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84화
30. 새로운 생활(3)
채팅창으로 엄청난 반응이 올라오는 사이.
나는 양손에 느껴지는 묵직한 손맛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물고기가 걸린 게 아니라 인어가 걸렸나? 싶을 정도로 팽팽한 힘 대결이 계속됐다.
“크윽! 이거 힘이 장난 아닌데요?”
물론 시청자들은 나의 긴박한 상황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뒤를 보세요. 뒤쪽!
-아오. 답답해 미치겠네.
어설프지만 낚싯대를 끌어당기고, 릴을 감고, 끌어당기고, 감고 하기를 반복하면서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가 조금씩 그 모습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딱 봐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 크기에 나는 벌써 설레기 시작했다.
한편. 답답해진 시청자들은 답답한 마음에 채팅이 아니라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했다.
[낚시좀그만해 ₩1,000원 후원]
-낚시 그만하고 뒤를 보라고 뒤를!
[tkaektn ₩10,000원 후원]
-제발 채팅창 좀 읽어!
방송 화면이 켜져 있는 휴대폰을 통해 후원 알람과 메시지 소리가 계속 들려왔지만.
“잠깐만요. 이 녀석만 잡아 올리고 후원 읽어 드릴게요.”
나는 눈앞까지 다가온 첫 낚시 성공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는 물고기의 모든 몸체가 보일 정도로 얕은 물가까지 끌려온 상태였다.
낚싯바늘에 걸린 녀석도 점점 힘이 빠지는지 천천히 내 낚싯줄에 끌려왔다.
대망의 첫 낚시 성공에 설레임으로 잔뜩 부풀어 올라 있을 때.
-뚝!
“으앗!”
갑자기 낚싯줄이 뚝 끊어지면서 나는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풀려난 물고기는 순식간에 호수 깊은 곳으로 도망쳤다.
“퓨이?”
옆에서 지켜보던 퓨이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마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살짝 민망해진 나는 웃으며 퓨이를 쓰다듬어줬다.
“괜찮아. 별로 안 아파.”
“퓨이!”
나는 한동안 끊어진 낚싯줄을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방송 화면이 켜져 있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시청자 숫자는 거의 그대로인데 채팅창에 글들이 엄청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아까 급하게 움직이면서 고정해두었던 카메라가 돌아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면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죄송합니다. 입질 때문에 급하게 움직이느라 화면이 돌아간 줄 몰랐네요.”
-입질이고 뭐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당장 뒤쪽 나무! 뒤를 봐!
“뒤요?”
채팅창에서 뒤를 좀 보라는 글이 계속 올라왔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뒤쪽을 바라봤다.
“…….”
뒤를 돌아봤을 때 보이는 것은 평소와 같은 특별할 것 없는 숲의 모습이었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혹시 장난치신 거예요?”
-끄어억. 답답해 미치겠네.
-이 정도면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냐?
-ㅋㅋㅋㅋ
[tkaektn ₩5,000원 후원]
-균숙자 님. 죄송한데 한 대 쳐도 될까요?
[딩딩딩 ₩1,000원 후원]
-제발 몰래카메라라고 해줘요. 너무 화나니까.
[kim0714 ₩1,000원 후원]
-당신 덕분에 짧게나마 생겼던 제 삶의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책임지세요.
격렬한 채팅창의 반응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 뒤로 채팅창의 말에 따라 숲속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나오지 않았다.
그곳이 어디냐 물으며, 직접 찾아가겠다는 시청자가 무수히 생겨날 정도로 사람들의 반응은 광적이었다.
나는 채팅창이 진정되지 않자 급하게 방송을 종료하고, 낚시 장비를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 * *
라이브 방송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 있는 오연우에게 전화가 결려왔다.
-형!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
휴대폰 너머로 오연우가 당혹스러워하는 감정이 절절하게 느껴졌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라이브 방송 때 무슨 짓을 하셨길래 또 게시판이 터지는 거예요?
“아니. 그냥 낚시 방송을 했는데…….”
나는 있는 그대로 라이브 방송 때 있었던 일을 설명해 줬다.
솔직히 억울했다.
내가 잘못한 거라고는 입질이 왔을 때, 조금 흥분해서 카메라 화면이 돌아간 것뿐이었다.
-잠깐만요. 오늘 라이브 영상 제가 확인해 볼게요.
