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50화
20. 출격! 티아 공주님(3)
“그럼 자기소개 좀 해주실까요?”
오연우의 진행에 티아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위대한 아르키트 왕국의 공주. 아라스티아 공주야.”
진지한 티아의 자기소개에 채팅창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고
-뭐지? 컨셉인가?
-아르키트 왕국? 들어본 적 없는데.
-아니, 그게 뭐가 중요해. 저렇게 귀여운데!
그와 동시에 수많은 질문이 채팅창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아니. 균숙자님은 어디서 저렇게 귀여운 친구들을 다 데려오는 겁니까? 능력이 너무 사기인 거 아닙니까?
-나도 어디서 꿀리는 각성 능력 아닌데. 개부럽네.
-진짜 공주임?
-균숙자님. 지금까지 이렇게 귀여운 공주님을 숨겨놓고 혼자 보고 계셨던 겁니까? 영상 안 올린 것보다 이게 더 괘씸하네.
방송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모두 동시에 채팅을 치는지 채팅창이 전에 없는 속도로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후원까지 마치 폭격하듯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mingming2 ₩7,500 후원]
-라이브 영상 분석한 것 보고 인형인 줄 알았는데, 정말 인형처럼 귀여운 공주님이!
[주주주작작 ₩5,000 후원]
-매일 공주님과 퓨이를 볼 수 있다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를 듯.
저번에 퓨이가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을 때처럼, 엄청난 반응이 이어졌다.
두 번째 라이브 방송이라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다시 폭주하는 채팅창에 나와 오연우는 허둥지둥했고.
티아와 퓨이는 멀뚱멀뚱 노트북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시청자들은 그 모습마저도 귀엽다고 난리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채팅창과 후원 폭격이 잠잠해졌다. 겨우 정신을 차린 오연우가 다시 진행을 이어나갔다.
“균숙자님. 아라스티아 공주님과는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거죠?”
“으음. 티아랑 처음 만나게 된 건 균열에서였는데. 아주 우연히 구슬을 주웠거든요.”
“잠깐. 구슬이요?”
“잠깐만요. 사진 보여드릴게요.”
나는 휴대폰을 꺼내 과거 티아가 부화하기 전, 구슬일 때 사진들을 화면에 보여주었다.
여러 사진에는 새하얀 광채를 뿜어내는 구슬과 퓨이가 함께 찍혀 있었다.
-와! 구슬 때부터 귀여운 것 보소.
-티아? 애칭인가? 애칭도 귀엽네.
-퓨이는 왜 저렇게 사진마다 다 등장했어 ㅋㅋ
-설마 저 구슬에서 공주님이 나왔다고?
“네. 처음에는 신기한 구슬인 줄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티아가 구슬에서 태어났어요.”
오연우도 처음 듣는 티아의 탄생 이야기에 진짜로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진짜 이 사진 속의 구슬에서 아라스티아 공주님이 나왔다고요.”
“응. 맞아. 내가 저 구슬에서 태어났어.”
“그때 기억나세요?”
“기억나. 퓨이랑 세……. 균숙자랑 모두 놀란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어.”
본인의 생생한 경험담까지 이어지자 채팅창은 놀랍다는 반응이 줄지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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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공주님 맞네. 왜 박혁거세도 알에서 태어나서 왕이 됐잖아. 왕족이라면 당연히 난생설화 하나 정도는 있어 줘야지.
-미친ㅋㅋㅋ 난생설화 무엇 ㅋㅋ
-아니, 박혁거세가 갑자기 왜 나와ㅋㅋㅋ
-난생설화는 ㅆㅇㅈ이지
-갑자기 빵 터졌네 ㅋㅋㅋ
때아닌 난생설화 드립으로 채팅창에는 온갖 알에서 태어난 인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는 티아.
난생설화에 대한 간략한 내 설명을 듣고 티아는 으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 나도 왕족이라서 알에서 태어난 거야.”
-으쓱거리는 거 왜케 귀엽냐.
-알 부심 지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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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숙자님은 공주님을 티아라고 부르시네요? 애칭 같은 건가요?
나는 후원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네. 티아는 애칭이에요. 대신 허락해 준 사람만 부를 수 있어서. 아무나 마음대로 부르면 싫어해요.”
-우리도 그렇게 부르면 안 되겠네?
-마음대로 불렀다가 불경죄로 끌려갈 듯.
나는 호칭을 정리해 주기 위해 귓속말로 티아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내 귓속말을 들은 티아가 선심 쓰는 표정으로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우리 채널을 구독하고 있는 사람들은 티아 공주님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물론입죠. 티아 공주님. 벌써 구독해 놨습니다.
-뭐야! 아직도 구독을 안 누른 사람이 있다고?
티아의 발언 때문인지 채널 구독자 숫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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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티아 공주님은 왜 숨기신 거예요? 이렇게 귀엽고 예쁜데 채널 영상에 일찍 안 나온 이유가 뭔가요?
