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47화 (47/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47화

19. 뒷 이야기

침대에 누워 있는 강유환 회장 곁으로 정장 차림의 20대 중반 여성이 다가왔다.

“혜린아. 왔느냐?”

“네. 회장님.”

강유환은 환한 미소로 여자를 맞이했다. 반면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녀의 딱딱한 행동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따뜻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시하신 일에 대해서 보고드릴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물론이지.”

여자는 침대의 머리 쪽 부분을 조작해 강유환 회장이 편히 앉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회장은 옆 테이블에 놓여 있던 돋보기안경을 착용하고 그녀가 건넨 서류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이번 아티팩트 경연대회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조사했습니다.”

회장은 서류를 훑어보다가 ‘홍세완’이라는 이름에 시선을 멈췄다.

“홍세완 본부장은 지금 뭐 하고 있나?”

“어제 간단한 업무 지시만 내리고 곧바로 휴가를 냈습니다.”

꽤 오랜 세월 자신과 회사를 위해 일해오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변해버린 그의 마음에 강유환은 씁쓸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어느 때보다 냉정했다.

사랑했던 아내를 기리기 위한 대화다. 그 대회를 망치려 드는 사람은 그 누구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본부장 혼자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거고. 개입된 쪽은 확인해 봤나?”

“대회에 참가했던 기업들과 그 쪽에서 손을 쓴 것 같습니다.”

“흐음.”

강유환 회장은 미간을 좁히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점점 약해져 가는 자신 때문에 어둠 속의 존재들이 조금씩 발톱을 들이미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미래 그룹 내의 사람들도 모두 믿을 수 없는 처지가 돼버렸다.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을 모두 밝혀내 처리해야 해. 그리고 홍세완 본부장은 깔끔하게 정리하도록.”

“알겠습니다.”

짧은 보고였지만 강유환 회장은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시 돋보기안경을 내려놓고 한 손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문질렀다.

“괜찮으십니까?”

여자는 표정은 그대로지만 걱정을 한가득 담은 눈빛으로 물었다.

회장은 애써 미소 지으며 다시 돋보기안경을 착용했다.

“이 정도는 아직 괜찮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

여자의 눈빛에는 염려의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보고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30분 정도 보고와 결제가 이어지고.

“지시하셨던 혜윰 공방의 대표. 신지아 씨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 어디 보자꾸나.”

신지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강유환 회장은 지끈거리던 머리가 조금 풀어지는 것 같았다.

여자가 건넨 문서에는 신지아에 대한 꽤 상세한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강유환 회장은 자료를 읽어내려가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단하군. 아직 아티팩트 제작자로 경력도 길지 않은데 이런 성과라니. 정말 대단해.”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지식은 있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짧은 기간에 더블 세븐을 달성했다니.”

그는 신지아를 통해 과거의 아내를 떠올리며 아련한 감상에 젖어 들었다.

회장의 아내였던 이연수 여사도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 업적을 달성해냈다.

아마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신지아를 밤새 끌어안고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눴으리라.

짧은 감상에 벗어나 그는 여자에게 질문했다.

“이 아이에 대한 지원은 잘 이루어지고 있나?”

“일단 여러 일정을 관리해줄 매니저와 운전기사, 경호 요원을 투입했습니다. 지금은 최인환 비서실장님이 직접 보고받고 관리하고 계십니다.”

“그렇군.”

회장은 믿음직스러운 최인환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지?”

“네. 인터뷰 요청은 물론이고, 방송 출연 제의부터, 수많은 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외국 대기업도 꽤 많다고 합니다.”

살짝 회장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신지아가 대단한 재능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아직 제작 경험과 감각이 부족했다.

세계 최초의 더블 세븐이지만.

그게 가장 뛰어난 아티팩트 제작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아티팩트 제작자가 가져야 할 소양 중 하나에서 큰 성과를 얻었다고 봐야 했다.

지금 러브콜을 보내는 기업 중에는 그녀의 재능을 원하는 기업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녀의 지식만을 노리고 접근하는 기업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그녀가 세계 최고의 아티팩트 제작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결정될 중요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강유환 회장은 영상으로 본 신지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강렬한 책임감을 느꼈다.

“혜린아. 이 아이에 대한 지원은 꼭 미래 그룹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좋다. 내 개인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을 테니 신경 써줬으면 좋겠구나.”

“알겠습니다.”

회장은 믿는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데 회장님.”

“왜 그러느냐?”

“신지아 씨와 함께 시연자로 대회에 참가했던 전세진 씨 혹시 기억하십니까?”

“허허. 기억하다마다.”

그는 전세진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신지아와 연인이냐는 질문에 당황하며 말을 더듬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혜윰 공방을 조사하던 중에 전세진 씨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졌는데. 굉장히 놀라운 사실을 몇 가지 알게 됐습니다.”

강유환 회장은 이번에는 굉장히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녀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첫 번째로 신지아 씨와 전세진 씨는 그렇게 오래된 사이는 아니라는 겁니다. 특히 혜윰 공방의 직원으로 일하게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흐음. 그런가?”