내 설명을 들은 오연우는 직접 확인해 보겠다며 잠시 통화를 중단했다.
잠시 후.
-맙소사. 형 라이브 영상 직접 보셨어요?
“아니. 아직 안 봤는데.”
-지금 빨리 한번 보세요. 후반부에 카메라 돌아간 장면부터.
나는 오연우의 말에 따라 오늘 방송했던 라이브 영상을 확인해 보았다.
방송 중간까지는 별다를 게 없었다.
채팅창도 느리게 올라오고 있었고, 나도 낚시에 집중하느라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가끔 채팅창에 글들을 조용히 읽으며 방송이 진행됐다.
영상 후반부에 내가 입질을 확인하고 흥분해 카메라를 쳤고. 화면이 돌아가 뒤쪽 숲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
카메라 영상에 찍힌 숲속 나무 옆에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 뒤에 숨어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어 몸 전체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크지 않은 신장에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연두색 머리카락 때문에 얼핏 보면 나무 옆에 자란 풀잎처럼 보였다.
그리고…….
귀가 길었다.
“……엘프?!”
영상 속 인물을 확인하고 나도 모르게 그 종족의 이름을 내뱉었다.
내 반응을 확인한 오연우는 미심쩍은 듯 내게 물었다.
-형. 설마 저한테도 숨기고 있는 건 아니죠?
“아니. 숨기긴 뭘 숨겨?”
-솔직히 퓨이나, 티아 공주님도 그렇고. 작은 슬라임들도 그렇고. 어디서 귀여운 친구들을 계속 데리고 오잖아요.
“…….”
-이 엘프도 형이 데려온 거 아니에요?
“아니야! 난 진짜 억울해. 정말 몰랐어.”
나는 억울함을 담아 외쳤고, 오연우는 더 의심하지는 않았다.
-저는 그렇다 쳐도. 시청자들은 전혀 안 믿는 것 같은데요.
“……?”
-저번에 티아 공주님 숨기려다가 들킨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전부 엘프 내놓으라고 난리인데요?
“이걸 어떻게 하지?”
내 걱정스러운 물음에 오연우는 피곤한 기색을 팍팍 드러내며 대충 대답했다.
-아아. 전 몰라요. 형이 진짜 엘프를 데려오던지, 방송으로 사과를 하든지.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라이브 영상은 일단 채널에서 내릴게요. 나머지는 알아서 하세요. 여기는 지금 새벽이라 내일 통화하죠.
“야. 오연우!”
오연우는 알아서 하라는 말만 남긴 채 냉정하게 통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연결이 끊어진 휴대폰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봤다.
‘진짜 어떻게 하지?’
나는 일단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커뮤니티 게시판으로 가 보았다.
게시판에는 이미 영상을 캡처해 올라온 사진들이 퍼져나가고 있었고, 몇몇 글들은 벌써 오늘 화제 글에 올라가 있었다.
[균숙자 채널 실시간 방송에서 엘프 등장!]
[엘프 캡처 사진, 움짤 등등]
[영상 해상도, 밝기, 색감 조절로 엘프 귀가 선명하게 보이도록 해봤습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엘프 등장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관심을 집중하는 상황이었다.
-이거 조작 아니냐?
-근데 퓨이도 처음에는 조작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잖아.
-영상에 나오는 놈 멍청한 표정을 봐라. 저건 절대 조작이 아니야.
-나 오늘 실시간으로 봤는데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예전에 퓨이가 영상에 처음 나왔을 때처럼 조작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그 반대였다.
오히려…….
-조작은 아닐 것 같음. 내 생각에는 방장 혼자서 우리 몰래 귀여운 엘프랑 꽁냥꽁냥거리고 있을 확률이 더 높은 것 같다.
-저번에 티아 공주님 때도 숨기려다 들킨 거잖아. 이 사람 상습범임.
-이건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겠는데?
-혼자서 엘프랑 노닥거리고 있다니. 이거 경찰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
-X발. 엘프라니! 나도 엘프 실물로 보고 싶다!!
사람들의 반응은 내가 엘프를 숨겨놓고 있다는 주장에 더 힘이 실리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라이브 영상이 내려가자 사람들의 반응은 더 뜨거워졌다.
-영상 내려갔다. 이거 봐라. 단순히 조작으로 어그로 끌고 싶었으면 영상 안 내렸을 거다. 이건 균숙자 혼자 엘프를 독점하려는 음모다!!!
