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56화
22. 두근두근 던전 탐험(4)
티아의 놀라운 활약으로 우리는 ‘도전의 방’ 과제에 완벽하게 성공해 냈다.
거기다 점수 100점을 획득해 비밀 방까지 개방되었다. 비밀 방에는 슬라임 때와 같이,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비밀방 상자에서는 금화 20개를 획득했다.
10분도 걸리지 않아 과제를 클리어하고, 금화 20개도 추가로 획득했다.
나는 기쁜 마음에 다시 한번 티아를 칭찬했다.
“정말 잘했어. 티아야.”
“아이 정말. 뭘 이 정도 가지고.”
티아는 별거 아니라며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내 칭찬은 정말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드르르륵!
노래의 여운과 성공의 기쁨이 가시기 전에 새로운 방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바로 다음 방으로 향했다.
남은 시간은 42분 정도.
2개의 과제만 더 성공하면 되기 때문에 시간은 꽤 넉넉해 보였다.
꽤 긍정적인 상황에 희망을 품으며 다음 방에 도착했다.
“이런…….”
나는 방안에 놓인 것들을 보고 대충 다음 도전 과제가 무엇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이곳은 ‘단련의 방’입니다. 방 안에 있는 운동기구를 가지고 설정된 과제를 모두 통과하면 성공.
-러닝머신 1.5km
-윗몸일으키기 50개
-팔굽혀펴기 30개
이제는 불평할 시간도 아까웠다. 나는 곧바로 러닝머신 위에 올라섰다.
“세진. 힘내!”
“퓨이!”
아이들의 응원과 함께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체력에 꽤 자신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흐트러지는 호흡에 때늦은 후회가 들었다.
‘평소에 관리 좀 잘할 걸 그랬나?’
때늦은 후회는 뒤로 미루고 일단 달리는 데 집중했다.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보고 있는 데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옷의 등 부분에 조금씩 땀이 차올랐다.
“헉. 헉.”
-러닝머신 1.5km 완료!
나는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윗몸일으키기 기구로 향했다.
자세를 잡기 위해 누우니, 갑작스러운 운동을 해서인지 살짝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자세를 잡고 잠들어 있는 복근에 힘을 줘 몸을 일으켰다.
-1…… 2…… 3……
-삐이! 제대로 등이 바닥에 닿지 않았습니다.
“이런 씨…….”
등이 닿지 않았다는 이유로 칼같이 카운트를 끊어버리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옆에서 응원하고 있는 아이들을 의식해 겨우 험한 말을 참으며 다시 윗몸일으키기를 계속했다.
-윗몸일으키기 50개 완료!
“으어어.”
복근에서 느껴지는 뻐근한 감각과 함께 온몸에서 힘이 쫙 빠져나갔다.
“괜찮아?”
“퓨이?”
퍼져 있는 내 옆으로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걱정으로 가득한 티아와 퓨이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힘이 조금 솟아나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 나머지도 금방 끝낼게.”
나는 아이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주고 다음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삐이! 자세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흡!”
빡빡하게 정자세를 요구하는 바람에 팔굽혀펴기에서 조금 애를 먹어야 했다.
“끝이다!”
마지막 팔굽혀펴기를 완료하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팔굽혀펴기 30개 완료!
-‘단련의 방’의 과제에 성공하셨습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상황에서 과제에 성공했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 방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꽤 서둘러 과제를 끝내려 했지만, 시간은 벌써 15분이 정도 흘러버린 뒤였다.
남은 시간은 이제 27분.
나는 녹초가 된 몸을 일으켜 아이들과 함께 다음 방으로 향했다.
“…….”
“…….”
“퓨이?”
마지막 방은 이전 방들과는 다르게 정말 아무것도 없는 휑한 방이었다.
우리들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방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이곳은 ‘시작의 방’입니다. 이제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방에서 제가 있는 곳으로 오는 방법을 찾으십시오.
-제가 있는 곳까지 도착한다면 던전은 클리어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단서를 찾으라는 말만 남기고, 핀테일의 설명은 끝이 났다.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방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혹시 아까처럼 비밀방을 열 수 있는 장치가 숨겨져 있을 것 같아서, 방의 벽면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퓨이와 티아도 나를 따라 방 구석구석 살폈다.
“아무것도 없는데.”
“나도.”
“퓨이.”