티아가 지금까지 영상에 나오지 않은 이유에 관해 묻는 질문이 나왔다.
초반에 티아가 나오지 못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아직 이곳 생활에 적응하지도 못했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공주라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컨트롤이 되지 않는 시기였다.
나는 최대한 있는 사실 그대로 질문에 대답해 줬다.
“숨겼다기보다는 티아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서 영상 출연을 조금 미룬 것뿐이에요.”
대답에 오연우가 추가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균숙자님은 티아 공주님의 출연은 계획하고 있었나요?”
“계획이라기보다는. 티아가 우리 채널을 자주 보거든요. 퓨이랑 같이 영상에 나오는 모습이 아주 부러웠나 봐요. 오늘도 티아 스스로 나오고 싶다고 해서 나오게 된 거예요.”
티아가 오늘 출연하게 된 계기까지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에게 설명했다.
그 뒤로도 시청자들은 티아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들을 보내왔다.
-평소에 티아 공주님은 뭘 하면서 보내나요?
“음. 티아는 아무래도 퓨이랑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고요. 같이 너튜브 영상을 보거나, 애니메이션도 많이 봐요. 저랑 같이 있을 때는 같이 즐길 수 있는 게임도 하고요.”
-앞으로 티아 공주님 영상도 올려주시는 건가요?
“네. 이번 라이브 방송 뒤에도 티아랑 퓨이 모두 영상으로 만나보실 수 있어요.”
-아. 티아 공주님과 퓨이 영상이라니. 벌써 행복하네.
-제발 일주일에 한 편이라도 좋으니 꾸준히 올려주세요. 이번에 기다리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최근에는 많이 한가해졌으니 연우 PD와 함께 최대한 영상 많이 만들어 보도록 할게요.”
-균숙자님은 SNS 같은 거 안 하시나요? 퓨이나 티아 공주님 사진 같은 거 올려주시면 좋을 텐데.
“죄송합니다. 제가 SNS를 잘 안 해서요. 가능하면 연우 PD를 통해서 일상 사진 같은 거 조금씩이라도 올려보겠습니다.”
시청자들과 티아에 관한 이야기를 소통하면서 방송을 진행하던 도중.
문제의 ‘그 질문’이 후원을 통해서 도착했다.
[퓨이맘 ₩100,000원 후원]
-티아 공주님도 너무 귀엽네요. 공주님은 평소에 무슨 간식을 좋아하시나요. 후원금으로 티아 공주님과 퓨이 간식 사주세요.
저번에 큰 후원금으로 인상 깊었던 퓨이맘의 후원이 들어왔다.
오늘도 적지 않은 십만 원이라는 후원금과 함께 티아의 간식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퓨이맘 님. 오늘도 큰 후원 감사드립니다. 이 질문은 티아에게 직접 들어볼게요.”
나는 티아에게 좋아하는 간식이나 음식에 대해 물어보았다.
티아는 간식 이야기에 밝은 표정으로 하나씩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웅. 평소에는 금색 초콜릿 과자를 자주 먹었는데. 오늘 먹은 수제 초콜릿 과자도 맛있었어.”
-페X로 로X?
-그거 맛있지.
-간식 이야기하니까 공주님 얼굴 환해지는 거 봐. 너무 귀여워!
간식 이야기에 신난 티아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모두 흐뭇한 감정을 내비쳤다.
이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간식은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이야!”
티아의 입에서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이라는 단어가 나옴과 동시에 채팅창에서는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앗!
-그건 좀…….
-아니. 민트 초코가 어때서?
-어떻긴. 최악이지. 치약을 왜 먹는지 모르겠음.
-민트 초코 맛있는데…….
오연우도 민트 초코 이야기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시청자들과 오연우 반응에 티아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민트 초코가 왜? 내가 먹어본 간식 중에 제일 맛있는 간식인데.”
티아의 정말 순수한 질문에 오연우가 민트 초코에 대한 본인의 감상을 이야기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별로더라고요. 치약 맛 나는 것도 그렇고. 먹으면 상쾌하다고 그러는데 제가 먹어 봤을 때는 오히려 찝찝한 느낌이 들었어요.”
오연우의 감상에 시청자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연우 PD가 옳은 말을 하네.
-저게 맞지. 솔직히 왜 먹는지 전혀 모르겠음.
오연우와 시청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티아는 충격을 받았다.
민트 초코를 가장 완벽한 간식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을 처음으로 부정당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본 또 다른 시청자들이 반발하며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아니. 민트 초코 먹을 수도 있지. 왜 우리 공주님 기를 죽이고 그래요?
-맞아. 민트 초코 먹는 게 뭐 어때서. 공주님 저도 민트 초코 엄청나게 좋아해요.
민트 초코 사랑을 옹호하는 시청자들이 티아를 두둔하고 나섰다.
