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64화 (64/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64화

25. 불청객(1)

나와 신지아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아티팩트 프로토타입은 오성 길드의 열렬한 반응을 가져왔다.

지금 당장에라도 계약을 맺고 생산하는 아티팩트 전량 구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꽤 좋은 계약 조건을 내걸었지만 제안은 정중히 거절했다.

일단 연구와 개발이 끝난 게 아니었고, 생산량을 늘리기에는 준비가 많이 부족했다.

아직 많은 부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못하고 주문 생산을 통해 조달하기 때문에,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문제점이 많았다.

그래도 우리가 만들어 낸 아티팩트의 위력과 가능성은 충분히 확인했기 때문에 꽤 만족하고 있었다.

오성 길드는 계약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아티팩트 성능에 관한 피드백도 매우 자세하고 세세하게 보내왔다.

마법의 위력이나 출력에 대한 부분은 상상 이상이었지만, 아직 적은 마법의 개수에 아쉬움을 표했다.

위력이 강한 건 좋지만 조금 더 낮은 출력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개선해 달라는 점.

다시 마법을 사용할 때 걸리는 시전 대기시간이 조금 길다는 점 등등.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해 많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신지아는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에 기뻐하면서도, 고쳐야 할 점이 많다며 곧바로 개선을 위한 연구에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 낸 프로토타입의 여파는 오성 길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아직 대중에게 알려질 정도로 유명해진 것은 아니지만.

고위 정부 인사, 대형 길드, 대기업.

이쪽 계통에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만들어 낸 아티팩트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혜윰 공방을 통해 길드 관계자나, 기업 쪽에서 문의 전화, 계약 제안이 들어왔다.

특히 각성자 관리본부와 헌터협회에서 가장 먼저 연락이 왔다.

관리본부의 최동호 팀장은 전화로 굉장히 서운하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아니. 세진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오성 길드에 테스트를 맡기다니요. 저에게 미리 연락 주셨으면 더 좋은 조건으로 해드렸을 텐데.”

“아무래도 전투 아티팩트 쪽 시험은 길드에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저희 쪽에서도 도움을 드릴 수 있었을 텐데 연락이라도 한 번 해주시지…….”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좀 짧았습니다.”

그는 내 말에 깜짝 놀라며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혹시 세진 씨가 저희 쪽을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시지 않나 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다음에는 아무런 부담 없이 가볍게 연락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각성자 협회의 박선영은 최동호 팀장과 다르게 오성 길드에 테스트를 맡긴 것을 오히려 칭찬했다.

“좋은 선택이에요. 오성 길드면 이름값도 떨어지지 않고, 주목도도 높으니 프로토타입의 성능과 가능성을 선전하기에도 적당했어요.”

그리고 그녀는 그 이후에 대한 계획을 줄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문제점 개선, 보완을 진행하면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시설 증축과 안정적인 재료 수급을 위한 인력을 확보하고.

국내 판매 계약을 넘어서 해외 기업들과 계약까지 언급하며.

굉장히 구체적인 계획을 내게 설명했다.

당연히 그 계획에는 혜윰 공방의 기술과 각성자 협회의 투자가 중심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박선영은 지금 당장에라도 최신식 설비의 공방 하나를 새로 만들어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과 함께 계약 체결을 몰아붙였다.

조금 마음이 흔들렸지만, 아직 연구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각성자 협회의 제안도 거절했다.

나와 신지아는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약은 최대한 미루자고 의견을 모은 상태였다.

여유 자금이 조금 간당간당한다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이미 연구 방향과 계획은 구체적으로 잡힌 상태였기에 우리는 좀 더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 * *

“지아 씨.”

“…….”

“지아 씨!”

“네? 부르셨어요?”

“점심. 어떻게 하실 거냐고요.”

“아…… 네. 대충 아무거나 먹죠.”

“…….”

아무거나 먹자고 대충 말한 뒤, 다시 연구 노트에 집중하는 신지아.

마치 게임에 집중하느라 부모님에게 대충 대답하는 것 같은 무성의함이 가득했다.

나는 그 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여자는 나 없었을 때는 어떻게 밥을 챙겨 먹은 거지? 그냥 굶으면서 살았나?’

최근, 신지아는 연구에 더욱 몰입하면서 옆에서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식사 정도는 가볍게 생략해 버렸다.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자기 몸도 챙기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이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공방에 나오지 않는 날에는 식사시간마다 그녀에게 밥 챙겨 먹었는지 묻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을 정도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

대답하지 않는 그녀는 내버려 두고 휴대폰 배달 어플을 뒤지고 있을 때.

삐이익!

공방의 벨소리가 울렸다.

“지아 씨. 혹시 택배 올 거 있어요?”

“아뇨. 없는데.”

“그럼 누구지? 제가 나가보고 올게요.”

나는 2층 작업실에서 1층으로 내려와 공방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익숙한 얼굴의 남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세진 씨.”

“아…… 네. 안녕하세요.”

여전히 잘생긴 얼굴을 하고 있는 조성훈이었다.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는 상대방과 달리, 나는 약간 떨떠름하게 인사를 받았다.

“위에 지아 있나요?”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거죠? 연락도 따로 안 하신 것 같은데.”

“하하. 잠깐 생각나서 들렀습니다. 예전에는 자주 놀러 오기도 했었거든요.”

“…….”

