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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75화 (75/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75화

28. C등급 균열(1)

멋진 작업실을 만들어 준 모렛에게 보답하기 위해 시원한 맥주를 넉넉하게 준비해줬다.

그리고.

작업실을 건설하느라 며칠 동안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모렛을 위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맥주와 최고의 궁합!

바로 치킨!

진리의 양념, 후라이드에 간장 맛, 허니버터 맛 등등.

퓨이와 티아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넉넉하게 치킨을 주문했다.

갓 튀겨낸 뜨끈한 치킨이 도착하고.

맛있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치킨 상자를 열어 먹기 좋게 세팅했다.

모렛은 물론 티아와 퓨이도 먹음직스러운 치킨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다.

나는 가장 먼저 고소한 기름 냄새가 죽여주는 후라이드 치킨의 닭 다리를 집어 들어 모렛에게 건네줬다.

“후모?”

“작업장 건설하느라 고생했어. 맛있으니까 한번 먹어봐.”

아직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모렛을 위해 손수 시범을 보여줬다.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혀진 캔맥주를 먼저 한 모금 살짝 들이키고.

맥주 탄산의 시원함과 특유의 뒷맛이 사라지려 할 때쯤, 바삭한 치킨을 한 조각 딱! 입안으로 넣으니.

바삭하고 고소한 튀김 맛과 함께 닭고기 특유의 육즙과 탱탱한 고기 식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다시 시원하고 상쾌한 기운이 치킨 기름의 느끼한 뒷맛을 싹 없애주면서 입안에는 기분 좋은 여운만 가득 남게 되었다.

“크으으!”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나오는 맛의 감탄사.

내 모습을 지켜보던 모렛이 똑같이 맥주와 치킨을 맛봤다.

-우물우물.

“후모!?!!”

치킨과 맥주. 치맥의 맛을 느껴본 모렛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움과 감탄이 뒤섞인 소리를 냈다.

그리고 허겁지겁 치킨과 맥주를 즐기기 시작했다. 어찌나 잘 먹는지 보는 내가 다 뿌듯할 정도였다.

“세진. 나도! 나도 맥주 먹을래.”

“퓨이!”

나와 모렛이 너무 맛있게 치맥을 먹는 모습을 본 퓨이와 티아가 자신들도 맥주를 마시겠다고 나섰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당연히 아이들에게 아직 술을 마시게 할 수는 없었다.

“안 돼. 맥주 말고 콜라 먹어.”

“히잉.”

“퓨우우…….”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손수 콜라를 따라주며 달래줬다.

그래도 치킨과 콜라 역시 맛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금방 아쉬움을 잊을 수 있었다.

아이들과 즐거운 식사시간이 끝나고.

“퓨우우.”

“배불러.”

“후모.”

치킨으로 배를 빵빵하게 채운 아이들이 자리에 늘어지듯 누웠다.

나는 물티슈로 아이들의 손과 입을 닦아주고 먹은 치킨의 뒷정리를 끝냈다.

“우리 목욕하러 들어가자.”

식사 후 잠시 늘어져 있던 아이들을 이끌고 온천으로 향했다. 따뜻한 온천물에 잠시 몸을 맡기고 편안히 휴식을 취했다.

음주 후라서 너무 오래 온천에 있지 않았고, 곧바로 온천을 빠져나와 아이들을 한 명씩 직접 씻겨주었다.

거품 내는 걸 좋아하는 퓨이는 장난치듯 금방 씻어버렸고, 머리가 길어 씻기 힘든 티아는 직접 머리를 감겨 주었다.

그리고 모렛은 온몸이 털로 뒤덮여 씻는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성스레 아이들을 씻겨주고 나는 재빨리 스스로 몸을 씻었다.

온천을 나와서는 수건으로 머리카락과 털을 말리는 일이 남았다.

퓨이는 수건 한 장으로 쓱 닦아주면 완료.

티아는 부드러운 머릿결을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고, 드라이어로 꼼꼼하게 말려주면 끝.

모렛은 전용 커다란 수건으로 온몸에서 물기를 털어내고 20분 가까이 물기를 말려줘서 다시 뽀송뽀송한 털로 돌아갔다.

“후모!”

