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70화
26. 어둠의 손길(4)
임 경사의 몸 주변으로 붉은 기운이 강렬하게 솟아올랐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타오르는 붉은 기운은 두 경비원을 휘감았다.
“어엇. 어?”
당황하던 두 경비원은 잠시 고통스러워하더니, 스르륵 기절해 버렸다. 기절한 두 사람을 받아든 임 경사가 그들을 한쪽 구석에 눕혀 두었다.
거침없이 경비원을 제압하는 임 경사의 모습에 나와 신지아, 이신우까지 깜짝 놀랐다.
특히 이신우는 굉장히 불안한 표정으로 임 경사의 행동을 걱정했다.
“이거 괜찮은 겁니까. 임 경사님?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책임은 내가 진다.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단호한 그의 태도에 이신우는 움찔하며 입을 닫았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임 경사는 권총과 테이저건을 확인하며 회사 내부로 진입할 준비를 했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나는 신지아에게 범인의 위치가 표시된 기계를 넘겨받으며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임 경사는 이신우를 보며 말했다.
“너는 이곳에서 지아 씨를 지키고 있다가, 지원 병력이 도착하면 바로 상황 설명하고 바로 투입할 수 있도록 해.”
“알겠습니다.”
이신우는 굉장히 불안해 보였지만 임 경사의 지시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시죠.”
나와 임 경사는 화면에 나타나는 범인의 위치를 따라 회사 내부로 들어갔다.
내가 혹시나 해서 가져온 아티팩트를 만지작거리자 임 경사가 짧게 주의를 시켰다.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아티팩트는 사용하지 마세요. 잘못 사용하면 처벌받으시는 거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건 어떤 상황에서든 처벌받게 된다.
임 경사는 최대한 방어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절대 공격에 사용하지 말라며 당부했다.
나와 임 경사는 모두 퇴근해 어두운 건물들을 지나,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건물 입구에 도착했다.
화면에 보이는 범인의 위치가 눈앞의 건물과 일치했다.
우리는 서로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고 천천히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 내부에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멈춰 있는 기계들만 보일 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임 경사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샅샅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건물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누군가 내려왔다.
“누군데 허락도 없이 이곳까지 들어오시는 겁니까?”
50대 중년 남성이 적대감이 담겨 있는 말투로 우리에게 질문했다.
임 경사는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경찰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이 회사로 숨어들었습니다. 잠시 협조 부탁드립니다.”
“허허. 경찰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일을 처리해도 됩니까?”
“지금 말씀하시는 분은?”
“이 공장의 주인인 조윤학입니다.”
나와 임 경사는 그의 이름을 듣고 눈을 좁혔다.
“높으신 분인데 늦게까지 회사에 계십니다?”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어서 개발자분들과 늦게까지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잠시 2층에 올라가 봐도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2층에는 회사 기밀이 있어서 아무나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조윤학은 어림도 없다는 듯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막고 서서 절대 들여보내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하지만 임 경사는 그의 행동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단 쪽으로 향했다.
이에 조윤학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장 변호사를 부르겠습니다.”
“2층만 잠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분명 경비원에게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이건 엄연한 불법 침입입니다.”
임 경사는 눈을 빛내며 되물었다.
“경비원에게 미리 지시했습니까? 우리가 여기 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 봅니다.”
-움찔.
임 경사의 날카로운 질문에 조윤학이 당황하며 몸을 움찔거렸다.
확신을 얻은 임 경사는 더욱 거침없이 계단 쪽으로 향했고,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우리가 계단 코앞까지 도달했을 때,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거기까지.”
목소리를 따라 뒤를 돌아보자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이 입구에 서 있었다.
“너!”
임 경사는 남자를 알아보고 곧바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갑자기 총을 꺼내 드는 모습에 나는 당황하며 물러났다.
반면, 임 경사에 의해 총이 겨눠진 남성은 오히려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임 경사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입니다. 경찰 제복이 잘 어울리시는군요. 임 형사님. 아니, 이제 형사가 아닌가? 하하하.”
