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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71화 (71/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71화

26. 어둠의 손길(5)

뚱뚱한 남자가 눈을 부여잡고 질러대는 비명에 날렵한 남자가 상황을 눈치채고 달려왔다.

능력을 사용했는지 엄청난 속도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임 경사가 쇄도하는 날렵한 남자 앞을 가로막았다.

-퍽!

마치 인간 탄환처럼 몸을 부딪쳐왔고, 살이 터지는 충돌음이 퍼졌다.

임 경사는 붉은 기운의 영향인지 엄청난 충돌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흐아앗!”

그와 동시에 잠시 주춤한 적을 그 자리에서 땅바닥에 메다꽂았다.

“크어억!”

땅바닥에 대자로 뻗은 남자는 고통스러운 울음과 함께 온몸을 부들거렸다.

제압을 완료한 임 경사가 내게 소리쳤다.

“세진 씨. 권총!”

그의 외침을 듣고 황급히 뚱뚱한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손에는 아직 임 경사가 가져온 권총이 들려 있었다.

내가 권총을 빼앗기 위해 접근하려 하자 뚱뚱한 남성 주위로 불길을 치솟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가까이 오지 마!”

“으윽.”

엄청난 열기에 나는 다시 걸음을 뒤로 물러야 했다.

그는 아까 빛 폭발의 영향으로 아직 눈이 보이지 않는지, 눈을 감은 채 양팔을 허우적거렸다.

도저히 접근하기 힘든 상황.

임 경사는 이미 긴 머리 남자를 향해 뛰어가는 중이었다.

“흐으. 이 자식!”

비척비척 몸을 일으킨 뚱뚱한 남자는 고통에 침을 질질 흘렸고. 초점 없는 눈동자는 나를 찾는 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어느 정도 눈을 회복했는지 내 쪽을 바라보며 실실 웃기 시작했다.

“거기 있었구나. 흐흐.”

뚱뚱한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들어 나를 겨눴다. 총구가 내 쪽을 향하는 순간 마법처럼 몸이 얼어버렸다.

권총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탕!!

벼락같은 권총 소리가 건물 안에 울려 퍼지고.

“…….”

나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뭐야? 공포탄인가?”

다행히 첫발은 공포탄이었다.

하지만 뚱뚱한 남자는 다시 내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그때.

-쐐애액!

날카로운 무언가가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날아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는 권총을 들고 있던 손을 꿰뚫어 버렸다.

“끄아악!”

뚱뚱한 남자는 다시 한번 목이 터질 듯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들고 있던 권총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재빨리 땅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훨씬 묵직한 권총의 무게감을 느끼며, 총구를 뚱뚱한 남자에게 겨눴다.

“이제 밤도 늦었는데, 그만 돌아가시죠.”

“…….”

조윤학은 타이르듯 팀장에게 말했다.

상부에서도 철수 명령이 떨어진 상황에서 팀장은 더 버티고 있기 힘들다 생각했다.

“팀장님. 그냥 철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팀원들도 철수를 바라는 눈치였다.

딱 한 명.

최진철만 무조건 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버티고 있는 건 의미 없다.’

팀장이 체념한 듯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순간.

-탕!

안쪽 건물에서 총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선명하게 들려온 총소리에 팀장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팀장님. 총소리입니다. 들으셨죠?”

“아아. 나도 들었다.”

조윤학은 다급해진 표정으로 팀장에게 변명했다.

“이건 총소리가 아니라 공장에서 나는…….”

“죄송합니다. 사장님. 이 소리는 저한테 워낙 익숙한 소리라 설명 안 해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망설임은 전부 날려버린 팀장이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퇴로를 차단하는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돌입한다.”

“상부에서는 철수하라고…….”

“새꺄! 현장에 나왔으면 현장 지휘자 말에 먼저 따라.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팀장의 불같은 호령에 진압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진철도 진압팀을 뒤따라 움직였고, 이 상황을 지켜보는 조윤학의 표정이 점점 썩어들어갔다.

* * *

긴 머리 남자는 주변의 무거운 물건들을 가볍게 공중에 띄워 임 경사를 향해 날려 보냈다.

-휘이익.

-꽝!!

임 경사도 붉은 기운을 팔과 주먹에 집중시키며 공격을 막아냈다.

“임 형사님. 실력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

긴 머리 남자는 잘못 맞으면 바로 즉사할 만한 무거운 기계 부품들을 던지면서, 마치 친구와 장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반면, 임 경사는 남자의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투에 집중했다.

