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58화 (58/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58화

23. 태동하는 민티단(2)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토론 컨텐츠가 무엇인지.

나와 오연우는 차분하게 티아를 달래며 설명해 줬다.

설명을 들은 티아는 흥분은 가라앉혔지만, 자신도 무조건 토론에 참여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민트 초코를 널리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어.”

“……?”

언제부터 티아에게 그런 의무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커다란 눈동자는 의무감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토론에 나가서 민트 초코가 얼마나 대단한 음식인지 내가 직접 사람들에게 말해줄 거야.”

이 모습을 본 오연우가 곤란한 표정으로 내게 눈짓을 보냈다.

-형. 어떻게 해요?

티아의 표정을 보아하니 절대로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티아가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진지한 토론이 아닌, 재미를 주기 위한 토론이고.

우리는 손님 입장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주제가 주제다 보니 격렬한 토론이 예상됐고.

시청자들의 과하게 공격적인 댓글이나 서로의 의견을 내놓는 충돌 과정에서 혹시 티아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꽤 유명한 너튜브 채널과 합동 방송이니 우리 채널을 알리는 효과도 있겠지만.

그런 사소한 이익보다는 티아 쪽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티아야. 정말 진지하게 토론하는 게 아니라. 재미를 위해 하는 거야.”

“나도 알아. 하지만 민트 초코를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잖아.”

“…….”

사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티아의 눈치를 보느라 아닌 척하고 있지만, 아직도 민트 초코는 내게 어려웠다.

“나도 인터넷에 봐서 알아. 민트 초코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는걸.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민트 초코의 좋은 점을 알려주고 싶어.”

“…….”

“세진. 도와줄 거지?”

티아는 내게 진지한 표정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생각보다 훨씬 진지하고 적극적인 티아의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옆에 있던 퓨이가 불쑥 나섰다.

“퓨이!”

“나 도와줄 거야?”

“퓨이. 퓨이.”

“고마워!”

도와주겠다고 나선 퓨이의 모습에 티아는 감동한 표정으로 퓨이를 꽉 껴안았다.

“좋아. 퓨이야. 열심히 준비해서 꼭 토론에서 승리하자!”

“퓨이!”

이미 의기투합을 해버린 티아와 퓨이의 모습에 나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오연우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까짓거 해보지 뭐.”

그렇게 우리는 토론 컨텐츠에 참여하기로 했다.

티아가 토론 준비에 집중하며 사명감을 불태우고 있을 때, 이 소식을 접해 듣고 같이 사명감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 * *

민티단 팬카페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티아 공주님. 합동 라이브 방송 확정!]

-티아 공주님이 수현suhyun 채널에 출현합니다.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고 토론 형식으로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민트 초코, 음식인가? 치약인가?’라는 주제라고 합니다.

‘균숙자네 퓨이’ 채널에 공지사항이 올라오자마자, 거의 동시에 팬카페에도 소식이 전달되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민티단의 단원들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일단 티아 공주님의 라이브 방송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기쁜 소식이었다.

하지만.

출현하는 방송의 토론 명제가 단원들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치약이라니?!

아직도 이런 끔찍한 표현을 민트 초코에 사용한다는 사실에 단원들은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주제의 의견을 나누다 보면, 분명히 민트 초코에 대해 악질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

그런 사람들 때문에 티아 공주님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거기다 ‘균숙자네 퓨이’ 채널에 올라온 공지글에 적힌 내용은 민티단 단원들의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민트 초코의 특별함을 알리고 싶어 하는 티아 공주님의 주도로 토론 참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격렬한 토론이 되겠지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직접 토론에 참여의 결정을 내렸다는 내용의 공지는.

단원들 눈에는 마치 티아 공주가 힘든 전장으로 손수 뛰어드는 모습과 같아 보였다.

이런 상황은 티아 공주를 따르는 민티단 단원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공주님을 도와드려야 하지 않을까?

-티아 공주님이 직접 나서는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당장에라도 뭔가 해야 한다.

-우리가 공주님을 지켜드리자!!

소식을 접한 모든 단원은 공주님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곧바로 행동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동지를 불러들이자!

상대적으로 열세인 세력을 보충하기 위해 단원들은 숨어 있는 동지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각자 흩어져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동지들을 불러모았다.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에 토론에 관한 게시글이 올라오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토론이 열리는 날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열기가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

* * *

시간이 흘러 토론이 열리는 당일이 되었다.

