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73화 (73/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73화

27. 다시 일상으로(2)

꽤 유명한 제과 회사에서 신제품으로 만들어 낸 새로운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 제품.

바로 그 신제품의 광고 제의가 ‘균숙자네 퓨이’ 채널에 들어온 것이다.

굉장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유명 제과 회사에서 직접 광고 제의를 받을 줄이야.

물론 우리의 단독 출현은 아니었다.

다른 연예인이나 너튜버, 유명인들이 많이 출현하고. 광고 영상 중에 짧은 몇 초 정도 우리가 출현할 예정이었다.

거기다 TV가 아니라 너튜브에 올라갈 광고 영상이라, 짧고 가벼운 영상으로 제작 컨셉이 잡혔다고 한다.

아직 계약이 끝나지 않았지만, 광고 출연료도 꽤 짭짤하게 챙길 수 있을 듯했다.

나는 큰 고민을 하지 않고 광고 출연 제의를 받아들였다.

* * *

“우와!”

“퓨우우.”

균열에 아이스박스로 잘 포장된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이 도착했다.

광고에 사용하기 위한 제품들이었는데 양이 엄청 많았다.

“이거 너무 많이 보낸 것 아닌가?”

“영상 찍는데 먹고 남으면 나머지는 선물이래요.”

“정말?”

선물이라는 말에 티아가 눈을 반짝 빛냈다.

“네. 공주님.”

“히히. 너무 좋다. 그치? 퓨이야.”

“퓨이!”

쌓여 있는 아이스크림들을 보기만 해도 행복한지 티아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럼 영상 촬영 시작할게요.”

“근데. 평소처럼 찍으면 되는 거야? 뭐. 광고 같은 거 찍을 때 스튜디오도 빌리고 그러던데.”

평소에 우리가 영상을 찍는 휑한 균열 내부를 불안한 듯 둘러보며 오연우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광고 영상 컨셉 자체가 여러 너튜버, 유명인들의 생생한 리뷰 형식으로 만들어지는 거라. 오히려 회사 쪽에서 평소처럼 찍어주면 된다고 주문했어요.”

“아. 그렇구나.”

“저만 믿고 촬영에는 신경 쓰지 마세요. 형은 연기에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나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안심할 수 있었다.

‘평소처럼만 한다면야.’

하지만 그건 꽤나 큰 오산이었다.

영상은 총 3개의 단계로 촬영할 예정이었는데.

첫 번째는 포장지를 뜯고 살펴보며 기대하는 장면.

두 번째는 맛을 보고 놀라는 장면.

세 번째는 개인적인 감상을 남기는 장면.

광고를 기획한 회사 쪽에서 리얼한 제품 리뷰 느낌을 주기 위해.

너무 과장된 행동을 하기보다는 평범하게 맛을 보는 느낌으로 영상을 찍어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광고 영상에 나오는 출연자는 나, 티아, 퓨이.

이렇게 셋.

오연우는 촬영 영상을 확인하며 곧바로 디렉팅을 해줄 계획이었다.

“그럼 첫 번째 영상 찍어볼게요.”

셋은 각자 하나씩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었다.

포장지는 민트 특유의 색깔로 덮여 있었고, 민트 초코의 상큼한 분위기를 잘 살린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의 포장을 뜯어내자 민트 특유의 향과 함께 아이스크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퓨우우.”

퓨이와 티아는 기대감, 설레임, 호기심이 적절하게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아이스크림을 바라봤다.

“…….”

문제는 나였다.

가면을 쓰고 있는데도 어색한 표정 연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마 가면을 벗고 있었다면 도저히 연기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형만 다시 찍을게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알았어.”

몇 번의 재촬영 뒤에 오연우는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첫 번째 단계의 촬영부터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자. 이번에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고 자연스럽게 표정 짓는 장면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티아가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흐음!”

티아는 아이스크림을 먹자마자,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로 넘칠 듯한 행복한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도 표정이 풍부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는 티아.

기다렸던 아이스크림을 먹음과 동시에 모든 감정을 터뜨리는 모습이 보는 사람도 행복에 젖어 들 정도였다.