기분이 좋아진 모렛이 두 손으로 내 팔을 잡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혹시 아이들 감기 걸릴까 재빨리 물기를 말려주던 사이, 촉촉했던 내 머리가 어느 정도 말라 있었다.

약간 으슬으슬한 기운이 느껴지자 머리카락에 남아 있는 물기를 드라이어로 말렸다.

잠시 내가 머리를 말리고 있는 사이.

아이들은 뽀송뽀송해진 모렛의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짓고, 아주 잠시 평화로운 모습을 감상한 뒤.

잠자리를 펴고 아이들이 편안히 잘 수 있도록 자리를 옮겨줬다.

나는 냉장고에서 남아 있는 캔맥주를 하나 따서 입가에 가져갔다. 편안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먹는 캔맥주 맛도 나쁘지 않았다.

한동안 홀로 맥주를 홀짝거리다가 나도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

* * *

작업실이 만들어진 뒤로, 모렛은 시간 대부분을 작업실에서 보냈다.

마정석 광산에서 채광한 원석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마력이 흐르는 광석들.

이 광석이 고철 톱니바퀴의 재료였다.

모렛은 불순물을 가지고 신나게 고철 톱니바퀴를 생산해 냈다.

처음에는 톱니바퀴 하나를 만드는데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뚝딱뚝딱하면 두, 세 개씩 금방 톱니바퀴를 만들어 냈다.

문제는 나무 톱니바퀴의 재료를 아직 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무 톱니바퀴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력이 흐르는 목재가 필요한데 아직 어디서 구하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것 외에도 작업실에서 할 수 있는 문양의 힘을 아이템에 새겨넣는 작업에 관한 것도 조금 알아냈다.

작업실에서 아이템에 대해 분석을 하고 문양의 힘을 부여하면 성공 확률이나 부여 능력이 훨씬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많지 않아 많은 실험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작업실에 성능에 꽤 만족하는 중이었다.

어쩌면, 작업실에서 아이템을 업그레이드해서 되파는 작업만 계속해도 꽤 좋은 사업이 될지도 몰랐다.

물론 작업실이 있다 하더라도 실패확률은 아직 존재하고, 실패하면 곧바로 아이템은 쓸 수 없으므로 조금 더 신중하게 연구해 볼 생각이었다.

작업실에서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

정대훈 아저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최근에 균열 제거 작업이 뜸해서 굉장히 오랜만에 연락이 온 것 같았다.

“여보세요. 대훈 아저씨?”

-어어. 세진아. 그래 나다.

“엄청 오랜만에 연락하는 것 같네요. 이제 균열 제거 작업 다시 시작하시는 거예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전화했다. 혹시 지금 바쁘냐?

“아뇨. 지금 별로 안 바빠요.”

-그럼. 잠시 얼굴 좀 볼까? 전화로는 조금 하기 힘든 이야기가 있어서.

아저씨의 말투에서 뭔가 불안한 기색을 읽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저는 괜찮아요.”

나와 아저씨는 곧바로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약속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평소보다 착 가라앉은 아저씨의 말투와 태도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직접 만나보면 알겠지.’

나는 애써 찝찝한 마음을 뒤로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 * *

조용한 카페에서 정대훈 아저씨와 만날 수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평소처럼 쾌활한 웃음을 보여줬지만, 아주 미세하게 평소와 차이가 있었다.

안색도 별로 좋지 않아 보였고, 약간 초췌한 느낌도 들었다.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나도 평소처럼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었다.

아저씨는 카페가 익숙하지 않은 듯, 주문하는 데 조금 어색해했다.

둘 다 간단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구석진 자리에 마주 보고 앉았다.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올 때까지 짧은 근황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 우리 테이블로 나오고.

내가 씁쓸한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몇 모금 맛보고 있을 때, 아저씨는 눈앞의 아메리카노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저씨. 무슨 일 있으세요?”

“…….”

“속 시원히 이야기해 보세요. 뭔가 할 말 있으신 거죠?”

아저씨는 허탈한 듯 힘없이 웃었다.

“허허. 티 많이 났냐?”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뭔지 이야기해 보세요.”

내 재촉에 우물쭈물하던 아저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C등급 균열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어……. 갑자기요?”

나는 약간 멍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아저씨는 이미 굳게 결심한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 씨 가족과 나를 포함한 파티는 최근까지 D등급 2단계와 3단계 균열 의뢰를 받아왔다.

