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43화
18. 아티팩트 경연대회(1)
아직 이른 새벽.
나는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깔끔한 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손질했다.
어젯밤에 제대로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눈이 약간 초췌해 보였다.
준비하는 소리에 잠이 깼는지 티아가 눈을 비비며 부스스 일어났다.
“우웅, 세진. 어디가?”
티아는 잠꼬대하듯 비몽사몽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오늘 일찍 나가야 한다고 어제 말했는데. 조금 더 자.”
“으응.”
내가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자 다시 스르륵 눈이 감겼다.
티아를 다시 자리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티아는 곧바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퓨이와 티아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조용히 균열을 나섰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신지아의 아티팩트 공방으로 향했다.
새벽부터 저마다의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약속된 시간에 맞춰 공방에 도착했다.
신지아 역시 미리 준비를 끝내고, 깔끔히 준비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초췌해진 나와 다르게 그녀는 평소보다 더 생기있어 보였다.
“잘 주무셨어요. 지아 씨?”
“네. 잘 잤죠. 세진 씨는요?”
“저는 조금 긴장돼서 별로 못 잔 것 같은데.”
“풋. 오늘은 예선인데 그렇게 긴장하시면, 본선 대회에서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러게요.”
오늘은 아티팩트 경연대회의 예선이 있는 날이다. 신지아는 제작자로, 나는 아티팩트 시연자로 대회에 나선다.
신지아가 예선은 전혀 문제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어젯밤에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긴장이 되었다.
오늘 대회를 위해 몇 달을 제대로 쉬지 않고 준비해온 그녀는 오히려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신지아는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 가볼까요?”
* * *
거대한 박람회장에서 2주 가까이 이어지는 아티팩트 박람회.
우리가 참여하는 아티팩트 경연대회 말고도.
아티팩트 전시회, 시연회, 새로운 기술 발표 등등.
여러 기업과 공방에서 새로운 아티팩트를 선보이고, 판매한다.
아티팩트 산업의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균열 전투계열 아티팩트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생활 아티팩트도 선보인다.
특히 노인들에게 인기 있는 생활 보조 아티팩트는 그 사업 규모가 매년 커져서, 아티팩트 산업에 한 축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매년 열리는 이 아티팩트 박람회는 규모가 크고, 수준이 높아서, 해외 많은 아티팩트 관계자들이 이 시기에 한국을 방문한다.
아직 대회 기간이 아닌데도 우리가 박람회장에 온 이유는 오늘 아티팩트 경연대회 예선이 열리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나 이름 있는 공방은 곧바로 본선에 진출할 수 있지만, 우리처럼 이름 없는 공방은 박람회 기간 전에 치러지는 예선을 통과해야 본 대회에 나갈 수 있다.
아직 박람회 기간 전이지만 이른 오전부터 박람회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예선 대회 접수처로 가서 예선 참가자 전용 출입증 목걸이를 받았다.
출입증에는 참가 번호와 내 이름, 그리고 ‘혜윰 공방’이라 적혀 있었다.
“혜윰 공방?”
“아. 우리 공방 이름이에요. 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이름인데 처음 들으셨죠?”
신지아가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공방 이름은 오늘 처음 들었네요.”
“원래 예전에는 건물에 간판이 붙어 있었는데 공방 사정이 어려워 지면서 간판을 내렸어요. 아버지가 공방을 통째로 넘기려고 했었거든요.”
“아…….”
이름을 알지 못했던 이유를 듣고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그녀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표정 안 지어도 돼요. 이 대회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여줄 거예요. 혜윰 공방이 어떤 곳인지, 아버지가 어떤 연구를 해냈는지.”
신지아는 웃고 있었지만, 눈빛에서 비장함과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참가자 목걸이 받으신 분은 대회장 안쪽에 준비된 자리에 참가 번호에 맞춰 앉아주십시오. 오전 9시 30분까지 대회장 안쪽에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와 신지아는 대회 진행요원의 안내에 따라 대회장 안쪽으로 향했다.
대기하는 곳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예선을 참가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대학교 과 잠바를 입은 대학생부터,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도 보였다.
“저 친구들도 우리랑 같이 예선에 참여하는 거예요?”
“아뇨.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은 대회가 달라요. 본 대회 전날에 따로 학생부 경연대회가 있거든요.”
