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07화 (107/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07화

38. 골렘 균열(1)

쨍쨍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전.

대훈 아저씨와 정 씨 남매는 나와 함께 약초밭의 김매기를 하고 있었다.

“흐어. 이놈의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구나.”

아저씨는 굽어 있던 허리를 한번 쭈욱 펴면서 숨을 돌렸다.

힘든 밭일이라도 정 씨 가족은 밭의 약초들이 아주머니에게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절대 허투루 일하지 않았다.

아윤과 선우도 처음에는 서툴고 많이 어색해했지만, 지금은 능숙하게 잡초를 정리하고 약초의 상태를 돌봤다.

나무 그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어르신도 요즘에는 화를 내거나 일일이 지적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다. 기본적인 밭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받은 듯했다.

“오전 작업은 그만하고 와서 쉬어라.”

“알겠습니다. 어르신. 이쪽만 마무리하고 가겠습니다.”

어르신의 말에 아저씨가 대답하고, 우리는 얼른 남아 있는 부분을 마무리했다.

오전 밭일을 끝내고 나와 정 씨 가족은 어르신이 있는 나무 그늘에서 숨을 돌렸다.

최근에 약초밭은 어르신과 정 씨 가족의 도움으로 안전궤도에 접어들었다.

목표에 못 미치던 아스타나 약초 생산량도 어느새 목표치를 초과했고, 중간에 약초가 시들어 버리는 일도 이제는 거의 없었다.

절반 가까이는 기부를 하고 있지만, 수입 측면에서도 꽤 좋은 성적을 올리는 중이었다.

이미 모든 빚을 다 갚은 내 통장에는 꽤 묵직한 금액이 찍히기 시작했다.

약초 대부분은 각성자 협회를 통해 판매했는데, 최근에는 다른 단체에서 은밀하게 접촉을 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아스타나 약초 재배 방법에 관심을 보이며,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는 곳도 있었다.

애석하게도 약초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내 능력이 필수이기 때문에 재배 방법은 알려줄 수 없었다.

나는 김매기로 깔끔해진 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약초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으어. 영감님. 우리도 밭에 제초제 같은 거 확 뿌리면 안 됩니까?”

평상에 앉아 물을 마시며 숨을 돌리던 아저씨의 말에 어르신이 혀를 차며 핀잔을 줬다.

“쯧쯧. 이 코딱지만 한 밭을 가꾸면서 무슨 제초제 타령이야. 나 때는 이것보다 훨씬 큰 밭을 혼자서 다 관리했어.”

“아니. 요즘 농약 엄청 좋게 나온다는데. 굳이 힘들게 해야 하나 싶으니까 그렇지요.”

“워낙 민감한 녀석들이라 농약에도 영향을 받을지도 모른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정성을 들이는 수밖에 없어.”

강경한 어르신의 태도에 아저씨는 약간 뻘쭘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아저씨를 면박을 준 게 마음에 걸렸는지, 어르신은 헛기침하면서 다른 주제를 꺼냈다.

“허험. 아윤아. 너는 나중에 집에 갈 때, 동생이랑 같이 통나무집에서 옥수수 챙겨가거라. 내가 직접 수확해 가져온 거다.”

“옥수수요?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저 옥수수 엄청나게 좋아하거든요.”

옥수수 이야기에 아윤이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다. 선우도 옥수수가 기대되는지 들뜬 표정을 지었다.

“흐흐. 감사합니다. 어르신.”

“쯧. 그렇게 웃지 마라. 징그럽다. 이놈아.”

어느새 기운을 차린 아저씨가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어르신은 질색한 말투로 대답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정 씨 가족과 어르신 모두 조금씩 친밀한 관계를 쌓아나가고 있었다.

* * *

오전 약초밭 일을 끝내고.

우리는 모두 집으로 가서 아이들과 함께 옥수수를 쪄서 먹었다. 어르신이 직접 수확한 옥수수라 그런지 설탕을 뿌린 것처럼 달고 맛있었다.

“우물우물.”

“우물우물.”

“얘들아.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

특히 옥수수를 처음 맛보는 아이들은, 뜨거운 줄도 모르고 갓 쪄낸 옥수수를 입으로 가져갔다.

“허허허. 많이 있으니까. 많이들 먹거라.”