우리는 10분 가까이 방을 뒤져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방에는 아무것도 없이 휑한 상태였기 때문에 뭔가를 숨길만 한 공간도 없어 보였다.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계속 흘러가니 조금씩 초조해졌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분명 핀테일이 있는 곳까지 갈 방법을 찾으라고 했어.’
나는 의미 없는 방 수색을 멈추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마지막 방에서 방법을 찾아라……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작의 방…… 시작의 방?’
핀테일이 했던 말들을 곱씹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핀테일은 이곳이 시작의 방이라고 했어. 그런데 방법은 마지막 방에서 찾으라고 했잖아?’
생각을 거듭한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곳이 시작의 방이라면, 마지막 방은 그 반대.
바로 우리가 처음 도착했고, 이름을 듣지 못했던 그 방이었다.
“얘들아. 가자!”
“어디로 가는 거야?”
“퓨이?”
“설명은 나중에 해줄게.”
나는 아이들을 챙겨 지금까지 통과했던 방들을 하나씩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단련의 방, 도전의 방, 완성의 방, 선택의 방, 진실의 방, 인내의 방, 조각의 방.
도전했던 방들을 거슬러 처음 도착했던 방으로 되돌아 왔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 7분 정도.
우리는 숨돌릴 틈도 없이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 벽면을 뒤지던 내 손끝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손에 힘을 줘서 그 부분을 꾹 눌렀다.
달칵!
쿠르르릉!
뭔가 가동되는 소리와 함께 한쪽 벽면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열린 벽면 뒤에서는 긴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통로를 따라 뛰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로 끝의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문을 열고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수많은 물건으로 가득 찬 방이었고, 그 한가운데 핀테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성공적으로 던전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핀테일은 축하 인사와 박수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최종적으로 남은 시간은 5분 12초. 남은 시간 1분에 금화 1개. 그리고 클리어 보상으로 금화 100개. 비밀 방에서 얻으신 금화 20개를 포함해 총 125개의 금화를 획득하셨습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앞에는 100개의 금화가 들어 있는 커다란 주머니 하나와 나머지 25개의 금화가 들어 있는 주머니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상으로 받으신 금화로 이 방 안에 있는 물건을 구매하시면 되겠습니다.”
나는 멍하니 금화 주머니를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핀테일에게 물었다.
“아르키트 중급 회로 이론서는?”
“따라오시죠.”
핀테일은 앞장서서 물건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나와 아이들이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마치 도서관처럼 수많은 책이 꽂혀 있는 곳이었다.
핀테일은 수많은 책 사이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아르키트 회로 중급 이론서][유일][귀속]
-가격 : 금화 120개
고생 끝에 원하던 중급 이론서를 손에 넣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고민도 하지 않고 곧바로 구매하려 말을 꺼내려는데.
핀테일이 손을 내밀며 내 행동을 제지했다.
“잠깐만!
“…….”
“여기에는 정말 흥미로운 상품들이 많이 있는데, 조금 더 둘러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는 이게 제일 필요한 것 같은데.”
“상품을 구경하는 데는 제한이 없습니다. 조금 둘러보시고 선택하셔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중한 그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어떤 상품들이 있는지 궁금하기는 했으니까.
일단 나와 아이들은 핀테일을 따라 이곳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에 상품들은 정말 엄청나게 많았다.
아까 보았던 갖가지 책들부터, 무기, 약품, 재료, 방어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까지.
나는 수많은 물품 사이에 화려하게 장식된 하나의 검을 살펴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한번 만져보려는데.
[바르티에의 절망검][유일]
-가격 : 금화 10000개
-능력 : 알 수 없음.
“…….”
금화 만 개라는 가격에 나는 저절로 몸이 굳어버렸다. 내 모습을 본 핀테일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함부로 손대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괜히 상품에 손상이 생기면 그만큼 배상해 내셔야 하거든요.”
나는 한결 조심스러워진 행동으로 상품을 둘러보고 있을 때.
“퓨이! 퓨이!”
퓨이가 나에게 허둥지둥 뛰어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왜 그래?”
“퓨이!”
뭔가 급한 표정으로 나를 이끄는 퓨이. 일단 나는 퓨이를 따라 뛰어갔다.
-몽. 몽. 몽.
-몽. 몽. 몽.
퓨이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커다란 우리에 갇힌 작은 슬라임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녀석들은 퓨이를 알아보는지, 가까이 다가서자 반가운 듯 반응을 보였다.
“퓨이! 퓨이!”
