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52화
21. 낭중지추(2)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박선영은 둥글둥글한 인상에 편안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본격적인 설명해 드리기에 앞서 우리 협회에서는 누구랑은 다르게 세진 씨에게 어떠한 제약 조건도 걸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녀는 대놓고 최동호 팀장을 견제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협회에 가입하시더라도 원하시는 길드에 마음대로 가입하셔도 되고요. 지금처럼 공방에서 계속 일하셔도 됩니다. 우리 협회는 소속된 각성자들의 자유와 권리 실현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거든요.”
박선영의 말만 들어서는 각성자에게 굉장히 좋은 단체인 것 같았다. 최동호 팀장도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틀린 말은 없는지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협회에 가입하게 되시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뭐니 뭐니 해도 세계 최고 수준의 경매장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여러 나라의 물품들까지 거래하실 수 있습니다.”
한 번도 직접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경매장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었었다.
균열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아이템들과 재료들은 물론이고, 갖가지 아티팩트, 제작 무기와 방어구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다.
“원래 신입 회원분은 일정한 활동 기록을 쌓을 때까지 약간 높은 수수료가 부과되지만, 세진 씨의 경우는 특별히 가입만 해주신다면 최저 수준의 수수료만 내시고 경매장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아티팩트 제작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세진 씨만 원하신다면 협회와 거래 중인 기업들과 연계를 통해 기술 교육과 지원을 추진해 보겠습니다.”
이때 가만히 듣고 있던 최동호 팀장이 나서서 말을 가로챘다.
“기술 관련은 우리가 훨씬 앞서 있습니다. 아마 협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술이나 교육은 생색만 내는 수준일 겁니다. 저희와 함께하신다면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과 경험을 갖춘 장인분들과 다이렉트로 연결해드리겠습니다.”
갑자기 끼어든 최동호 팀장을 박선영이 째려보며 말했다.
“기술 지원을 핑계로 세진 씨의 기술도 빼먹으려는 속셈이죠?”
“빼먹다니요. 말씀이 심하십니다. 선영 씨.”
“어리숙한 각성자나 제작자를 데려다가 필요한 기술이나 능력을 빼먹는 일 전문이잖아요?”
“허어. 근거도 없는 악의적인 비방은 그만두시죠. 저희는 항상 기술과 능력을 존중하고 걸맞은 대우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박선영은 최동호 팀장의 말을 비웃으며 되물었다.
“어머. 최근에 협회로 오신 장인 한 분이 그렇게 그쪽 욕을 하시더라고요. 죽도록 일만 해도 돈이 안 된다고. 요즘 협회로 오신 뒤부터는 엄청 행복해하시던데.”
그녀의 비웃음에 최동호 팀장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주장했다.
“세진 씨. 꼭 돈이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죠.”
“저희와 함께하시면 명예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 돈만 밝히는 협회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최동호 팀장의 발언에 이번에는 박선영이 발끈하며 나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협회는 돈만 밝히고 명예는 모른다는 말인가요?”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는 곳인데.”
“뭐라고요?”
그들의 언성이 높아지려 할 때. 김도훈 부길드장이 나서 빠르게 중재했다.
“두 사람 다 그만하지. 세진 씨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야.”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김도훈의 어른스러운 질책에 두 사람이 고개 숙이며 사과했다.
“대충 두 사람 이야기는 끝난 것 같고. 이제 우리가 세진 씨와 이야기를 좀 나눌 건데. 자리 좀 잠시 비켜주지?”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지 두 사람은 찍소리도 못하고 자리를 떠나야 했다.
물론 떠나면서도 나에게 연락처를 남기는 일은 까먹지 않았다.
비워진 두 자리에 한창호와 부길드장과 함께 온 여성이 곧바로 자리했다.
한창호는 그들과 같은 오성 길드 소속이었지만, 나의 일행인 것처럼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한 조장.”
“네. 부길드장님.”
“평소에 자네의 칼 같은 맺고 끊는 성격을 좋아했지만, 오늘만큼은 원망스럽구먼.”
“죄송합니다.”
한창호는 그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였고, 부길드장은 씁쓸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인사하지. 오성 길드의 부길드장을 맡고 있는 김도훈이라고 하네. 그리고 옆에는 서율희 조장이라네.
