씨 부상 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세진 씨 좀 봐주세요.”

“으응. 알았어.”

윤동현의 부축을 받아 일행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가는 김유미는 서율희와 눈을 마주치고 몰래 윙크를 해 보였다.

서율희는 김유미가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해 난감했지만.

일단은 전세진과 단둘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만들어 줬다는 점에서는 고마움을 느끼는 복잡한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결심한 표정으로 조금 크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큼.”

“……어? 조장님? 언제 오셨습니까? 그리고 다른 분들은?”

헛기침 소리에 골렘에 눈을 뗀 전세진이 서율희를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분들은 저에게 세진 씨를 부탁하고 일행 쪽으로 합류했어요.”

“아.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수고스럽게…….”

“괜찮습니다.”

서율희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에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이렇게 편안히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니 눈앞에 남자가 균숙자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 나갔다.

‘말투라던지, 체형. 너무 비슷해.’

처음에는 길드의 회유 목적으로 접근했지만, 조금씩 개인적인 궁금증이 커져 나가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하지만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그녀의 원칙에 따라 그녀는 작게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은 떨쳐버렸다.

그리고 회유 작업을 우선시했다.

“세진 씨. 아까 골렘을 쓰러뜨리는 활약은 대단했어요.”

“하하. 보고 계셨어요? 대단한 건 아니고.”

“아뇨. 그 정도면 엄청난 거죠. 그 아티팩트도 직접 만드신 거죠?”

“저 혼자 완성한 건 아니고. 도움을 많이 받았죠.”

서율희가 아티팩트 이야기를 꺼내며 자연스럽게 길드의 이야기를 하려는 그 순간.

-휘이익!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서율희와 전세진의 머리 위를 지나 거대 골렘을 향해 날아갔다.

-파악!

-그그그그그긍! 쿵. 쿵. 쿵.

거대 골렘의 머리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와 동시에 일반 골렘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겁고 큰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응?”

“……?!”

전세진과 서율희가 뒤늦게 고개를 돌려 거대 골렘을 바라보았을 때는 이미 엄청난 존재가 그들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이런!”

서율희는 바로 앞으로 나서며 거대 골렘의 돌진을 막아내기 위한 마법을 발동시켰다.

기묘한 마법진이 그려짐과 동시에 여러 개의 거대한 촉수가 뻗어 나와 골렘을 향해 뻗어 나갔다.

“도망쳐요!”

그녀는 등 뒤에 있을 전세진에게 소리치고, 엄청난 땅 울림과 함께 돌진해 오는 골렘을 노려봤다.

-쿵. 쿵. 쿵.

-꽈아앙!

거대한 촉수가 골렘의 움직임을 저지하려 했지만, 골렘은 육중한 팔을 휘두르며 한 방에 모든 촉수를 터뜨려버렸다.

“커헉…….”

그 반동으로 서율희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몸을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 짧은 사이 거대 골렘은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

서율희는 흐릿해져 가는 의식을 부여잡으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온몸에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등 뒤로 일행의 외침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휘익.

그녀가 쓰러지기 직전에 무언가 그녀의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서율희는 흐릿하게 들려오는 균숙자…… 아니, 전세진의 목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도망치라고 했잖아요.’

그녀는 조금씩 흐릿해져 가는 전세진의 얼굴과 그 뒤로 공격을 준비하는 거대 골렘을 바라보며 절망했다.

짧은 순간 인생의 주마등을 느끼던 그녀는

마지막으로 눈앞에 보이는 전세진의 얼굴이 마치 낙인처럼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됐다.

그리고.

‘차라리 균숙자인지 물어볼걸…….’

그녀는 끝끝내 풀지 못한 궁금증에 아쉬움을 느끼며 부여잡고 있던 의식을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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