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49화
20. 출격! 티아 공주님(2)
토요일 오후.
‘균숙자네 퓨이’ 채널에 긴급 공지가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연우 PD입니다.
-최근에 균숙자님이 바쁘셔서 한동안 영상 업로드가 없었습니다.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라이브 방송 영상에서 조금 오해가 생길 여지가 있어 편집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행동이 오히려 영상을 시청하신 분들의 의문을 키워드린 것 같네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절대 노이즈 마케팅이나 조작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일. 일요일 오후 5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균숙자님과 퓨이의 근황 이야기부터 많은 분이 궁금해하셨던 ‘그 장면’에 대해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풀어놓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내일 라이브 방송을 위해 꾹 참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갑작스러운 라이브 방송 일정 공지에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번엔 본방사수한다!!
-영상 너무 안 올라와서 기다리기 힘들었는데. 라이브 방송이라도 해주신다니 고맙습니다.
-저번 라이브 방송도 꿀잼이었어요. 이번에도 꿀잼 기대합니다.
오랜 공백 기간에 힘들어하던 구독자들은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환호하기도 했고.
-으어. 하루를 어떻게 기다려. 지금도 궁금해 죽을 것 같은데.
-오늘이라도 짧게 라이브 해주면 안 되나? 나도 궁금해 미칠 것 같다.
하루도 더 참기 힘들다는 반응도 있었고.
-도대체 ‘그 장면’의 정체는 뭘까? 맥빠지게 텐트 안에 있던 인형이라던가, 잘못된 영상이라는 변명은 하지 않겠지?
-게시판에 화제 글 보고 왔는데 인형은 절대 아닌 듯.
-그냥 별거 아닌데 관심 끌려고 뭔가 있는 척하는 것 같은데. 퓨이 만큼 귀여운 친구가 한 명 더 있었으면 뭐하러 숨김? 바로 너튜브 출연시키지.
‘그 장면’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 * *
점심시간이 지난 일요일 오후.
오늘 있을 라이브 방송에 앞서 오연우가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방문했다.
하지만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오연우를 따라온 일행이 한 명 더 있었다.
“형. 어제 말씀드렸던 제 여자친구 손보미에요.”
“안녕하세요. 손보미라고 해요.”
“네. 안녕하세요. 전세진입니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에 화려한 분위기를 가진 20대 미인 여성.
바로 오연우의 여자친구였다.
화려한 분위기와 어울리게, 높은 톤의 목소리로 친근하게 내게 말을 걸었다.
“연우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근데 깜짝 놀랐네요. 균숙자님이 아티팩트 경연대회 우승 시연자였다니. 연우가 그런 이야기는 안 해줬거든요.”
손보미는 나를 보며 마치 연예인을 만난 팬처럼 눈을 빛냈다. 악의는 없겠지만 엄청나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세진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저한테도 연우처럼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알았어. 그럼 편하게 할게. 오늘 휴일인데 도와주러 와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제가 엄청나게 하고 싶다고 연우한테 매번 졸랐거든요. 허락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오늘 오연우의 동갑내기 여자친구, 손보미가 균열에 오게 된 이유는 라이브 촬영에 앞서 메이크업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현재 메이크업 일을 하는 그녀는 우리 채널의 영상을 보고, 꼭 메이크업을 해주고 싶다며 예전부터 오연우에게 부탁을 한 모양이다.
오연우는 내가 부담스럽지 않게 계속 여자친구의 부탁을 거절하다가, 어제 처음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냈었다.
솔직히 가면 쓰고 방송하는 데 메이크업이 필요한가 싶기도 했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이라 궁금하기도 하고, 오연우를 믿는 마음에 흔쾌히 균열의 방문을 허락해 줬다.
손보미는 내 다리 뒤에 숨어 낯선 사람을 살피던 퓨이와 티아를 발견하고 다시 눈을 빛냈다.
“어머! 퓨이를 실물로 보게 될 줄이야.”
“퓨이?”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이리저리 퓨이를 살폈다. 퓨이는 낯선 사람이 아직 어색한지 내 다리 뒤에서 조심스럽게 그녀를 살폈다.
손보미는 한참을 퓨이를 살피다 그 옆에 있던 티아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티아 공주님이시죠? 저는 손보미라고 해요.”
오연우에게 미리 들었는지 아주 자연스럽게 티아를 공주님이라 불렀다.
그녀의 언행이 마음에 들었는지 티아는 경계심을 내려놓고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래. 만나서 반가워.”