즐거운 듯 웃고 있던 남자의 표정이 잠시 무표정하게 변하더니, 다시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네요.”

작별 인사를 건네려는 남자에게 임 경사가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다가섰다.

“넌 아무 데도 못 간다.”

더욱 짙어진 붉은 기운이 주먹을 따라 긴 머리 남자에게 닿으려는 순간.

-꽈앙!

거의 작은 집채만 한 공장 기계가 가볍게 날아와 임 경사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 주변 물건들이 날아와 임 경사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이런.”

물건들의 방해에 임 경사가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긴 머리 남자는 공장의 창문을 깨부수고 유유히 건물을 빠져나갔다.

-쿵.

-털썩.

남자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던 물건들이 모두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임 경사는 남자가 빠져나간 창문을 허탈하게 바라봤다.

잠시 후.

“경찰이다!”

“모두 그 자리에 멈춰!”

한발 늦게 진압반이 건물로 뛰어들었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된 후였다.

* * *

임 경사에게 제압된 날렵한 남자와 불을 내뿜던 뚱뚱한 남자가 손을 심하게 다친 채 체포되었다.

임 경사와 전투하다 도망친 긴 머리 남자는 결국 잡지 못했다.

조윤학이 기를 쓰고 올라가지 못하게 했던 건물 2층에는 날렵한 남자가 훔쳤던 가방과 화재로 없어진 줄 알았던 신지아의 연구 자료와 노트북이 있었다.

신지아는 연구 자료들을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지만, 증거물이었기 때문에 아쉽게도 경찰 손에 맡겨야만 했다.

조윤학은 각성자 3인방과의 관계를 끝까지 부인했지만 결국 경찰에게 끌려가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경찰차에 올라타는 조윤학의 모습을 보며, 신지아는 기뻐하거나 시원해하는 표정보다는 씁쓸해하는 듯했다.

* * *

며칠이 지나고.

조윤학이 벌였던 일들은 모든 혐의가 인정되어 죄를 면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의 아들이었던 조성훈도 공범으로 의심받아 조사를 받았지만, 죄가 인정되지 않아 풀려났다.

현장에서 잡힌 뚱뚱한 남자와 날렵한 남자는 공방의 화재 사건에 관련돼 있음이 밝혀졌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무고한 사람들에게도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조사 중에 추가로 발견되어 큰 이슈가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자 경찰은 당황스러워졌다.

공방 화재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보여줬던 경찰의 소극적인 수사 방식이 자연스럽게 논란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대 범죄 조직과 경찰의 보이지 않는 끈이 존재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 섞인 질타가 쏟아져 나왔고.

사건의 담당자와 경찰청장까지 나와 미숙한 사건처리에 대해 사과하면서, 의혹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인했다.

하지만 사과하는 태도와 달리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의 가벼운 징계 처리만 하고, 흐지부지 해당 사건의 논란을 덮어버렸다.

신지아는 이 사건으로 다시 한번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원래도 아티팩트 경연대회에 우승하면서 꽤 많은 유명세를 누리고 있었지만, 이번 사건 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 건 아니었다.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줬던 임 경사의 징계가 논의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어이가 없지만, 막아서던 경비원을 힘으로 제압한 사실과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한 점을 문제 삼았다.

나와 신지아를 포함해 최진철, 그날 출동했던 팀장까지 많은 사람이 나서 징계가 타당하지 않음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사자인 임 경사는 오히려 우리를 다독이며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임 경사는 잘못을 책임진다는 이유와 함께 경찰 배지를 반납하고 사표를 제출했다.

사복 차림으로 홀가분한 표정을 한 채 걸어 나오는 임 경사. 그의 옆에는 최진철이 눈물을 글썽이며 따라왔다.

“선배님.”

“덩치는 나보다 더 큰놈이. 징그럽다 이 녀석아.”

임 경사의 장난스러운 농담에도 최진철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나와 신지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본 임 경사는 일부러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왜 그렇게 죽을상을 하고 계십니까?”

“죄송합니다. 임 경사님. 우리 때문에…….”

“경찰도 나름 마음에 드는 일이었지만,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다른 일도 한 번 경험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

“그리고 세진 씨의 부탁을 받아 한 일이지만 전부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겁니다. 절대 후회는 없습니다.”

