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99화
35. 이엘과 함께(1)
“저 왔어요. 아저씨…….”
이엘은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눈치를 살피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처음 나와 만났을 때처럼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어서 와.”
“퓨이!”
“안녕!”
“후모!”
나는 어색하지 않게 평소처럼 맞아주었고, 뒤늦게 따라 나온 아이들도 웃으며 반겼다.
집으로 들어온 이엘은 오연우를 발견하고 우물쭈물하더니 그에게 걸어가 말을 걸었다.
“어제 죄송해요. 제가 방해해서…….”
“아냐. 괜찮아. 다친 곳은 괜찮니?”
“퓨이가 치료해 줘서 괜찮아요.”
“그러면 됐어.”
오연우는 환하게 웃었고 이엘도 그를 따라 미소 지었다.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잠시 어색했던 분위기는 조금씩 평소처럼 돌아갔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난 뒤에는 원래의 잘 웃는 엘프 소녀로 돌아가 있었다.
* * *
어제 갑작스럽게 라이브 방송을 종료되고, 채널의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난리가 났다.
또다시 정체불명의 엘프가 등장한 것도 모자라, 내가 갑자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가는 소리가 고스란히 방송을 타고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어 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에 이루어진 갑작스러운 방송 종료.
시청자들은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르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오연우가 사과문을 올렸지만, 방송 종료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 없이 ‘방송 진행이 원활하지 못해서 사과드린다는’ 뻔한 사과문의 내용에 논란은 더욱 켜졌다.
라이브로 방송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이 소식이 퍼지기 시작할 때쯤.
또 다른 글이 채널 공지 사항으로 다시 올라갔다.
바로 다시 라이브 방송을 준비하겠다는 내용과 갑작스러운 방송 종료에 대한 설명, 그리고 논란에 대해서도 모두 해명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새로운 라이브 방송에 대한 공지글이 올라오자 사람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내일 라이브 방송 기다리고 있을게요. 제발 속 시원하게 전부 말해주시길.
-일단 내일 방송 기다려보죠?
-뭔가 사정이 있었겠죠.
-내일 방송 시작할 때까지 숨 참고 있겠습니다. 흡!
뭔가 사정이 있었을 거라며 나와 오연우를 두둔하는 많은 사람들의 반응과.
-하루 동안 열심히 변명을 생각하고 있을 듯?
-저번에도 대충 넘어갔으니 이번에도 대충 넘어가려 하겠네.
-지켜보면 알겠지.
동시에 제대로 된 해명도 없을 거라 예상하며, 다음 라이브 방송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부분 사람이 일단 공지로 예정된 다음 해명방송을 지켜보자는 태도를 보였다.
사람들의 수많은 관심 속에
약속했던 라이브 방송 예정 시간이 되었다.
방송이 시작되고 화면에는 나와 오연우가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어제 라이브 방송의 여파 때문인지 평소 라이브 방송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시청자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은 어딨나요?
-오늘은 두 분만 나오는 건가요?
기다리고 있던 시청자들은 어제와 같이 가볍게 인사를 건넸지만, 나와 오연우는 가볍게 고개만 숙이며 인사를 대신에 했다.
평소에 활기찬 시작과는 다르게 매우 차분하고 엄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방송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어느 정도 시청자 숫자가 늘어날 때까지, 나와 오연우는 오늘 방송 진행에 관해 간단히 설명하고 최대한 말을 아꼈다.
시청자 숫자는 빠르게 늘어났고,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빠르게 계획했던 방송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방송을 진행하기 앞서서. 어제 공지로도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시청자분들께 사과드리겠습니다.”
나와 오연우는 카메라 화면에 고개를 숙여 사죄의 뜻을 전했다.
생각보다 진중한 분위기와 사죄에 시청자들은 약간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제 갑자기 생긴 일로 제가 다급하게 방송을 이탈했고, 혼자 남은 연우 PD가 어쩔 수 없이 방송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책임은 저에게 있고, 연우 PD나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의 진지한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괜찮다며 나를 위로했다. 물론 아직 제대로 된 해명은 나오지 않았다며 닦달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채팅창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어제 갑작스러운 방송 종료를 하게 된 이유에 관해서 설명해 드리기 전에. 먼저 소개해 드릴 친구가 있습니다. 잠시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 밖으로 나가고,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기대하기 시작했다.