점점 상황은 민트 초코를 인정할 수 없다는 시청자들과 취향 존중해달라는 시청자들의 기 싸움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런 기 싸움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방관하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당황한 티아는 다급히 퓨이에게 물었다.
“퓨이야. 민트 초코 맛있지?”
“퓨이? 퓨이!”
호불호 없이 뭐든지 잘 먹는 퓨이는 티아의 물음에 긍정적으로 답해줬다.
-퓨이도 민트 초코 좋아하네.
-근데 퓨이는 그냥 뭐든지 잘 먹는 거 아닌가?
-퓨이는 착해서 맛있다고 해준 걸지도?
티아는 이번에는 나를 향해서 질문을 던졌다.
“민트 초코 맛있지?”
나는 순간 당황했다.
개인적으로 민트 초코를 먹지 않는 취향인데, 티아의 슬픈 눈을 보자 도저히 맛이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옆에서 보고 있던 오연우가 나의 망설임을 느꼈는지 곧바로 말을 걸었다.
“형. 민트 초코 싫어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싫으면 싫다고 당당하게 말하세요.”
“씨이. 아니야. 저번에 나한테 맛있다고 했단 말이야.”
오연우의 말에 티아가 뾰족한 목소리로 부정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흥분한 티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나도 민트 초코 좋아해.”
“맞지? 헤헤.”
거짓말이지만 민트 초코를 좋아한다는 내 말에 티아는 크게 안심한 듯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결국 나, 퓨이, 티아까지 민트 초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오연우만 홀로 불호의 태도를 유지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티아가 텐트의 냉장고에서 직접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왔다.
오연우는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싫어한다는 감정이 확연히 느껴졌다.
티아는 직접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떠서 오연우에게 향했다.
“한 번만 먹어보면 안 돼?”
“으으.”
오연우는 어찌할 바를 몰라 나를 향해 도움을 바라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그 눈빛을 슬쩍 피해버렸다.
“딱 한 번만. 응?”
애절한 눈빛으로 부탁하는 티아의 모습은 보는 시청자들도 애간장을 녹게 했다.
-나도 민트 초코 안 좋아하는데, 티아 공주님이 저런 표정으로 부탁하면 한 번은 먹을 것 같다.
-연우 PD님 딱 한 번만 먹어봐요.
-생각보다 괜찮다니까. 다 편견이야. 편견.
오연우는 어쩔 수 없이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입안으로 넣었다.
그때.
티아에게서 광채가 쏟아져 주변을 뒤덮었다. 갑작스러운 기이한 현상에 나와, 퓨이,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깜짝 놀랐다.
-뭐야? 무슨 일이야 갑자기.
-방송사고인 듯?
-아오. 제대로 눈뽕 맞았네.
주변을 뒤덮던 광채가 사라지고 만족스러운 표정의 티아와 넋 나간 표정의 오연우가 화면에 드러났다.
그리고
오연우의 혼이 나간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 괜찮네요.”
-?
-?
-연우 PD 갑자기 왜 저래?
오연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직접 스푼을 들고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떠먹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엄청 맛있어졌다기보다는 왜 민트 초코를 좋아하시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확실히 달콤한 초콜릿 맛에 상쾌한 민트 맛이 어울리네요.”
-뭐야? 뭐야?!
-최면이라도 걸었나?
180도 변해버린 오연우의 태도에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민트 초코를 갑자기 막 좋아하게 된 건 아니고. 불쾌한 거부감이 없어졌다는 정도?”
분명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거부감을 느끼던 오연우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모습은 굉장히 믿기 힘든 장면이었다.
티아는 그런 오연우의 변화를 만족스럽게 쳐다봤다.
이 모습을 전부 지켜본 몇몇 시청자들이
-기적이다. 티아 공주님이 기적을 일으켰다.
-민트 초코 맛을 모르는 불쌍한 연우 PD에게 축복을 내리셨다.
-티아 공주님이야말로 민트 초코의 여신이다.
-뭐야. 이 사람들 갑자기.
오연우에게 일어난 일을 기적이라 칭하며 티아를 떠받들기 시작했다.
나 역시 갑자기 이상하게 변해버린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때, 눈앞에 나만 볼 수 있는 알람이 떠올랐다.
[아라스티아 공주의 추종자가 생겨났습니다.]
[추종자의 숫자를 늘려 권능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추종자 숫자 48명.]
[다음 권능 개방 필요 추종자 100명.]
‘이건 또 뭐야?’
‘균숙자네 퓨이’ 채널의 두 번째 라이브 방송에 처음 등장한 아라스티아 공주.
훗날, 이 방송 영상은 티아 공주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기적의 영상이라 불리며 많은 사람의 성지순례가 끊이지 않게 된다.
또한, 라이브를 보고 티아 공주의 추종자가 된 사람들은 그 뒤로 열렬한 활동을 통해 그 세력을 넓혀나갔다.
추종자들은 스스로를 ‘민티단’이라 칭하며 사회 곳곳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영원한 고통의 시작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