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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93화 (93/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93화

33. 결실(結實)(2)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최동호 팀장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뻘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생각보다 격렬한 그의 반응에 나 역시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리에 앉은 최 팀장은 민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실수를 정중하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괜찮습니다.”

“그…… 이걸 전부 기부하시겠다는 겁니까?”

“네.”

“세진 씨를 절대 무시하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만, 이게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는 알고 계시는 거죠?”

“알고 있죠. 그래서 기부하려고 하는 겁니다.”

“허허…….”

내 확고한 태도에 최동호 팀장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관리본부 쪽에서 이 약초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분들에게 잘 전달해 주지 않을까 싶어서. 무리한 부탁일까요?”

“아뇨. 전혀 아닙니다만. 솔직히 너무 예상외의 제안이라서 조금 당황스럽네요.”

그는 내가 꺼내 놓은 약초들을 대충 살펴보더니 기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오늘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부탁을 하실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약초를 가지고 거래를 시도하려 할 줄 알았는데.”

“거래요?”

“간단히 예를 들면 세금 혜택이라든지 아니면 해외 유통을 위한 허가 요청 같은 것들이죠.”

나는 살짝 멍한 표정을 짓다가 입맛을 다셨다.

‘처음부터 기부하려고 온 거니까. 욕심은 버리자.’

세금 혜택이 꽤 구미가 당겼지만, 살짝 고개를 저으며 잡생각을 버렸다.

“뭐…… 그런 혜택이 있으면 좋겠지만. 오늘은 순전히 이 약초들을 기부하기 위해서 온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알겠습니다. 세진 씨의 뜻대로 이 약초는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최 팀장은 결심한 표정으로 내가 꺼내 놓은 약초를 아주 조심스럽게 챙기기 시작했다.

“다음은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네?”

약초를 챙기던 최 팀장은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다음 기부할 약초요. 한두 달 뒤에 또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쩌면 그때는 양도 더 많을지도 모르겠네요.”

“…….”

잠시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던 그는 다시 한번 자리에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네에?!”

* * *

최동호 팀장에 ‘두 번째 벌떡’이 있고 난 이후로,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내 계획을 자세히 알려줘야 했다.

단순히 남을 돕겠다는 생각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내가 바라는 목표는 ‘아스타나 약초’ 가격의 안정화였다.

시작은 미미하겠지만.

계속 약초의 생산량을 늘리고, 기부와 상대적으로 싼 가격으로 공급을 계속하다 보면 가격은 계속 내려갈 것이다.

물론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세계 모든 나라의 약초 가격을 안정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스타나 약초’의 해외 유통은 굉장히 엄격히 통제받고 있어서, 공급량만 충분하다면 우리나라 내의 약초 가격은 어느 정도 안정화할 수 있을 듯했다.

처음 약초를 수확했을 때, 이미 김형석 선생님과 이준석 어르신과의 대화를 통해 이 계획을 준비해 왔다.

내 계획을 전해 들은 최동호 팀장은 정말 감명받은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계획이 성공할 수 있도록, 어떠한 도움을 마다하지 않겠다며 의욕적인 눈빛을 불태웠다.

마치 위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존경과 찬양이 가득한 최 팀장의 눈빛에 나는 약간 부담스러움을 느꼈다.

이 계획을 준비한 이유는 내가 착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뭔가 대단한 사명감을 느끼고 있어서도 아니다.

단순히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물건을 가지고 내 이득을 챙기는 행동에 살짝 양심의 가책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르신이나, 정 씨 가족과 같이.

주변에서 이 불치병으로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지, 또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 옆에서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내가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이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큰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이런 계획을 준비하기로 생각했다.

어차피 어르신에게 돌아갔어야 할 몫을 기부한다고 생각하면 크게 아까울 것도 없었다.

어르신 역시 내 계획을 듣고 굉장히 흡족해하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그렇게 나와 최동호 팀장의 만남을 통해 내 계획의 첫 시작이 이루어졌다.

* * *

느닷없는 정부의 취약 계층의 각성자 지원 사업 발표에 세상이 떠들썩해졌다.

주요 지원 대상자는 티머시 증후군을 앓고 있어 경제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각성자들.

원래 티머시 증후군을 앓고 있던 각성자들에 대한 지원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유는

단순히 돈으로 지원을 하는 게 아니라, ‘아스타나 약초’를 지원해 주는 계획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일단 불치병을 앓고 있는 많은 환자와 그 가족들이 새로운 지원 정책을 크게 반겼다.

반면, 정책의 내용을 보고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생겨났다.

바로.

-그 많은 약초를 어디서 구해올 것인가?

라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국내의 균열을 통해서 생산할 수 있는 약초는 한정되어 있고, 해외에서 구해올 방법 또한 여의치 않았다.

현실적으로 약초의 수급이 불가능한 상황.

자연스럽게 이것이 정부의 생색내기용 정책이라 비웃는 사람이 늘어났다.

지원 정책 발표 이후.

대상자 선정 작업이 끝남과 동시에 아스타나 약초의 지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초반에 ‘정부가 약초를 사재기할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약초 가격이 대폭 상승했지만.

오히려 지원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에는 원래 가격보다 소폭 하락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주 작은 가격의 하락이었지만, 근 몇 년간 떨어진 적 없는 아스타나 약초 가격의 하락이었다.

비웃던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깨부수고, 지원 정책은 순조롭게 착착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갑자기 늘어난 약초 공급량에 의아함을 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스멀스멀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균열과 해외에서 약초를 구해오는 게 아니라면, 약초 공급량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딱 하나.

-‘아스타나 약초’ 재배에 성공했다!

문제는 이 소문의 주인공이 누구인가였다.

여기서 일차적으로 거론된 주인공은 바로 지원 정책을 시작한 정부였다.

