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98화 (98/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98화

34. 집들이(5)

시청자들이 정체불명의 존재에 관해 점점 채팅창이 많아지려 할 때, 오연우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채팅창과 카메라 화면을 확인했다.

카메라 화면을 확인하던 오연우가 화들짝 놀랐다.

그는 카메라 화면이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다급하게 내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 수신호를 받아들인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카메라 화면에서 빠져나와 오연우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우리는 방송 마이크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소리를 낮춰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형. 언덕 아래에…….”

“……?!”

“어떻게 해요?”

예전에 나를 따라다닐 때처럼.

나무 뒤에 붙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엘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오연우에게 물었다.

“걸렸나?”

“네. 아무래도 카메라 화면에 꽤 오랫동안 잡혔던 것 같아요.”

“흐음.”

“채팅창 벌써 난리 났는데요?”

-저쪽에 뭐가 있어!

-방장 빨리 확인하러 안 가고 뭐 하냐?

-엘프! 엘프!!

이제는 카메라 화면에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이미 수많은 시청자가 생생한 이엘의 모습을 확인한 상황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모른 척해.”

“이 채팅창을 보고 어떻게 모른 척해요?”

“일단 내 말대로 해.”

나는 오연우에게 시간을 끌어 달라고 부탁하고 조용히 언덕 아래쪽으로 움직였다.

잠시 이엘과 이야기를 나눠 조용히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내려가던 와중에 숨어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이엘과 눈이 딱 마주쳤다.

이엘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허둥지둥하며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나 당황했는지 숲을 제집처럼 뛰어다니던 엘프 소녀는 그만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얏!”

심하게 넘어진 이엘의 입에서 뾰족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나를 보고 도망칠 줄은, 심지어 도망치다가 넘어질 줄 더욱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나도 당황해서 이엘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뛰어갔다.

“이엘! 괜찮아?”

넘어진 이엘 곁에 도착한 나는 가볍게 들어 올려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불행하게도 바닥의 딱딱한 부분에 제대로 긁혔는지 왼쪽 무릎에서 새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심한 상처는 아니겠지만, 나 때문에 상처를 입게 된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큰 귀를 파르르 떠는 이엘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허둥대며 다급하게 물었다.

“무릎 많이 아파?”

-도리도리.

“다른 데 다친 곳 있어?”

-도리도리.

“서 있기 힘들어? 안아 줄까?”

-도리도리.

내 걱정스러운 물음에 계속 고개만 흔드는 이엘.

답답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나는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왜 그래. 이엘? 무슨 말이라도 해봐.”

너무 답답한 나머지 재촉하듯 말해버렸고, 이엘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룩주룩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울고 있는 이엘을 조심스럽게 품 안에 안았다.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뭘 그렇게 참고 있는지.

가녀린 엘프 소녀는 속으로 울음소리를 참으며 눈물만 계속 쏟아냈다.

이엘을 안아주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고, 오연우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저기. 형. 아까 소리 지르는 게 방송으로 다 들어가 버렸어요.”

“…….”

“방송 또 난리 났는데…….”

“지금 방송이 중요해?! 애 다친 거 안 보여?”

나는 답답한 마음에 울컥해 소리쳤고, 오연우는 깜짝 놀라며 물러섰다.

성난 외침에 품속 이엘이 크게 움찔하더니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흑. 흐윽. 으아앙!”

“아냐. 이엘. 너한테 화낸 거 아니야!”

터져버린 이엘의 울음에 나는 어떻게든 달래보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오연우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발만 동동 굴릴 뿐이었다.

엘프 소녀의 울음소리가 고요한 숲속에 퍼져나가다.

이윽고 천둥과 같은 고함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네 이놈!! 이엘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냐?

성난 나무 아저씨의 외침과 함께 땅바닥을 뚫고 나온 단단한 나무줄기들이 나와 오연우의 몸을 강하게 감싸기 시작했다.

“우아악. 형!!”

겁에 질린 오연우가 비명과 같은 소리로 나를 불렀지만, 나 역시 순식간에 제압당한 상태였다.

온몸이 나무줄기에 휘감겨 사지가 묶이고, 겨우 고개만 움직일 수 있는 상황.

내가 나무 아저씨에게 제압당하자 이엘의 울음소리는 더 커지기 시작했다.

나무줄기에 묶인 상황에서도 나는 고개를 숙여 이엘을 달래기 위해 말을 건넸다.

“괜찮아. 이엘. 울지마.”

분노에 가득 찬 나무 아저씨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오해가 풀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엘은 우리가 풀려난 뒤에도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 * *

“훌쩍. 훌쩍.”

“…….”

너무 울어서 코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이엘은 엄마, 아르엘의 품에 안겨 코를 훌쩍거렸다.

이엘의 상처는 언덕에서 내려온 퓨이의 능력으로 금방 치료해서 지금은 약간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침대에 앉은 아르엘의 품 안에서 이엘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나는 그 옆에서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기다렸다.

대충 무슨 상황이 일어났던 것인지 전해 들은 아르엘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혼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엘의 훌쩍이는 소리가 작아지고 침묵을 유지하던 아르엘이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죄송해요. 이엘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아뇨. 괜찮습니다. 오히려 저 때문에…….”

“상처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미 치료도 받았고, 예전에는 이것보다 심하게 다쳐오는 일도 많았으니까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아르엘의 목소리와 위로에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았다.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계셨던 것 같은데. 이엘이 방해를 한 건가요?”

“그런 게 아니라. 일이 조금 복잡한데.”