-설마?
-진짜 나오는 건가?
-에이. 설마…….
청자들은 기대 반, 의심 반의 태도를 보이며 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두근두근.
-빨리 나와라.
“잠시만요. 균숙자 님이 2층에서 내려오고 있거든요.”
오연우가 잠시 사람들을 달래고 있는 사이, 다시 내가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누군가 내 왼쪽 손을 붙잡고 같이 화면에 모습을 보였다.
윤기 나는 연두색 머리칼과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눈동자. 그리고 긴장으로 떨리는 큰 귀.
신비로운 분위기의 엘프 소녀가 처음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이거 진짜냐? 진짜 엘프야?!
-오오오.
-미쳤다. 미쳤다.
사람들은 진짜 엘프의 등장에 흥분과 감탄을 감추지 못하고 채팅 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창 속도에 어느 정도 적응한 나와 오연우도 읽기 힘들 정도였다.
“아저씨?”
이엘이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한국어가 아닌 엘프어를 사용했기에 시청자들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괜찮아. 이엘. 저쪽 바라보고 아까 연습한 대로 말하면 돼.”
-뭐야?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거야?
-헐?! 균숙자 님 지금 엘프어로 말하는 건가?
-영어도 아닌 것 같고, 독일어나, 프랑스어도 아니고. 진짜 엘프어인 것 같은데.
나와 이엘이 들어보지 못한 말로 대화를 나누자, 시청자들은 저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내려 노력했다.
한편, 사람들이 엘프어에 신경이 쏠려 있는 사이, 내 응원에 힘을 얻은 이엘이 긴장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능숙한 엘프어가 아니라, 약간 어색한 한국말이 흘러나왔다.
“안녕…… 하세요오? 저는 이엘…… 입니다.”
긴장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어눌하게 말했지만, 지켜보던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한 한국어 실력이었다.
-엘프가 한국말로 말했다!!
-아오. 귀여워!
-목소리도 예쁘다. 최고야!
아주 간단한 자기소개에 사람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런 상황을 잘 모르는 이엘이 불안한 듯 계속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웃으며 잘하고 있다고 안심시켜줬다.
이엘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어제 저 때문에 방…… 숑? 끝나버려서. 죄송해요오. 너무 화내지 마세요.”
큰 귀를 파르르 떨며 긴장한 표정으로 사과의 말을 이어나가는 이엘.
애처로움까지 느껴지는 소녀의 말에 시청자들은 한결같이 괜찮다고 이엘을 위로했다.
-괜찮아. 이엘.
-균숙자 님 우리는 이제 괜찮으니까, 빨리 이엘 좀 달래보세요.
-귀 쳐진 것 좀 봐. 너무 애처롭잖아.
-도대체 어떤 나쁜 놈이 화를 낸 거야? 방송하다가 한 번 끌 수도 있지.
오히려 화낸 사람이 잘못이라며 이엘을 안심시키기 위해 저마다 채팅으로 뜻을 전했다.
“잘했어. 이엘.”
생각보다 훨씬 침착하게 해낸 이엘을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엘프 소녀는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긴장을 풀고 배시시 웃음 지었다.
처음으로 보여주는 이엘의 귀여운 미소에 시청자들은 모두 훈훈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웃으니까 더 귀엽네.
-좋다. 좋아.
-아으. 나도 쓰다듬어주고 싶다.
열심히 노력한 이엘은 잠시 쉬게 하고 이번에는 내가 차분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이엘을 만나게 됐던 과거를 회상하며 천천히 그간 있었던 일들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중간에 왜 방송에서는 숨겼는지도 진솔하게 내 생각을 밝혔다.
몇몇 사람들은 거짓말로 숨긴 행동을 비난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비난하는 사람들을 저지하고 나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어제 몰래 방송하는 장소를 지켜보던 이엘이 저에게 들켜서 도망치려다 넘어지고, 그 때문에 무릎을 다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아. 그런 일이.