옥수수 맛에 취한 아이들의 모습에 어르신은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하나하나 챙겼다.

아저씨와 정 씨 남매 역시 허겁지겁 옥수수를 흡입하는 중이었다.

“할아버지. 옥수수 엄마 가져다줘도 돼요?”

옥수수를 먹던 이엘이 집에 혼자 있는 아르엘이 생각났는지, 어르신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르신은 방긋 미소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럼. 그럼. 얼마든지 가져가려무나.”

“헤헤. 고마워요, 할아버지.”

이엘이 웃으며 어르신의 품에 안겨들자, 어르신의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그렇게 모두 즐겁게 옥수수 파티를 벌이고 있는 와중에.

“아! 까먹고 있었네.”

“……?”

“세진아. 이번에 오성 길드에서 또 연락이 왔었어. 자기들 균열 제거 작업에 참여해 볼 생각 없냐고.”

“흐음. 교육은 끝난 거 아니었어요?”

“네 말대로 교육은 끝난 거고, 이번에는 별개로 교육받았던 파티 중에 2팀만 따로 뽑아서 데려간다고 하더라고. 아마 일종의 스카웃 단계인 것 같아.”

“그래요?”

아저씨의 설명에 나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딱히 오성 길드에 가입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무엇보다 지금 내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관심 없냐?”

“저는 뭐……. 아저씨는요?”

“나도 이제는 딱히. 원래는 약초 때문에 C등급 균열에 도전하려고 했지만, 네 덕분에 약초도 안정적으로 구하고 있어서. 오히려 밭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게 이득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정 씨 가족 모두가 균열 제거 일에 참여했던 이유는 아스타나 약초를 구하기 위해서였는데, 지금은 딱히 위험하게 균열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위험한 균열 일은 그만두고. 여기서 세진이나 열심히 도와라. 저 녀석 옆에 붙어 있으면 약초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어르신은 균열에 관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불편한 목소리로 나와 아저씨에게 말했다.

약간 가시가 있는 말이었지만 약간의 걱정도 묻어나왔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우리 가족은 네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애초에 우리가 교육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네 덕분이니.”

나에게 결정권을 넘기는 아저씨의 모습에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지금 당장은 균열에 가야 할 이유가 없긴 하지.’

오성 길드의 제안에 거절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히려고 하는데…….

“아! 그리고 이번에도 그 여자 조장이랑 같이 가는데. 그 뭐였더라? 골렘이 나오는 균열이라고 했던가?”

아저씨의 마지막 말이 나의 마음을 되돌리게 만들었다.

* * *

“하아…….”

길드장과 면담을 끝내고 방을 나온 서율희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 왜 그래요? 길드장님한테 혼났어요?”

“혼난 건 아닌데…….”

윤동현의 물음에 그녀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그녀가 이렇게 난감한 표정을 짓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길드장이 1:1로 면담을 신청할 정도로 뭔가 중요한 임무를 주었는데, 하필이면 그녀에게 꽤 난감한 임무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균열에서 괴물들을 상대하는 일이 더 편하지.’

길드장이 부탁한 임무는 딱 하나.

바로 전세진에 대한 적극적인 회유 활동이었다.

많은 파티를 데리고 C등급 균열에서 이루어진 교육은 꽤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서율희의 철저한 관리로 교육 기간 내내 크게 다치는 인원이 생기거나,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또 교육을 받은 파티원들의 평가도 굉장히 긍정적이어서 대외적으로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문제는 길드에서 은연중에 바랬던 성과는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길드가 원했던 것은 교육에 참여한 전세진에 대한 회유 활동이었는데, 서율희는 그쪽으로는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길드장에게 직접 부탁과 설교가 뒤섞인 이야기를 30분 가까이 들어야만 했다.

길드장이 왜 이렇게까지 전세진에게 집중하는지, 서율희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길드 일에 개인적인 사정을 개입시키지 않는 그녀에게, 지금 전세진은 굉장히 혼란스러운 인물이었다.

‘아. 어쩌지?’

난감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는 서율희의 모습에, 옆에서 지켜보던 윤동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 * *

난감한 서율희의 사정과는 별개로 그녀의 조원들과 두 팀의 파티가 집합 장소로 모여들었다.

교육 기간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정대훈 파티와 또 다른 한 팀의 파티.