눈앞의 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를 공방에 들여보내 주고 싶지 않았지만.

엄연히 공방의 주인은 신지아고, 내 마음대로 손님을 내쫓는 건 무리인 것 같았다.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세진 씨.”

조성훈은 공방으로 들어와 공방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갔다.

신지아는 연구에 집중하느라 2층으로 올라온 나와 조성훈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지아 씨. 지아 씨.”

“……?!”

내 부름에 고개를 든 신지아는 조성훈을 발견하고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나에게 살짝 원망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나는 내 입장을 나름대로 변명했다.

“내쫓을 수는 없잖아요. 제가 주인도 아니고.”

“다음부터는 내쫓아버리세요. 제가 허락할게요.”

그녀는 마치 조성훈이 들으라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한데. 그래도 이 공방에서 자주 같이 놀던 친구인데 말이지.”

“무슨 일이야?”

“지나가다 생각나서 들렸어. 오랜만에 와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좋네. 여긴 하나도 안 변했어.”

“헛소리하고 있을 거면 지금 당장 나가줄래? 나는 세진 씨랑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해서.”

냉기가 풀풀 날리는 신지아의 말투에도 조성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잘됐다. 나도 아직 점심 안 먹었는데.”

탁!

신지아는 그의 대답에 신경질적으로 노트를 덮으며 쏘아붙였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그냥 오랜만에 친구 생각나서 찾아온 거라니까.”

“…….”

“…….”

“차 한 잔 내줄 테니까. 그거 마시고 사라져.”

“그럼 그렇게 할까?”

조성훈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고, 신지아는 쌩하니 부엌으로 향했다.

잠시 후.

부엌으로 향했던 신지아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슬쩍 귓속말로 물었다.

“세진 씨. 차 어디에 놔뒀어요?”

살짝 당황하는 신지아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차 내올게요.”

“죄송해요.”

면목 없다는 듯 표정으로 사과하는 그녀에게 괜찮다는 미소를 보여주고, 부엌에서 직접 차를 내왔다.

조성훈은 차를 마시면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꺼냈다.

신지아는 그의 말에 대부분 대꾸조차 하지 않았고. 내가 그의 말을 드문드문 받아줄 뿐이었다.

나와 신지아의 찻잔에는 차가 이미 사라졌지만, 아직 조성훈의 찻잔에는 식어버린 차가 그대로 가득했다.

참다못한 신지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조성훈. 쓸데없는 이야기는 이제 됐어. 할 말 없으면 이제 나가. 우리 바쁘니까.”

“흐음. 아직 나는 차도 다 못 마셨는데?”

차를 다 못 마셨다는 핑계에 신지아는 그의 찻잔을 집어 들더니 창문 밖으로 남아 있는 차를 냅다 쏟아버렸다.

그녀의 행동에 조성훈은 피식 웃더니, 약간 낮아진 말투로 말했다.

“이야기 들었어. 최근에 괜찮은 아티팩트 개발했다던데.”

“…….”

“업계에서 꽤 소란스럽더라고.”

그는 우리가 개발해낸 아티팩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설비로는 조금 힘들지 않아? 재료 조달도 힘들어 보이는데.”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문제야. 너는 신경 안 써도 돼.”

“하하. 친구가 힘들어하는 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조성훈은 다시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우리 아버지 회사, 성진 공업이랑 계약해 보는 건 어때? 원하면 투자도 해줄 수 있는데.”

신지아는 그의 말에 대꾸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는지 자리에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방금 헛소리는 못 들은 거로 할 테니까. 이제 나가.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경찰이라도 부를 거야.”

“뭐, 좋아.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연락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명함 한 장을 건넸지만, 신지아는 그 명함을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다.

그녀의 행동을 본 조성훈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눈은 무표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성훈의 그 기괴한 표정에 나는 무의식중에 불안함을 느꼈다.

그는 다른 말은 더 남기지 않고 조용히 공방을 빠져나갔다.

불청객이 사라지고 신지아는 진이 빠졌는지 의자에 기대듯 털썩 주저앉았다.

조성훈과 짧은 만남에 그녀는 밤새 연구라도 한 듯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괜찮아요?”

내 걱정스러운 물음에 신지아는 눈을 감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안쓰럽게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마지막으로 보여줬던 조성훈의 기괴한 표정이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았다.

* * *

공방을 빠져나온 조성훈은 앞에 세워둔 차에 올라타 골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백미러로 보이는 낡은 공방을 잠시 주시하던 그는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성훈이에요.”

-그래. 지아는 만나봤느냐?

“네. 만나기는 했는데. 예상한 대로 우리랑 일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어요.”

-아쉽구나.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는 조윤학의 아쉽다는 말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공방은 그대로더냐?

“네. 구조는 예전 모습 완전 그대로였어요.”

-잘됐구나.

짧은 침묵이 흐르고.

“바로 부르실 생각이세요?”

-지금이 마지막 기회겠지. 다른 곳과 계약을 맺으면 일이 더 커질 테니까.

“…….”

-너는 이제 신경 쓰지 말거라. 나머지는 이 아버지가 해결할 테니.

조윤학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통화는 종료되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조성훈은 다시 백미러를 쳐다봤다.

골목에서 멀어진 탓에 낡은 공방의 모습이 아주 희미하게 보였다.

백미러에 시선을 뗀 그는 속도를 올려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갔다.

공방이 아예 보이지 않는 곳까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