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76화 (76/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76화

28. C등급 균열(2)

균열 제거 일로 돈을 좀 번다는 사람들은 대개 C등급 균열 제거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구할 수 있는 아이템, 귀중한 재료, 희귀한 약초 등등.

C등급 균열에서는 D등급 균열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보다 훨씬 가치 있는 자원들을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길드는 이런 C등급 균열 공략을 목표로 삼고 길드원을 모으거나, 운영계획을 수립한다.

국가에서도 D등급이나 E등급 균열은 사회 안전을 위해 제거한다는 느낌이지만.

C등급부터는 안전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밀접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면에서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규모 파티 지원 정책도 국가에서 C등급 균열 제거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 중 하나이다.

C등급에서 훨씬 더 많은 자원을 얻을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D등급에 비해서 제거 난이도가 크게 차이가 난다.

D등급과 E등급에서 발생하는 부상이나 사망 사고가 C등급에서는 몇 배나 더 많이 발생한다.

단순히 더 강한 괴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완전히 달라지는 균열의 환경에도 그 이유가 존재한다.

크게 달라지는 균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크게 다치거나, 심하면 사망하는 경우를 줄이기 위해 국가에서 지원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흔히 5대 길드라 부르는 거대 길드에서 사람을 파견해, 소규모 파티 몇 팀을 데리고 C등급 균열에 도전하는 형식이다.

길드에서 파견된 사람은 최대한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균열이 끝날 때까지 전체적인 지휘를 해준다.

도전자들은 파견 온 사람의 지휘를 받아 경험을 쌓고, 새로운 균열 환경에 적응하는 기회를 얻는다.

일종의 재능 기부인 셈.

물론 길드에서 공짜로 이런 일에 나서지 않는다. 각 길드가 달성한 성과에 따라 국가에서 혜택을 지원해 준다.

정 씨 가족 파티는 오성 길드를 통해 이 지원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 * *

검은 마녀 서율희는 차 뒷좌석에 앉아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누나. 표정 좀 풀어요.”

운전석에서 운전대를 잡은 윤동현이 부드럽게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찡그린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대답했다.

“너 같으면 지금 상황에서 웃을 수 있겠어?”

“뭐. 어쩌겠어요. 이왕 하는 일 즐겁게 해야죠.”

“너도 참.”

충분히 짜증 날 만한 상황에서도 웃어 보이는 윤동현의 모습에 서율희는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소규모 파티 지원 정책에 파견자로 정해져서, 휴식일에 쉬지도 못하고 균열로 향하는 기분은 좋을 수가 없었다.

‘이 망할 꼰대 조장들 때문에…….’

서율희는 조장 직급 중에서 가장 막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귀찮은 일을 도맡았고, 그 때문에 부조장인 윤동현도 항상 귀찮은 일에 같이 휘말렸다.

겉으로는 짜증을 내는 서율희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윤동현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물론 윤동현도 그 사실을 알기에 일부러 더 밝은 표정을 짓는 중이었다.

서율희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파견이 결정되고 난 뒤, 길드장과 부길드장이 직접 찾아와 서율희에게 이번 일의 목적에 관해 설명해 줬다.

첫 번째는 당연히 전세진이라는 사람의 영입이 목적.

그의 능력이 뭔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균열 제거 일에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가능하면 그의 능력과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회유하는 게 가장 첫 번째.

두 번째는 전세진이 속한 정 씨 가족 파티의 평가와 회유였다.

첫 번째는 당연히 전세진이 우선이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 꿩 대신 닭이라는 느낌으로 정 씨 가족에 대한 회유를 시도하라는 것.

솔직히 서율희는 이런 지시를 듣고 거북한 감정을 느꼈다.

전세진이 만들어 낸 아티팩트의 위력은 직접 봤기 때문에 얼마나 대단한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회유라던가, 목적을 숨기고 사람을 대하는 게 그녀의 성미에는 전혀 맞지 않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도대체 뭐지? 이 감정은?’

처음 전세진을 봤을 때.

계속해서 들었던 묘한 친근감과 기시감의 정체를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전세진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그녀 스스로 기억을 더듬어 봐도. 정확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그녀는 복잡한 심경을 달랬다.

* * *

나와 정 씨 가족은 일찍 집합 장소에 도착해 장비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는데,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먼저 도착해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 같은 조를 이뤄서 균열에 들어갈 사람들과 간단하게 인사와 이야기 나누고, 장비를 점검하다 보니 어느새 약속된 시간이 되었다.