살짝 의외긴 했지만, 그렇게 놀라운 소식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전세진 씨에 관련된 정보가 차단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

“아직 전세진 씨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국가 기관 쪽에서 그의 존재를 주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장은 오늘 보고를 받는 와중에 처음으로 놀라운 감정이 떠올랐다.

그냥 평범한 공방 직원인 줄 알았는데 아직 숨기고 있는 사실이 많은 것 같았다.

놀라운 소식이긴 했지만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던 강유환 회장은 여자의 다음 이야기에 정말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전세진 씨는 저와 같은 출신입니다.”

“설마……?”

“네.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허허허.”

강유환 회장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건 기막힌 우연인 건가? 아니면 우연을 가장한 지독한 운명인 건가?’

전세진과 신지아.

아티팩트 경연대회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지만.

회장은 절대로 그들과 인연이 우연이 아니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 * *

“으으음.”

티아는 눈앞에 쌓여 있는 젠가 블록들을 유심히 살피며 고민하고 있었다.

“퓨이?”

“잠깐만 기다려봐. 금방 할 거야.”

“티아 공주님.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닌가요?”

“진짜 한다니까.”

퓨이와 정아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끙끙대는 티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티아는 고심 끝에 가운데 블록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나 빼 들었다. 아주 살짝 블록 탑이 흔들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뽑아 든 블록을 조심스럽게 탑 위에 올려놓고, 티아는 한숨을 돌렸다.

티아는 곧바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헤헤. 봤지? 이제 퓨이 차례야.”

“퓨우…….”

“이번에는 퓨이가 정말 위험하겠는데?”

“이거 무너뜨리는 사람이 간식 못 먹는 거야.”

상황이 완전히 뒤집혀 티아와 정아윤이 퓨이를 놀리기 시작했다. 퓨이는 맛있는 간식을 지켜내기 위해 꼬리를 세우고 이곳저곳 둘러봤다.

오랜만에 균열을 찾아온 정 씨 가족은 처음 만난 티아와 쉽게 친해졌다.

티아가 처음 왔을 때 비해 성격이 변한 것도 있고, 정 씨 가족 모두가 티아를 예뻐했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와. 세진아. 나는 아직도 안 믿긴다. 기사 1면에 이렇게 아는 사람의 얼굴이 나올 줄이야.”

대훈 아저씨는 직접 구매해온 신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신문 1면에는 신지아의 모습과 그 옆에 서 있는 내 모습이 나와 있었다.

“아저씨. 그만 좀 이야기해요. 창피하니까.”

“창피하긴. 자랑스러워해야지. 나는 벌써 주변 사람들한테 다 자랑했는데. 여기 신문에 나온 사람이 우리 파티원이라고.”

“어우…….”

아저씨는 나를 정말 자랑스러워 하는 것인지, 일부러 놀리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부끄럽게 했다.

분명 자랑스러워 할만한 일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낯간지럽고 어색해서 참을 수 없었다.

“형. 이것 보세요.”

정선우는 내 앞에 휴대폰 화면을 불쑥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심사장에서 시연을 보이며 번쩍 손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엄청나게 흥분된 상태에서 앞뒤 생각 않고 저질렀던 일인데. 말짱한 맨정신에 보니까 너무 창피했다.

“친구들한테 자랑해도 되요? 여기 나오는 사람이 나랑 친한 형이라고.”

“…….”

아저씨와 선우의 양방 공격에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고개를 숙여버렸다.

아직도 블록을 뽑지 못해 끙끙거리는 퓨이를 놀리고 있던 정아윤이 나를 향해 말했다.

“오빠.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요.”

“…….”

“진짜 부끄러워해야 할 부분은 이거 아닌가?”

아윤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찾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아티팩트 제작자 신지아 씨는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로 시연자 전세진 씨를 언급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윤도 나를 향해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웃고 있는 신지아와 옆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찍혀 있었다.

‘와. 근데 나 저렇게 칠칠맞지 못 하게 웃고 있었나?’

기자회견 때 굉장히 열심히 표정 관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보니 전혀 아니었다.

“아니, 오빠. 이렇게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빨랑빨랑 이야기를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맞아요. 형. 서운해요.”

“그래, 세진아. 그건 좀 너무했다.”

나는 정 씨 가족의 타박에 사실을 이야기해 줬다.

“그냥 공방 사장님과 직원 관계에요.”

“지금 이 사진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서로 눈에서 꿀이 뚝뚝 덜어지는구먼.”

아윤이 범죄자를 심문하는 형사처럼.

증거 사진을 들이밀며 나를 압박했다.

“퓨이!”

그때 젠가 블록 꺼내기에 성공한 퓨이가 웃으며 환호했다.

“이 오빠 안 되겠네. 벌로 젠가 블록 하나 뽑으세요.”

“아니. 나는 하지도 않는데 갑자기…….”