나와 티아, 퓨이, 오연우는 일찍 준비를 마쳤고.

본격적인 방송에 앞서 우리를 초대한 정수현과 영상을 통해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수현suhyun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정수현입니다.”

“안녕하세요.”

“퓨이!”

정수현은 깔끔하게 잘생긴 외모와 부드럽고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진 너튜버로.

주로 가볍고 재미난 이슈부터, 무거운 사회 이슈까지.

폭넓은 주제를 가지고 채널을 통해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너튜버였다.

그는 자신도 ‘균숙자네 퓨이’ 채널의 구독자 중 하나라고 밝히며 거듭 감사 인사를 해왔다.

“이렇게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번에 티아 공주님 라이브 방송 챙겨보고 꼭 초대하고 싶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오히려 불러주셔서 감사하죠. 훨씬 큰 채널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하하. 균숙자님 채널 성장세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성장세가 무섭더라고요.”

정수현의 칭찬에 나와 오연우는 살짝 뿌듯함을 느꼈다. 그의 말대로 우리 채널의 성장세가 빠르긴 했으니까.

방송에 대한 몇 가지 조정을 하는 도중에 티아가 불쑥 나서 정수현에게 물었다.

“민트 초코 좋아해?”

티아의 진지한 질문에 정수현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저는 오늘 토론의 진행자라서 대답해 드릴 수 없겠네요. 티아 공주님.”

그의 대답에 티아는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더 질문하지는 않았다.

그때 또 다른 사람이 통화에 참여했다.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약간 통통한 느낌의 안경을 쓴 30대 남성이 영상 통화에 참여했다. 이 사람이 오늘 우리와 반대 의견으로 토론을 할 참가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술푼남자 채널을 운영 중인 김정태입니다.”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말투에서 활기가 넘쳤다.

술푼남자 채널은 먹방을 주 컨텐츠로 하는 채널로 정수현보다는 못 하지만, 역시 많은 구독자를 가진 채널이었다.

여러 음식의 먹방 뿐만 아니라 술과 관련된 영상도 많아 주 연령층이 조금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어린 연령층에도 많은 사랑을 받는 너튜버였다.

“하하. 균숙자님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퓨이나 티아 공주님이 너무 귀엽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저도 술푼남자 채널 자주 보고 있습니다. 최근에 올리신 대게 영상보고 너무 먹고 싶어서 큰일이었습니다.

“흐흐. 나중에 가게 알려드릴 테니 한번 가보십시오. 정말 제대로 대게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도중 이번에도 티아가 불쑥 김정태에게 물었다.

“민트 초코 싫어하는 거야?”

그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차분하게 티아의 질문에 대답했다.

“제가 원체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싫어하거나 못 먹는 음식이 없는데. 민트 초코는 좀 심하게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티아는 마치 경고하듯 김정태에게 말했다.

“오늘 민트 초코의 좋은 점을 잔뜩 말해줄 거야. 그래서 민트 초코가 좋아지게 만들어 줄 테니까. 각오해.”

티아의 귀여운 선전포고에 김정태는 크게 웃음을 떠드리며 같이 대응해 줬다.

“하하하. 저도 먹방 경력이 5년이 넘습니다. 절대 쉽지 않을 겁니다. 티아 공주님.”

본격적인 방송에 앞서 짧은 신경전이 오갔다.

“그럼. 김정태 님 화면 조정만 끝나고 바로 라이브 방송 준비 시작하겠습니다.”

예정된 시간에 수현suhyun 채널의 라이브 방송이 열리고, 시청자들이 빠르게 채팅방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수하!!

-오오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정수현은 능숙하게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볍게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오늘은 여러분들도 모두 아시다시피 토론 초대석 방송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토론에 앞서 오늘 자리를 빛내주실 분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겠습니다.”

-빨리 나와요. 정태아재.

-티아 공주님!!

-귀여운 퓨이 보고 싶다.

“먼저 ‘술푼남자’ 먹방 채널을 운영하고 계시는 김정태 님이 나와주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혼자 술 푸는 술푼남자 김정태입니다.”

-정태형 파이팅

-먹방 너튜버의 위엄을 보여주자!

