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53화
22. 두근두근 던전 탐험(1)
오랜만에 정 씨 가족과 균열 제거 일을 나섰다.
거미 여왕 균열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하는 균열 제거 일이었다.
나는 중간에 아티팩트 경연대회를 준비하느라 바빴고, 아윤과 선우는 학교 시험으로 바빴다.
2주 가까이 일을 하지 못했지만, 거미 여왕 균열 때 돈을 짭짤하게 벌어둬서 정 씨 가족 모두 마음 편히 쉬었다고 한다.
긴 휴식 뒤의 일이었지만.
모두 긴장을 푸는 일 없이 D등급 3단계 균열을 깔끔하게 정리해 나갔다.
특히 신지아에게 새로 받은 아티팩트를 시험해 본 나는, 생각보다 훨씬 향상된 성능에 엄청 감동했다.
큰 어려움 없이 균열핵을 제거하고 보금자리 텐트로 돌아왔다.
정 씨 가족과 획득한 아이템과 장비 정비를 끝냈을 때.
내가 말을 꺼냈다.
“아저씨. 온천 좋아하세요?”
“온천? 좋아하지. 그런데 갑자기 왜 온천?”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나는 ‘균열 특이점’ 권능을 이용해 온천으로 통하는 균열 입구를 열었다.
“뭐에요. 오빠?”
“들어가 보면 알아.”
머뭇거리는 일행을 이끌고 온천으로 통하는 균열 입구를 통과했다.
입구를 넘어서자 뿌연 김이 모락모락 뿜어져 나오는 온천이 눈앞에 나타냈다.
처음으로 온천을 구경한 일행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세진아. 이건 또 뭐냐?”
“뭐긴 뭐에요. 온천이죠.”
멍하니 묻는 아저씨의 질문에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아윤은 약간 어이없다는 말투로 내게 말했다.
“오빠. 솔직히 처음 만났을 때 오빠 능력을 들었을 때는 불쌍할 정도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보면 볼수록 사기인 것 같아.”
“맞아요. 형 능력은 좀 괴상하게 좋은 것 같아.”
그러면서도 아윤은 부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선우 역시 아윤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온천 안 들어갈 거야?”
아윤과 선우는 모두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 * *
“으어어. 좋다.”
아저씨는 물에 몸을 담그면서 자연스럽게 익숙한 목욕탕 아저씨 사운드를 뿜어냈다.
나와 선우도 뒤따라 온천에 몸을 담갔다.
건장한 남성 3명이 들어갔는데도, 자리가 엄청 남을 정도로 온천은 넓은 크기를 자랑했다.
“이야. 세진이 덕분에 균열 일을 끝내자마자. 이런 호사를 다 누리네.”
아저씨는 온천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그럼 이 온천은 형 개인 온천이나 다름없네요.”
“그렇지.”
“와. 대박.”
선우는 살짝 존경심까지 묻어나오는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 솔직히 별거 아닌 일인데도 내 어깨가 조금 으쓱해졌다.
모두 말없이 온천을 즐기는 와중에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세진아. 혹시 오성 길드 사람들이랑 만났었냐?”
“네. 얼마 전에 만났었죠.”
“안 그래도 나한테 연락 왔었다.”
“……?”
아저씨는 두 손에 온천물을 담아 얼굴에 끼얹으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저번 여왕 거미 균열 일을 들먹이면서 우리에게 지원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그냥 거절했다.”
“왜요? 오성 길드 엄청나게 큰 길드라던데. 공짜면 그냥 받으시지.”
“공짜긴 뭐가 공짜야.”
아저씨는 혀를 차며 말했다.
“쯧. 나도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게 몇 년인데. 그 정도 눈치는 있어. 지원을 핑계로 이것저것 해주면서 어떻게든 세진이 너랑 엮으려고 하는 게 뻔하지.”
“…….”
“어제 창호 놈한테서도 전화 와서 대충 네 상황에 관해서 설명 들었다.”
아저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세진아. 지금은 우리 파티에 껴서 같이 균열 다니고 있지만. 혹시나 더 좋은 조건이 있어서 나가야 한다면,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좋은 곳으로 가라.”
“그런 거 아니에요. 아저씨. 그건…….”
아저씨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곧바로 내가 설명하려 했지만, 아저씨는 내 말을 끊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허. 일단 내 말 들어. 우리 가족들 다 너를 좋아하고. 계속 같이 다니면 좋겠지만. 혹시 우리 때문에 네가 희생할 이유는 전혀 없다. 우리도 너 없다고 균열 못 가는 것도 아니고.”
“…….”
“지금은 네가 따로 생각이 있어서 그런 선택을 한 거겠지만. 나중에라도 떠나야겠다고 생각 들면 바로 말해.”
“……알았어요. 아저씨.”
그가 왜 이런 말을 꺼내는지 알기 때문에 살짝 가슴이 먹먹해졌다.