“대단하네요. 어린 나이에.”
아무 생각 없이 놀면서 보냈던 내 고등학교 시절과 비교해서.
고등학생 때부터 아티팩트를 만들고, 이런 대회까지 참여한다는 사실이 무척 대단해 보였다.
“아티팩트 제작자가 꽤 유망 직종으로 떠오르기도 했으니. 요즘은 중학생 때부터 이론 공부를 시작해서 아티팩트 전문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친구들도 많아요.”
“그렇군요.”
주변 참가자들을 슬쩍슬쩍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대회 예선 시작 시각이 되었다.
어느새 주변은 수백 명의 예선 참가자들로 가득했다.
시작 시각에 맞춰 진행요원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앞으로 나섰다.
“아직 대회장으로 입장하지 않으신 참가자분들은 빨리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선 심사에 앞서 주의 사항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티팩트 시연자의 전자기기 소지 금지, 대회에 사용할 아티팩트를 제외한 다른 아티팩트 소지 금지. 심사관의 통제에 따르지 않은 아티팩트 사용 시 곧바로 퇴장.
진행 요원의 간략한 주의 사항 설명이 끝난 뒤, 곧바로 예선 대회 심사가 시작되었다.
아티팩트 경연대회의 심사 기준은 간단하다.
규격화된 작은 팔찌 크기의 아티팩트에 얼마나 많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고, 얼마나 정확한 출력을 낼 수 있는지 심사한다.
대회에는 화려하고, 위력적인 마법 아티팩트는 큰 의미가 없다. 간단하고 쉬운 마법을 얼마나 많이 사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같은 크기의 아티팩트라면.
위력적인 마법의 마력 회로 하나를 설계하는 것 보다, 간단하고 쉬운 마법의 마력 회로 두 개를 설계하는 게 더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마법의 마력 회로를 설계하는 능력과 정확한 출력을 뽑아내는 안정성.
이 두 가지가 대회의 핵심적인 심사 포인트다.
“참가 번호를 호명하면 심사장 앞에 대기하시면 됩니다. 자신의 차례가 오기 직전에 자리를 비우는 일 없게 주의해 주십시오.”
앞쪽 참가 번호 대기자들이 한 명씩 심사장에 들어가기 시작하고, 나는 긴장된 표정으로 우리 차례를 기다렸다.
* * *
“참가 번호 109번. ‘혜윰 공방’.”
우리의 참가 번호가 호명되고. 나와 신지아는 심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본격적인 심사에 앞서 진행 요원 몇 명이 금속 탐지기를 들이밀며 내 몸을 수색했다.
검사가 끝난 뒤 우리는 심사 위원이 보이는 심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달칵!
신지아는 보관함에서 준비해온 아티팩트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나는 조심스럽게 오른쪽 팔목에 아티팩트를 착용했다.
그녀는 살짝 웃어 보이며 눈빛으로 내게 응원을 보내왔다. 나도 살짝 마주 웃어준 뒤 심사장 한가운데로 향했다.
심사장 앞에는 세 명의 심사 위원과 마력 관측 기계를 사용 중인 직원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 명의 심사 위원 중 가운데 있던 중년 남성이 내게 말했다.
“혜윰 공방. 전세진 시연자 맞으시죠?”
“네.”
“준비해 오신 마법 먼저 보여주시고, 저희가 지정하는 마법의 출력을 단계별로 보여주시면 됩니다. 명확한 4개의 마법, 안정적인 4단계의 출력을 보여주시면 곧바로 예선 통과입니다.”
“…….”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중간에 너무 시간을 끌면 한 번 주의를 드리고, 두 번째 주의를 받으면 곧바로 탈락입니다. 준비되시면 바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아티팩트를 착용한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라이트!
-파아앗.
첫 번째로 시전된 라이트 마법. 한 개의 빛 구체가 눈앞에 떠올랐다.
첫 번째 마법을 본 세 명의 심사 위원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곧바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마법까지 연달아 시전했다.
-파이어!
-라이트닝!
-아이스!
빠르게 시전되는 마법의 속도에 심사 위원의 얼굴에 살짝 놀라움이 엿보였다.
네 번째 마법까지 성공하자 세 명의 심사 위원은 뭔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다시 가운데 자리한 심사 위원이 내게 말했다.
