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97화 (97/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97화

34. 집들이(4)

어제 오연우가 나 몰래 공지한 방송 시작 시간이 되었다.

나는 가면을 쓰고 오연우는 휴대용 카메라와 마이크가 장착된 장비를 들고 방송 시작을 준비했다.

“형. 이제 시작할게요.”

오연우의 알림과 동시에 방송이 켜졌다. 공지했던 시간보다 조금 일찍 방송을 켰지만, 수많은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방송에 들어와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1등

-하이!

-안녕하세요.

-벌써 시작함?

“안녕하세요.”

“안녕!”

“퓨이!”

나와 아이들이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연우도 살짝 화면 끝에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근데 여기 어디임?

-집 안인 것 같은데. 텐트 어디감?

-설마 균열 밖으로 나오셨나?

사람들은 화면에 비치는 새로운 배경에 궁금증을 표하면서 저마다 추측하기 시작했다.

점점 달아오르는 시청자들의 반응에 오연우가 능숙하게 방송 진행을 했다.

“자, 자. 오늘 방송 계속 시청해 주시면 지금 궁금해하시는 것 최대한 풀어드릴 테니까. 너무 재촉하지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 궁금해 죽겠는데.

-연우 PD 방송 많이 늘었어 ㅋㅋ

방송의 앞부분은 앞선 라이브 방송과같이 짧은 근황 이야기로 채워졌다.

오연우가 미국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 나와 아이들의 최근 소소한 일상 이야기 등등.

일상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엘이 떠올라 살짝 신경이 쓰였다.

스스로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이엘은 내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근황 이야기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방송 시청자 숫자도 꽤 많이 늘어났다.

나와 오연우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오늘의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근황 이야기는 어기까지만 하고. 본격적으로 오늘 방송에서 할 이야기를 시작해 볼건데요. 공지에서는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오늘 방송 컨텐츠는 바로 ‘집들이’ 방송입니다.”

-집들이?

-설마? 여기가 새집이야?

-우와! 집 엄청 좋아 보이는데. 부럽다.

오연우의 ‘집들이’ 방송이라는 말에 사람들의 반응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뒤쪽으로 보이는 집이 균숙자 님 식구들이 새롭게 마련한 보금자리입니다. 그리고 집 구경에 앞서 이 집을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친구 하나를 소개하려 합니다.”

-혹시 엘프?

-엘프야?

-엘프! 엘프!

아직 엘프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던 시청자들이 흥분해 엘프를 찾았다.

나는 시청자들의 채팅에 반응하지 않고,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렛을 들어 올려 화면에 보여줬다.

“후모!”

-엘프가 아니네.

-균숙자는 어디서 이런 애들을 데리고 오는 거야?

-털 복슬복슬한 것 봐. 귀엽다.

모렛의 등장에 엘프가 아니라 실망하는 사람도 있었고,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시청자들에게 모렛을 소개해 줬다.

“이 친구의 이름은 ‘모렛’이고요. 우리에게 새집을 지어준 친구입니다.”

-?

-???

-지어줬다고요?

조그마한 털북숭이가 집을 지어줬다는 말에 채팅창은 물음표로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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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자 형. 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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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방송이라지만 이건 좀…….

내가 처음 모렛을 봤을 때처럼, 시청자들 역시 모렛의 엄청난 작업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자, 자. 여러분들이 이렇게 믿지 않을까 봐, 따로 영상을 하나 준비해놨습니다. 한 번 보시고 판단해 보시죠.”

오연우는 미리 준비해 놓은 모렛의 작업 영상을 화면에 띄워주었다.

영상에서는 통나무집이 절반 정도 지어졌을 때 모렛이 직접 일하는 모습이 나왔다.

털이 휘날릴 정도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작은 몸으로 수많은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며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은 매우 진귀한 장면이었다.

-진짜네.

-저 조그마한 몸으로 저렇게 무거운 통나무를 옮기는 게 말이 되나?