퓨이는 꼬리로 작은 슬라임들을 가리키며 뭔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여유롭게 우리를 뒤따라온 핀테일에게 물었다.
“이건 뭐지?”
“이것도 상품입니다만.”
“상품이라고?”
당황한 내 물음에 핀테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슬라임 해방권]
-슬라임들을 해방해줍니다.
-가격 : 금화 30개.
“이 슬라임들은 제 던전을 위해 일하고 있는 녀석들입니다. 적절한 금액만 내주신다면 해방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슬라임에 관해 설명했다.
“만약 해방해 주지 않는다면 이 슬라임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뭐. 계속 제 던전에서 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핀테일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퓨우우.”
-몽. 몽. 몽.
-몽. 몽. 몽.
퓨이는 굉장히 슬픈 눈으로 작은 슬라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퓨이는 갇혀 있는 녀석들이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슬퍼하는 퓨이의 모습에 나도 안타까웠지만, 녀석들을 해방하기 위해 30개의 금화를 사용하면 중급 회로 이론서를 살 수 없게 된다.
툭. 툭.
퓨이는 꼬리로 내 바지를 잡아당기며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퓨우우. 퓨이.”
평소에 떼를 쓰거나 뭔가 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잘 없었는데, 지금은 너무 간절한 눈빛으로 내게 부탁하고 있었다.
옆에서 있던 티아도 울상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오늘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퓨이와 티아가 없었더라면 쉽게 해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대로 아르키트 중급 회로 이론서를 살 수도 있지만, 퓨이의 슬픈 얼굴을 바라보자 나도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한편 핀테일은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빙글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한숨 소리에 퓨이아 티아가 몸을 움찔거렸다.
나는 고개를 숙여 퓨이와 눈을 맞추고 물었다.
“퓨이는 내가 저 친구들을 구해줬으면 좋겠어?”
“퓨이. 퓨이.”
내 물음에 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퓨이의 눈동자에서 슬픔과 불안함 그리고 나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엿보였다.
그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자.
회로 이론서에 눈이 팔려 내 마음대로 하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
퓨이는 내 옆을 지켜줬던 유일한 존재였다.
겨우 회로 이론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가족.
생각을 정리한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퓨이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 퓨이야. 내가 다 해결해 줄게.”
아직도 불안한 표정의 퓨이를 뒤로하고, 나는 핀테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작은 친구들 풀어줘.”
“호오? 금화 30개를 쓰시겠다는 겁니까? 그럼 회로 이론서는 못 사시게 되는데요?”
“됐어.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나는 미련 없이 주머니에서 금화 30개를 꺼내 핀테일에게 건넸다.
금화를 받은 핀테일은 잠시 기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딱!
핀테일이 손가락을 튕기자 갇혀 있던 우리가 개방되고. 작은 슬라임들이 차례로 우리를 빠져나왔다.
-몽. 몽. 몽.
-몽. 몽. 몽.
“퓨이! 퓨이!”
작은 녀석들은 우리에서 나오자마자 퓨이를 둘러싸고 친근함을 표시했다.
퓨이도 행복한 미소와 함께 작은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다.
나와 티아는 행복해하는 퓨이를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저 슬라임들은 직접 데려가실 생각입니까?”
퓨이를 지켜보고 있던 나에게 핀테일이 슬라임에 관해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슬퍼하는 퓨이를 위해 작은 친구들을 풀어주기는 했지만, 그 뒤에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데려가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제가 저 친구들이 행복할 만한 곳에 데려다주겠습니다.”
“…….”
우리에 가둬두고 던전에 써먹고 있던 핀테일이 전혀 예상외의 제안을 해왔다.
“하하. 그렇게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은 그만두시죠. 이미 금화는 받았고. 저는 저 나름대로 고객이 원할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뿐입니다.”
“믿어도 되는 거야?”
“저 ‘핀테일’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약속을 해오는 그의 모습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는 계약이 성립되었다는 의미로 나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몽. 몽. 몽.
-몽. 몽. 몽.
잠시 핀테일과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작은 슬라임들은 어느새 나와 티아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름대로 친근함의 표시인지 우리에게 달라붙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녀석들이 몸을 떨자 매끄럽고 부드러운 느낌에 달콤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맡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퓨이! 퓨이!”
“꺄하하하! 간지러워!”
-몽. 몽. 몽.
서로 장난을 치며 웃음꽃을 피우는 녀석들.
나는 털썩 주저앉아 작은 친구들과 티아, 퓨이의 행복한 모습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