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65화
25. 불청객(2)
조성훈의 방문으로 깨져버린 분위기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고, 우리는 평소보다 일찍 일을 마무리했다.
신지아에게 꼭 식사를 챙겨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공방을 빠져나왔다.
골목을 빠져나와 등 뒤에 보이는 낡은 아티팩트 공방을 한번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최근에 아티팩트 개발로 정신없이 보내느라 퓨이와 티아에게 소홀했던 게 생각났다.
살짝 기분도 꿀꿀한데 오늘 저녁에는 맛있는 걸 준비해 아이들과 즐겁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나 왔다.”
균열 입구에 들어서며 일부러 힘차게 외쳤다.
“퓨이?”
가장 먼저 반응한 퓨이가 텐트 입구에 쏙 튀어나오며 입구 쪽을 바라봤다.
퓨이는 입구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반갑게 웃으며 통통 튀어왔다.
“퓨이!”
내 품 안으로 쏙 뛰어드는 퓨이.
익숙한 무게감과 퓨이의 기분 좋은 감촉을 느끼며 집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반겨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행복한 일인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똑같은 행동의 반복인데도, 퓨이가 이렇게 나를 반겨줄 때마다 매번 새롭고 즐거웠다.
“오늘 잘 놀고 있었어?”
“퓨이!”
내 물음에 퓨이는 힘차게 대답했다.
“세진! 오늘은 일찍 왔네?”
뒤이어 티아도 날아와 웃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나서. 자! 얼른 저녁 먹자. 오늘은 맛있는 피자랑 스파게티 사 왔어.”
“와아!”
“퓨이!”
나를 반길 때보다, 피자와 스파게티 이야기에 더 큰 반응을 보이는 녀석들.
아이들에 반응에 피식 웃으며 텐트로 향했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니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털 뭉치가 움찔거렸다.
털 뭉치는 꼼지락거리더니 쑥 몸을 일으켰다.
“후모!”
티아의 권능으로 만든 기계 일꾼.
나는 녀석에게 ‘모렛’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르키트 말로 ‘풍성한 털’이라는 뜻이었다.
몸을 일으킨 모렛은 나에게 다가와 씩씩거리면서 나에게 불만을 표했다.
“후모!”
“응?”
“후모! 후모!!”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듣자 녀석은 더 흥분해서 울음소리를 냈다. 옆에서 같이 이 모습을 지켜보던 티아가 말했다.
“아무래도 아무 일도 안 시켜서 화가 난 것 같아.”
“아니. 일을 안 시켜서 화가 났다고?”
“후모!”
티아 덕분에 어느 정도 말이 통하자, 모렛은 약간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게 따지듯 손을 흔들었다.
아티팩트에 사용할 마정석을 얻기 위해 한동안 열심히 마정석 광산을 찾아 채광했지만.
최근에는 실험에 사용할 충분한 마정석을 확보해 잠시 광산 채광 일은 미뤄두고 있었다.
그래서 고생한 녀석을 조금 쉬게 해준 건데 오히려 나에게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참으로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일을 안 시키고 쉬게 한다고 불만을 표하는 일꾼이라니.
다시 한번 아르키트 왕국의 기술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모렛. 지금은 일거리가 없어. 대신 최대한 빠르게 해야 할 일을 찾아줄 테니까. 잠시만 참아.”
“후모.”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모렛을 달래주었고, 다행히 녀석은 내 말을 이해했는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는 녀석의 복슬복슬한 털을 한번 쓰다듬어주고, 피자와 스파게티의 포장을 풀기 시작했다.
먹을 준비를 끝내자 퓨이와 티아는 능숙하게 피자를 한 조각씩 가져가 먹기 시작했다.
“후모?”
모렛은 커다란 눈을 껌뻑거리며 피자를 신기한 물건 쳐다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직접 피자 한 조각을 집어 녀석의 손에 건네줬다. 잠시 머뭇거리던 녀석은 조심스럽게 피자를 한 입 베어먹었다.
“후모…….”
모렛은 피자의 맛이 괜찮았는지 감탄이 섞인 소리를 내며 나를 바라봤다.
“맛있지? 더 있으니까 많이 먹어.”
“후모!”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남아 있는 피자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퓨이.”
“후모.”
“아아. 배불러.”
피자와 스파게티를 말끔하게 먹어치운 녀석들은 그 자리에 늘어지듯 퍼져버렸다.
모두 포만감으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열심히 노력한 어미 새의 뿌듯한 마음이 느껴졌다.
예전에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 펑펑 사용할 때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피자와 스파게티만으로 이렇게 뿌듯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음이 너무 놀라웠다.
