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55화 (55/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55화

22. 두근두근 던전 탐험(3)

‘아르키트 회로 중급 이론서’를 보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가격은 금화 120개.

현재 가지고 있는 금화는 50개.

금화가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핀테일의 손에 있는 중급 이론서가 너무 갖고 싶었다. 게임을 하지 않으려 했던 원래의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떤 게임이지?”

“하하. 간단한 카드 게임입니다.”

핀테일의 손안에 있던 중급 이론서가 사라지고 트럼프 카드 뭉치가 생겨났다.

그는 곧바로 게임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게임은 우리가 흔히 아는 ‘블랙잭’.

카드를 뽑아 숫자의 합이 21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면 되는 게임.

다행히 나는 블랙잭에 대한 기본적인 플레이 방법은 알고 있었다. 물론 돈을 걸고 게임을 해본 적은 없지만.

“제가 딜러 역할로 게임을 진행할 겁니다. 한번 게임에 도전해 보시겠습니까?”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한 판만 하고 바로 그만두셔도 상관없습니다. 대신 제가 가지고 있는 카드를 전부 사용하면 게임은 곧바로 종료입니다.”

딱히 내가 불리한 규칙도 아닌 것 같았고, 무엇보다 중급 이론서가 너무 탐이 났다.

약간 위험한 도박이지만 도전해 보기로 했다.

“좋아. 한번 해볼게.”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핀테일이 허공에 손을 휘젓자 테이블 위에 있던 식기들이 사라지고, 카드들이 순식간에 세팅되었다.

내 옆에는 50개의 금화가, 핀테일의 옆에는 훨씬 많은 금화가 산처럼 쌓였다.

“자. 그럼 얼마를 배팅하시겠습니까?”

“배팅에 제한은 없는 거야?”

“없습니다. 한 번에 전부 거셔도 됩니다.”

나는 잠시 금화를 만지작거리다가 2개의 금화를 테이블 앞에 올려두었다.

일단은 적은 금액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배팅을 확인한 핀테일이 카드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에게 들어온 카드는 하트 10과 클로버 8로 총합 18.

핀테일의 한 장은 다이아 8이었다.

나는 더 이상 카드를 받지 않겠다는 의미로 스탠드를 외쳤다.

“스탠드(Stand).”

나의 스탠드가 선언되자 핀테일은 자신의 나머지 카드 한 장을 오픈했다.

나머지 한 장은 하트 9.

총합 17로 나의 승리였다.

“이기셨습니다.”

핀테일은 배팅했던 금액의 두 배, 금화 4개를 나에게 돌려주었다.

“와아!”

“퓨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은 내가 승리하고 금화를 가져오자 환호성을 질렀다.

금화 2개를 땄을 뿐이지만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계속하시겠습니까?”

“물론.”

이번에는 테이블 앞에 금화 4개를 올려두었다.

베팅 금액을 확인한 핀테일이 다시 카드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에게 들어온 카드는 스페이드 K, 하트 A.

블랙잭(blackjack)이었다.

곧바로 완성된 나의 블랙잭에 핀테일은 자신의 패를 확인하고 나의 승리를 선언했다.

“블랙잭으로 이기셨습니다.”

블랙잭으로 승리한 결과 배팅한 금화의 2.5배, 금화 10개를 돌려받았다.

이제 내가 가진 금화는 총 58개.

처음에는 굉장히 긴장되었지만 조금씩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핀테일과의 카드 게임은 계속되었다.

* * *

“끄응.”

“세진…….”

초반 잘 풀리던 행운이 계속되어 90개까지 금화를 끌어모았지만.

중간에 과도한 배팅으로 한 번 크게 손해를 본 뒤. 흐름이 끊겨 계속 금화를 잃기 시작했다.

흐름이 끊기고 계속 손해를 보자 나도 모르게 무리한 게임 운영을 하게 됐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금화가 42개밖에 남지 않았다.

“계속하시겠습니까?”

전전긍긍하는 나와는 달리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로 게임을 진행하는 핀테일.

이제 남은 카드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하나?’

금화 50개에서 조금 손해를 보긴 했어도 아직 42개나 남아 있는 상황.

시간으로 전부 전환하면 42분.

차라리 안전하게 게임을 그만두고 던전 도전에 집중하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내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계속 가만히 있던 퓨이가 갑자기 내게 뭔가를 말하려 했다.

“퓨이! 퓨이! 퓨이!”

“응? 왜 그래 퓨이야.”

“퓨! 퓨! 퓨!”

퓨이는 꼬리로 남은 금화를 가리키며 흥분한 듯 소리쳤다. 흥분한 퓨이와 잠시 소통에 시간이 걸리고.

알게 된 충격적인 퓨이의 주장.

“남은 금화를 전부 걸라고?”

“퓨이!”

