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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74화 (74/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74화

27. 다시 일상으로(3)

“흐흥. 흐흥.”

오성 길드의 서율희는 균열 제거를 끝내고 전리품을 확인하고 정리하던 도중.

균숙자네 퓨이 채널에서 들었던 콧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일에 집중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티아의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마 일하는 도중이 아니었다면 퓨이의 움직임처럼 어깨를 들썩거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노래를 따라부르는 서율희의 표정은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다.

“저……. 조장님?”

-흠칫!

콧노래를 순간적으로 멈추고 몸을 돌려 자신을 부른 사람을 쳐다봤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 여자 조원이 약간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서율희는 표정을 평소처럼 하고 여자 조원에게 평범하게 말을 건넸다.

“수확한 전리품이랑 조원들 점검 상태 끝나서요.”

여자 조원은 엄청 긴장한 표정과 몸짓으로 서율희에게 서류를 들이밀었다.

서율희는 담담한 표정으로 서류를 받아들고 곧바로 확인에 들어갔다. 여자 조원은 그 모습을 보면서 더욱 긴장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단순한 전리품 확인과 조원들의 상태를 점검한 서류를 전한 것뿐인데, 마치 선생님에게 혼나는 여학생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약간 애처로울 정도였다.

균열에서 서율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괴물들을 상대할 때는 한 치의 물러섬도 보이지 않는 신입 조원인데.

서율희 앞에만 서면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부조장인 윤동현이나 다른 조원들과는 굉장히 편안하게 잘 지내는데 유독 서율희에게만 그런 태도를 보여줬다.

아무래도 서율희가 일하는 중에 조원들에게 보이는 조금 냉정하고 위압적인 태도 때문에 어려워하는 듯했다.

그런 모습이 내심 안쓰럽다고 생각했지만, 일하는 태도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

신입 여자 조원이 건넨 서류를 꼼꼼히 확인한 서율희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확인 사인을 남겼다.

“수고했어요.”

“…….”

다시 서류를 건네받은 신입 여자 조원.

평소 같았으면 짧은 인사만 남기고 후다닥 도망가듯 자리를 피했을 텐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서류를 품에 안은 채 우물쭈물 자리를 지켰다.

살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달싹거렸다.

평소와는 다른 조원의 모습에 서율희가 이상함을 느끼고 먼저 말을 꺼냈다.

“혹시 할 말 있으세요?”

서율희의 질문에 신입 조원이 화들짝 놀라더니 한동안 말을 어버버거렸다.

잠시 후. 신입 조원이 진정하고.

조금 더 침착해진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그…… 혹시. 아까 흥얼거리신 노래. 너튜브에서 들으신 건가요?”

-움찔.

이번에는 질문을 받은 서율희가 눈에 띄게 몸을 움찔거리며 눈을 굴렸다.

무의식중에 흥얼거린 콧노래를 가까이 다가왔던 신입 조원이 듣게 된 것.

내심 크게 당황한 서율희는 평소에 단련된 표정 관리 능력으로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제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나요?”

“잘못 들었다면 죄송합니다.”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듯이 고개까지 숙이며 사죄하는 신입 조원.

그 모습에 뭔가 죄악감을 느낀 서율희가 슬쩍 말을 흐렸다.

“아마 너튜브에서 우연히 본 영상의 노래를 따라 했나 보네요. 확실하지는 않은데…….”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새롭게 올라온 티아의 콧노래 영상은 벌써 백 번 가까이 돌려봤고. 음원까지 추출해 휴대폰에 넣어 알람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 귀여운 슬라임이랑 공주님이 나오는 영상 아닌가요?”

신입 조원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으응. 맞는 것 같은데?”

“역시. 조장님도 보셨네요. 그 슬라임이랑 공주님 너무 귀엽지 않아요?”

신입 조원은 서율희를 향해 한 발짝 다가오며 눈을 반짝였다.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었던 그녀의 적극적인 모습에 서율희는 살짝 당황한 기색을 내보였다.

“이 공주님이 티아 공주님이고. 귀여운 슬라임이 퓨이에요. 퓨이는 주인 말도 알아듣고, 글도 쓸 줄 알아요. 정말 대단하죠?”