“우리를 속인 벌이에요. 빨리 뽑아요.”

나는 어쩔 수 없이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불안한 젠가 탑에 손을 가져갔다.

-툭. 와르르르!

블록 하나를 뽑자마자 탑은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와아아!”

“퓨이!”

내가 젠가를 쓰러뜨리자 티아와 퓨이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자. 그러면 우리는 맛있는 간식 먹을까?”

“좋아!”

“퓨이!”

아윤은 티아와 퓨이를 데리고 간식을 먹으러 가버렸다. 물론 내 몫의 간식은 없고, 뒷정리는 내 차지였다.

“하아.”

나는 길게 한숨을 쉬며 대회 날 저녁 공방 앞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 * *

공방 앞에 멈춘 고급 차량에서 피곤한 얼굴의 신지아가 문을 열고 내렸다.

그녀는 뒤따라 내린 20대 초반의 여성에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오늘은 일정이 빡빡해서 지아 님이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내일은 오후부터 스케줄이 있을 예정이니 오전에 시간 맞춰 연락드리고 모시러 오겠습니다.”

여자 매니저는 내일 일정을 간단히 알려주고 운전기사와 함께 공방을 떠나갔다.

신지아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공방 문을 열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털썩!

겉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누운 그녀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정말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 3건, 러브콜을 보내오는 기업과의 미팅 2건.

덕분에 비싼 메이크업 가게에서 받은 화장을 지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 기사를 찾아봤다.

첫날만큼은 아니지만 오늘도 그녀에 관한 수많은 기사가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이따금 언급되는 한 사람.

기사 속 사진에 나온 전세진의 모습을 보고 신지아는 울상을 지었다.

‘그날 도대체 왜 그런 거지?’

아티팩트 경연대회 날.

너무 힘든 와중에 전세진은 그녀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다.

또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치 백마 탄 왕자님처럼 그녀를 구해주었다.

정리되지 않은 정체 모를 감정이 더 위력적인 것처럼.

그녀의 마음을 부풀게 했던 감정의 소용돌이는 모든 이성을 잡아 먹어버렸다.

그래서일까.

그날은 너무 감성적으로 변했던 것 같았다.

-라면 먹고 가실래요?

“으아앙!”

그녀는 이불을 뻥뻥 차며 베개에 얼굴을 묻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만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세진 씨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날 이후에도 메시지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그녀의 바쁜 일정 때문에 직접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동안 침대를 뒹굴뒹굴하던 그녀는 휴대폰 화면을 응시하며 아주 작게 속삭였다.

“보고싶다…….”

* * *

“라면 먹고 가실래요?”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극심한 허기를 느끼며 본능적으로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려 했지만.

그 순간!

♩∼♬∼♪

정말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주머니 속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잠깐 이성을 되찾은 나는 그녀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세진! 언제 와?

-퓨이!

휴대폰을 통해 아이들의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좀 있으면 갈 건데. 왜 그래?”

-우리 배고파. 집에 먹을 게 없어.

-퓨우우.

“아아…….”

오늘 대회 일정이 이렇게 늦게 끝날 줄 몰랐기 때문에.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고 깜짝 놀랐다.

-빨리와. 세진 보고 싶어.

-퓨이. 퓨이.

보고 싶다는 아이들의 외침에 가슴이 저릿해졌다.

“응, 알았어. 금방 갈게. 조금만 기다려.”

나는 아이들을 달래주고 통화를 종료했다.

아직도 공방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신지아를 향해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정말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 그녀에게 말했다.

“저 지아 씨.”

“……?”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아…….”

신지아의 입에서 탄식과도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짧은 순간 그녀의 눈에서 실망, 슬픔, 부끄러움이 뒤섞인 감정이 여과 없이 흘러나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황급히 표정을 수습한 그녀가 허둥지둥 말했다.

“아, 아쉽네요. 그럼 저 먼저 올라가 볼게요.”

“지아 씨.”

-쾅!

내 부름에도 신지아는 공방의 문을 세차게 닫아버리고 떠나갔다.

나는 멍하니 닫혀버린 문을 한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아오. 이 병신같은 놈.”

* * *

-후르르륵.

내가 끓여준 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 티아와 퓨이.

정말 배가 많이 고팠는지 쉴 새 없이 젓가락을 놀려 면발을 입으로 가져갔다.

한참을 먹던 티아와 퓨이가 나를 의문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세진은 안 먹어?”

-퓨이?

이 앙큼한 것들은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나서야 내가 눈에 들어왔나 보다.

“난 괜찮아.”

“배 안 고파?”

티아의 물음에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배고프지. 엄청나게 배고픈데.”

나는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들어 티아와 퓨이를 쓰다듬어 줬다.

“티아랑 퓨이가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그러니까 나는 걱정하지 말고 많이 먹어.”

“헤헤.”

“퓨이!”

아이들은 나를 따라 웃으며 다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 몰래 씁쓸하게 웃으며 속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20. 출격! 티아 공주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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