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41화 (41/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41화

17. 첫 라이브 방송

‘균숙자네 퓨이’ 채널에 새로운 공지가 추가되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연우 PD입니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에 저희 채널은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습니다.

-구독자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이번 주 목요일 저녁 7시에 LIVE 방송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궁금하셨던 점이나,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이곳에 댓글로 달아주세요.

-실시간으로도 질문에 대답해드리니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채널에 공지가 올라오자마자 공지글에 수십 개의 댓글이 주르륵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라이브 방송 공지. 너무 좋아요.

-본방사수!!

-ㅜㅜ 그날 약속 잡았는데. 나중에 라이브 방송 영상도 올려주시겠죠?

-흐흐흐. 맛있는 치킨 치켜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제발 그날 야근만 아니길…….

-퓨이의 귀여움을 라이브로 볼 수 있다니. 무조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라이브 방송 공지에 환호하는 사람들. 그리고 라이브를 볼 수 없어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까지.

수많은 반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공지를 본 검은 마녀 서율희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상 위 달력 이번 주 목요일에 빨간 펜으로 표시를 해두었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이번 주 스케줄을 확인하며 목요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번 주는 특별한 일 없으니까. 목요일은 일찍 퇴근해서 라이브 방송 봐야겠다.’

집에서 맛있는 간식과 함께 퓨이를 라이브로 볼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똑. 똑. 똑.

“누나. 저에요.”

부조장 윤동현이 서율희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지우며 말했다.

“들어와.”

방안으로 들어온 윤동현은 슬쩍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서율희 본인은 표정 관리를 잘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본심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편이었다.

다행히 오늘 그녀의 기분은 꽤 좋아 보였다. 윤동현은 안심하고 방문한 용건을 꺼냈다.

“아무래도 이번 주에 우리 조가 균열에 투입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어요.”

“뭐?”

서율희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원래 우리는 이번 주 휴식 기간이잖아? 갑자기 왜?”

“이번 주에 투입하기로 했던 인원 중에 재계약 인원이 몇몇 껴있어서. 계약이 완료될 때까지 투입을 미룬다네요.”

“그럼 몇 명 잠시 파견 보내면 안 되나?”

윤동현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도 물어봤는데 길드장님이 직접 지시하신 사항이라서. 대신 보너스도 빵빵하게 주고 휴식 기간도 원하는 만큼 준다고.”

서율희는 조금씩 피어오르는 불안한 예감에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물었다.

“그래서 균열 발생이 언젠데?”

“이번 주 목요일 오후 1시.”

“안 돼!!”

서율희는 자신도 모르게 뾰족하게 소리쳤다. 깜짝 놀란 윤동현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누나.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그날 투입 못 한다고 전할까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무리 퓨이를 좋아하고 라이브 방송을 기다린다고 해도. 그녀는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는 성격이었다.

갑자기 변경된 일정이지만, 너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 보겠다고 그걸 무시할 수는 없었다.

“괜찮으니까. 목요일 일정 잡고 준비하자. 조원들에게도 최대한 빨리 전하고.”

“네. 그럼 바로 준비할게요.”

윤동현이 준비를 위해 방을 나가고, 서율희는 혼자 남아 울상을 지었다.

‘오후 1시 진입. 변수 없으면 6∼7시간. 뒷정리하고 돌아오는데 2시간. 예정 종료 시각 밤 10시.’

“하아아.”

대충 계산해봐도 라이브 방송 시작 전에는 돌아오기 힘들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설렘으로 가득했던 모습이 거짓말같이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표정은 심란함으로 가득했다.

* * *

라이브 방송을 앞두고 방송 장비 셋팅과 시험 촬영을 위해 오연우가 균열에 방문했다.

“세진 형. 균열이 좀 변했네요?”

“어. 조금 일이 있었거든.”

“이러면 어디서 방송을 할지도 생각해봐야겠네.”

그는 달라진 균열 구조에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마 머릿속으로 방송 구도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오연우가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텐트에서 퓨이와 티아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퓨이!”

“세진. 이 사람 누구야?”

퓨이는 이미 여러 번 만나본 오연우를 반갑게 맞이했지만, 티아는 살짝 경계하는 눈빛으로 오연우를 바라보았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허공에 떠 있는 티아를 발견한 오연우.

그는 눈을 빛내며 티아에게 성큼 다가섰다.

“우와! 형. 이 귀여운 여자애는 누구예요?”

갑자기 다가오는 오연우에 깜짝 놀란 티아가 재빨리 내 등 뒤로 숨었다. 그리고 굉장히 불안한 얼굴로 오연우를 바라보았다.

“같이 살게 된 티아라고 해.”

“퓨이도 그렇고 도대체 형은 어디서 이런 귀여운 애들을 데리고 오는 거예요?”

“하하하.”

그의 진지한 감탄에 나는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오연우는 최대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 등 뒤에 숨은 티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이름이 티아라고 했지? 내 이름은 오연우야.”

“…….”

티아는 오연우의 인사에 대답하지 않고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옷을 잡아당겨 오연우와 떨어지게 만든 후 내게 말했다.

“티아라는 애칭은 세진에게만 허락한 거야. 아무나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아. 미안해. 그럼 뭐라고 부르게 할까?”

“당연히 정중하게 아라스티아 공주님이라고 불러야지.”

“그냥 티아 공주님이라고 부르게 하면 안 될까?”

티아는 내 부탁에 잠시 고민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허락했다.

“으으음. 알았어.”

“고마워.”

고맙다고 말하며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자 티아의 불퉁한 표정이 조금 풀렸다.

다시 티아와 함께 오연우에게 다가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티아 공주의 표정과 내 설명을 듣고 눈치 빠르게 대처했다.