퓨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확신에 찬 그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마 다른 사람은 미쳤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근거를 알 수 없는 퓨이의 주장에 살짝 용기가 생겨났다.

‘분명 퓨이는 뭔가를 알고 있는 거야. 나는 퓨이를 믿는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에라, 모르겠다. 올인!”

“퓨이!”

“으앙. 난 몰라.”

나의 과감한 결단에 퓨이는 신나서 울음소리를 냈고, 티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불안해했다.

남은 금화 42개를 테이블 앞으로 밀어 넣자, 처음으로 핀테일의 표정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바로 표정을 수습하고 카드를 돌리기 시작했다.

내가 받은 카드는 스페이드 7과 하트 5.

핀테일의 공개된 카드는 하트 2.

당연히 추가 카드를 받아야 하는 상황.

“퓨이!”

“설마 받지 말고 스탠드하라고?”

“퓨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퓨이의 주장에 마음이 흔들렸다. 총합 12로 멈추기에는 너무 불안한 숫자였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퓨이를 바라보았다. 퓨이의 투명한 눈동자는 확신으로 가득하여 있었다.

‘그래 믿었으면 끝까지 믿는다.’

“스탠드(Stand).”

스탠드 선언과 함께 핀테일은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핀테일은 뒤집혀 있던 카드 한 장을 오픈했다.

“헉.”

오픈한 카드는 다이아 Q.

하트 2와 합쳐 총합 12. 나와 같은 숫자였다.

숫자를 확인한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추가하는 카드가 10 이상이 아니면 무조건 지는 상황.

‘제발. 제발. 제발.’

핀테일은 딱 한 장 남은 카드를 가져와 오픈했다.

천천히 카드를 뒤집는 모습이 내 눈에 느린 동작처럼 보였다.

마지막 카드는 클로버 J 였다.

“…….”

“…….”

총합 22

숫자 21 초과로 핀테일의 패배였다.

“승리하셨습니다.”

핀테일은 나의 승리 선언과 함께 금화 42개의 두 배. 총 84개의 금화를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와! 이겼어!”

“아싸!”

“퓨이!”

가장 먼저 티아가 소리쳤고, 뒤따라 나와 퓨이가 기쁨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나는 퓨이와 티아를 감싸 안으며 기쁨을 함께 나눴다.

“퓨이야.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정말 대단해 퓨이야.”

“퓨이! 퓨이!”

핀테일은 기뻐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총 84개의 금화를 획득하셨습니다. 금화는 다시 시간으로 환산해 드리겠습니다.”

테이블 위에 쌓여 있던 금화가 사라지고 1시간 24분이라는 시간이 추가되었다.

[남은 시간 : 1시간 24분 5초 ]

“제가 여러분을 조금 얕본 것 같군요. 정말 멋진 승부였습니다.”

핀테일은 우리를 칭찬하며 아까와 같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아직 도전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4개의 방을 통과하지 못하시면 지금의 승리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벽에 문이 나타났다.

철컥!

“그럼 마지막 도착지에서 뵐 수 있기를.”

* * *

핀테일과 헤어져 다음 도전을 위해 문을 통과했다.

5번째 방은 ‘완성의 방’.

방안에 여러 가지 모양의 커다란 블록들을 조립해, 벽면에 그려진 모양과 똑같이 만드는 과제였다.

복잡한 모양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블록들을 하나의 모양으로 합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이곳에서는 평소에 장난감을 같이 가지고 놀던 티아와 퓨이의 협동이 빛났다.

“세진. 여기, 여기에 맞추면 될 것 같아.”

“퓨이!”

티아와 퓨이의 지시에 따라 내가 커다란 블록들을 하나씩 맞춰 나갔고.

30분 정도 시간을 소모한 끝에 벽면에 모양과 같이 블록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

-축하합니다. ‘완성의 방’을 통과하셨습니다.

핀테일의 목소리와 함께 다음 도전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남은 시간은 52분 정도. 남은 도전은 3개.’

우리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서둘러 다음 방으로 향했다.

새로운 방에 도착한 우리는 또다시 전혀 예상치 못한 것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곳은 ‘도전의 방’입니다. 방안에 놓여 있는 기계를 통해 85점 이상의 점수를 기록하면 성공.

-만약 85점 이하의 점수를 받을 경우, 모자란 점수 1점당 3분의 시간을 차감하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길.

“이걸 85점 이상 기록하라고?”

“퓨이?”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커다란 방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기계를 바라봤다.

끊임없이 화려한 영상이 재생되는 모니터와 커다란 스피커, 무선 마이크와 리모컨, 깨알 같은 탬버린까지.

우리가 도전해야 할 과제는 노래방 점수 85점 달성.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당황스럽게 만드는 던전이었다.

일단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애국가 같은 거 부르면 점수 좋게 나오지 않나? 아니면 간단한 동요 같은 거?’