아직 자식이 가져보지는 못했지만, 훗날 내 자식이 태어난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고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식사 뒷정리를 하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 오랜만에 같이 영화나 볼까?”
“영화? 좋아.”
“퓨이!”
“후모?”
* * *
저녁 식사 후.
인터넷으로 아이들과 어린이 애니메이션 영화 한 편을 함께 감상했다.
평소에 영화를 보더라도 액션이 화끈하거나, 화려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를 자주 봤었지만.
최근에는 아이들 때문에 자주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자주 선택하게 됐다.
처음에는 아이들 때문에 억지로 보는 느낌이었는데, 최근에는 생각이 아예 변했다.
분명 어린이 애니메이션이지만 어른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아니. 오히려 어른이기 때문에 더 깊게 생각하거나, 감정을 자극할 만한 장면이 많은 것 같았다.
화면에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을 보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퓨우우…….”
“…….”
“모오…….”
아이들은 어느새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짓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포근한 이불을 깔고 아이들이 깨지 않게 잠자리에 눕혀 주었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의 모습은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고, 평화로워 보였다.
혼자서 그 장면을 마음껏 만끽한 뒤, 나도 자리를 펴고 천천히 몸을 눕혔다.
아이들의 고른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알 수 없는 강렬한 느낌에 눈을 떴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황급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텐트 안은 어둠만 가득했지만, 어두움에 익숙해진 눈에 흐릿하게 잠든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 일 없는 듯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안도했다.
“…….”
강렬했던 기분을 지울 수 없었던 나는 오른손을 더듬어 휴대폰을 찾아 들었다.
시간은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휴대폰에는 어떠한 문자나 전화도 오지 않았다.
평소와 같지 않은 현상에 멍하니 텐트 천장을 바라봤다.
이미 잠기운은 순식간에 달아나버린 상태였다.
할 수 없이 시간을 때울 겸, 휴대폰 화면을 켜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의미 없이 검색어 순위도 눌러보고. 흥미를 끌 만한 연예 기사도 한번 눌러보고.
이것저것 눌러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한 기사 제목이 내 눈길을 끌었다.
-속보. 유명 아티팩트 공방에서 화재!
제목을 확인하자마자. 아까 잠에서 깨게 했던 강렬한 느낌이 다시 살아났다.
떨리는 마음으로 기사 제목을 클릭했다.
-새벽 2시경 오래된 아티팩트 공방에서 화재…….
-깜짝 아티팩트 경연대회 우승으로 유명했던…….
-혜윰 공방…….
“이런 미친…….”
황급히 일어나 입고 있던 옷차림에 외투만 하나 걸치고, 곧바로 균열 입구로 나섰다.
급한 마음에 자연스럽게 걸음은 빨라졌다.
신지아의 휴대폰으로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은 되지 않았다. 점점 더 불안해지는 마음에 입이 바짝 말랐다.
도로로 뛰쳐나와 지나가는 택시에 올라탔다. 공방의 위치를 택시 아저씨에게 알려주며 부탁했다.
“기사 아저씨. 여기로 최대한 빨리 가주세요.”
내 다급한 부탁해 아저씨도 덩달아 심각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는 사람 집에서 불이 났다는데. 연락이 안 돼서. 혼자 사는 사람인데.”
“어허. 이런.”
택시 아저씨는 탄식과 함께 표정을 흐렸다.
내 표정을 살피던 아저씨는 곧바로 택시의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새벽의 한산한 도로를 질주한 택시는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아티팩트 공방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잔돈은 괜찮습니다.”
나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드린 뒤, 곧바로 공방을 향해 내달렸다. 등 뒤로 택시 아저씨의 외침이 들렸지만 뭐라고 하는지 듣지 못했다.
멀리서 어둠 속에 잠긴 공방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눈에 들어온 공방은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온통 검게 타올라 건물은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있었고, 공방 안에 기계들은 고철 더미가 돼버렸다.
몇 시간 전에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일했던 장소라고 도저히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폐허가 변해 있었다.
잠시 망연하게 공방을 쳐다보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신지아를 찾기 시작했다.
공방 근처에 구급차와 경찰차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경찰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신지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잠옷 차림의 복장이었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나는 안도감에 큰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지아 씨!”
* * *
간단한 조사를 마친 경찰관이 마지막으로 돌아가고.
폐허가 된 공방 주변에는 나와 신지아만 남게 되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담담한 표정으로 공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나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단순한 위로의 말을 건네기에는 너무 참담한 광경이었다. 그저 조용히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게 최선이었다.
공방을 바라보던 그녀는 천천히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로 말했다.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인터넷 기사를 보고 왔어요.”
“그래요? 엄청 빠르게 기사가 올라왔네요.”
“…….”
