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83화
30. 새로운 생활(2)
오랜만에 오연우가 여자친구인 손보미와 함께 균열에 방문했다.
보통은 너튜브 영상 촬영 때문에 놀러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은 순수하게 얼굴을 보기 위해 찾아왔단다.
“자! 공주님 드리려고 사 왔어요. 민트 초코 마카롱이에요.”
손보미가 사 온 민트 초코 마카롱은 순식간에 티아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티아는 감사 인사와 함께 손보미의 품에 안겼고,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살짝 티아를 감싸 안았다.
굉장히 훈훈한 광경에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다가.
“세진 오빠도 좀 드셔보세요. 오빠도 민트 초코 좋아하시죠?”
“으, 응? 아냐 괜찮아. 난 티아만 맛있게 먹으면 돼.”
생각지도 못한 권유에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며 거절했다. 다행히 두 번 권유하지는 않았고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한편 오연우는 퓨이와 작은 슬라임 두 마리에 휩싸여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작은 슬라임들은 새로온 손님이 신기한지 퓨이와 오연우의 주변을 계속 맴돌며 구경했다.
“아니, 형. 도대체 형은 어디서 이런 애들을 데리고 오는 거예요?”
오연우는 진심으로 궁금한 듯 내게 질문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거야.”
“저도 형이랑 사이가 꽤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 같아요. 밖에 말리고 있는 건 약초에요?”
“응. 이번에 C등급 균열에서 발견한 것들인데. 약초 쪽으로도 좀 공부해 보려고.”
처음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오연우의 주변을 맴돌던 퓨이와 작은 슬라임은 흥미를 잃었는지 손보미 쪽으로 향했다.
티아와 슬라임들에게 휩싸인 손보미는 더욱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가져온 과자들을 잔뜩 꺼내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좀 있으면 미국으로 여행을 가거든요. 그래서 미리 세진 형 얼굴도 봐두고, 너튜브 채널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갑자기 미국?”
“제 친형이 미국에서 유학 중인데. 이번에 가족들이 만나러 가기로 했거든요. 겸사겸사 관광도 하고.”
유학 중인 형을 만나러 간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너 금수저 집안이었지.”
“뭔, 또 금수저 집안이에요.”
“미국 유학 보낼 정도면 어느 정도 부유한 것 맞잖아.”
“그렇긴 하지만. 저는 내놓은 자식이라 상관없어요. 미국 유학 간 형은 다르지만.”
오연우는 형에 대해 언급하며 살짝 불편한 표정을 했다.
“사실 저는 미국 안 가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억지로 데리고 가는 거라. 친형이랑 별로 친하지도 않거든요.”
“그래?”
“형은 저랑 달리 완전 엘리트라서 사는 세계가 달라요.”
오연우의 친형은 미국 명문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유학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부모님께 비교를 많이 당했는지 말투에서 불만스러운 감정도 느껴졌다.
“요즘 우리 채널이 상승세라서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아마 여행 중에는 편집 못 할 것 같아요.”
“얼마나 미국에 있는 건데?”
“2주 조금 넘게요.”
확실히 2주 동안 채널에 아무 영상도 올리지 못한다면 조금은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최근에 너튜브를 통해서도 쏠쏠한 수입이 생겨났기 때문에, 2주라는 공백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우려하는 내 표정을 보고 오연우는 안심하라는 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2주 동안 채널에 아무것도 못 올리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제가 미리 편집해서 만들어 놓은 영상이 몇 개 있거든요. 여행 가 있는 동안에는 그 영상을 올릴 생각이에요.”
생각보다 오연우는 훨씬 철저하게 공백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럼 됐네. 너는 마음 편하게 여행 즐기다 오면 되겠어.”
“올리는 영상은 그렇다 치고. 저 없는 사이에 라이브 방송 몇 번만 해주세요.”
“너 없이 혼자? 나는 방송 장비 세팅할 줄도 모르는데?”
내가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려 하자 오연우는 괜찮다며 나를 설득했다.
“복잡한 방송 장비 말고 휴대용 카메라, 조명 정도만 다룰 줄 알면 간단해요. 방송도 복잡한 기획 필요 없이 평범한 일상 방송 정도만 해주셔도 충분해요.”
“그게 될까?”
“만약에 저 없으면 채널 이렇게 또 내버려 두실 거예요? 저번에 좀 더 채널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약속했잖아요.”