“괜찮으시다면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나는 처음 이엘을 만나게 됐던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이엘이 나를 쫓아다녔던 이야기부터, 우연히 너튜브 라이브 방송에 노출됐던 이야기,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들까지.

중간중간에 너튜브가 뭔지, 방송이 뭔지에 대해 설명하느라 이야기가 굉장히 길어졌지만.

아르엘은 끝까지 내 이야기를 집중해 들었고, 울음을 그친 이엘도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꽤 긴 설명이 끝나고.

아르엘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질문했다.

“그럼 저쪽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세진 씨가 보여주는 화면을 보고 있다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건 마법 도구가 아닌 건가요?”

“마법은 아니고. 조금 설명하기 힘든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도구입니다. 물론 여기까지 인터넷을 쓸 수 있는 건 제 능력이지만.”

“정말 신기하네요. 저도 그 도구를 구경해 보고 싶네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가져와 보겠습니다.”

“고마워요.”

촬영 기계를 가져와 보겠다는 이야기에 아르엘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혹시 저쪽 세계에 계신 인간분들은 엘프를 싫어하시나요?”

“…….”

‘오히려 환장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좋아합니다만?’

나는 아르엘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찾기 위해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저쪽 세상에는 엘프라는 존재가 없다 보니, 조금 신비한 존재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도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겁니다.”

아르엘은 내 대답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질문했다.

“그럼 오늘 이엘을 먼저 돌려보낸 건 그 방송이라는 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인가요?”

“방해는 아닌데…….”

“……?”

“…….”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르엘은 특유의 깊고 차분한 눈빛으로 내가 대답하기를 기다렸고, 이엘도 슬쩍슬쩍 눈치를 보며 관심을 보였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는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많은 사람이 호의를 보인다고 해서, 그게 꼭 좋은 일로만 끝나지 않는다.

특히 녀튜브에서도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큰 인기를 가지고 있는 퓨이와 티아도 너튜브로 인해 좋은 일들도 많았지만, 나쁜 일들도 많았다.

악의적인 댓글과 비방. 근거 없는 헛소문으로 아이들을 공격해 오는 사람들.

나와 오연우가 최대한 막으려고 하지만, 악의를 가진 나쁜 사람들 때문에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적도 있었다.

물론 아이들을 순순하게 좋아해 주고, 응원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기억에 남는 법.

엘프인 이엘이 만약 방송에 나오게 된다면,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될 것이고 또 많은 나쁜 일에 휘말릴 수도 있다.

어제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한 모렛이나, 티아, 퓨이는 내가 보호하고 끝까지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지만, 이엘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내 생각을 거짓 없이 털어놓았다.

내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르엘은 푸근한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세진 씨는 이엘을 싫어해서 방송하지 못하게 한 게 아니라, 지켜주고 싶어서 그런 거죠?”

“네. 맞습니다.”

“후훗. 세진 씨는 우리 이엘을 정말 많이 아껴주고 있군요.”

“크흠. 흠.”

나는 왠지 쑥스러워 헛기침하며 아르엘의 시선을 피했다.

이엘도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아르엘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나와 이엘의 모습을 엄마 미소로 바라보던 아르엘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세진 씨. 처음 들으시겠지만, 이엘의 아빠는 굉장히 모험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

“아마 이엘도 그 사람을 닮아 많은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이 숲을 빠져나갈 수 없어요.”

“…….”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엘에게 좀 더 많은 세상을 구경시켜주시지 않을래요?”

아르엘의 부탁에 잠시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그 의미를 깨닫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힘드시다면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아뇨. 그게.”

“…….”

“이엘만 괜찮다면.”

나와 아르엘의 시선이 이엘에게로 항했다.

이엘은 우리들의 시선에 화들짝 놀라며 아르엘의 등 뒤로 숨어버렸다.

한동안 아르엘의 등 뒤에 숨어 숨겨지지 않는 큰 귀를 쫑긋거리며 뭔가를 생각하더니,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엘은 나를 바라보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통나무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실 소파에 축 처진 아이들과 오연우의 모습이 보였다.

“나 왔어.”

“형. 왔어요?”

오연우만 일어나 어색하게 나를 맞이해 주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죄지은 것처럼 내 눈치를 봤다.

아이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 나와 오연우가 부엌에서 방송에 관한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걸 엿들은 아이들이 오늘 방송에 대해 이엘에게 자랑 아닌 자랑을 해버렸던 것.

오늘 있었던 일이 자신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저렇게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쓰게 웃으며 아이들을 달래줬다.

“괜찮아. 오늘 있었던 일은 너희들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이엘도 이제는 괜찮아졌어.”

“정말?”

“퓨우우?”

“후모?”

“정말이지. 내일이 되면 아무렇지 않게 이엘이 또 놀러 올 테니까 하나도 걱정할 것 없어.”

아이들은 내 말에 안심이 됐는지 조금이나마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웃으며 아이들을 하나씩 쓰다듬어주고, 뒤쪽에 멀뚱히 서 있는 오연우에게 다가갔다.

“아까 화내서 미안하다. 연우야. 나도 너무 당황해서 애꿎은 너한테 소리를 질렀다.”

“이엘은 괜찮아요?”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정말 미안하다.”

내가 살짝 고개까지 숙이며 거듭 미안함을 표하자 오연우는 피식 웃더니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아! 정말 아깝네. 아까 형 화내는 영상을 찍어놨어야 했는데. 그럼 앞으로 10년 동안은 놀려먹었을 텐데.”

능청스러운 오연우의 반응에 나도 피식 웃어버렸다.

“그건 그렇고. 부탁이 있어.”

“뭔데요?”

“내일 라이브 방송 한 번 더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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