“잘 봤습니다. 방금 보여주신 마법 중에서 라이트 마법의 출력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심호흡하고 라이트 마법을 시전했다.
-라이트!
-파아앗.
빛 구체가 한 개, 두 개, 세 개, 마지막 네 개째까지 안정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깔끔한 성공!
이 모습을 지켜본 심사 위원 세 명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마지막으로 마력 관측 기계를 사용 중인 대회 직원을 응시했다.
대회 직원의 문제 없다는 사인이 나오자 심사 위원은 웃으며 내게 결과를 발표했다.
“축하합니다. 혜윰 공방의 신지아 제작자, 전세진 시연자는 대회 예선을 통과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장 밖에 있는 진행 요원에게 따로 안내받으시면 됩니다. 본선에서도 좋은 모습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심사 위원의 덕담을 받으며 나와 신지아는 심사장을 빠져나왔다.
심사장을 빠져나오자마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긴장돼서 큰일 날뻔했네.”
“푸흡. 예선은 긴장 안 하셔도 된다니까.”
한숨 쉬는 내 모습에 신지아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에 볼멘 목소리로 반응했다.
“어떻게 긴장을 안 해요. 지아 씨가 그동안 쉬지 않고 노력한 결과물인데. 제가 망치면 안 되잖아요.”
“그렇게 되나요?”
“거기다 공방의 운명까지 달려 있으니. 망치면 저도 실업자 되는 거라고요.”
“후후. 맞네요. 오늘은 잘하셨어요. 사원님. 본선 때도 그렇게만 해주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우리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예선 통과를 축하하기 위한 점심 메뉴를 정하고 있을 때,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예선 통과했나 보네?”
“…….”
“…….”
멀끔한 정장 차림에 잘생긴 외모.
굳어버린 신지아와 반대로 싱글 웃고 있는 조성훈이었다.
신지아와 함께 대학교에 방문했을 때, 만난 뒤 두 번째 만남이었다.
“세진 씨 맞죠? 아예 지아네 공방에 취직하셨나 보네요?”
“네. 뭐. 그렇게 됐습니다.”
그는 나에게도 친근하게 질문을 던졌고,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뭐하긴. 우리 공방도 예선 참가하러 왔지. 겸사겸사 괜찮은 제작자 없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나와 신지아의 표정에도 조성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티팩트 제작 실력 좀 늘었나 봐? 그 정도면 우리 공방에서도 충분히 일할 수 있겠는데. 어때?”
“개소리하지 마. 조성훈.”
“어이쿠. 여자가 얌전하지 못하게 성깔하고는.”
이번에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세진 씨는 어때요? 저번에 제안했었던 거 아직 유효합니다. 굳이 다 쓰러져가는 공방에 묶여 있을 필요 없잖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만족해요.”
그의 능글거리는 말투에 신지아는 아예 눈을 돌려버리고 내게 말했다.
“세진 씨 가죠. 이딴 녀석에게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요.”
그녀는 내 팔을 잡아끌며 조성훈을 지나쳐 걸어나갔다.
그는 우리의 등 뒤에 대고 여유롭게 말했다.
“본 대회에서 보자고.”
등 뒤로 조성훈이 멀어지고 건물을 빠져나와서 한참을 걸은 뒤에, 신지아는 겨우 걸음을 멈췄다.
“지아 씨. 괜찮아요?”
“네. 미안해요. 갑자기 흥분해서.”
그녀는 아직도 굳어 있는 얼굴로 내게 사과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이제 저도 사정을 다 아는데요 뭘.”
아직도 표정을 펴지 못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지아 씨. 앞으로는 너무 과민반응 보여주지 마세요. 저 새…… 아니, 저 사람 오히려 그걸 즐기는 것 같으니까.”
“…….”
신지아는 내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 사람에게 본선 대회에서 본때를 보여주자고요. 저 재수 없이 잘생긴 얼굴이 왕창 구겨지게 만들어 보죠.”
“풋!”
내 말에 웃음을 터뜨린 그녀는 겨우 원래의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요, 세진 씨. 한번 해보자고요.”
“오오. 좋습니다. 저는 사장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저만 믿으세요. 세상을 놀라게 할 아티팩트를 세진 씨에게 드릴 거니까요.”
그렇게 대회 예선 날이 지나가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대회 본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