-균숙자는 진실을 밝혀라!
-진실을 밝혀라!
엘프에 대한 환상에 빠져든 사람들이 모두 광기를 내보이며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했고.
균숙자 채널 구독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게시판에는 나를 성토하는 글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팝콘 뜯는 재미로 찾아와 장난 섞인 글들이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진지하게 화가 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나는 도저히 사태를 진정시킬 자신이 없어 일단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채 노트북을 덮어 버렸다.
* * *
다음날.
나는 아침 일찍 오연우에게 걸려온 전화에 잠에서 깼다.
“끄응.”
-형. 아직 자고 있었어요?
“방금 일어났지.”
-이거 게시판이 완전 난장판이던데.
“하아…….”
자고 일어나면 혹시 잠잠해지지 않을까?
라는 안일한 생각을 해보았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오히려 계속해서 사람들의 관심이 몰려드는 상태였다.
-어제 검색어 순위에도 올라갔다던데. 보셨어요?
“미치겠네.”
포털사이트를 확인하니 진짜로 검색어 순위에 ‘엘프’ 관련 검색어가 연달아 올라가 있었다.
-엘프
-엘프 영상
-엘프 너튜브 채널
-엘프 균숙자
-거기다 누가 외국 커뮤니티 사이트에 번역해서 올렸는지 외국인들도 많이 유입됐네요.
“으어어.”
-일단 구독자 숫자랑 조회수가 급증해서 좋기는 한데. 이거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후폭풍이 장난 아니겠어요.
나는 마치 남 일인 것처럼 상황을 이야기하는 오연우에게 소리쳤다.
“야! 너 남 일처럼 이야기할래?”
-저도 걱정되죠. 근데 이미 일은 벌어진 걸 어쩌겠어요.
“…….”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하잖아요? 정면돌파해 봐야죠.
“무슨 수로?”
-뭐…… 진짜 엘프를 데려오는 수밖에 없죠.
오연우의 무책임한 발언에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반응했다.
“아니. 내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그 엘프를 데리고 와.”
-형. 퓨이도 그렇고 티아 공주님도 잘 데려왔잖아요. 어떻게 능력으로 데려와 보세요.
“나는 그런 능력 없는데 그게 무슨…….”
-아무튼! 어떻게든 데려와 보세요. 지금 사람들을 진정시키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방법은 그것뿐이니까.
오연우와의 통화는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
통화가 종료된 휴대폰을 손에 쥐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말 데려오는 수밖에 없나?”
* * *
나는 아침 일찍부터 어제 낚시를 하던 호숫가에 다시 나왔다.
낚싯대는 가져오지 않았지만, 편안한 의자를 가져와 자리를 잡고 기대듯 앉았다.
오늘은 퓨이도, 티아도, 작은 슬라임들도 데려오지 않고 나 혼자만 나와 있는 상황.
의자에 몸을 기대고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호수를 응시했다.
아무런 움직임 없이 정말 가만히 풍경을 감상했다.
“…….”
“…….”
‘왔다!’
평소에 숲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시선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 나를 계속 쫓아다니던 존재는 어제 영상에 찍힌 엘프임에 틀림이 없었다.
오늘도 그 엘프는 거리를 유지한 채 나를 관찰하는 것 같았다.
‘일단 1단계는 성공했고.’
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편안한 의자에 기대 무방비하게 잠을 자는 모습으로.
“…….”
엘프는 아마 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주면 경계심을 낮추고, 호기심에 더 가까이 다가올 수도 있을 거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엘프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잔잔한 호수 물결치는 소리와 등 뒤로 쏟아지는 숲 내음에 취해 나도 모르게 진짜 잠들고 말았다.
본래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달콤한 잠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잠결에 느껴지는 인기척에 슬며시 눈을 떴다.
“…….”
“…….”
내 눈앞에는 사파이어같이 빛나는 눈동자의 엘프 소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눈을 뜸과 동시에 나와 엘프 소녀는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쳤고, 소녀는 긴 귀를 쫑긋거리며 놀란 표정을 짓더니 허둥지둥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급히 외쳤다.
“잠깐만!”
“…….”
내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엘프 소녀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려 나와 마주 섰다.
엘프 소녀는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신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 분위기에 취해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살짝 손을 흔들었다.
“어…… 안녕?”
“…….”
엘프 소녀는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활짝 웃으며 같이 손을 흔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