-와아. 저 큰 통나무를 순식간에 잘라버리다니.

-이런 친구 몇 명만 더 있으면 순식간에 마을도 건설하겠네.

화면을 통해 보인 모렛의 믿기 힘든 활약에 시청자들은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후모. 후모.”

모렛은 우쭐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치 이 정도는 별것 아니라는 모습이었다.

첫 등장 때는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 뜨뜻미지근했지만, 어느새 모렛에 대한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질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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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숙자형, 진짜 장난인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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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쪽에서 일하는 현직 종사자인데. 진짜로 저 친구 데려가서 같이 일하고 싶을 정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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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장난이라고 그랬어?! 난 처음부터 믿고 있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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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인건비는 얼마 나옴?

“인건비는…….”

인건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나는 살짝 대답을 머뭇거렸다. 이 모습을 귀신같이 포착한 시청자들이 장난스럽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설마 무급으로 일 시킨 건 아니겠지?

-어허.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데.

-모렛 불쌍해라. 균숙자 님 그렇게 안 봤는데 악덕 사장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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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상담 전화. 국번없이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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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너튜버, 직원에게 무급으로 일 시켜 충격!

시청자들의 장난스러운 반응에 나는 황급히 해명을 해야 했다.

“절대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건 아니고. 삼시 세끼, 간식 챙겨주고 매일 캔맥주를…….”

말을 하다 보니 딱히 모렛에게 챙겨준 게 없었다.

애초에 일을 안 주면 더 화를 내는 녀석이어서, 일을 만들어주는 것밖에는 해줄 일이 없었다.

-와…… 식사랑 캔맥주 챙겨주고 집을 만들게 하다니.

-충격과 공포!

-이 정도면 산업혁명 이후 노동 착취수준 아니냐?

더욱 깊어지는 오해에 나는 진땀을 빼며 상황을 해명해야 했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모렛은 순진한 얼굴로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모렛의 노동 착취 논란은 어찌어찌 잘 해결되었다.

애초에 시청자들도 반쯤은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저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아무것도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는 점은 조금 너무했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시청자들의 의견에 어느 정도 반성을 하고, 모렛이 만족할 만한 보상과 그 증거 영상을 채널에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조금 소란이 있었던 모렛의 소개가 끝나고, 진짜 본격적으로 새로운 집 구경이 시작되었다.

촬영을 하고 있던 1층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오후의 햇볕과 숲의 잔잔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는 거실은 카메라 화면을 통해서도 그 아늑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와. 창문만 열면 바로 숲이네.

-공기청정기가 필요 없을 듯.

-나 미세먼지 때문에 기관지가 안 좋은데, 저런 곳에서 1년만 살아보고 싶다.

다음은 부엌 차례.

텐트 생활로 식기나 도구들이 단출했지만, 필요한 건 다 있는 부엌이었다.

이번에는 냉장고.

어제 집들이에 사용하고 남은 음식들과 반찬으로 냉장고가 가득 찬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뭐가 많네?

-이거 다 균숙자 님이 만드신 거예요?

“제가 만든 게 아니라. 가까운 지인분 중에 고맙게도 음식을 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염치 불고하고 매번 얻어먹고 있습니다. 저기 위 칸에 보이는 음식들은 어제 집들이하고 남은 음식이에요.”

-나도 저 집에 놀러 가고 싶다.

-구독자 초대 이벤트 없습니까?

집들이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직접 와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이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부엌 구경을 마무리하고 2층으로 향했다.

“여기가 2층에서 침실로 쓰고 있는 안방입니다.”

침대와 가구들이 나무집 특유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편안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내부를 둘러보던 카메라가 창문 쪽으로 향하자 채팅창에서 감탄이 쏟아져나왔다.

2층 창문을 통해 보이는 녹색 숲과 투명한 호수, 그 뒤로 보이는 거대한 산맥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경치 대박이다.

-진짜 인터넷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이 안방 창문으로 보이네.