두 팀 모두 준수한 실력으로 오성 길드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번 균열 제거 작업에 동행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5대 길드 중의 하나인 오성 길드에 들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정대훈 파티는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한 팀은 약간 흥분한 기색이 엿보였다.

한편.

조원들의 준비 상태를 살피던 서율희는 정대훈 파티원 사이에 있는 전세진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너튜브 영상 속에서 보던 균숙자를 떠올리며 비교를 해보니, 확실히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았다.

점점 마음속 의심이 켜지는 상황에서…….

“조장님. 점검 다 끝냈어요.”

가장 최근에 들어온 여자 신입 조원, 김유미가 서율희에게 보고하기 위해 찾아왔다.

‘균숙자네 퓨이’ 채널을 계기로 급격히 친해진 여자 조원이었다.

서율희는 눈을 빛내며 그녀의 팔을 잡아 가까이 끌어당겼다.

“어엇. 조장님?”

“유미 씨. 잠시만요.”

그리고 전세진을 몰래 가리키며 김유미에게 속삭였다.

“저쪽에 있는 남자 보이죠?”

“어디요?”

“왜 중년 남자랑 같이 있는 20대 남자요.”

“아! 저기 아티팩트를 차고 있는 남자요?”

김유미는 서율희가 가리키는 전세진을 발견했다.

“유미 씨. 저 남자보고 혹시 생각나는 거 없어요? 어디서 봤다던가, 친숙한 기분이 든다던가.”

서율희는 김유미에게 약간 기대감이 섞인 질문을 던졌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균숙자네 퓨이’ 채널에 열렬한 팬인 김유미라면 뭔가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으으음……. 평범하네요. 스타일도 무난하고. 확실히 조장님 말대로 친숙한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맞죠? 뭔가 더 생각나는 거 없으세요?”

김유미는 흥분해서 계속 질문을 던지는 서율희를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뭔가를 알아차렸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놀라운 표정으로 전세진과 서율희를 번갈아 쳐다봤다.

“유미 씨. 뭔가 아셨어요?”

“조장님.”

김유미는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런 취향이셨구나.”

“……??”

“조장님은 좀 더 뭐랄까? 눈이 엄청 높으실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무난한 취향이셨군요?”

서율희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대화가 흐르자 말을 잇지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김유미는 그런 서율희의 반응에 다 안다는 표정과 함께 안심시키듯 말했다.

“제가 이런 쪽으로 눈치가 좀 빠르거든요.”

“…….”

“후훗. 당연히 비밀로 해드릴 테니까. 걱정 마세요. 조장님!”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유미 씨…….”

“그러면 저는 가볼게요.”

오해를 풀 기회조차 주지 않고 떠나버리는 김유미.

서율희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 *

정 씨 가족과 함께 장비를 점검하던 나는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시선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변을 둘러보는 내 모습이 이상했는지 옆에 있던 선우가 내게 물었다.

“형? 왜 그래요?”

“아니. 누가 쳐다보는 것 같아서.”

“뭐야. 오빠. 혹시 마음에 드는 여자라도 발견했어?”

“세진아. 너 여자친구 두고 한눈팔면 안 되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리고 저 아직 여자친구 없어요.”

나와 정 씨 가족은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균열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골렘 균열!’

균열 중에는 가끔 독특한 파장으로 구별이 가능한 균열이 존재했다. 보통 이런 균열은 발생하는 위치도, 내부 구조도 비슷비슷하게 생성되어 별칭과도 같은 이름이 붙는다.

예전에 본의 아니게 클리어했던 거미 여왕의 균열이 대표적으로 이런 경우였다.

오늘 들어가게 될 골렘 균열도 바로 그런 균열 중 하나였다.

이곳은 균열핵을 지키는 골렘들 때문에 골렘 균열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이 이혜린이 전해줬던 자료들 속에서 보았던 그 균열이었다.

베른하르와 같이 유적지에서 보았던 거대 골렘이 등장하는 균열.

나는 사진 속에서 보았던 골렘들을 떠올리며, 베른하르와 약속했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부풀었다.

잠시 후.

-우우우웅!

예정되었던 시간에 맞춰 균열 입구가 생성되고.

조장인 서율희의 지시에 맞춰 사람들은 균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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