갑자기 많은 양의 약초를 확보해 지원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 아스타나 약초 재배의 성공이 있었다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는 그 추측을 근거 없는 주장이라 일축했다.

대부분 국가에서 아스타나 약초 재배에 관한 연구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중에서 한국은 이 연구 지원에 소극적인 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연구에서 성과를 거뒀으리라는 예측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대부분.

정책을 발표한 관계자는 딱히 어떠한 언론 인터뷰도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다.

언론과 대중들의 관심이 식을 줄 모르고 계속 뜨거워지는 와중에.

거대 길드와 대기업 관계자들은 아주 은밀하게 소문의 주인공에 대한 윤곽을 잡아나가고 있었다.

이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각성자 협회와 정부 쪽에서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거대 길드와 대기업의 집요한 손길을 모두 막아낼 수는 없었다.

결국.

어느 정도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 소문의 실마리를 잡아나가기 시작했고, 그들의 시선은 어느 한 남자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고, 누군가는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한 남자 주변으로 조금씩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마치 폭풍이 몰려오기 직전처럼.

* * *

나는 호숫가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편안한 자세로 수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나와 같은 낚시 의자에 퓨이가 몸을 올리고 있었다.

최근에 왁자지껄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난다. 그치, 퓨이야?”

“퓨이!”

처음 균열에서 살게 되고, 퓨이를 처음 만난 이후.

이렇게 조용히 퓨이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정말 많았다.

지금은 티아와 모렛도 같이 살고, 이엘도 자주 찾아오면서 퓨이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이 없어졌다.

모두 모여 떠들썩한 분위기도 좋았지만, 이렇게 퓨이와 단둘이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흔들리는 찌를 바라보며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균열에 살게 된 이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열심히 살았고.

오늘 결실을 보게 되었다.

꾸준히 돈을 벌어 빚을 갚아 나갔고, 오늘 약초 판매를 정산 받으면서 남아 있는 빚 대부분을 청산하는 데 성공했다.

계획보다 빠르게 빚을 갚아내고 큰 기쁨이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계좌 내역을 확인했다.

그냥 막혀 있던 속이 뚫린 시원한 느낌 정도?

나는 옆자리에 앉은 퓨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퓨이?”

내 시선을 느낀 퓨이가 투명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부드럽게 퓨이를 쓰다듬어줬다.

“녀석. 너는 변함이 없구나.”

“퓨이!”

내 상황이 좋거나, 나쁘거나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나를 지켜주는 퓨이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 고맙게 느껴졌다.

-쑤우욱!

퓨이를 쓰다듬는 사이 낚시찌가 수면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낚싯대를 휙 채듯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느껴지는 묵직한 손맛!

낚싯줄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낚싯대는 부러질 듯 휘어지며 나와 물고기의 힘을 지탱했다.

“퓨이!”

“알았어. 퓨이야. 오늘 내가 제대로 물고기 구경시켜줄게.”

옆자리에 앉은 퓨이의 응원을 받으며 나는 낚싯줄에 걸린 녀석과 힘 싸움을 이어나갔다.

릴을 감으며 당기고, 다시 낚싯대를 끌어 올리고를 반복했다.

초보 낚시꾼이라 능숙한 맛은 없지만, 근성으로 녀석과 힘 대결을 계속했다.

-파닥! 파닥!

수면에 녀석의 몸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언뜻 봐도 작지 않은 물고기의 크기에 벌써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저번에 놓쳤던 녀석을 생각하며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뜰채로 커다란 녀석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

“퓨이! 퓨이!”

아직도 뜰채 안에서 강한 힘으로 퍼덕거리는 녀석을 보며, 퓨이가 감탄이 섞인 울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어때? 나 실력 많이 늘었지?”

“퓨이!”

퓨이의 생생한 반응에 내 어깨가 더 으쓱해지고,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늘 계좌를 확인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기쁜 것 같았다.

나는 팔을 대며 크기를 가늠하기도 하고, 물고기를 놓고 퓨이와 함께 인증샷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세진∼!”

“아저씨∼!”

티아와 이엘이 큰 소리로 나를 부르며 호숫가로 달려왔다.

이엘은 엘프답게 숲을 빠르게 빠져나왔고, 티아는 허공에 떠서 그 뒤를 따라왔다.

나는 도착한 아이들에게 방금 잡은 물고기를 보여주며 자랑을 시작했다.

“이거 봐. 방금 내가 잡았어. 대단하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세진!”

“아저씨. 빨리요. 빨리!”

티아와 이엘은 내가 잡은 물고기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양쪽에서 내 팔을 잡아당기며 재촉했다.

물고기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아이들에 살짝 시무룩 해졌지만, 아이들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을 따라 퓨이와 함께 도착한 곳은 모렛이 집을 짓고 있는 곳.

“후모!”

-몽. 몽. 몽.

-몽. 몽. 몽.

공터 입구에서 모렛과 작은 슬라임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뭔가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나는 뭔가를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모렛! 설마 완성한 거야?”

“후모! 후모!”

놀람에 가득 찬 내 물음에 모렛은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모렛의 손에는 열쇠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열쇠를 집어 들었다.

손안의 열쇠와 완성된 건물을 번갈아 바라보는데, 여러 가지 감정이 내 마음속에서 휘몰아쳤다.

“세진! 빨리.”

티아의 재촉에 정신을 차린 나는 천천히 집 현관문으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현관문 열쇠 구멍에 손에 든 열쇠를 끼워 넣었다.

-달칵!

열쇠와 잠금장치가 맞물리고, 잠겨 있던 문이 열렸다.

내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문을 열자.

알람이 떠올랐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획득하셨습니다.]

균열 속 작은 오랜 텐트 생활 끝에, 나는 오늘 또 하나의 결실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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