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06화 (106/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06화

37. 새로운 목표(2)

베른하르는 3개월 뒤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이곳을 떠나갔다.

그가 떠나자마자 나는 곧바로 골렘의 핵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거대 골렘을 통해 보았던 내부 회로를 통해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했다.

하지만 뛰어난 실력의 마법사인 베른하르도 평생 찾지 못한 실마리를, 상대적으로 보잘것없는 내가 찾아내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아르키트 회로 이론서를 파고들었을 때처럼.

회로에 관련된 여러 가지 책도 읽고 신지아에게 도움도 구해보았지만, 성과를 내기 쉽지 않았다.

연구에 집중하느라 놀아주는 시간이 줄어들어, 아이들의 불만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을 때.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대로는 절대 3개월 안에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아르키트 회로 이론의 힘이라면 성공할 수 있으리라 막연한 기대를 했지만,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베른하르와 비슷한 방법으로, 골렘에 남아 있는 회로를 통해 중심부의 핵을 연구하는 방식은 너무 난해한 시도였다.

그에게는 이 방법이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에 평생을 바쳐 연구했겠지만, 나에게는 3개월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뭔가 다른 방식이 필요해.’

나는 복잡하게 회로가 그려져 있는 책을 덮어버리고, 노트북을 켜 인터넷에서 뭔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 * *

저번에 신지아와 이혜린을 함께 만났던 카페.

이번에는 이혜린과 단둘이 이곳에서 만났다.

“잘 지내셨습니까?”

“어…… 그래.”

만나자마자 건네는 이혜린의 딱딱한 말투에, 나는 어색하게 대답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말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예전 기억 속에 어린 이혜린이 계속 떠올라 뭔가 어색했다.

나는 베른하르의 도움으로 얻은 아스타나 약초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이혜린은 눈을 빛내며 살짝 기쁜듯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빨리 구하셨군요. 저번에 만났을 때는 굉장히 오래 걸릴 것처럼 말씀하셔서 걱정했습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어. 원래라면 훨씬 오래 걸렸거나, 아예 못 구했을 거야.”

베른하르 이야기까지 꺼내지는 않고 운이 좋았다는 설명만 하고 대충 넘어갔다. 그녀도 더 질문할 생각은 없는지 수긍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혜린이 약초를 가져가려고 손을 뻗자, 나는 재빨리 약초를 내 쪽으로 끌어왔다.

자연스럽게 손이 약초에서 멀어지자 그녀는 의문과 불만을 품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약초를 넘겨주기 전에 부탁이 있어.”

“……?”

“일단 말투 좀 어떻게 해봐.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지 어색해 죽을 것 같다. 나랑 단둘이 있을 때만이라도 좀 편하게 이야기 해봐.”

내가 어색한 표정 연기까지 하며 엄살을 부리자, 그녀는 피식 웃더니 잠시 입을 오물거렸다. 조금 고민하는 듯 하더니…….

“알았어. 세진 오빠.”

“하하. 이제 좀 살겠네.”

처음으로 예전과 같이 편하게 나를 불렀고, 나는 과장된 동작으로 반응했다.

“푸훗.”

이혜린은 그게 우스웠는지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미소짓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예전 여렸을 적 이혜린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녀석. 하나도 안 변했네.’

예전 기억이 떠오르며 나도 피식 웃어버렸다.

“설마 이런 부탁으로 약초를 넘겨줄 리는 없고, 그럼 다른 부탁은 뭐야?”

말투는 편하게 변했지만, 이혜린은 여전히 날카롭게 곧바로 다른 부탁에 대해 질문했다.

“몇 번 만나보니까 미래 그룹 쪽에서도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이 상당한 것 같더라고.”

“당연하지. 지금 같은 시대에 정보는 곧 힘이니까.”

“알아봐 줬으면 하는 정보가 있는데, 혹시 부탁할 수 있을까?”

정보를 알아봐달라는 부탁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떤 정보를 부탁하느냐에 따라 달라. 제공해 주기 민감한 주제면 우리 쪽에서 알고 있더라도 거절할 확률이 높아.”

“흐음…….”

“일단 들어볼게. 나도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한지 아닌지 말해줄 수 있을 거야.”

그녀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혹시 골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골렘?!”

“응. 그 왜 있잖아. 로봇같이 움직이는 커다란 것.”

“아니. 골렘이 뭔지는 알고 있는데…….”

내가 골렘 이야기를 꺼내자 이혜린은 굉장히 당황한 것처럼 말을 더듬거렸다.

“왜? 어려운 부탁이야?”

“아, 아냐. 이 정도는 충분히 제공해 줄 수 있는 정보야. 오히려…….”

“……?”

“너무 뜬금없는 주제가 튀어나와서 당황했을 뿐이야. 갑자기 골렘이라니.”

약간 어이없다는 반응까지 보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볼을 긁적거리며 물었다.

“많이 이상한 부탁인가?”

“이상하다기보다는. 아스타나 약초를 건네면서 요구하는 정보가 그런 쪽일지는 전혀 예상을 못 했거든.”

“흠. 그럼 무슨 정보를 요구할 줄 알았는데?”

“당연히 아스타나 약초에 관한 정부 쪽 정보라던가, 다른 기업, 길드, 해외 쪽 정보를 요구할 줄 알았지.”

“어…… 그렇구나.”

왠지 이혜린이 나를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 살짝 민망해졌다.