-그래서 균숙자 님이 갑자기 사라졌구나.
-이엘은 괜찮나요?
“어제 잘 치료한 덕분에 이엘은 괜찮습니다. 어제 일을 계기로 이엘의 어머님과 방송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이엘이 방송에 출연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이엘과 함께 라이브 방송을 하게 된 겁니다.”
조금 길었지만.
처음 이엘과 만났을 때부터 어제 사건까지 꽤 자세히 시청자들에게 설명해 줬고, 사람들은 그간 있었던 의혹과 논란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었다.
-끝까지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서 엘프와 꽁냥거린 건 부럽…… 아니, 용서하기 힘들지만, 균숙자 님의 생각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과하게 반응한 듯. 앞으로는 자제하겠습니다.
-어찌 됐든, 나는 귀여운 엘프를 실제로 본 것만으로 만족한다. 균숙자 님 고맙습니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시청자들 대부분 나의 행동을 이해해 주었고, 또 진실하게 전부 이야기해 준 것에 대해 오히려 고마움을 전했다.
생각보다 훨씬 우호적인 반응에 나는 마음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채팅창을 통해 간단한 글로만 소통하지만, 시청자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옆에 있는 이엘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이엘은 떠듬떠듬 입을 움직였다.
“으음. 고마워요. 여러분.”
조금 어눌하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엘의 인사에 채팅창의 분위기는 전부 녹아내리고 있었다.
계속된 진솔한 이야기에 조금 무겁게 진행된 방송.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2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머지 아이들이 방송에 모두 합류하면서, 무거웠던 방송 분위기가 순식간에 살아났다.
이엘도 혼자 있을 때보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훨씬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과와 이엘을 소개하는 동안에 후원을 잠시 정지해 두었는데,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열자 후원이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액귀액귀 ₩10,000원 후원]
-귀여운 이엘 간식 사주세요.
[위잉위잉 ₩5,000원 후원]
-아. 화면이 귀여움으로 꽉 찼다!
[인간이미안해 ₩1,000원 후원]
-균숙자. 그는 도대체…….
[엘프사랑 ₩10,000원 후원]
-엘프는 진리다.
수많은 채팅과 후원이 끝을 모르고 이어졌고, 쏟아지는 관심에 이엘은 당황해서 허둥거렸다.
나와 오연우는 이엘이 최대한 당황하지 않도록 천천히 방송을 진행했다. 시청자들도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느긋하게 기다려 주었다.
[민티단충신 ₩1,000원 후원]
-이엘님은 민트 초코를 좋아하나요?
질문이 들어오고 아직 한국말이 서투른 이엘에게 엘프어로 전해주면, 한국말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직접 이엘이 대답해 주었다.
“민트 초코 좋아해요. 티아 공주님이랑 많이 먹었어요.”
“후훗. 이엘은 착해서 민트 초코 엄청나게 좋아해.”
웃으며 민트 초코를 좋아한다고 대답한 이엘의 모습에, 티아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민티단충신 ₩10,000원 후원]
-아아. 완벽합니다. 엄지척!
[mingming2 ₩10,000 후원]
-이엘이 좋아하는 건 뭐예요?
다음으로 이어진 간단한 질문 후원에 이번에도 이엘에게 대신 전해주었다.
“이엘.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물어보는데?”
“으으음.”
귀엽게 귀를 쫑긋거리며 고민하던 이엘은.
“엄마랑, 그리고…… 아저씨가 제일 좋아!”
대답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내 품에 폭 안겼다.
“나도. 나도 세진이 제일 좋아!”
“퓨이! 퓨이!”
“후모!”
이엘의 행동에 뒤따라 다른 아이들도 내 품에 안겨들었고, 나는 당황하면서도 표정에 숨겨지지 않는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으으. 부러워!
-안 되겠다. 도저히 방장을 용서할 수 없다!
-부러워 죽겠네. 죽겠어.
-너무 보기 좋네요.
쉽게 떨어지지 않는 아이들과 부러움과 질투로 폭발하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나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