시원하게 웃음까지 터뜨리는 모습에 임 경사는 강하게 외쳤다.
“손들어.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오우. 무섭게 왜 이러실까? 잠시만 기다려요. 임 형사님. 아직 손님이 남았으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 누군가 입구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세진 씨.”
“선배님.”
신지아와 이신우가 양손을 뒤로 포박당한 채 체격이 뚱뚱한 남자에 의해서 끌려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싸해짐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아티팩트를 발동시키려 준비했다.
내 행동을 바라본 머리긴 남자가 웃으며 경고했다.
“임 형사님 뒤쪽에 계신 분? 쓸데없는 짓 하면 안 돼요. 여기 있는 아름다운 여성분이 곤란해집니다.”
그리고 마치 나를 도발하듯 손가락으로 신지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소름 끼친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 임 형사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 아시겠죠? 권총 내려놓으세요.”
“…….”
“옛날 생각나지 않으세요? 그때도 딱 상황이 이랬던 것 같은데.”
“이 개자식이!”
임 경사는 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분노했지만, 권총을 쏘지 못했다.
결국.
그는 권총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 * *
나와 임 경사는 아티팩트와 권총, 테이저건을 뺏기고 신지아와 같이 두 손을 포박당했다.
입에는 소리를 지를 수 없도록 테이프로 막아두었다.
“허튼짓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특수 제작한 수갑이라 각성자라도 쉽게 끊을 수 없거든.”
긴 머리 남자와 함께 들어왔던 뚱뚱한 남자가 친절히 설명까지 해주며 우리를 한곳으로 몰아놨다.
“왜 이렇게 늦게 왔나?”
“딱 맞춰서 왔지 않습니까? 사장님.”
불만 가득한 조윤학의 말에도 긴 머리 남자의 표정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크흠. 그럼 이제 이 자들은 어쩔 생각인가?”
“아. 그게 말이죠. 이 사람들을 처리하려면 계산을 또 따로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인가? 돈은 이미 다 받지 않았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이익! 애초에 자네 부하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 아닌가?”
조윤학은 2층에 숨어 있다가 1층으로 내려온 남자를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추적의 빌미를 마련했던 날렵한 남성은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건 우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장님이 급하게 일을 진행시키는 바람에 준비가 부족했으니까요.”
“끄응.”
조윤학은 침음성을 흘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얼마를 원하는 건가?”
“3배.”
“뭐?!”
“원래 주기로 했던 금액에 3배 주시면 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긴 머리 남성과 조윤학은 돈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고, 날렵한 남자는 그 옆에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포박당한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뚱뚱한 남자는 빼앗은 권총과 아티팩트가 신기한지 집중해 살펴보고 있었다.
슬쩍 옆을 쳐다보니 이신우는 불안감에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고, 신지아는 짐짓 태연한 듯 보이나 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임 경사는 허공에 시선을 둔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절망스러운 상황.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나는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눈을 굴리며 뭔가 방법을 찾아 헤맸다.
지금 가장 답답한 건 두 손을 묶고 있는 수갑.
나는 계속 수갑에 대해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뭔가를 떠올렸다.
-특수 제작한 수갑이라…….
‘혹시?’
나는 잠시 눈치를 살피고 수갑에 정신을 집중했다.
-Sanye(질서)!
질서 문양의 힘으로 수갑에서 아티팩트 회로를 감지해 냈다. 평소에 다루던 아티팩트와 다른 형태의 회로였지만 분명 아티팩트 회로였다.
나는 먼저 내 손에 묶인 수갑의 회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으윽. 생각보다 복잡하다.’
평범한 아티팩트가 아니라, 마법 부여 효과까지 추가된 물건인 것 같았다.
거기다 회로도 굉장히 복잡했다.’
다행히 내 쪽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그사이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 회로를 분석해 나갔다.
잠시 후.
-달칵!
수갑이 풀리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왔다.
