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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48화 (48/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48화

토요일 오전.

나는 밍기적밍기적 몸을 일으켰다.

아티팩트 경연대회 이후로 신지아는 엄청나게 바빠졌는데. 반대로 나는 쉬는 시간이 많아졌다.

대회 준비 때는 하루도 빠짐없이 공방을 들락날락했지만, 바빠서 거의 매일 공방을 비우는 그녀 때문에 나 역시 출근할 이유가 없었다.

정 씨 가족은 내가 대회로 바쁜 와중에도 균열 제거 일을 조금씩 해왔는데.

지금은 선우와 아연의 시험 기간이 겹쳐 아주 잠시 일을 쉰다고 한다.

나 혼자 균열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 나도 덩달아 쉬는 수밖에 없었다.

“퓨우우…….”

“음냐.”

아직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젯밤에 너무 늦게까지 놀았나?’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새벽까지 보느라 늦게 잠들었던 탓인지 아이들은 아직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좋아해서 같이 보다가, 생각보다 흥미로운 스토리에 어린이 애니메이션임을 잊고 나도 몰입해 시청했다.

그 덕분에 나와 아이들은 새벽 늦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달콤한 잠에서 깨우는 게 살짝 미안했지만, 너무 늦게 일어나면 또 밤늦게까지 자지 않을 것 같아서 억지로 아이들을 깨웠다.

“얘들아. 벌써 아침이야. 일어나야지.”

최대한 부드럽게 꺼낸 말에도 아이들은 괴로운 듯 얼굴을 찌푸렸다.

티아와 퓨이는 내 목소리를 피해 이불 속으로 꾸물꾸물 기어들어 갔다.

그 모습이 귀엽게 보여 살짝 마음이 흔들렸지만. 굳게 마음을 다잡으며 이불을 휙 걷어냈다.

“착한 어린이는 일찍 일어나야지.”

“으으. 조금만 더 잘래.”

“퓨우우.”

어리광 섞인 잠투정을 부리는 아이들.

나는 아이들을 부드럽게 다독여 양팔 가득 안아 들며 말했다.

“따뜻한 온천에 들어가서 씻고 나오자.”

* * *

“흐아아.”

뜨거운 온천물에 아침부터 몸을 담그니, 약간 찌뿌둥했던 몸이 순식간에 풀리며 온몸에 활기가 돌았다.

나를 따라 들어온 퓨이와 수건을 두른 티아도 온천에 편안히 몸을 맡겼다.

퓨이는 녹아버릴 것 같이 온천을 둥둥 떠다니며 본인 나름대로 온천을 즐겼고.

티아는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따뜻한 온천물에 들어오자마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런 티아를 살짝 끌어당겨 쓰러지지 않게 지지해 줬다.

한동안 뜨끈한 온천에 몸을 맡긴 후.

빠져나와 세면장으로 향했다.

아르키트 나무 톱니바퀴’를 4개 사용하여 온천을 3레벨로 올리고, 추가로 톱니바퀴를 4개 더 투자해서 온천 옆에 세면장을 만들었다.

거기다 이제는 온천의 온도 조절을 할 수 있게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도 나온다.

온천탕만 덩그러니 있던 공간에서, 작은 규모의 목욕탕처럼 변한 것.

나무 톱니바퀴를 8개나 사용했지만,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다.

내 앞에 티아를 앉혀두고 샴푸를 이용해 직접 머리를 감겨 주었다.

“아직이야?”

“조금만 기다려. 이제 씻겨줄게. 눈 따가우니까 꼭 감고 있어.”

“응.”

샤워기를 이용해 머리에 남은 거품이 없도록 꼼꼼하게 물로 헹궈주었다.

그 옆에서 퓨이는 온몸에 거품을 일으켜 혼자서 몸을 씻어내고 있었다.

몸을 씻은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잠시 탕에 보내 놓은 뒤, 얼른 내 몸을 씻기 시작했다.

* * *

텐트로 돌아온 나와 아이들.

-휘이이잉!

나는 드라이기를 이용해 아직 물기에 젖은 티아의 머리를 말려주었다.

