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60화
24. 새로운 가능성(1)
나와 퓨이, 티아는 균열을 돌아다니며 마석 추출을 하는 중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퓨이가 마석 추출을 끝내면, 나와 티아가 땅바닥에 떨어진 마석을 주워 담았다.
일하는 와중에 티아는 끊임없이 재잘거렸는데 대부분은 민티단에 관한 이야기였다.
“민티단 사람들이 새로운 민트 초코릿을 추천해 주더라고. 그래서 내가 먹고 싶다고 하니까 꼭 보내주겠데.”
“티아는 좋겠네. 선물도 다 받고.”
“헤헤.”
얼마 전 수현suhyun 채널과 함께했던 라이브 방송을 통해 세상에 그 존재를 알린 민티단.
최근에 티아는 팬카페를 통해 그 민티단과 많은 소통을 하는 중이다.
팬카페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고, 댓글을 달거나 직접 글을 쓰기도 했다.
민티단은 라이브 방송을 통해 그 세력이 급성장을 이뤄냈다.
민티단 대부분이 우리 너튜브에서 유입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반대로 민티단에서 우리 채널로 유입이 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또 그때의 라이브 방송이 많은 사람에게 화제가 되면서.
민트 초코를 좋아하는 사람 = 민티단
이라는 인터넷 밈이 자리 잡았고, 티아는 민트 초코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게 됐다.
방금까지 균열 제거 작업을 같이했던 정 씨 가족도 티아의 유명세를 굉장히 신기해했다.
아무래도 수많은 사람에게 티아의 존재가 알려지다 보니,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다행히 아직은 별다른 문제 없이 평소와 같은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티아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마석 추출을 하던 도중.
[해당 지역에서 ‘균열 탐색’이 가능합니다.]
균열 탐색 가능 알람이 떠올랐다.
“왔다!”
나는 기쁨의 외마디를 외치며 곧바로 ‘균열 탐색’ 스킬을 사용했다.
[균열 탐색에 성공했습니다.]
[‘하급 마정석 광맥’을 발견했습니다.]
[‘나무 톱니바퀴’ 1개를 사용해 ‘광산 Lv.1’을 개발하시겠습니까? (Y/N)]
저번과 똑같은 ‘하급 마정석 광맥’이 발견되었다. 일단 주저 없이 나무 톱니바퀴를 사용해 광산을 개발했다.
[‘광산 Lv.1’을 개발합니다.]
땅 울림과 함께 눈앞에 지난번과 똑같은 광산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번에 무리한 마법 사용으로 광산을 날려 먹었던 게 꽤 마음이 쓰렸는데.
이렇게 다시 광산을 가지게 되니 그때의 아쉬움이 조금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 광산을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광산을 다시 개발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광산의 마정석들을 어떻게 캐내야 할지는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방법은 곡괭이를 사와 직접 캐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설사 곡괭이를 사 온다고 해도 광산 일을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내 고민이 깊어가고 있을 때, 이 모습을 지켜보던 티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세진. 왜 그래?”
“그게…….”
나는 답답한 마음에 광산에 대한 고민을 티아에게 털어놓았다.
딱히 해결책을 바라고 이야기한 것은 아닌데, 티아는 내 고민을 듣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손을 번쩍 들었다.
“내게 좋은 방법이 있어.”
“방법이 있다고?”
“응. 이번에 새로 얻은 권능을 사용해서 일꾼을 만들면 돼.”
“아. 권능?!”
라이브 방송을 통해 추종자 100명 이상을 모으게 되면서 개방된 티아의 새로운 권능.
[기계공학 일꾼 소환]
-아르키트 왕국의 기계공학으로 만들어진 일꾼을 영구적으로 소환합니다.
-E등급 마석 10개, D등급 마석 5개
-나무 톱니바퀴 3개, 고철 톱니바퀴 1개
-Ondo(바위) 문양이 새겨진 마정석 1개.
-하급 기계공학 핵 1개 필요.
기계공학 일꾼을 영구적으로 소환하는 권능인데 일단 필요한 재료가 엄청 비쌌다.
마석은 물론이고 톱니바퀴도 꽤 많이 들어갔다.
거기다 바위 문양이 새겨진 마정석 1개와 하급 기계공학 핵 1개까지.
너무 비싼 재료값에 고민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티아야. 이 기계공학 일꾼 쓸만한 거야?”
“응. 아르키트 왕국에서는 이 일꾼이 엄청 많은 일을 해줬거든.”
“그럼 이 일꾼으로 광산 일도 할 수 있을까?”