오연우의 일침에 나는 할 말이 없어져 입을 다물었다.
“복잡한 편집이나 영상 기획 같은 건 계속 제가 하겠지만, 아주 평범한 일상 영상 찍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저번에도 굉장히 반응이 좋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해봐요.”
“알았어. 한번 해볼게.”
나에게서 수락을 얻어낸 오연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가방에서 카메라와 마이크, 휴대용 조명 등등 갖가지 방송 장비를 꺼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없이 오연우에게 붙잡혀 방송 장비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손보미는 재미있어 보였는지.
오연우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간단한 방송 메이크업 팁을 알려주겠다며 또다시 나를 붙잡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반강제로 방송에 대한 지식을 주입 받고, 혼자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 * *
“흐아암!”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표정으로 하품을 하며 텐트 밖으로 나왔다. 텐트 안에는 아직 아이들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텐트 입구로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확인하고 입구를 닫아줬다.
요즘 새롭게 추가된 아침 일과 중 하나인 약초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
서늘한 건조대 위에서 잘 마르고 있는 약초를 직접 만져보며 확인한 뒤.
다시 텐트로 돌아가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은 간단하게 프라이팬 위에 버터를 발라 식빵과 달걀 프라이를 구워 토스트를 준비하고, 냉장고에서 달콤한 잼과 어제 채취한 열매를 꺼냈다.
‘나중에 채취한 열매로 잼을 만들어도 맛있겠다.’
내가 직접 채취한 열매로 잼을 만드는 상상을 하고 있을 때, 텐트에서 고소한 아침 식사 냄새를 맡은 티아가 눈을 비비며 나왔다.
“잘 잤어?”
“으응.”
티아는 잠이 덜 깼는지 비틀비틀 내게 걸어와 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식사 준비에는 좀 방해되지만 팔을 들어 티아가 기댈 수 있도록 해주었다.
편하게 내 품에 기댄 티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뒤를 이어 모렛, 퓨이와 작은 슬라임들이 텐트에서 나왔다.
아직 졸린 눈으로 모여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식사 준비를 서둘렀다.
잘 구워진 토스트에 달걀 프라이와 잼을 발라 먹기 좋게 자른 뒤, 각자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작은 슬라임에게는 잘 구워진 식빵을 잘게 잘라 열매와 함께 주었다.
이렇게 간단한 아침 식사가 끝났다.
모렛은 곧바로 별장 건설을 위해 일터로 출근했고, 나와 남은 아이들은 식사 뒷정리를 마치고 함께 약초밭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이름 모를 잡초와 돌멩이들로 어지러운 공터였던 곳이, 지금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평범한 밭의 모습으로 변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흙을 뒤엎어주는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농기계나, 하다못해 소라도 있었으면 쉬웠겠지만. 어쩔 수 없이 직접 삽을 들어야 했다.
일은 굉장히 간단했다.
내가 삽으로 땅을 뒤엎으면 아이들이 따라오며 작은 돌멩이와 풀뿌리들을 걸러내 주었다.
아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삽질을 한 지 어느덧 2시간째.
2시간 넘게 삽질을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허리와 어깨에 통증이 몰려왔다.
밭일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된 일이었다.
오전 내내 삽질한 끝에, 겨우 밭의 절반 정도 되는 땅의 작업을 끝냈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즐긴 뒤, 아주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는 오후에 남은 밭일을 끝낼 생각이었는데 계획을 변경했다. 남은 밭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비워진 오후 일정에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주문했던 농기구와 함께 도착한 ‘그것’을 꺼내 들었다.
길고 매끄럽고 탄력적인 몸체를 자랑하는
바로 낚싯대였다.
낚시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라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고 있을 때,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정대훈 아저씨.
대훈 아저씨는 꽤 오래전부터 낚시를 취미로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일도 바빴고, 아주머니도 몸이 좋지 않아 자제하는 편이라고.
초보자인 나에게 이런저런 정보와 팁을 알려준 아저씨는 정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집사람 괜찮아지면, 다음에 꼭 같이 가자.
진한 아쉬움이 느껴지는 아저씨의 마지막 말이 조금 씁쓸하게 들려왔다.
아저씨의 추천을 통해 구매한 낚싯대와 장비를 챙기고 나가려는데, 문득 오연우가 부탁했던 라이브 방송 생각이 났다.
‘라이브 방송 한번 켜볼까?’