그의 눈동자에는 작은 흔들림도 없이 굳은 신념으로 가득했다.

이런 사람이 오히려 경찰을 그만둬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옆에 있던 신지아도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정말 고마워요. 임 경사님.”

“그런데 저 이제 경찰이 아닙니다만?”

“아…… 그렇네요. 그러면 진혁 씨?”

“그 호칭은 조금 딱딱한 것 같네요.”

“그럼 진혁 오빠?”

살짝 애교가 섞인 신지아의 귀여운 호칭에 순간 내가 멍해졌다.

“하하. 마음에 듭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불러주세요.”

임 경사…… 아니, 임진혁은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선배님. 이제 뭐 하실 겁니까?”

“글쎄다. 당분간은 잠시 여행이라도 하면서 쉴 생각이야.”

“여행이요?”

“그래. 해외로 나가보고 싶어. 다시 일 구하면 못 다닐 테니까 지금 해둬야지.”

여행 이야기를 하며 설레는 표정을 짓는 임진혁에게는 아쉬움이나 어두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 * *

“퓨이야. 잘 있어.”

“퓨이…….”

신지아는 퓨이를 꼬옥 안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품에 안긴 퓨이는 아쉽다는 듯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돼?”

“…….”

살짝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티아의 칭얼거림에 신지아는 웃으며 대답했다.

“자주 놀러 올게. 티아야.”

“히잉…….”

티아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신지아는 그런 티아가 안쓰러운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모렛도 잘 있어.”

“후모!”

모렛은 담담하게 그녀의 작별 인사를 받았다.

“짐 들어드릴게요.”

“고마워요. 세진 씨.”

텐트에 같이 얼마 지내지 않은 것 같은데, 그녀의 짐이 꽤 많았다. 나는 그중에 가장 무거운 가방을 들어 올리며 균열 입구로 향했다.

“퓨이!”

“꼭 놀러 와야 해!”

“후모!”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균열 입구를 나섰다.

그녀와 함께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고,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놨다.

신지아는 짧았던 균열에서의 동거를 끝내고 새로운 집으로 가게 되었다.

미래 그룹이 지원하는 집이었는데, 그녀가 잠시 일하게 될 직장과 가까운 집이었다.

점점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아쉬움에 나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냥 여기서 계속 지내면 안 돼요?”

“안 돼요.”

“…….”

그녀의 칼 같은 대답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세진 씨랑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안 돼요. 계속 거기 있으면 그냥 주저앉아 버릴 것 같거든요.”

“…….”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요. 불타버린 혜윰 공방을 다시 지으려면 미래 그룹에 잠시 일하면서 많이 배워야 할 거예요.”

신지아는 당당하면서 꿈이 넘치는 표정으로 내게 선언하듯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미래 그룹의 바닥까지 털어먹고 돌아와서 최고로 멋진 아티팩트 만들어 줄 테니까요.”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 멋있게 보였다.

-우우웅.

우리 옆으로 차 한 대가 멈춰 서고, 운전자가 내리더니 신지아와 나에게 인사했다.

“모시러 왔습니다.”

운전자는 곧바로 신지아의 짐을 차곡차곡 트렁크 안에 실었다.

이제 곧 떠날 시간.

멀리 해외로 가는 것도 아닌데, 그냥 원래대로 조금 떨어져 살게 된 것뿐인데.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 진짜 갈게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지아 씨도 잘 지내요.”

“…….”

그녀는 얼굴을 가까이해 귓가에 뭔가를 속삭이고 차량에 올라탔다.

멍해져 있는 나를 뒷좌석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신지아는 점차 멀어져갔다.

귓가에 속삭였던 신지아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나 말고 다른 여자 텐트에서 재우면 큰일 날 줄 알아요. 나중에 애들한테 다 물어볼 거니까.

뭔가 귀여우면서도 기분 좋은 그녀의 협박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 *

“임진혁 씨.”

자신을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에 임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여자의 얼굴에 임진혁이 살짝 경계하며 물었다.

“누구시죠?”

“잠시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누군지 말도 안 해주고 무슨 이야기를 나눕니까. 가보겠습니다.”

수상한 그녀의 행동에 임진혁이 가볍게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긴 머리에 염동력을 사용하는 남자. 그 남자에 대해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뚝.

임진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더욱 경계하며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야?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듣고 싶으시다면 저를 따라오시죠.”

여자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고, 임진혁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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