“물론이지.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절대 후회 안 할 거야.”
내 질문에 티아는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해 줬다.
티아의 행동에 용기를 얻은 나는 기계공학 일꾼을 소환하기로 마음먹고 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텐트로 돌아가서 마석의 수량과 나머지 재료들을 확인해 보았다.
‘마석은 충분하고, 톱니바퀴도 있고.’
재료를 확인하던 중.
필요한 재료 중 하나인 하급 기계공학 핵을 보며 기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핀테일의 추천으로 얻었던 기계공학 핵.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추천 덕분에 기계공학 일꾼 소환 재료가 모자라지 않게 되었다.
‘핀테일은 이런 상황을 모두 예상하고 나에게 추천을 해줬던 것일까?’
잠시 핀테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일단 접어두고 마지막 재료를 확인했다.
Ondo(바위) 문양이 새겨진 마정석 1개.
저번에 광산이 폐쇄되기 전 겨우 구할 수 있었던 ‘빛나는 마정석 원석’을 꺼내 들었다.
[빛나는 마정석 원석]
-꽤 강력한 마력을 품은 마정석 원석.
-세공에 따라 더 큰 효율을 낼 수 있다.
-문양의 힘을 새겨넣을 수 있다.
이 문양을 새겨넣을 수 있는 마정석에 Ondo(바위) 문양을 새겨넣을 생각이었다.
“Sanye(질서)”
질서 문양의 힘이 발동됨과 동시에 ‘빛나는 마정석 원석’에 구조와 배열이 느껴졌다.
예전에 균열핵에 문양을 새기던 때에는 그 구조와 배열이 복잡해 굉장히 애를 먹었지만.
이번에는 구조가 상대적으로 단순해서 아주 쉽게 살펴볼 수 있었다.
나는 마정석 구조의 중심부에 의식을 집중하고 Ondo(바위) 문양을 새겨넣기 시작했다.
균열핵에 문양을 새겨넣을 때와는 달리 굉장히 순조롭게 작업을 이어나갔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성공적으로 마정석에 문양을 새겨넣을 수 있었다.
[빛나는 마정석 원석][Ondo(바위)]
-꽤 강력한 마력을 품은 마정석 원석.
-세공에 따라 더 큰 효율을 낼 수 있다.
-Ondo(바위) 문양의 힘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바위 문양이 새겨진 마정석까지 준비를 끝내고, 모든 재료를 한자리에 모았다.
모여진 재료 앞에 티아가 자리를 잡았다
“그럼. 시작할게.”
티아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료를 잠시 바라보던 티아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티아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 빛에 반응하듯 재료들이 공중으로 서서히 떠올랐다.
“…….”
“퓨우우.”
나와 퓨이는 그 광경을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봤다.
강해지던 빛이 재료들을 향해 빨려 들어갔고, 빛 덩어리는 점점 켜졌다.
빛 덩어리는 심장이 뛰는 것처럼 일정한 진동음을 내기 시작했다.
나 역시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리고.
“Yatalan!”
-파아아앗!!
티아의 외침과 함께 빛 덩어리는 터져나가듯이 사방으로 빛을 뿜어냈고, 나와 퓨이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아야 했다.
“세진. 성공했어!”
귓가에 기쁨이 가득한 티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주변에 빛이 사라졌음을 깨달았고, 조용히 눈을 떠 고개를 재료가 있던 방향으로 돌렸다.
기대감으로 가득한 내 눈동자에 아르키트 왕국의 기계공학 일꾼의 모습이 비쳤다.
“…….”
“후모. 후모.”
“……??”
“어때? 대단하지? 이 녀석이 우리 아르키트 왕국이 자랑하는 기계공학 일꾼이야.”
“후모! 후모!”
“……?!?”
“퓨이! 퓨이!”
예상과 전혀 다른 기계 일꾼의 모습에 당황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당연히 SF소설이나 게임에서 볼법한 기계 일꾼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눈앞에 나타난 기계 일꾼은 그런 느낌과 거리가 멀었다.
애초에 기계라고 부를 수 없는 겉모습이었다.
“후모! 후모!”
내 허리 높이도 오지 않는 작은 키에, 동화에서 나올법한 난쟁이 같은 체구.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은 상체를 뒤덮고 있었고, 그 털들 사이로 동그랗고 커다란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짜리몽땅한 체형과 어울리는 팔다리는 보기에 따라서 굉장히 귀여운 인형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유능한 일꾼이라고 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퓨이. 퓨이.”
“후모!”