티아의 민트색 머릿결이 따뜻한 바람에 휘날리며 향긋한 샴푸 냄새를 사방에 뿌렸다.

내가 티아의 머리를 말려주는 동안.

티아와 퓨이는 내가 냉장고에서 꺼내준 단지 모양의 바나나 우유를 빨대로 맛있게 마시고 있었다.

어렸을 적에 대중목욕탕을 많이 가보지는 못했지만.

목욕탕에 아들과 함께 온 아버지가 사주는 바나나 우유.

흰 빨대를 꽂아 조금씩 쪽쪽 빨아먹는 단지 모양의 바나나 우유가 그렇게 부러웠었다.

내가 마시는 건 아니지만.

입에 빨대를 물고 귀엽게 바나나 우유를 마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그때의 아쉬웠던 마음이 조금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목욕을 끝내고 나니 늦게 일어났던 탓에 벌써 점심을 먹을 시간에 가까워졌다.

아이들과 무슨 점심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내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

오연우에게서 온 전화였다.

아티팩트 경연대회를 준비하느라 정말 오랜만에 하는 통화였다.

“연우야. 오랜만이네.”

“네, 형. 아티팩트 대회 기사 봤어요. 그거 형 맞죠?”

“어. 그래. 그렇게 됐다.”

“조금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잘은 모르지만, 엄청 대단한 일이라면서요? 더블 세븐(Double Seven).”

오연우는 살짝 흥분된 목소리로 감탄했다.

나는 몇 번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해왔던 말을 다시 반복해서 말했다.

“진짜 대단한 일은 제작자가 한 거야. 나는 시연만 한 거고.”

“그 미인 여자 제작자분 말씀하시는 거죠? 요즘 인터넷에 그분 이야기로 장난 아닌데. 그런 의미에서 형도 대단한 일을 하신 것 같은데요?”

은근한 목소리로 나를 추켜세우는 오연우.

나는 두 번째로 많이 되풀이했던 말을 다시 입 밖에 꺼냈다.

“뭔 상상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거 아니야.”

“흐흐.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만나서 듣고 싶은데. 오늘 균열에 가도 돼요? 너튜브 일로 말해야 할 것도 있어서요.”

“응. 나는 괜찮아. 아직 점심 안 먹었으면 같이 점심 먹자.”

“오케이. 그럼 제가 점심 사 갈게요.”

* * *

오연우는 사 온 점심 메뉴는 피자였다.

치즈가 쭉 늘어지는 따뜻한 피자를 먹으며, 오랜만에 만난 오연우와 이야기를 나눴다.

“당분간 바빠서 영상 못 찍을 것 같다고 하시더니. 설마 저렇게 큰 대회를 준비하고 있을 줄 꿈에도 몰랐어요. 거기다 대회 우승까지 하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단한 건 제작자인 지아 씨야.”

시작은 아무래도 아티팩트 대회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 사건이 많았던 대회다 보니, 꽤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와 오연우, 아이들이 피자로 만족스럽게 배를 채웠을 때, 오연우가 조심스럽게 너튜브 채널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세진이 형. 혹시 저번에 했던 라이브 방송 기억나세요?”

“응. 기억나지.”

처음으로 도전해 봤던 라이브 방송.

시작은 어색하고 많이 긴장도 됐지만.

가면 갈수록 많은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을 나누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방송을 진행했었다.

‘물론 금전적으로도 꽤 짭짤했고.’

“라이브 방송 또 하자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것 좀 보실래요?”

오연우는 노트북을 꺼내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이건 우리 라이브 영상이네?”

“맞아요. 근데 이 부분 좀 자세히 보세요.”

문제의 부분은 백만 원 후원금이 터졌을 때, 퓨이가 텐트에서 스케치북을 가지고 나오는 장면이었다.

우리 뒤쪽에 보이는 텐트 입구에 티아의 모습이 아주 살짝 보였다.

그 뒤로도 몇 장면씩 티아의 모습이 노출됐었다.

“그때 퓨이가 보여준 스케치북 리액션 덕분에 정신이 없어서. 저도 화면을 제대로 체크 못 하고 있었네요.”

“으음.”

“그래서 지금 채널 커뮤니티 게시판이 난리가 났거든요.”