“안녕하세요. 서율희라고 합니다.”
“네. 전세진입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소개를 듣고 조금 놀랐다.
딱 봐도 한창호나, 부길드장에 비하면 대단히 어린 나이인데 길드의 조장 자리라니.
간단한 소개 뒤에 부길드장은 정중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다른 이야기는 일단 제쳐 두고 거미 여왕의 균열에서 큰 도움을 줘서 길드를 대표해 고마움을 표하지.”
“아닙니다. 저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 대충은 다 알고 있다네. 과한 겸손은 오히려 실례라네. 다음에 길드 차원에서 빚을 갚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군.”
“…….”
그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오늘 이렇게 만남을 청하게 된 건 우리 오성 길드에 가입 권유를 하기 위해서라네. 아마 자네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리라 생각하네.”
“예. 맞습니다.”
김도훈 부길드장은 목청을 한번 가다듬고 말을 이어나갔다.
“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자네의 능력이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파티를 맺고 지속해서 균열에 들어가는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하네.”
“…….”
나는 그의 추측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기만 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우리 오성 길드는 세간에 5대 길드라 불리며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네. 실제로 우리는 B등급 균열을 주기적으로 제거하는 중이기도 하고.”
확실히 내가 개인적으로 들은 것도, 오성 길드는 실력으로 한국 내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길드였다.
“만약 자네가 우리 길드에 합류해 준다면. 자네가 원하는 등급의 균열 입장과 길드가 취급하는 희귀한 재료들까지. 전적으로 지원해 주겠네.”
지금은 정 씨 가족들과 함께 균열에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오성 길드와는 확실히 비교하기 힘들었다.
아무나 갈 수 없는 B등급 균열이라던가, 희귀한 재료 지원은 절대 만만한 조건들이 아니었다.
내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김도훈은 옆에 앉은 서율희를 툭툭 치며 뭔가 이야기해 보라는 제스쳐를 보냈다.
“…….”
“……?”
‘근데 서율희라는 여자는. 아까부터 왜 이렇게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는 거지?’
그녀는 같이 자리할 때부터 계속 나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관심에 나는 애써 무시하며 눈길을 피했다.
그 뒤로 김도훈은 오성 길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과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지원들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김도훈의 노력에도 나의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천천히 생각해 보라는 말과 연락처를 남기고, 김도훈과 서율희는 카페를 떠나갔다.
자리에는 나와 한창호만 남게 되었다.
내가 다 식어버린 아메리카노 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한창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드는 곳은 정했나?”
“잘 모르겠어요. 뭐가 저한테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고.”
고민하는 나에게 그는 짧고 간결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고급 기술이나, 그에 관한 정보를 통해 실력을 키우고 싶다면 관리본부 쪽 제안이 좋아. 큰돈은 벌기 힘들겠지만, 최동호 팀장이 말했던 것처럼 기술과 정보는 확실히 이쪽이 좋아.”
“…….”
“단순히 돈을 벌고 싶다면 각성자 협회 쪽과 이야기를 진행하는 게 좋아. 알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매년 각성자 협회가 벌어들이고 사용하는 금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기다 국내는 물론 해외 쪽 영향력도 대단한 곳이다.”
나는 살짝 장난스럽게 한창호에게 물었다.
“그럼 오성 길드는요?”
“솔직히 지금 오성 길드와 바로 계약을 맺는 것은 비추천이다. 다른 길드 쪽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안할 수도 있으니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냉정하게 오성 길드를 비추천하는 그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아니. 그래도 소속 길드인데 어림없으시네요?”
“저번에 말했다시피 길드 소속이 아닌, 개인적으로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 당연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조언해 주는 게 옳으니까.”
그래도 살짝 마음이 쓰였는지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
“내가 소속된 길드인 걸 떠나서. 오성 길드의 실력은 정말로 인정할 만하다. 만약 길드 가입을 생각하고 있다면 오성 길드도 절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의 설명이 끝났음에도 나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이런 나를 조용히 지켜보던 한창호가 대뜸 물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나?”
“네.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건 다 해드릴게요.”