-나도 부모님이 별장 가지고 있어서 다른 건 별로 안 부러웠는데, 이건 ㅇㅈ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창문을 보면 기분이 좋을 듯.

이 통나무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창문 풍경을 사람들도 마음에 들어 하자, 굉장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부러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한동안 조용히 창문 경치 구경을 하며 시청자들과 시간을 보냈다.

“나머지 2층 방들은 아직 비어 있어서, 별로 보여드릴 건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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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방 새로 구하고 있는데, 2층 빈방에 하숙 가능?

[kim0714 ₩10,000 후원]

-후원으로 계약금 보내드리면 됩니까?

[mingming2 ₩10,000 후원]

-저도 조심스럽게 줄 서봅니다.

-나도. 나도 저기서 살래!

-저 요리, 청소, 세탁. 가사 전반 가능합니다. 하인으로 고용해 주세요.

-부럽다. 부러워.

-이제 균숙자가 아니잖아! 균물주라고 해!

2층 빈방에서 살겠다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요청과 부러움에 폭발하는 채팅창.

나와 오연우는 다시 한번 채팅창과 후원을 수습하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

* * *

집안 내부 구경을 끝내고, 우리는 아이들과 집 밖으로 향했다.

마당에는 어제 식사를 했던 나무 테이블이 보였다. 넓은 마당에 덩그러니 테이블만 놓여 있어 약간 휑한 느낌을 주었다.

나중에 가능하면 화단을 한번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집 마당을 빠져나와 호수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을 올라갈수록 2층 창문으로 보는 것과 또 다른 느낌의 주변 풍경에 채팅창은 다시 감탄으로 도배됐다.

언덕 위에 올라서자 투명한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멀지 않은 곳에 통나무집이 보였다.

잠시 시청자들과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때, 언덕에 먼저 와 있던 손님들이 주변으로 몰려와 반겨주었다.

-몽. 몽. 몽.

-몽. 몽. 몽.

언덕 위 커다란 나무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작은 슬라임들이 순식간에 우리 주변을 에워쌌다.

-꺄아! 귀여워!

-작은 퓨이닷!

작은 슬라임들은 평소와 같이 우리에게 친근함을 드러내며 다가왔고,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슬라임들과 인사를 나눴다.

“퓨이. 퓨이.”

-몽. 몽. 몽.

특히 인기가 좋은 퓨이 주변에는 작은 슬라임들이 끊임없이 달라붙었다. 슬라임들이 만들어내는 그 평화롭고 귀여운 분위기에 시청자들의 마음이 녹아내렸다.

[액귀액귀 ₩10,000원 후원]

-으어어억. 내 심장이 녹아내린다.

[퓨이핵귀 ₩25,000원 후원]

-아아. 이 장면을 라이브로 보다니. 너무 행복하다.

[퓨이맘 ₩10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후원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나는 정신없이 후원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야 했다.

-저 작은 슬라임들은 혹시 퓨이의 자식인가요?

-나도 슬라임 키워보고 싶다.

-슬라임 분양은 안 하시나요?

-제발 한 마리만…….

슬라임에 대한 시청자들의 질문에 나는 최대한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들을 해주었다.

“이 친구들은 퓨이의 자식은 아니구요. 여기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이에요. 그리고 이 친구들은 제가 키우는 슬라임도 아니고, 마음대로 잡아서 분양할 생각도 없습니다.”

내 단호한 태도에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표했지만, 모두 수긍하는 반응을 보였다.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노는 장면을 찍으며 오연우가 카메라를 돌리던 와중에.

-어? 저쪽 언덕 아래쪽 나무에 누가 있는 거 아냐?

카메라 화면에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화면에 잡혔고, 누군가의 채팅을 시작으로 시청자의 관심이 정체불명의 존재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와 오연우가 시청자의 반응을 잠시 놓치는 사이, 계속 정체불명의 존재가 카메라 화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그리고 결국 그 정체가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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