“다음은 ‘균숙자네 퓨이’ 채널을 운영하는 균숙자님과 그 가족들입니다.”

“안녕하세요.”

“퓨이!”

-꺄아! 오늘도 퓨이가 너무 귀엽다!

-티아 공주님. 또 한 번 기적을 보여주세요.

-확실히 이쪽이 분위기는 화사하네 ㅋㅋ

-뭐야. 저 귀여운 슬라임이랑 인형은?

-응원 왔어요.

소식을 듣고 응원을 와준 채널 구독자분들도 있었고, 퓨이와 티아를 처음 보고 관심을 보내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벌써부터 두 참여자분에 대한 응원 열기가 뜨거운데요. 이제 오늘 토론 주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방송 화면에 오늘의 주제가 떠올랐다.

“오늘의 방송 주제는 ‘민트 초코, 음식인가? 치약인가?’입니다. 미리 주제에 대해 발표했었는데 반응이 정말 뜨거웠습니다.”

-아니, 이걸 토론해야 하나? 당연히 치약이지.

-당장 화장실 가서 치약 짜 먹어보세요.

-이 맛알못들이 진짜.

-민트 초코랑 치약 맛도 구분 못 하는 혀는 왜 달고 사냐?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채팅창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먼저 민트 초코는 당연히 음식이라는 주장의 균숙자님 쪽 의견을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정수현의 진행에 따라 우리가 먼저 발언권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쪽에서 내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제가 먼저 시작해 보겠습니다. 주장을 꺼내기에 앞서 민트 초코의 유래에 대해 혹시 아십니까?”

-유래?

-베스X 라빈X 아냐?

“민트 초코는 영국 왕실 앤 공주의 결혼에 사용할 디저트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디저트입니다. 그때는 민트 로얄이라는 이름으로 제출했었죠.”

-오오.

-처음 들었음.

-진짜임?

“민트 초코는 유서 깊은 영국 왕실의 인정을 받은 아주 ‘근본 있는 음식이다.’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한 나라의 인정을 받은 음식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내 주장에 민트 초코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다.

-맞다. 민트 초코는 근본이 있는 음식이다!

-영국 왕실 근본이다 이 말이야.

옆에서 듣고 있던 티아도 끼어들어 말을 보탰다.

“나도 아르키트 왕가의 공주님인데 민트 초코 엄청 좋아해. 그러니까 더 근본 있는 음식이야.”

-이야. 우리 티아 공주님도 한 근본 하시지. 무려 알에서 태어나신 분이라고.

-난생설화 근본 ㅋㅋㅋ

우리 쪽 의견을 들은 정수현이 가볍게 의견을 정리하며 진행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균숙자님 의견은 민트 초코는 영국 왕실의 인정을 받은…….”

“아르키트 왕가도!”

“네. 영국 왕실과 아르키트 왕가의 인정을 받은 근본 있는 음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럼 반대편 의견 한번 들어볼까요?”

이번에는 술푼남자 김정태에게 발언권이 돌아갔다.

“아, 네. 의견 잘 들었습니다. 전부 맞는 내용을 말해주신 것 같습니다. 근데 그 근본이 영국 근본 아니겠습니까? 근본을 따지려면 한국 근본을 따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주장에 이번에는 민트 초코 반대파가 채팅창을 채워나갔다.

-그렇지. 어디 영국 근본을 들먹여.

-한국에서는 한국 법을 따라야지.

“영국 왕실이 유서 깊은 왕실인 건 알겠지만, 한국인 입장에서는 그게 큰 의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는 입맛을 한 번 다시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에 민트 초코가 세종대왕님 수라상에 올라가던 디저트였다면? 정말 그랬다면 저는 이런 의견 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누가 그 음식의 근본을 의심하겠습니까?”

-캬! 비유 오지네.

-세종대왕님이 민트 초코 드셨으면 인정 또 인정이지.

-와. 근본론에 낚일뻔했네.

아주 논리정연한 김정태의 의견에 채팅창의 반응은 순식간에 넘어가 버렸다.

“거기다 영국 왕실의 인정을 받았다면 영국 음식이라는 뜻인데. 그건 오히려 음식으로써 근본이 위험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완벽한 마무리까지.

첫 번째 공격을 완벽히 반격해 내는 김정태의 모습에 우리는 살짝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겠는데?’

시청자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토론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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