약속 시각에 맞춰 젊은 여자와 남자 한 명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는 저번에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서율희라고 했던가?’

만났던 날에 나를 굉장히 이상한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봤던 기억이 났다.

“안녕하세요. 오성 길드의 조장을 맡고 있는 서율희라고 합니다. 이쪽은 부조장 윤동현입니다.”

그녀의 소개에 사람들 사이에서 약간의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파견을 나온 서율희가 훨씬 젊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상황에 크게 개의치 않는지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오늘 들어갈 균열에 대한 말씀을 드리기 이전에, 몇 가지 질문 사항을 적은 종이를 나눠드릴 겁니다. 최대한 자세히 질문에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조장이라고 소개된 윤동현이 돌아다니며 종이와 펜을 한 장씩 건네줬다.

종이에는 윗부분에는 오늘의 컨디션에 대한 질문이 나열되어 있었다.

불편한 곳이나, 특이사항은 없는지.

그 밑으로는 본인의 전투 방식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딜러인지, 탱커인지, 혹은 지원가인지.

사용하는 무기나 스킬에 대한 것도 꽤 상세하게 질문했다.

열 명이 넘는 사람들 모두 금방 질문지 작성을 끝냈다.

다시 윤동현이 종이와 펜을 거둬가고, 모인 질문지를 서율희가 한 장씩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그녀가 질문지를 읽고 있는 사이, 윤동현이 오늘 들어가게 될 균열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주의해야 할 점에 관해 설명했다.

아주 기초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에 딴청을 부리거나 대충 듣는 사람이 많았다.

나와 정 씨 가족은 비교적 성실하게 그의 설명을 집중해서 들었다.

윤동현이 기본적인 설명을 하는 사이, 질문지를 모두 읽은 서율희가 인원을 나누기 시작했다.

탱커 임무를 수행하는 인원은 윤동현에게, 나머지 지원가와 딜러들은 그녀가 맡게 되었다.

서율희는 질문지를 보고 알아낸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시 또 사람들을 분류했다.

그리고 분류된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설명해 줬다.

“한 번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딜러분들은 제 타겟팅을 잘 따라와 주셔야 해요. 피해가 분산되면 적을 잡는 속도가 느려지고 전선을 유지하는 탱커 분들의 부담이 커지니까요.”

그녀는 나를 포함한 정아윤과 몇몇 딜러에게 주의 사항을 주지시켰다.

“나머지 딜러분들과 지원가 분들은 따로 지시가 없으면 원거리 공격을 하는 대상이나, 가장 가까이 붙은 적을 우선으로 공격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절대 적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기술들은 함부로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최대한 제 지시에 따라 사용해 주세요.”

서율희는 어떤 식으로 지시를 내릴 것인지 대략적인 예시와 방법을 알려주고, 균열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점검을 지시했다.

설명이 끝나고 균열에 들어가기 직전.

아윤과 선우는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아저씨가 나서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우리들의 긴장을 풀어주었을 텐데, 윤동현을 따라 탱커들은 따로 모여 있었기 때문에 아저씨는 우리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다.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솔직히 나도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가장 어른인 내가 나서 남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내 말을 들은 정아윤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이제는 오빠가 긴장을 풀어주려고 다하네. 여기서 오빠가 제일 경력 짧은 거 알아요?”

“흠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윤의 말에 나는 살짝 민망하게 웃으며 헛기침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두 남매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잠시 긴장을 잊을 수 있었다.

잠시 후.

C등급 균열 입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자! 이제 진입하겠습니다.”

윤동현의 지시에 따라 탱커 인원들이 먼저 입구로 진입했다. 곧이어 나와 남매를 포함한 인원이 그 뒤를 따랐다.

균열 입구를 통과하는 익숙한 느낌과 함께 눈앞에 C등급 균열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나는 창피하지 않게 속으로 감탄을 터뜨리며 C등급 균열을 내부를 둘러봤다.

아니. 정확히는 내부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힘든 균열의 모습이었다.

보통 커다란 동굴의 내부 모습이거나, 던전과 비슷한 사방이 꽉 막힌 공간을 하고 있던 D등급, E등급 균열과는 달리.

C등급 균열은 사방이 뻥 뚫린 숲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천장도 존재하지 않아 하늘에는 구름과 해가 떠 있었다.