애초에 연기라기보다는 평소에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이 그대로 나온 것 같았지만, 오연우는 티아의 연기에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음은 퓨이의 차례.

퓨이는 꼬리로 아이스크림을 입가에 가져가 앙! 베어 물었다.

“퓨이!”

티아만큼 폭발적인 감정의 표출은 없었지만, 퓨이 나름대로 담백하게 행복한 감정을 표현하였다.

아마 온 세상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슬라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표정과 행동이었다.

터져나오는 감정 표현은 티아가 훨씬 압도적이었지만, 퓨이의 담백한 연기도 훨씬 자연스럽고 보기 좋았다.

이번에도 오연우는 만족감을 표하며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다음은 문제의 내 차례.

나는 마음을 굳게 먹으며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자연스럽게. 그냥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수없이 마음속으로 외치며 대사를 내뱉었다.

“와! 정. 말. 맛. 있. 다.”

“그만!!”

지켜보던 오연우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촬영을 중지시켰다.

“아니. 형! 일부러 그러시는 거예요?”

“……많이 이상해?”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회사에서 고소할지도 몰라요.”

“…….”

나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떻게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는데도 이렇게 어색할 수가 있지?”

오연우는 방금 영상을 돌려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민망해진 내가 슬쩍 시선을 돌려 아이들 쪽을 바라봤다.

나를 바라보는 티아와 퓨이의 표정은 마치

-이 쉬운 걸 왜 못하는 거지?

라는 표정이었다.

재능 없는 자의 서러움을 느끼며 나는 좌절했다.

“형. 다시 갈게요.”

촬영이 다시 진행되고.

나의 고통의 시간은 계속되었다.

민트 초코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대충 먹어 넘기고 맛있는 척 연기하면 될 줄 알았는데.

생생히 느껴지는 민트 초코 맛에 정신이 혼미한 데다가, 연기의 부담감까지 이중고로 느껴지는 상황에 부닥치자.

평소 같은 모습은커녕 괴상망측한 표정과 말투가 흘러나왔다.

“아…….”

“미안하다. 연우야. 너무 연기가 기계 같지?”

“형.”

“……?”

“요즘에는 인공지능이 발달해서 기계도 이 정도로 어색하게 연기 안 해요.”

“…….”

오연우는 나에게 가차 없이 팩트폭력을 날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통스러웠지만 촬영은 계속되었고. 수많은 재도전 끝에 그나마 사람처럼 말한 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물론 사람처럼 찍혔다는 뜻이지 잘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 엄청난 심력을 낭비했지만 마지막 3번째 촬영이 남았다.

“너무 좋았어요. 민트 향도 생생하고, 초코칩도 맛있었어요.”

“퓨이!”

티아와 퓨이는 역시 자연스럽고 깔끔하게 통과.

나는 정말 짧은 대사와 장면을 40분이 넘도록 촬영해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우욱!”

나는 극도의 긴장감과 민트 초코에 의한 스트레스로 구역질이 올라왔고, 입을 가린 채 화장실로 뛰어갔다.

“형? 괜찮아요.”

오연우는 촬영 장비는 그대로 남겨둔 채, 걱정스러운 물음과 함께 나를 뒤따라 왔다.

그렇게 나에게 연기에 대한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기고 광고 영상 촬영은 종료되었다.

* * *

오연우는 촬영한 광고 영상을 편집하는 중이었다.

-정.말 맛. 있.어.요.

전세진의 파괴적인 연기실력은 다시 봐도 소름 돋을 정도였다.

오연우는 전세진의 파괴적인 연기가 티아나, 퓨이의 연기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영상을 편집했다.

워낙 티아와 퓨이의 연기가 너무 귀엽고 좋아서, 다행히도 전세진의 어색한 연기가 조금 묻히는 기분이 들었다.

따로 자막을 넣거나, 긴 영상 편집이 아니라 짧게 작업을 끝냈다.

나머지는 편집된 영상을 광고를 의뢰했던 제작팀에 보내주기만 하면 된다.

전해 받은 주소로 편집된 영상을 보낸 오연우는 기지개를 켜며 작업으로 굳었던 몸을 풀었다.

작업을 끝냈다는 성취감을 느끼며 휴식을 위해 영상 정리를 시작하려 하는데.