물론 C등급으로 올라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은 없었지만, 아저씨의 성향상 한동안은 C등급 도전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아저씨가 갑자기 C등급 도전 의사를 밝혀오자 의아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이미 내 표정을 읽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조금 갑작스럽겠지만, 아이들과도 이야기를 끝냈다.”

“그런가요?”

“…….”

“…….”

잠시 말을 망설이던 아저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

“얼마 전에 우리 집사람이 쓰러졌다.”

“아주머니가요?”

깜짝 놀라 큰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이곳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최근까지 아주머니가 직접 만드신 맛있는 반찬을 받아먹었는데, 쓰러졌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꽤 충격적이었다.

“다행히 큰일은 없었어. 주변에 아는 사람도 있었고, 금방 의식을 회복했거든.”

“정말 다행이네요.”

아저씨는 눈앞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최근에 집사람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어. 병원에 입원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쩌면 이렇게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또 있을지도 몰라.”

“…….”

티머시 증후군(Timothy Syndrome)

아주머니가 걸린 불치병.

듣기로 능력 사용도 몇 년째 하지 않으시면서 조심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상태가 계속 안 좋아지고 계셨던 것 같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집사람 곁에 남아 있는 게 제일 좋겠지만, 여유가 없을 것 같아.”

“…….”

“증상이 더 심해지기 전에 복용하는 약의 사용량을 늘리려고 해. 그러려면 돈이 더 필요하거든.”

나는 그제야 아저씨가 이렇게 성급하게 C등급에 도전하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티머시 증후군의 유일한 치료 약.

그 치료 약의 원재료가 오로지 균열에서만 구할 수 있어서 가격이 엄청 비쌌다.

아저씨와 남매가 벌어들이는 돈 대부분이 약값으로 들어갈 정도로 가격 만만치 않았다.

“거기다 조금 있으면 치료 약 가격이 올라간다더라고. 지금 버는 돈으로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저씨의 입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무거운 이야기에 나는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최근에 한창호한테서 연락이 왔다.”

“……?”

“소규모 파티 지원 정책의 하나로 오성 길드 쪽에서 우리를 추천해 준다고 하더라.”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내가 조금 밝아진 목소리로 묻자 아저씨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세진아. 저번에도 말했지만. 오성 길드의 목적은 우리가 아니야. 바로 너지.”

“…….”

“오성 길드는 우리 가족의 사정을 알고 도와주는 척하며 너를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야.”

“…….”

“그런데 말이야. 오성 길드의 속셈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 제안을 거절 못 했다.”

자조적으로 말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나는 멍하니 쳐다봤다.

왜 아저씨가 이렇게 힘들게 내게 말을 꺼냈는지 전부 알 것 같았다.

아저씨는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나에 대한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남아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빨대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시끄러운 소리가 날 때쯤.

담담한 목소리로 아저씨에게 말했다.

“C등급 균열 도전해 보죠. 아저씨.”

“세진아…….”

“뭐. 오성 길드가 무슨 의도로 우리 파티를 추천했는지는 잘 알겠어요. 하지만 저는 괜찮은 것 같아요.”

“……?”

“우리 파티. 절대 실력으로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아저씨도 아윤, 선우 모두요.”

처음은 C등급 균열에 대한 경험이 없어 힘들겠지만, 조금만 경험이 쌓이면 우리 파티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오성 길드는 우리 파티를 무시해서 이런 계획을 생각했겠지만, 오히려 보여주자고요. 우리가 절대 만만한 파티가 아니라는 것을!”

아저씨는 눈가를 촉촉이 하며 감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왜요. 아저씨 자신 없어요? 우리 파티로는 C등급에서 활약 못 할 것 같아요?”

장난스러운 내 물음에 아저씨는 테이블을 손으로 가볍게 내려치면서 말했다.

“어허!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자신 있지. 아직 아윤이나 선우가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경험만 조금 쌓으면 C등급 정도는 금방 적응한다고.”

아저씨는 열변을 토하듯 외치고 눈앞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럼 된 거죠?”

“세진아.”

“……?”

“고맙다.”

뜨거운 눈빛으로 내게 고마움을 전하는 아저씨의 모습에.

나는 괜히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빨대를 쪽쪽 거리며 딴청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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