정말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온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정 씨 남매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에 사람들이 살짝 긴장을 놓으려 할 때쯤, 서율희가 강하게 소리쳤다.

“긴장하세요! 아까 설명해 드린 대로 대형 유지하시고, 절대 이탈하시면 안 됩니다.”

그녀의 날카로운 외침에 균열로 들어온 인원들은 다시 긴장한 표정으로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 * *

“왼쪽. 왼쪽 막아요!”

“크헝!!”

사방에서 달려드는 회색갈기 늑대들.

강한 괴물은 아니었지만, 빠른 스피드와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에 일행은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다.

보통 일직선 진행으로 적과 정면으로 만나던 D등급, E등급 균열과 달리, 이곳은 뻥 뚫린 사방으로 적이 사방에서 공격해 왔다.

특히 근접전이 약한 딜러들이 후방에서 공격을 받았을 때 혼란은 굉장히 심했다.

서율희와 윤동현의 대처가 빨랐기 때문에 크게 다친 인원은 없었지만, 적의 날카로운 공격은 많은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전투가 종료되고.

“잠시 휴식. 경계 인원을 제외하고 부상 체크, 장비 점검하세요.”

어지러웠던 전투가 끝나고 휴식을 지시가 떨어졌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서율희는 방금 전투의 문제점과 고쳐야 할 부분에 관해 설명해 줬다.

쉬는데 귀찮게 하는 잔소리 같아 짜증 난 얼굴을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와 정 씨 가족은 그녀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확실히 왜 이런 지원 정책이 생겨났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조금 전 전투와 그녀의 설명은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서율희의 설명이 끝나고. 경계를 위한 소수의 인원만 제외하고 모두 휴식에 들어갔다.

나도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

이상한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

“응?”

-…….

나는 다시 적이 나타났나 싶어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옆에 있던 아윤과 선우가 놀라 물었다.

“형. 왜 그래요?”

“아니. 혹시 이상한 소리 못 들었어?”

“소리요? 못 들었는데.”

정 씨 남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자리에 앉으려 하니.

-몽…… 몽…….

계속 의문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소리가 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형! 어디 가시는 거예요.”

“오빠!”

“잠깐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

걱정스럽게 외치는 남매의 부름에 대충 핑계를 대고 풀이 우거진 숲속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몽…… 몽…… 몽…….

점점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고.

풀들을 손으로 헤치며 깊이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숲 바닥에서 예상치 못한 존재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는?”

-몽. 몽. 몽.

말랑거리는 연두색 몸체를 가진 슬라임이 작은 몸체를 통통 튀기며 나에게 반가움을 표현했다.

핀테일의 던전에서 많은 금화를 사용해 풀어줬던 작은 슬라임이었다.

“도대체 이게…….”

-몽. 몽. 몽.

내가 고개를 숙여 작은 슬라임 친구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자, 녀석은 몸을 부르르 떨며 기분 좋은 향기를 뿜어냈다.

나는 퓨이가 생각나 기분 좋게 웃으며 녀석을 쓰다듬어줬다.

-몽. 몽. 몽.

녀석은 내 손위에 올라타 몽글거리며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마치 나에게 애교를 부리는 듯했다.

귀여운 슬라임 친구에게 잠시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세진 오빠!”

“형!”

등 뒤에서 나를 찾는 남매의 부름이 들려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손 위에 있던 작은 슬라임을 상의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고, 다시 풀숲을 헤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풀숲을 지나 일행이 있던 곳에 도착했을 때, 불안한 표정의 정 씨 남매와 서율희가 나란히 서 있었다.

서율희는 굉장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어딜 다녀오신 거죠?”

“아……. 잠시 화장실에 좀.”

“생리적인 현상이더라도 저나 부조장에게 보고하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죄송합니다.”

날카로운 그녀의 힐난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몽. 몽. 몽.

내 상체가 움직이자 주머니에 있던 녀석이 울음소리를 냈다. 소리를 들은 서율희가 다시 날카롭게 물었다.

“주머니에 있는 건 뭐죠?”

“아. 그게.”

“꺼내 보세요.”

그녀의 냉담한 표정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주머니에 있던 작은 슬라임을 꺼내 보였다.

-몽. 몽. 몽.

“어머!”

“……??”

내 손바닥 위에서 작은 몸을 몽실 거리는 슬라임을 보자 서율희는 곧바로 냉담한 표정을 풀고 묘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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