“너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 거지?”
“네?”
나는 정말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하며 되물었다.
“뭘 하고 싶냐고 묻는 거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라던가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그의 질문에 나는 떠듬떠듬 대답했다.
“어…… 일단 빚이 조금 있어서. 빚을 갚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겠죠?”
“빚? 빚이 얼마 길래.”
“2억 조금 넘게 남았는데요.”
한창호는 금액을 듣자마자 코웃음을 쳤다.
“2억 정도 되는 빚이라면 아까 누구와 계약하든 해결할 수 있을 거다. 그거 말고 네가 정말로 꿈꾸는 목표가 뭐지?”
“…….”
나는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지금 네 모습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하지 않고, 길을 찾는 격이다.”
“…….”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확실히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일단 어디로 갈지부터 정해라. 저들과의 계약은 그다음으로 미뤄도 충분하다. 어차피 급한 건 네가 아니라 저들이니까. 그리고…….”
“……?”
“아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여기까지다. 이제 선택은 네 몫이다.”
한창호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황급히 뒤따라 일어서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한창호 조장님.”
내 인사에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더니, 고개를 끄덕여주고 카페를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그가 남긴 조언을 계속 되뇌었다.
* * *
카페를 빠져나온 한창호는 곧바로 다른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까 카페를 나선 김도훈 부길드장과 서율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창호는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오오. 이제 이야기 끝난 거야?”
“네. 부길드장님.”
“칭찬은 바라지도 않겠지만, 혹시 우리 길드 흉보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푸핫!”
최선을 다했다는 표현에서 김도훈은 웃음을 터뜨렸다. 최선을 다했다는 표현이 이렇게 신선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자리에 앉은 한창호에게 김도훈이 은근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래. 전세진이라는 친구는 결정을 내린 거야?”
“아닙니다. 아마 곧바로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쩝.”
김도훈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한탄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했었나. 결국, 모두가 알아보게 되는군. 조금만 더 우리가 빨리 알아챌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죄송합니다.”
한창호가 고개를 숙이자 김도훈은 체념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이미 지난 일을 탓해서 뭐하겠어. 마음만 씁쓸할 뿐이지.”
김도훈을 살피던 한창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부길드장님.”
“왜?”
“저는 그 친구에게 낭중지추라는 말보다는 다른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으응? 그럼 무슨 말이 어울리는데.”
“빙산의 일각!”
“……?!”
한창호의 말에 김도훈이 표정을 굳혔다.
“아직 우리가 알아본 그의 잠재력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달리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김도훈은 흥미롭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한창호는 아까 전세진에게 말하려다 그만둔 이야기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다음에 그들과 만나게 될 때. 선택을 강요받는 쪽은 네가 아니라 저들이 될지도 모른다.’
너무 허무맹랑한 말 같아서 그만뒀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진심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아직도 균열에서 전세진이 보여준 모습이 그의 머릿속에 낙인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김도훈은 옆에 앉아 있는 서율희에게 말을 걸었다.
“율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
“서율희!”
“어?! 왜 아저씨?”
“너는 또 왜 이래. 아까부터 계속 멍하니 딴생각하고.”
“미안. 미안.”
서율희는 아까 만난 전세진을 보며 느낀 알 수 없는 친근감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처음 만난 사이인데. 도대체 뭐지?’
카페에서 만난 뒤부터 계속 예전 일을 돌이켜 봐도 딱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었다.
그녀는 한동안 답답함 때문에 고생해야 했다.
* * *
정신없었던 카페에서의 만남을 뒤로하고.
나는 신지아의 아티팩트 공방으로 향했다.
카페에서 있었던 머리 아픈 일들은 공방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지워지고, 가슴은 설렘으로 차올랐다.
오랜만에 방문한 공방.
그리고 오랜만에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잘 지냈어요?”
“네. 저는 잘 지냈죠. 지아 씨는요?”
“바빴지만. 저도 잘 지냈어요.”
만나면 굉장히 어색할 것 같았는데, 오랫동안 보지 못해서 그런지 반가운 마음만 가득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신지아의 바빴던 일상이 주 대화 내용이었다.
수많은 언론과 인터뷰도 하고,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외국에서 찾아온 기업과 미팅 자리도 가지고.