나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반면에 그녀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미안해요. 세진 씨. 우리가 노력해서 만들었던 아티팩트들도, 연구 자료들도 전부 타버렸어요.”
“…….”
“뭔가 건져보려고 했는데 겨우 이거 하나 가지고 나올 수 있었어요.”
반쯤 타버린 연구 노트를 들어 보였다.
그녀의 노력이 무색하게 노트는 재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였다.
“챙겨야 할 게 정말 많았는데. 하나도 못 챙겼네요.”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나는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돌을 올리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는 쥐어짜 내듯 말을 꺼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무래도 여기서 자는 건 힘들겠죠?”
“…….”
“대학원 시절에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근처에 살 거든요. 아무래도 그 언니한테 연락해 봐야 할 것 같아요.”
“…….”
얼굴을 펴지 못하는 내 모습에 신지아는 짐짓 웃어 보이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괜찮아요. 세진 씨. 어차피 낡은 공방이었어요. 그리고 이 공방에서 제일 중요한 제가 거뜬하잖아요.”
“…….”
“잊었어요? 저 아티팩트 경연대회 우승자예요.”
신지아의 말대로 제일 중요한 그녀가 남아 있다.
이미 그녀의 가치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있으니,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다.
“이렇게 새벽에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저는 정말 괜찮으니까. 이제 가보세요. 피곤하겠어요.”
“언니라는 분 집이 어딘데요? 제가 데려다줄게요.”
“아뇨. 언니가 조금 있으면 이곳으로 올 거예요. 벌써 연락해 놨어요.”
“그럼 그분 올 때까지만이라도…….”
“괜찮아요. 세진 씨. 돌아가려면 오래 걸릴 텐데 빨리 가세요. 저는 잠깐만 혼자 기다리면 돼요.”
그녀는 한사코 괜찮다며 내 제안을 거절했다.
나중에 다시 연락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작별 인사를 건네고, 그녀는 다시 공방을 바라봤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골목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신지아는. 그녀는 정말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걸 잃었지만 담담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설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
“X발.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어?”
나는 걸음을 되돌려 그녀를 향해 뛰어갔다.
뒤돌아 서 있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 거칠게 끌어당겼다.
“아…….”
조금 전까지 괜찮다며 미소 짓고 있던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커다란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를 보며 놀라던 그녀는 황급히 손등으로 눈을 닦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다시 왔어요. 저 괜찮다니까.”
그녀는 퓨이도 속지 않을 거짓말을 내뱉으며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 모습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 외쳤다.
“왜 거짓말해요! 안 괜찮은 거 다 아는데.”
내 외침에 그녀의 눈동자에서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지아는 원망스러운 눈빛과 말투로 내게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안 괜찮아도 참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냐고요.”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조금씩 울음이 섞여 나왔다.
애절한 그 모습에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기댈 곳 없이 혼자 버티는 기분. 나도 뼈저리게 안다.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한강 공원을 서성일 때.
친절을 베풀던 임 경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우연히 텐트 안으로 뛰어들었던 퓨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
나 혼자서는 견뎌낼 수 없었을 테니까.
사람은 모두 그렇게 누군가를 버팀목으로 삼아 다시 일어선다.
신지아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화가 났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고 소리쳤다.
“이 멍청이가! 힘들면 나한테 의지하라고.”
“……?!”
“내가 뭐 때문에 이 새벽에 뛰어왔는데. 괜찮다는 말 들으려고 뛰어온 게 아니야!”
화가 난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가 작게 웅얼거렸다.
“폐를 끼치면……. 미안하니까…….”
“진짜!!!”
나는 답답한 신지아의 모습에 버럭 소리치며 그녀를 와락 품속에 끌어안았다.
가녀린 그녀의 몸을 꽉 껴안았다.
불안함이 느껴지는 떨림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폐 좀 끼치면 어때. 미안하면 어때.”
“…….”
“아니면 나랑은 정말 계약으로 묶인 관계일 뿐인 거야?”
물음에 그녀가 품속에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만 들으면 돼.”
“……?”
“울어. 마음껏 울어.”
“…….”
“속이 편해질 때까지. 울어.”
“흑…… 흐윽. 흐아아앙!”
내 말을 들은 신지아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옷 앞자락이 순식간에 젖어버릴 정도로 많은 눈물이 흐르고.
감춰뒀던 감정을 털어내는 그녀의 모습에 내 가슴에 돌덩어리들도 조금씩 사라져가는 기분이었다.
신지아의 울음소리는 더더욱 커져갔다.
나는 그녀의 울음소리가 혹시 새어나갈까 봐 나는 더 강하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대학원 언니라는 사람이 도착할 때까지 나는 그녀를 계속 끌어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