“슬라임이 글 쓰는 영상은 나도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어머. 정말요?”

서율희가 슬쩍 아는 척을 하자, 신입 조원은 더욱 신나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180도 변한 그녀의 모습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점차 서율희도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점점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한 번 물길이 나자 쉴 새 없이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두 여자의 수다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조장님?”

그때. 부조장 윤동현이 다가와 서율희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확인 다 안 끝내셨어요?”

그의 물음에 서율희는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금방 끝날게. 잠시만.”

신입 조원 때문에 잠시 해야 할 일을 망각하고 수다를 떨던 서율희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신입 조원이 다시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일을 방해해서.”

서율희는 확인하던 서류에 잠시 눈을 떼고, 신입 조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시간 나면 또 이야기해요.”

미소까지 살짝 곁들인 부드러운 말투에 신입 조원은 감격한 표정으로 짓더니 크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윤동현은 떠나가는 신입 조원을 바라보며 신기한 듯 물었다.

“아니. 언제 이렇게 친해지셨어요? 오늘 아침만 해도 제대로 대화도 못 했는데.”

서율희는 서류에 눈을 떼지 않고 살짝 입꼬리만 올려 보였다.

처음으로 ‘균숙자네 퓨이’ 채널을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다.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는 말은 전혀 빈말이 아니었다.

“아! 내일 회의 있으신 거 아시죠?”

“나는 휴식일이라 안 나가도 되잖아.”

“부길드장님이 조장님도 나오라고 하셨다는데.”

“아아! 진짜 그 아저씨가.”

균열 제거 작업을 끝낸 다음 조원 전원에게 부여되는 휴식일.

조장인 서율희 역시 휴식일을 가지고, 보통은 회의도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길드장이나, 부길드장이 부르면 휴식일에도 조장이라는 직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길드에 출근해야 한다.

집에서 종일 ‘균숙자네 퓨이’ 채널 영상을 돌려보며 뒹굴뒹굴할 계획이 틀어지자, 서율희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눈썹을 찌푸렸다.

“너도 내일 나와.”

“네에?! 저는 왜요?”

“저번에 내가 시킨 자료 조사 아직 못 끝냈지? 내일 출근해서 그거 끝내.”

“그거 집에서 하면 안 돼요? 새로 구매한 게임 타이틀이 쌓여 있는데.”

“…….”

“아. 누나 한 번만 봐줘요. 다음에 다 끝내놓을 테니까.”

윤동현은 사적인 사리에서만 사용하는 누나 호칭까지 사용하며 애원했지만.

“쓰으읍!”

서율희가 눈을 번뜩이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자 윤동현은 풀죽은 표정으로 어깨를 내렸다.

“알았어요.”

그는 평소에 부지런히 일을 끝내놓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며 자리를 떠나갔다.

서율희는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가 못다 한 일을 마무리했다.

* * *

티아와 퓨이가 출현한 콧노래 영상은 최단기간에 채널 최고 조회수 기록을 갈아치웠다.

거기다 콧노래 영상으로 수많은 구독자의 유입과 모든 영상의 전체적인 조회수가 한 단계 상승하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원래 목적이었던 새로운 민트 초코 제품의 홍보 역시 대박을 터뜨렸다.

수많은 콧노래 영상을 본 사람들이 너도나도 신제품을 먹어보고 인증과 호평을 남겼다.

원래 제품 자체가 충분히 좋은 퀄리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런 센세이션이라 부를만한 상황에 1등 공신은 당연히 티아와 퓨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처음에 회사에서 예상했던 제품 판매량을 몇 배나 뛰어넘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 광고를 기획했던 부서의 부장님이 직접 연락을 해와 너무나 정중하게 감사한 뜻을 전했다.

연락한 부장은 말만으로 멈추지 않고.

원래 계약했던 광고 출연료보다 몇 배 많은 금액을 입금해 주었고, 회사에서 생산하는 모든 종류의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박스 단위로 선물을 해줬다.

그리고 앞으로 다른 신제품 광고나 회사 광고에 꼭 연락을 드리겠다며 정중하게 말을 남겼다.