평소 채널에 올리던 영상들과는 조금 동떨어지지만, 그래도 일상을 보여준다는 느낌으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오연우가 빌려준 휴대용 방송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 * *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저번에 봐두었던 호수의 가장자리로 향했다.
티아는 낚시가 별로 재미없어 보였는지 작은 슬라임들과 놀러 언덕으로 가버렸고, 퓨이만 나를 따라 호수에 왔다.
호수의 투명한 수면 아래에서 여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낚싯줄을 던지면 지금이라도 당장 미끼를 물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낚시 준비와 함께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라이브 방송 준비를 했다.
“됐나?”
휴대폰으로 확인해 보니, 호숫가에 가면을 쓴 나와 퓨이의 모습이 화면에 비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갑자기 웬 라이브 방송?
-뭐야? 뭐야?
따로 공지 없이 시작한 라이브 방송인데도 꽤 많은 사람이 방송에 접속했다.
“안녕하세요.”
“퓨이!”
나와 퓨이는 방송에 들어와 준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퓨이야 안녕!
-균숙자 님. 여긴 어디예요?
-티아 공주님은 어딨어요?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낚시 준비를 하면서 차근히 설명했다.
“오늘은 연우 PD 없이 짧게 라이브 방송해 보려고 켜봤어요. 티아는 멀지 않은 곳에서 놀고 있고요.”
그리고 카메라를 들어 호숫가와 주변을 천천히 비춰줬다.
-우와! 여기 어디에요? 물 맑은 것 좀 봐.
-호수 엄청 넓다. 외국인가?
사람들은 호수 주변의 풍광을 보며 감탄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처럼 확실히 국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고, 약간 어설프게 낚시 준비를 시작했다.
낚싯줄 끝에 인조 미끼를 매달고 첫 캐스팅을 시도했다.
-휘이익. 툭!
하지만 생각보다 낚싯줄을 던지는 타이밍이 쉽지 않았고, 바로 코앞에 툭 하고 떨어졌다.
-ㅋㅋㅋㅋㅋㅋ
-초보자?!
-왜 이렇게 어설퍼? ㅋㅋ
어설픈 내 모습에 시청자 웃음을 터뜨렸고.
-너무 팔 힘으로 던지려 하지 마시고, 낚싯대의 탄력으로 던진다고 생각하세요.
-너무 낚싯대를 뒤로하면 더 안 나감. 적당히 대가 휘어질 정도로만!
몇몇은 친절하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조금 부끄럽기는 했지만, 시청자들의 조언과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제대로 된 첫 캐스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오오!
-이제 좀 자세가 나오는 듯.
-오늘은 낚시 방송인가요?
나는 물 위에 떠오른 찌를 바라보며 물고기가 미끼를 물 때까지 기다렸다.
-쑤욱!
찌가 쑥! 하고 물 아래로 빨려 들어가고. 나는 한 타이밍 늦게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분명 뭔가 미끼를 건드린 느낌이 났는데 바늘에는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았다.
첫 입질은 손맛만 살짝 보고 헛수고로 끝났다.
-신호가 왔을 때 빠르게 낚아채야지.
-그렇게 반응이 늦으면 물고기도 맛볼 거 다 맛보고 도망간다고요. ㅋㅋ
그렇게 시청자들의 조언과 초보 낚시꾼의 분투가 계속 이어졌다.
나는 조금씩 감을 잡기 시작했고 4번째 입질에서 제대로 물고기를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으아. 걸렸다!”
흥분한 나머지 나는 크게 움직였고, 그 여파로 옆에 세워뒀던 카메라의 앵글이 돌아갔다.
-카메라 돌아갔어요.
-방장! 안 보여!
-잡았어?
“물고기가 힘 왜 이렇게 강해. 여러분 이거 제대로 잡은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제대로 보여달라고.
-으아. 궁금해.
내가 물고기를 잡는 화면은 잡히지 않고, 물고기와 힘 싸움을 하며 끙끙대는 소리만 들리는 와중에.
-저건 뭐지? 나무 뒤에 누가 있는 거 아냐?
-어? 진짜 누가 있는데.
-티아 공주님 아님?
-아냐. 티아 공주님은 저렇게 안 큰데.
돌아간 카메라 화면에 정체불명의 인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이 상황을 모르고 계속 낚시에 집중하고 있었고.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나무 뒤에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인물에게로 향했다.
-잠깐만! 설마?!?!
-대박!!
-이거 실화냐?
채팅창은 갑자기 폭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