“응?”

영상 뒤쪽에 촬영했던 부분 이외에 영상이 더 남아 있었다.

‘이건 언제 찍은 거지?’

촬영했던 상황을 돌이켜 생각하던 그는, 구역질하며 뛰쳐나가던 전세진을 뒤쫓았던 상황을 기억해 냈다.

아마 급하게 뛰쳐나가느라 계속 촬영이 되는 줄 몰랐던 것 같다.

길지 않은 영상의 길이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남은 뒷부분의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의 시작은 뛰쳐나가는 전세진과 뒤따르는 오연우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티아와 퓨이는 고개를 돌려 새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꺼내와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흐흥♪ 흐흥♩

티아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잠시 후 티아는 콧노래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맛있어요. 민트 초코♩ 너무 좋아. 아이스크림♪

약간 유치한 가사에 단순한 멜로디였지만.

티아의 맑고 고운 목소리와 단순하지만 중독적인 멜로디가 어우러져 귀에 쏙쏙 박히는 노래가 되었다.

거기다 노래를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티아의 행복한 감정이 듣는 오연우마저 미소 짓게 했다.

옆에 있던 퓨이는 티아의 노래 리듬에 맞춰 몸을 둥실거렸다.

부드럽고 말캉거리는 퓨이가 노래 리듬에 따라 흔들릴 때마다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1분이 겨우 넘는 영상 재생이 끝나고.

오연우는 뭔가에 홀린 듯, 다시 영상을 처음부터 재생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티아의 아름다운 노래 실력과 귀여운 퓨이의 몸짓을 감상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퓨이의 몸짓을 따라 어깨를 들썩거렸다.

“허억!”

정신을 되찾은 오연우가 기함을 터뜨리며 영상이 재생되는 모니터 앞에서 떨어졌다.

엄청난 중독성…….

오연우가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1시간 가까이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1분 남짓한 영상을 벌써 수십 번이나 재생해버린 것.

그는 떨리는 손으로 영상의 뒷부분을 따로 편집해 짧은 영상으로 만들었다.

앞부분의 전세진과 오연우가 뛰쳐나가는 부분만 대충 편집해 완성된 티아와 퓨이의 콧노래 영상.

정말 우연한 기회로 만들어졌지만 어떠한 편집도 필요 없이 완벽한 영상을 보며 오연우는 잠시 고민했다.

‘이 영상을 올려도 되는 걸까?’

너튜브의 수많은 중독적인 영상을 접해왔던 오연우였지만, 자신의 눈앞의 영상은 그중에서도 최고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영상이었다.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억지스럽거나 과장되지 않은, 마치 순수한 마약.

한동안 고민하던 오연우는 조심스럽게 ‘균숙자네 퓨이’ 채널에 그 영상을 업로드했다.

* * *

유명 제과 회사에서 야심 차게 내놓은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 너튜브 광고가 공개되었다.

워낙 호불호가 강한 제품인지라 광고에 대한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너튜버, 유명 연예인이 많이 등장한 만큼 꽤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하지만.

너튜브에서 새로운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과 함께 화제의 중심에 떠오른 존재는 따로 있었으니.

-미친! 이 영상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계속 흥얼거리다가 친구한테 욕먹음. 그래서 친구한테 영상 보내주니까 그놈도 같이 흥얼거림 ㅋㅋㅋ

-으아아. 편집자님! 현기증 나니까 빨리 1시간 반복재생 영상 올려주세요.

-나는 민트 초코 혐오하는 사람인데 이 영상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가치관의 혼란이 와버렸다. 무서운 노래…….

-노래 듣고 편의점에서 나도 모르게 저 아이스크림 사버렸다. 존맛!!

일명 ‘민트 초코 콧노래 영상’이라 불리며 티아와 퓨이의 콧노래 영상이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민트 초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 노래에 열광했고, 민트 초코를 싫어하는 사람들마저

-노래는 좋네.

라는 반응을 보이며 영상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많은 너튜버와 연예인이 출현한 광고보다

티아와 퓨이의 영상이 엄청난 영향력을 보이며 전무후무한 광고효과를 올리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