확실히 지금의 일행과 계속 같이 다녀야 할 이유는 없다.
까놓고 말해서 오성 길드와 지금의 일행을 비교하면 당연히 오성 길드 쪽이 이득이다.
아저씨는 혹시 내가 가족들과의 인연 때문에 떠나지 못할까 봐.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 같았다.
그 배려가 고맙기도 하고 왠지 씁쓸하기도 해서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온천에는 자연스레 침묵이 찾아왔다.
이런 잔잔해진 분위기에 아저씨가 대뜸 말했다.
“혹시 떠나더라도 가끔 온천은 사용할 수 있게 해줘. 여기 정말 좋네. 흠흠.”
“…….”
“아빠…….”
살짝 감동에 젖어 있는 상황에 갑자기 온천을 들먹이자, 선우가 깬다는 표정으로 아저씨를 바라봤다.
“아 왜? 세진이가 파티를 떠나더라도 계속 반찬은 가져다줄 거고. 그때마다 가끔 온천 들릴 수도 있는 거지. 안 그러냐 세진아?”
오히려 당당하게 주장하는 아저씨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아저씨 가족들은 언제나 환영이니까 많이 놀러 오세요.”
“역시 세진이야. 허허허.”
아저씨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장난으로 꺼낸 이야기인지,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온천에 무거운 분위기는 사라졌다.
“아빠. 언제 나올 거야? 나도 들어가고 싶어!”
“퓨이!”
“세진. 나도 아윤이랑 빨리 들어갈래.”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윤과 퓨이, 티아가 빨리 나오라고 재촉했다.
우리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빨리 씻기 시작했다.
* * *
함께 온천을 즐긴 정 씨 가족이 먼저 떠나가고, 나와 퓨이는 마석 추출을 위해 다시 균열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혼자 있기 싫었던 티아도 우리를 따라왔다.
평소처럼 괴물들의 시체에서 마석을 추출하던 도중, 처음 보는 알람이 눈앞에 떠올랐다.
[해당 지역에서 ‘균열 탐색’이 가능합니다.]
“응?”
색다른 알람의 등장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천천히 알람을 확인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이건 온천을 발견했을 때랑 비슷한 상황인 건가?’
큰 위험은 없을 거로 생각했지만, 혹시 모르니 퓨이와 티아를 최대한 뒤로 물리고 ‘균열 탐색’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균열 탐색에 성공했습니다.]
[‘하급 마정석 광맥’을 발견했습니다.]
[‘나무 톱니바퀴’ 1개를 사용해 ‘광산 Lv.1’을 개발하시겠습니까? (Y/N)]
‘오오. 마정석 광산!’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곧바로 나무 톱니바퀴를 1개 사용했다.
[‘광산 Lv.1’을 개발합니다.]
온천이 개발될 때와 비슷하게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땅의 울림과 동시에 벽에 쩌적! 하고 금이 가더니, 벽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균열을 뒤흔들던 진동이 조금씩 약해지고.
완전히 진동이 멈췄을 때, 눈앞에는 커다란 동굴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 내부에는 균열과는 다르게 발광석이 없어 엄청 어두웠다.
위험한 일이 있을지 모르니 아이들은 두고 가려 했지만.
“퓨이! 퓨이!”
“나도 들어갈래.”
녀석들은 겁도 없이 무조건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아이들의 설득을 포기하고 동굴 입구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Cala(빛)
나는 빛 문양을 사용해 어두운 동굴 내부를 밝혔다.
조금만 걸어 들어가자 마정석이 묻혀 있는 광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광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꽤 많은 양의 마정석들이 동굴 안에 묻혀 있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캐가지?’
묻혀 있는 마정석들을 캐낼 방법이 없는 상황.
광맥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나는 오른팔에 채워져 있는 아티팩트를 바라보았다.
“얘들아 물러서.”
나는 아이들을 광맥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고 매직 미사일을 발동시켰다.
-매직 미사일
-파앗!
생성된 3발의 매직 미사일을 곧바로 마정석 광맥을 향해 발사했다.
-콰광!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돌 부스러기가 주변으로 터져 나왔다.
잠시 후.
광맥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고 주변에는 마정석 덩어리들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발밑까지 튕겨 나온 마정석 덩어리를 하나 주워들었다.
[불순물이 뒤섞인 마정석 원석]
-꽤 강력한 마력을 품은 마정석 원석.
-불순물을 제거해야 사용할 수 있다.
손안에 들려 있는 마정석 원석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을 때.
-쿠르르릉.
“뭐야?”
갑자기 동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잘못된 채광 방법으로 광산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광산이 무너집니다.]
“이런 미친!”
나는 눈앞에 떠오른 알람을 읽자마자 퓨이와 티아를 챙기고 동굴 입구를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빠르게 달린 덕분에 순식간에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동굴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광산 Lv.1’이 폐쇄됩니다.]