“제가 수제 초콜릿을 조금 가져왔는데 같이 드실래요?”
“수제 초콜릿?”
“퓨이?”
손보미는 가져온 가방 속에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상자를 꺼내더니 아이들 앞에서 열어 보였다.
“우와!”
“퓨이!”
상자 안에는 알록달록하고 예쁘게 만들어진 수제 초콜릿들이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었다.
달콤한 초콜릿 냄새와 예쁜 모양새가 아이들의 관심을 단번에 끌어들였다.
손보미는 직접 초콜릿을 꺼내 티아와 퓨이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건네받은 초콜릿을 맛보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남아 있던 경계심은 수제 초콜릿 한 방에 싹 없어져 버렸다.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래서 옛날부터 어른들이 맛있는 거 사주는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고 매번 아이들에게 말하는구나.’
퓨이와 티아는 균열에서만 지내다 보니 낯선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이 없긴 해도. 언젠가 한 번 안전 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전부 나눠준 손보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요?”
그녀는 나를 편안한 의자에 앉히고 가져온 메이크업 상자를 옆에 꺼냈다.
상자 안에 수많은 화장품과 도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초콜릿을 먹고 있던 아이들이 메이크업 상자가 신기한지 가까이 다가와 구경을 했다.
얼굴 세안은 끝낸 상태에서 손보미가 본격적으로 내 얼굴에 뭔가를 바르기 시작했다.
“어머, 오빠. 화장품 뭐 써요? 피부가 정말 좋은데?”
“응? 나는 간단히 스킨, 로션만 쓰는데.”
“정말요? 근데 피부가 너무 촉촉하다.”
그녀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형. 뭐 좋은 거 먹었어요? 최근에 피부가 엄청나게 좋아진 것 같은데.”
오연우 마저 동조하며 질문했다.
딱히 피부 관리에 신경을 쓰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내가 어리둥절 해졌다.
‘혹시 온천 때문에 그런 건가?”
아무래도 최근에 쉬는 동안에 자주 애용했던 온천에 피부미용의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피부가 깨끗하셔서 파운데이션도 많이 안 발라도 되겠어요.”
간단한 메이크업을 끝내고, 이번엔 머리 손질에 들어갔다.
그녀의 능숙한 머리 손질에 덥수룩한 머리 모양이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확실히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이 제대로 살아났다. 거기다 메이크업 덕분인지 조금은 젊어진 기분까지 들었다.
반면 손보미는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흐음. 옷만 조금 덜 칙칙한 느낌이었으면 정말 완벽했을 텐데.”
아무래도 그녀는 내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손보미가 내 옷을 보며 미간을 좁히고 있을 때, 티아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녀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응?”
“나도 해주면 안 돼?”
“어머. 공주님도 메이크업 받고 싶으세요?”
-끄덕끄덕
질문에 티아가 살짝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손보미는 감격한 표정으로 ‘어머!’를 연발하더니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아마 그녀는 내 허락을 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녀는 크게 기뻐하며 곧바로 티아를 의자에 앉히고 메이크업에 들어갔다.
티아의 메이크업 시간은 길게 걸리지 않았다. 기본 화장에 아주 약한 색조 화장을 넣어 분위기를 살렸다.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색조 화장이 티아의 인형 같은 분위기를 잘 살려주었다.
“세진. 나 어때?”
화장을 끝낸 티아가 쪼르르 내게 달려와 물었다.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묻는 귀여운 모습에 나는 일부러 과장된 표정으로 칭찬해 줬다.
“너무 예쁘다. 몰라볼 정도로 예뻐.”
“헤헤.”
티아는 내 칭찬이 마음에 들었는지 배시시 미소 지었다.
이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손보미의 바지를 또다시 누군가가 잡아당겼다.
“응?”
“퓨이. 퓨이.”
이번엔 퓨이가 손보미에게 메이크업을 부탁했다. 그녀는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퓨이도 메이크업해 달라고?”
“퓨이!”
천진난만한 미소로 부탁하는 귀여운 퓨이의 모습에 손보미는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럼 손님. 의자에 앉아주실까요?”
“퓨이!”
그녀의 말에 따라 퓨이가 얌전히 의자 위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 퓨이야. 피부가 완전 꿀피부다. 너무 매끈매끈하고 부드럽네. 평소에 관리 많이 하나 봐.”
“퓨이!”
가장 짧은 시간에 메이크업을 끝낸 퓨이가 나에게 향해 다가왔다.
“퓨이!”