퓨이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이 신기한지 이리저리 둘러보았고, 털북숭이 일꾼도 퓨이가 신기한지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당황한 감정을 수습하지 못해 멍하니 있는 나 대신, 티아가 일꾼에게 처음으로 명령을 내렸다.
“일꾼. 저쪽에 광산 보이지?”
“후모.”
“저 광산에서 마정석을 캐 줘. 할 수 있지?”
“후모! 후모!”
털북숭이 일꾼은 맡겨달라는 듯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손을 이용해 자신의 수북한 털 안쪽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쓰윽.
“으응?”
털을 뒤적거리던 녀석은 광부들이 사용하는 램프가 달린 채광 모자를 꺼내 들어 머리에 썼다.
그리고 다시 한번 털들 뒤적거리더니 이번에는 자신의 몸만 한 곡괭이를 꺼내 들었다.
‘도라X몽?’
물리적으로는 전혀 설명되지 않는 상황에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내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털북숭이 일꾼은 장비를 챙겨 광산을 향해 나아갔다.
우리는 일꾼을 따라 광산 내부로 향했다.
털북숭이 일꾼은 능숙하게 광산 내부를 살피더니 마정석이 묻혀 있는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 곡괭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휘익. 깡!
“후모…….”
한 번 곡괭이를 휘두른 녀석은 갑자기 스르륵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뭐야? 왜 저래 티아야?”
“잠깐만.”
쓰러진 녀석에게 티아가 다급히 다가갔다.
“후모…… 후모…….”
“응. 응.”
뭔가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더니 티아가 다시 나에게 날아와 말했다.
“세진. 연료가 부족하데.”
“연료? 무슨 연료?”
티아는 연료에 대해 내게 설명해 줬고, 내 얼굴은 다시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 * *
꿀꺽. 꿀꺽. 꿀꺽.
“후모오!!”
시원하게 연료를 들이킨 털북숭이 일꾼은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몸을 벌떡 일으켰다.
녀석은 연료가 살짝 아쉬운지 내 손에 들려 있는 나머지 연료를 바라보았다.
“이것도 줄까?”
“후모. 후모.”
내 물음에 녀석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손안에 있는 연료를 따서 녀석에게 전해주었다.
연료를 전해 받은 녀석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듯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곧바로 연료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한 번에 연료를 원샷한 녀석은 힘이 넘쳐 흐르는지 곧바로 곡괭이를 집어 들었다.
“후모!!”
-휘익. 깡! 깡! 까앙!!
“우와.”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파워로 곡괭이를 휘두르는 녀석.
곡괭이가 광산 벽에 닿을 때마다 마정석 원석이 두부 부서지듯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작은 체구에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한번 시작한 곡괭이질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나는 발밑까지 튕겨 나온 원석 덩어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불순물이 뒤섞인 마정석 원석]
-마력을 품은 마정석 원석.
-불순물을 제거해야 사용할 수 있다.
저번에 주웠던 마정석 원석과 비슷하지만 품고 있는 마력의 양이 달랐다.
다른 원석 덩어리를 주워서 확인해 봐도 비슷했다.
‘아무래도 저번에 그 마정석 원석을 주웠던 게 운이 좋았나 보네.’
계속해서 곡괭이질을 하던 녀석이 돌연 곡괭이질을 멈추더니, 마정석 원석을 하나 주워들고 쪼르르 달려왔다.
“후모. 후모.”
녀석은 그 마정석 원석을 내게 내밀었다.
[불순물이 뒤섞인 마정석 원석]
-마력을 품은 마정석 원석.
-불순물을 제거해야 사용할 수 있다.
저번에 주웠던 강력한 마력이 담긴 마정석 원석이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마정석의 품질도 곧바로 구분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예상 밖으로 훨씬 유능한 녀석에 나는 흡족한 미소로 녀석을 칭찬해 줬다.
“잘했어.”
“후모.”
녀석은 돌가루와 먼지로 뒤덮인 채로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쪼르르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어때. 대단하지?”
“그러게. 진짜 대단하네.”
“연료만 넉넉히 제공해 주면 최고의 일꾼이라니까.”
나는 방금 녀석에게 주었던 연료를 생각하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난 마도 지식과 기계공학 문명을 이룩한 아르키트 왕국의 일꾼이 저런 모습인 것도 신기했지만.
저 기계 일꾼의 연료가 바로 냉장고에서 꺼내온 시원한 캔맥주라니!!
‘아니. 맥주로 움직이니까 더 대단한 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기계 일꾼의 모습에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