이 소리를 눈치챈 임 경사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곧바로 표정을 관리하며 시선을 돌려 모른척했다.
나는 계속 팔을 뒤로한 채, 이번에는 임 경사의 수갑에 손을 올렸다.
그때.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장님. 아무래도 결정을 빨리 내리셔야 할 것 같은데요.”
“…….”
“지원을 요청했던 모양입니다.”
“분명 여기가 맞습니다. 여기에서 진혁 선배님이 지원을 요청한 겁니다.”
“아니. 여기에 그분들은 안 왔다니까요.”
최진철의 말에 경비원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신우의 지원 요청으로 도착한 진압팀의 팀장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분명 지원 요청을 받고 출동했지만.
임진혁과 이신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경찰차도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각성 능력을 사용하는 범인을 있다는 것과 위치만을 전해 받은 상황.
입구를 막은 두 명의 경비원은 그런 사람들 못 봤다고 하지만, 정황상 안쪽으로 진입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증거도 없이 무작정 진압팀을 투입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팀장님.”
“주변에 경찰차 안 보여?”
“없습니다. 무전도 안 받고, 전화도 안 받습니다.”
최진철이 다급히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 분명 선배는 안으로 진입한 겁니다. 선배 성격 알지 않습니까?”
“나도 알아. 그 새끼 빠꾸 없는 성격인 거.”
“이번에도 선배 혼자 남겨두실 겁니까?”
“으으.”
팀장이 고민하는 사이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잠시 심각하게 통화를 하던 그는 얼굴을 굳히며 통화를 종료했다.
“팀장님?”
“철수하란다.”
“네? 철수요? 아니. 범인이 눈앞에 있는데…….”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까 그러지. 아오! 임진혁 이 새끼 진짜.”
팀장이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리며 탄식했다.
* * *
“사장님. 어떻게 하실 건가요? 돈 안 주실 거면 저희는 이대로 가겠습니다.”
바깥의 상황을 살피던 조윤학은 한숨을 내쉬며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알았네. 달라는 대로 줄 테니. 알아서 처리해 주게.”
“감사합니다. 사장님.”
환한 영업 미소를 지은 긴 머리 남자는 조윤학을 입구 쪽으로 데려가며 말했다.
“그럼 사장님은 이제 저 입구에 있는 경찰들을 절대 못 들어오게만 해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시간이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임 경사의 수갑을 푸는 작업을 서둘렀다. 집중하느라 그런 건지, 긴장감 때문에 그런 것인지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뭐야? 너 왜 이렇게 땀을 흘려.”
권총을 가지고 놀던 뚱뚱한 남자가 나를 흘긋 보더니, 이상함을 느꼈는지 나에게로 다가왔다.
‘젠장.’
수갑을 푸는 작업은 거의 막바지.
나는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며 끝까지 작업에 집중했다.
“너 어디 아프냐?”
뚱뚱한 남자는 발로 나를 툭툭 건드리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달칵!
“응?”
가까이 다가왔던 뚱뚱한 남자는 수갑 풀리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뒷걸음질 치는 순간.
나는 아티팩트를 빼앗기기 전 몰래 빼두었던 마정석을 주머니에서 집어 들었다.
그와 동시에 Cala(빛) 문양의 힘을 쑤셔 넣듯이 마정석에 억지로 집어넣었다.
나머지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있던 테이프를 뜯으며 외쳤다.
“눈 감아요!”
“이 새끼.”
수갑이 풀렸다는 걸 인지한 뚱뚱한 남성이 뭔가 행동을 취하려는 사이.
나는 쥐고 있던 마정석을 뚱뚱한 남성 눈앞으로 던졌다.
-파아앗!!
불안정한 마정석이 엄청난 마력의 파동과 함께 폭발하듯 사방으로 빛을 내뿜었다.
“끄아아악!”
미처 눈을 감지 못했던 뚱뚱한 남성은 엄청난 빛의 폭발에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임 경사가 용수철이 튀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붉은 기운을 사방으로 뿌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