솔직히 크게 변한 게 없는 모습이었지만, 기대감에 가득 찬 퓨이에게 티아와 마찬가지로 칭찬을 해줬다.
“너무 귀엽다 퓨이야. 매일 메이크업 받아야겠어.”
“퓨이!”
퓨이 역시 내 칭찬에 만족스러운 듯 소리를 냈다.
손보미 덕분에 메이크업을 받으며 나와 아이들은 라이브에 앞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 *
시간은 어느덧 오후 5시.
방송 셋팅은 이미 완료하고 나와 퓨이, 오연우가 나란히 앉아 라이브 방송을 준비했다.
두 번째라 라이브 방송이라 첫 번째보다는 덜 긴장 되는 것 같았다.
“이제 시작할게요.”
“난 준비 됐어.”
“퓨이!”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고 화면에 우리의 얼굴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우르르 입장하기 시작했다.
-오오. 시작했다.
-퓨하!
-안녕하세요.
-너무 오랜만에 오신 거 아니에요? 퓨이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퓨이!”
[액귀액귀 ₩1,000원 후원]
-균숙자님. 오늘 뭔가 더 좋아 보이는데. 일이 있었던 게 아니라 놀다 오신 건 아니죠?
“액귀액귀님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정말 일이 바빴습니다. 너튜브를 시작하기 전부터 하고 있던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tkaektn ₩1,000원 후원]
-그래서 ‘그 장면’에 대한 진실은??
“tkaektn님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그 이야기는 근황 이야기부터 먼저 나눈 후에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들과 후원 글을 읽으며 잠시 소통을 하는 사이.
벌써 3,000명이 넘는 시청자가 라이브 방송에 접속했고,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청자들이 모였다고 생각해서 오연우가 오늘 계획했던 방송을 진행했다.
“먼저 균숙자님 근황부터 물어봐야겠죠. 왜 한동안 영상이 안 올라왔는지 말씀 좀 해주세요.”
오연우의 질문에 나는 준비해 뒀던 대답을 차분히 내놓았다.
“혹시 아실지 모르겠는데 최근에 열렸던 아티팩트 박람회 때문에 바빴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공방이 그 박람회에 참여했었거든요.”
“지금 아티팩트 공방에서 일하시는 거죠?”
“네. 아무래도 공방으로서 중요한 행사다 보니 영상을 찍고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기다리신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쩝. 생업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지.
-딱 아티팩트 박람회 기간이랑 겹치길래 혹시나 했는데, 균숙자님은 진짜 그쪽 분야 종사자였네.
-박람회인가 뭔가 중요한 거임?
-국내에서 열리는 아티팩트 관련 가장 큰 행사임. 아티팩트 공방 입장에서는 무조건 중요하지.
너튜브를 시작하기 전부터 하고 있던 일이었고, 중요한 행사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이해를 해주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근데 균숙자님. 아티팩트 경연대회에 우승했던 그 시연자랑 닮은 것 같은데. 설마 동일인물인가?
‘헉…….’
가면을 쓰고 있는데도 알아보는 시청자 한 명.
다행히 다른 글들에 밀려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글을 읽자마자 식은땀일 날 정도로 당황했다.
보통 공방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아티팩트를 제작하는지, 이번 박람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는지 등등.
한동안은 일상적인 질문이 오갔다.
오연우와 퓨이에 대한 근황 이야기도 짧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제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애피타이저는 충분히 맛봤으니 본 메뉴를 꺼내주시죠.
시청자는 어느새 5,000명을 넘어가고 있었고.
이제는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았다. 나와 오연우에게 눈빛 교환으로 때가 왔음을 알렸다.
“자. 이제 저희의 근황에 관해서는 충분히 말한 것 같고. 두 번째 이야기해볼 텐데요.”
오연우가 슬슬 이야기를 꺼내자 채팅창이 조금씩 가열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김씨 ₩2,500원 후원]
-두근두근. 두둥두둥.
[네넴띤 ₩5,000원 후원]
-이 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시원하게 이야기해 주시죠.
“먼저 ‘그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절대로 의도된 조작이나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었음을 알려드릴게요.”
-알았으니까 빨리 이야기해 줘요.
-빨랑!!!
“그럼 균숙자님.”
오연우가 나에게 신호를 보냈고. 나는 화면 밖을 바라보며 손짓을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민트색 머리칼의 티아가 날아와 내 무릎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
-뭐야! 이 귀여움 덩어리는.
귀여운 티아의 모습에 채팅창이 본격적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