“하하.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티아 공주님. 저는 여기 세진 형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오연우라고 합니다.”

꽤나 정중해진 오연우의 인사에 티아 공주는 조금 흡족해진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아라스티아 공주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처음 만난 두 사람의 인사가 끝나고, 오연우는 곧바로 균열을 둘러보며 라이브 방송 위치를 정하기 시작했다.

방송 중에 사용할 테이블과 의자, 카메라, 조명, 마이크, 노트북까지 셋팅을 마치고 나와 퓨이를 불러들였다.

“형. 퓨이랑 같이 잠시 자리에 앉아 보실래요?”

나는 오연우의 지시대로 퓨이를 테이블 위에 올려주고 자리에 앉았다. 티아도 방송 장비들이 신기한지 가까이 다가와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형 영상이랑 소리 잘 들어가는지 잠시 시험해 볼게요.”

촬영이 시작되고 테이블 노트북 화면에 실시간으로 우리의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세진! 저것 봐. 저기서 우리 모습이 나와.”

“퓨이!”

티아와 퓨이가 노트북 화면을 보고 소리 질렀다. 그리고 이리저리 움직이자 똑같이 움직이는 화면 속 자신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배경도 좋고, 화면도 잘 나오고. 소리도 잘 들어가는 것 같아요. 라이브 방송 준비 완벽합니다.”

“세진. 라이브 방송이 뭐야?”

오연우의 말에 티아가 라이브 방송이 뭔지 내게 물어봤다. 나는 최대한 어렵지 않게 라이브 방송에 대해 설명했다.

내 설명을 들은 티아는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그럼 나도 라이브 방송할래.”

“티아 공주님도 하실래요?”

“응. 나도 세진이랑 퓨이랑 같이 라이브 방송하고 싶어.”

방송에 참여하고 싶다는 티아의 말에 오연우가 눈을 빛냈다. 아무래도 티아가 너튜브 채널에 좋은 영향을 줄 거라 기대하는 것 같았다.

반면 나는 얼굴을 흐리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티아는 아직 좀 힘들지 않을까?”

“왜요?”

내 반응에 오연우가 아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퓨이를 방송에 쉽게 출연시킨 이유는 단순했다. 퓨이가 내 말을 무조건 잘 따랐고, ‘퓨이’라는 단순한 울음소리만 낼 수 있어서 큰 부담이 없었다.

반면 티아는 다르다. 요즘은 내 말을 잘 따라주고 공주라는 신분도 많이 내려놨지만, 무조건 내 지시에 응하는 건 아니었다.

거기다 퓨이랑 다르게 유창하게 말도 할 수 있으니, 라이브 방송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오연우 입장에서는 인형처럼 귀여운 작은 여자아이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집부리던 자존심 강한 공주님이었다.

“아무튼, 티아가 라이브 방송하는 건 좀 힘들 것 같다.”

“으음. 형이 그렇게 생각하시면 저는 따를게요.”

“…….”

오연우는 조금 아쉬워하면서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내 의견을 따랐다.

반면 티아는 라이브 방송 출연을 못 하게 되자 눈에 띄게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나 빼고 다 같이 방송하는 거야?”

“그러니까 티아야. 이건 노는 게 아니라. 일하는 거야. 별로 재미없어.”

나는 재미없는 일이라는 핑계로 티아를 위로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오히려 티아는 소외감이 들었는지 훌쩍이기 시작했다.

“흑…… 끄윽.”

“아이고. 티아야. 왜 울고 그래.”

혼자만 방송을 못 한다는 소리에 상처받았는지 티아가 돌연 눈물을 터뜨렸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티아를 안아 들고 달래주기 시작했다.

“울지 마, 티아야. 다음에는 꼭 같이할 수 있게 해줄게. 응? 그러니까 뚝.”

“오늘부터 같이하면 안 돼?”

티아는 아직도 방송을 같이하고 싶은지 애처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난감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아껴두려 했지만. 어쩔 수 없지.’

* * *

“조장님. 입장 전 마지막으로 조원들 인원 체크, 장비 점검 끝냈습니다.”

“알았어. 대기하고 있어. 후우우.”

“…….”

깊은 한숨을 내쉬는 서율희의 모습에 윤동현은 슬슬 눈치를 보며 조원들에게 돌아갔다.

“동현아. 조장님 무슨 일 있냐?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부조장님. 혹시 저희가 무슨 실수한 건 아니죠?”

오늘따라 유난히 저기압인 서율희 때문에 조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부조장인 윤동현은 짐작 가는 바가 있긴 했지만, 조원들에게 말해줄 수가 없었다.

윤동현은 최대한 담담한 얼굴로 조원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다.

“일단 오늘 균열 안에서 정신 바짝 차리세요. 오성의 검은 마녀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지 않으면.”

“꿀꺽…….”

“엄마. 나 어떻게 해.”

그렇게 서율희의 조원들은 균열에 들어가기 전부터 공포를 맛봐야 했다.

* * *

“형. 라이브 방송 시작 3분 남았어요. 근데 티아 공주님은 잘 해결된 거예요?”

“응. 비장의 수법을 사용했지.”

나는 한숨 돌린 표정으로 텐트를 바라봤다.

방송 시작하기 직전까지 풀죽은 티아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그래도 아껴뒀던 비장의 수법을 사용했으니, 아마 한동안 티아는 텐트 안에서 조용히 있을 것이다.

“좀 있으면 라이브 방송 시작해요. 준비되셨죠?”

“난 준비됐어.”

“퓨이!”

‘균숙자네 퓨이’ 채널의 첫 라이브 방송이 그렇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