오연우가 이번엔 ‘균숙자네 퓨이’ 채널의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여줬다.

그중 최근에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게시물은.

라이브 영상에서 흐릿하게 보였던 티아의 모습을 정밀한 해상도 복원으로 선명하게 만들어놓은 익명의 시청자 게시물이었다.

아주 잠깐 보인 짧은 몇 장면으로 어떤 마술을 부린 것인지, 꽤 선명하게 티아의 모습을 재현해 놨다.

“와. 이런 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아니, 형.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시청자들 반응 좀 보세요.”

-채널 주인장은 저 귀여운 생명체를 혼자 보지 말고 당장 공개해라.

-채널 구독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라!

-퓨이만 있는 줄 알았는데. 너무 부럽다!!

-아니, 편집자는 왜 영상 안 올리는 거야? 광고를 몇 개씩 때려 박아도 전부 봐줄 테니까 빨리 영상 올려.

-2주나 영상을 안 올려주다니. 너무해요. ㅜㅜ

수많은 궁금증과 의문을 낳았던 티아의 존재.

그리고 대회 준비로 2주 가까이 영상이 올라오지 않았던 시기가 교묘히 맞물려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대부분 사람은 좋은 의미로 궁금증을 풀어줄 영상을 부탁했지만, 몇몇은 의도적인 노이즈 마케팅이라 욕하며 험한 말도 적어놨다.

오연우는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형. 티아 공주님. 한번 출연시키시죠.”

“…….”

퓨이와 놀고 있던 티아가 귀신같이 오연우의 말을 듣고 곁으로 뛰어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정말? 나도 이제 영상에 나오는 거야?”

아직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티아는 살짝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그거 사줘도 소용없어. 나도 꼭 영상 찍을 거야.”

“끄응.”

저번에 라이브 방송에 출연하지 못해 크게 상심한 티아를 달래기 위한 비장의 수단.

바로.

아주 유명한 디저트 가게에서 예약 주문을 해야만 먹을 수 있는 민트 초코케이크!

예약을 못 해서 직접 가게를 찾아가 몹시 어렵게 구한 민트 초코케이크로 티아를 겨우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티아가 먼저 나서 저번에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며 엄포를 놓았다.

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이번에는 간절한 표정으로 내 팔에 달라붙어 애원했다.

“앞으로 세진 말 잘 들을 테니까. 나도 영상 찍으면 안 돼?”

마치 귀여운 딸아이의 애교에 녹아버리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간절한 표정으로 애원하는 티아의 모습을 보니 더 이상 고집부리기 힘들었다.

슬쩍 오연우의 눈치를 보니 녀석도 꽤 티아의 출연을 바라고 있는 듯했다.

사실 우리 채널의 영상을 볼 때마다 굉장히 부러워하고, 쓸쓸해 하는 티아의 모습이 안쓰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금 급작스럽긴 했지만, 수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나도 영상에 나와도 돼?”

“그래. 대신 내 말 잘 들어야 해. 알았지?”

“알았어, 세진. 너무 좋아.”

티아는 내 품에 쏙 안겨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부드러운 머릿결을 기분 좋게 쓰다듬어 줬다.

잠시 후 티아는 내 품을 떠나 퓨이에게로 가더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퓨이야. 나도 이제 영상에 나와도 된대.”

“퓨이?”

“그래. 퓨이랑 같이 하는 거야.”

“퓨이! 퓨이!”

퓨이와 티아는 서로 얼싸안고 텐트 이곳저곳 뛰어다녔다. 너무 기뻐하는 모습에 내가 당황할 정도였다.

‘저렇게 좋아하다니. 빨리 허락해줄 걸 그랬네.’

텐트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오연우에게 시선을 옮겨 물었다.

“그럼. 영상은 언제 찍을 거야?”

“그게 말이죠. 아직 티아 공주님과 함께할 컨텐츠를 따로 준비해둔 게 없기도 하고. 2주 동안 영상을 안 올려서 좀 급하거든요.”

“……?”

“내일 바로 긴급 라이브 방송 어떠세요?”

그렇게 너튜브에 티아 공주님의 첫 등장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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