아이들은 산처럼 쌓인 과자, 아이스크림 박스들을 보며 미소 지었고, 나는 두둑해진 통장 나머지를 보며 행복해했다.

물론 모두가 행복해진 건 아니었다.

-형. 티아 공주님 아직도 화났어요?

“응. 아직도 너 혼내줄 거라고 벼르고 있어.”

-어떻게 좀 해줘요. 형도 이번에 꽤 짭짤하게 벌었잖아요.

“그러게 왜 허락도 안 받고 영상을 올려서.”

오연우의 애절한 부탁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돌렸다.

티아가 부르는 콧노래 영상은 원래 촬영 분량과 상관없이 찍힌 부분이었고.

오연우가 짧게 편집해서 올린 영상이었는데.

그 영상을 처음 확인한 티아는 굉장히 화를 냈다.

이유는 카메라를 신경 쓰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먹느라, 입가에 약간 지저분하게 아이스크림이 묻은 영상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줬다는 것.

“으앙! 어떻게 해. 공주가 지저분하게 먹는다고 사람들이 놀릴 거야.”

“괜찮아. 티아야. 사람들 전부 귀엽데. 봐봐. 댓글도 전부 칭찬뿐이야.”

“그치만. 공주로서 품위가…….”

티아는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다며 내 품에 안겨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는 그런 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몇 번이고 괜찮다며 달래주었다.

“씨이. 그 녀석 나중에 혼내줄 거야.”

“…….”

“세진도 그 녀석, 같이 혼내줄 거지?”

나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다음에 오면 따끔하게 혼내줄게. 그러니까 티아는 너무 걱정하지 마. 알았지?”

“응. 세진만 믿고 있을게.”

티아는 다시 한번 내 품에 안겼다.

나는 그런 티아를 다독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다. 연우야. 대신 좀 더 챙겨줄게.”

자칫 잘못했으면 묻힐뻔한 콧노래 영상을 찾아낸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오연우.

콧노래 영상으로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지만, 정작 본인은 귀여운 공주님에 의해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 * *

“후모!”

티아와 퓨이의 콧노래 영상으로 잠시 떠들썩해진 사이.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해나가던 모렛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내 앞에 나섰다.

“완성했어?”

“후모! 후모!”

모렛은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나와 퓨이 그리고 티아까지 모렛을 따라 새로 생긴 균열 입구로 향했다.

입구를 통과하자 모렛이 며칠간 쉬지 않고 만들어 낸 작업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퓨이.”

나무를 주재료로 만들어진 작업실.

안으로 들어서자 작업을 위한 공간, 여러 가지 재료들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 또 다른 시설을 위해 비워둔 것 같은 남겨진 공간까지.

아담하지만 깔끔한 작업실의 모습에 자연스레 감탄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저런 작은 몸으로 이런 건축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아르키트 왕국의 기술력에 속으로 감탄했다.

“너무 잘 만들었다. 고마워. 모렛!”

“후모!”

내가 칭찬과 함께 고마움을 표하자. 모렛은 가슴을 쫙 펴 보이며 뿌듯해했다.

작업실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와중에 알람이 눈앞에 떠올랐다.

[‘작업실 Lv.1’에서 ‘나무 톱니바퀴’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작업실 Lv.1’에서 ‘고철 톱니바퀴’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작업실 Lv.1’에서 Anna(부여) 문양의 힘의 효율이 상승합니다.]

[‘작업실’의 레벨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물품과 더 큰 효과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눈앞에 떠오르는 알람들을 확인하며 놀랐다.

내 각성 능력을 사용하는데, 주로 사용되는 톱니바퀴를 직접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은 굉장한 발견이었다.

거기다 엄청난 아이템 업그레이드 능력을 보여주었던 Anna(부여) 문양의 힘.

이제는 작업실의 효과로 더 많은 효율을 얻게 되었다.

‘나무, 고철 톱니바퀴도 만들어 낼 수 있고, Anna(부여) 문양의 힘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나는 작업실을 건설을 통해 얻게 된 새로운 가능성을 계산하며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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