그녀는 정말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도 일정을 끝내고 바로 나를 만나러 온 것인지.
편한 모습이 아닌 메이크업과 손질된 머리 모양 그대로였다.
더 예뻐 보이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묻어나오는 피곤함에 안쓰럽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늘 있었던 일이 떠올라 그녀에게 물었다.
“지아 씨는 지금 목표가 뭐에요?”
“목표요?”
“네. 최근에 목표했던 아티팩트 경연대회도 우승도 했으니. 새로운 목표가 생기지 않았을까 해서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뭔가 생각난 표정을 지었다.
“잠시만요.”
나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공방 한쪽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그녀는 아티팩트 보관함과 함께 내게 돌아왔다.
그리고 환한 미소와 함께 그 보관함을 내게 내밀었다.
“뭐에요?”
“열어보세요.”
보관함을 열자 안에는 새로 만든 것 같은 아티팩트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평소에 공방에서 보던 모양이나 재료가 아니었다.
“문양의 힘을 버티기 위해서는 더 고급 재료가 필요하다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미래 그룹 쪽에 부탁해서 고급 재료를 조금 얻었어요. 물론 가공은 제가 못했고 회로 작업만 제가 해놨어요.”
그녀는 아티팩트를 나에게 꺼내 보이며 말했다.
“아직 완벽하게 문양의 힘을 커버하진 못하더라도, 저번보다는 훨씬 쓸만할 거예요.”
“고마워요. 지아 씨. 저는 아무것도 준비 못 했는데.”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세진 씨. 우리 계약 기억 안 나요?”
나와 신지아가 처음 만났을 때 나눴던 계약.
나는 그녀에게 아티팩트를 1개 받을 수 있으며, 유지와 수리 또한 그녀가 책임진다는 내용.
그녀는 계약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이 아티팩트를 만들어 준 이유가 단순히 계약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까 목표가 뭐냐고 물었죠?”
“……?”
“이 아티팩트 준비하면서 많이 깨달았어요. 아직 제가 제작자로서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요.”
그녀는 아티팩트를 보관함에 내려두고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거 알아요? 세진 씨가 아티팩트를 망가뜨릴 때마다, 점점 아티팩트 만들기 어려워지는 거?”
“그런가요?”
“네. 그래서 이번에는 제 실력으로도 부족했어요.”
살짝 안타까워하던 그녀는 다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제 목표는 아무리 세진 씨가 아티팩트를 망가뜨려 와도 거뜬히 고쳐줄 수 있는 아티팩트 제작자가 되는 게 제 목표에요.”
“…….”
“그렇게 실력을 쌓다 보면 언젠가 최고의 아티팩트 제작자가 돼 있을 것 같거든요. 후훗.”
나는 뭔가 터져 나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지아 씨.”
“…….”
그녀는 당황한 듯 얼굴을 붉혔지만, 잡혀 있는 손을 빼내지 않았다.
내 눈과 그녀의 눈이 마주치자, 등골이 오싹하는 느낌과 함께 머리카락이 삐쭉 솟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에 안개가 끼는 것처럼 멍해졌지만, 신지아의 모습은 점점 뚜렷하게 보였다.
그렇게 공방 안이 우리만의 분위기로 뒤덮이려는 순간.
삐이익!
누군가의 방문을 알리는 시끄러운 벨소리가 공방을 울렸다.
화들짝 놀란 신지아는 황급히 손을 빼내고 공방 입구로 달려가 버렸다.
나는 달려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 돌이 되어버렸다.
잠시 후.
신지아와 그녀의 일정을 관리해 주는 20대 초반의 여성 매니저가 같이 올라왔다.
바쁜 일정에 신지아가 저녁을 챙기지 못하는 것 같아 직접 저녁을 사 온 것이었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치 빠르게 분위기를 파악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어찌할 줄 몰라 허둥거렸다.
“언니.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아냐. 괜찮아.”
매니저는 나에게도 정말 미안하다는 눈치를 계속 보냈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날 저녁.
우리는 매니저가 사 온 저녁 식사를 셋이서 맛있게 나눠 먹었다.
메뉴는 찜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