“근데 이런 정보는 관리 센터나, 각성자 협회, 길드 쪽에 부탁하지 그랬어? 오빠는 그쪽으로도 꽤 친분이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쪽도 부탁하면 들어주기는 할 텐데. 좀 부담스러워서.”

그녀가 말한 대로 사실 골렘에 관한 정보를 얻자면 미래 그룹보다는, 다른 쪽에 부탁하는 게 더 좋았다.

하지만 부탁을 하자니 계속해서 영입을 시도해 오는 사람들이 너무 부담스러웠고, 정보 제공의 대가로 무리한 부탁을 해올지도 몰랐다.

이혜린은 내 말을 대충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골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면 되는 거지?”

“응. 가능하면 최대한 사소한 것들까지.”

“알았어. 흔하게 모을 수 있는 자료들은 오늘 저녁까지 정리해서 보내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구하기 힘든 정보는 며칠은 더 걸릴 거야.”

그녀의 시원한 대답에 나는 가지고 있던 약초를 그녀 쪽으로 건넸다. 약초를 받은 이혜린은 다시한번 눈을 반짝이며 내게 말했다.

“돈은 바로 입금해 줄게.”

“돈도 주려고? 나는 정보만 받아도 되는데.”

“물론 정보비는 빼고 줄 거야. 그래도 우리 쪽도 받은 은혜가 있으니 최대한 싸게 쳐줄게.”

“허허. 그것참.”

마치 장사꾼인 양 칼같이 셈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허탈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혜린은 약초를 소중하게 챙겨 넣고,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툭 던지듯 말했다.

“할 말 있으면 편안하게 해.”

내 말에도 마지막까지 망설이던 그녀는 어렵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형배 오빠하고는 연락 안 해?”

“…….”

예상치 못한……. 아니, 예상은 했지만.

해주지 않기를 바랐던 질문이 그녀에게서 튀어나왔다.

“형배 오빠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있어. 근데 둘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

“불편하게 했다면 미안해.”

“아냐. 미안할 것까지야. 형배랑은 연락 안 한 지 꽤 됐어.”

“그렇구나.”

담담한 듯하면서도, 뭔가 차가운 감정이 섞인 내 대답에 이혜린은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녀가 무슨 의도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예전에 친남매처럼 친했던 세 사람이 다시 예전처럼 지내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너무 머나먼 일이 되어버렸다.

괜히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를 나는 안타깝게 바라봤다.

* * *

이혜린과의 만남 이후.

나는 제일 먼저 약초값을 받을 수 있었다.

원래의 아스타나 약초보다 3배 더 많은 값을 받았는데, 이 금액이 정보비를 제외한 돈이라고 하니 얼마나 더 주려고 했는지 상상이 안 갔다.

그날 저녁.

이메일로 첫 번째 골렘에 관한 자료를 받아볼 수 있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균열에 등장한 골렘에 대해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대부분 C등급 균열에서 발견되고 있었고, 가끔 B등급 균열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두 번째 골렘에 관한 자료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많이 적혀 있었는데.

골렘의 위력이라던가, 공략법, 얻을 수 있는 보상에 관한 자료들이었다.

하지만 골렘의 핵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수많은 자료를 뒤지던 중에.

아주 오래된 기록과 사진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초창기 균열 제거 작업이 이루어지던 시절의 기록과 자료였다.

나는 그 자료에서 골렘 유적지와 거대 골렘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확인한 사진 자료 속에는 베른하르와 함께했던 골렘 유적지의 모습, 그리고 온전한 모습의 거대 골렘이 찍혀 있었다.

‘이거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그 자료를 계속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고, 사진 속의 균열이 한국에서 등장한 균열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 균열이 최근에도 한국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것도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나는 어렵게 발견한 골렘의 핵에 관한 실마리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오성 길드의 검은 마녀…….

그녀는 즐겨보던 ‘균숙자네 퓨이’ 채널 영상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영상 속 귀여운 아이들에게 온통 시선을 빼앗겼겠지만, 지금 그녀의 시선은 전혀 다른 쪽으로 향해 있었다.

바로 균숙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녀는 얼마 전 있었던 라이브 방송을 떠올렸다.

최근에 있었던 ‘균숙자네 퓨이’ 채널의 라이브 방송에서 집들이 방송이 나왔었다.

아름다운 호수가 보이고 평화로운 숲속에 지어진 집은 서율희도 부럽다고 느낄 정도였다.

마치 해외를 여행하는 느낌으로 영상 속 풍경을 감상하며 방송을 보고 있을 때.

-몽. 몽. 몽.

-몽. 몽. 몽.

익숙한 작은 슬라임들이 라이브 방송에 등장했다.

“저 아이들은?!”

분명 전세진이라는 남자가 자신에게 보여줬던 작은 슬라임들이었다.

겉모습부터 하는 행동도 그때 봤던 슬라임들과 완전 똑같았다.

서율희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까지 이상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조금씩 명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처음 만난 전세진에게서 느껴졌던 묘한 친근감과 알 수 없었던 감정.

‘전세진 씨가 바로 균숙자?’

심증적으로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지만,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는 상황.

비슷한 슬라임이 영상 속에 나왔다고 해서 전세진이 균숙자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예리한 감각은 전세진이 바로 균숙자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어떻게 확인할 방법이 없어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고 있을 때.

-벌컥!

“누나! 저번에 말씀드렸던 일정 잡혔어요.”

“……?”

“왜 저번에 교육했던 파티 중에 2팀 뽑아서 다시 균열에 간다고 했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그녀를 괴롭히던 의심을 확인해 볼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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