“휴. 다행이다.”
다행히 나와 아이들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섣부른 행동으로 광산을 날려버렸다는 생각에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손안에 남은 건 아까 주워들었던 마정석 원석 하나였다.
“퓨이!”
“퓨이야. 왜 그래?”
갑자기 퓨이가 내 손에 들려 있던 마정석 원석을 꼬리로 가리키며 울음소리를 냈다.
“이거 달라고?”
“퓨이! 퓨이!”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일단 원하는 대로 마정석 원석을 퓨이에게 건넸다.
마정석을 건네받은 퓨이는 내가 말릴 새도 없이 그걸 덥석 삼켜버렸다.
“엇! 퓨이야.”
“아앗!”
퓨이의 돌발 행동에 지켜보던 나와 티아가 깜짝 놀라 소리 질렀다.
반면 마정석을 집어삼킨 퓨이는 평온한 표정으로 볼을 움직이며 우물거렸다.
“퓨이야. 괜찮아?”
“퓹. 퓹.”
입안 가득 마정석을 물고 있어 이상한 소리를 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일단 괜찮은 듯했다.
한참을 그렇게 우물거리던 퓨이가 뭔가를 땅바닥에 내뱉었다.
“퓻!”
나는 땅에 떨어진 두 개의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빛나는 마정석 원석]
-꽤 강력한 마력을 품은 마정석 원석.
-세공에 따라 더 큰 효율을 낼 수 있다.
-문양의 힘을 새겨넣을 수 있다.
[은은한 마력이 흐르는 광석]
-광석에 순수한 마력이 은은하게 깃들어 있다.
두 덩어리의 정보를 확인하고 나는 깜짝 놀랐다.
퓨이가 마정석 원석의 불순물을 제거해 버렸다는 점에서도 놀랐지만.
그렇게 불순물이 제거된 마정석 원석에 문양의 힘을 새겨넣을 수 있다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다 불순물로 떨어져나온 광석 덩어리도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퓨이!”
마치
‘나 잘했어?’
라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퓨이.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퓨이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줬다.
“잘했어. 잘했어.”
“퓨이!”
내 칭찬에 퓨이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울었다.
퓨이의 활약으로 새로운 아이템들을 얻은 건 기뻤지만, 한편으로 폐쇄되어버린 광산이 더 아깝게 느껴져 속이 쓰렸다.
* * *
광산의 아쉬움은 뒤로하고 나와 아이들은 남은 균열을 돌면서 마석 추출을 계속했다.
혹시나 다시 광산이 나와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던 그때.
[해당 지역에서 ‘균열 탐색’이 가능합니다.]
‘오오. 진짜 나왔다?!’
또다시 떠오른 알람에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곧바로 ‘균열 탐색’ 스킬을 사용했다.
-균열 탐색!
나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균열 탐색에 성공했습니다.]
[‘정체불명의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나무 톱니바퀴’ 1개를 사용해 ‘정체불명의 공간’을 개방하시겠습니까? (Y/N)]
‘정체불명의 공간?’
이때까지 발견되었던 온천과 마정석 광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현재 가지고 있는 나무 톱니바퀴는 10개.
아직은 여유가 있는 상황.
아까 실수로 폐광을 날려 먹었던 게 생각나니 불쑥 욕심이 생겨났다.
‘좋아. 못 먹어도 고다. YES!!’
[‘정체불명의 공간’을 개방합니다.]
알람과 함께 이번에도 진동과 함께 균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광산이 개발될 때보다 훨씬 얌전하게 땅을 울리더니, 바닥에서 아주 부드럽게 뭔가 솟아올랐다.
나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뒷걸음질 쳤다.
바닥에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RPG 게임에서 볼법한 던전의 입구처럼 생긴 구조물이었다.
[‘던전 입구’가 개방되었습니다.]
[바로 입장하지 않으면 ‘던전 입구’는 곧바로 폐쇄됩니다.]
짧은 안내 알람에 이어서 던전에 대한 설명이 눈앞에 떠올랐다.
[‘핀테일’의 던전]
[<난이도 : 하><위험도 : 최하><규모 : 작음>]
[성공시 던전 클리어 시간에 따라 추가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2시간 이내에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할 시 도전은 자동으로 종료됩니다.]
[도전에 실패했을 시, 가지고 있는 문양의 힘을 랜덤하게 하나 잃습니다.]
설명을 읽은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난이도와 위험도를 봤을 때, 별로 위험한 곳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도전에 실패했을 시 부여되는 페널티가 꽤 컸다.
‘실패하면 문양의 힘을 하나 잃는다. 도전을 포기해도 나무 톱니바퀴 하나를 날리는 셈인데.’
아까 광산을 날려 먹은 게 생각나니 도전을 포기하는 것도 영 마음이 찝찝했다.
한동안 던전 앞에서 고민하던 나는 아주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위험도와 난이도가 높지 않으니.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