어떻게든 높은 점수를 내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있을 때, 티아가 갑자기 내게 말했다.

“세진! 이거 내가 해볼래.”

티아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내게 말했다.

“티아야. 이거 뭔지 알아?”

“응. 노래 부르는 거잖아. 나 노래 정말 잘 불러.”

자신만만한 티아의 모습에 나는 살짝 얼굴을 흐렸다. 남은 시간이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티아에게 맡겨도 될지 살짝 걱정되었다.

불안해하는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티아가 다시 한번 강하게 자신감을 표출했다.

“나 정말 자신 있어. 예전에 왕국에 있을 때도 부모님, 주변 사람들 모두 잘 부른다고 칭찬해 줬어.”

‘그건 티아가 공주님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떠올랐지만, 이내 그 생각을 지웠다.

나는 아까 퓨이를 믿고 올인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티아를 믿어보기로 했다.

“알았어. 그럼 부탁할게. 티아야.”

“헤헤. 알았어. 나 정말 열심히 부를게.”

티아는 나의 도움으로 노래방 책자 속에 부르고 싶은 노래 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동요 같은 노래의 선곡을 예상했는데.

티아는 예상외로 책 뒤쪽, 최신가요 부분에서 노래를 찾기 시작했다.

평소에 노래를 잘 안 듣는 편이라 생소한 노래 제목들이 눈앞을 계속 스쳐 지나갔다.

“찾았어. 나 이거 부를래.”

“……?”

티아가 선택한 노래를 확인한 나는 살짝 걱정이 앞섰다.

노래 제목은 생소했지만, 가수는 나도 알만한 꽤 유명한 가수였다.

청순한 소녀 같은 외모와 아름답고 깔끔한 목소리.

어려 보이는 외모 뒤에 숨겨진 뛰어난 가창력, 장르를 가리지 않는 뛰어난 감정 전달력과 탄탄한 기본기.

아름다운 외모와 실력으로 엄청난 팬덤을 가지고 있는 여가수의 노래였다.

뛰어난 실력에 걸맞게 노래들이 하나같이 쉬운 노래들이 없는데, 티아가 그 가수의 노래를 선택한 것.

“티아야. 이거 불러본 적 있어?”

“아니. 근데 너튜브에서 많이 들어봤어.”

“…….”

당당하게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다는 티아.

나는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티아는 퓨이의 도움을 받아 노래방 기계에 번호를 입력했다.

모니터에는 노래 제목이 떠오르고. 스피커에는 잔잔하게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 이 노래?!’

제목은 잘 몰랐지만, 전주를 듣자마자 어떤 노래인지 바로 기억났다.

평소에 노래를 잘 안 듣는 사람이라도.

지나가다 한 번은 듣게 되는. 그야말로 빅히트했던 노래.

‘근데 이 노래 엄청 어려울 텐데?’

좋은 노래인 것과는 별개로 아무나 부를 수 있는 정도의 쉬운 노래가 아니었다.

나는 실패를 예감하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티아를 바라보았다.

티아는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편안한 모습으로 전주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전주가 끝나가고.

퓨이의 꼬리로 고정된 마이크에서 티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

노래방 기계의 반주에 맞춰 울려 퍼지는 티아의 목소리는 원곡 가수 못지않게 청아한 음색이었다.

안정된 음정, 정확한 박자.

평소에 티아에게서 볼 수 없었던 진지한 모습과 가사에서 묻어나오는 애절한 감정은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거기다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음량이 나오는지, 정말 믿기 힘든 정도였다.

조금 전까지 실패를 걱정하던 마음은 사르르 녹아버리고,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티아의 노래를 감상했다.

어려운 노래임에도 티아는 편안한 표정으로 모든 구간을 소화해 냈다.

감정이 터져 나오는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티아의 가창력도 함께 폭발하며. 정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뻔했다.

잔잔한 마무리와 함께 티아의 노래가 끝이 나고.

“…….”

“…….”

“…….”

노래를 부른 티아도, 듣고 있던 나와 퓨이도 노래의 여운에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했다.

[완벽해요! 혹시 당신은 가수 본인?!]

[SCORE 100점]

노래방 점수 발표와 동시에 핀테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도전의 방’의 과제에 성공하셨습니다.

-그리고 뛰어난 업적으로 비밀의 방이 개방됩니다.

-정말 멋진 노래였습니다.

성공했다는 핀테일의 말과 함께 여운에 빠져나온 나는 정말 진심으로 티아에게 말했다.

“티아야. 정말 대단했어. 이런 노래 실력일 줄은…….”

“퓨이!”

퓨이도 나와 같이 감동한 표정으로 티아를 바라봤다.

우리의 칭찬에 티아는 쑥스러운지, 몸을 배배 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