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40화 (40/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40화

“…….”

“…….”

“나 던진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 티아가 주사위를 굴렸다.

“8! 하나. 둘. 셋…… 여덟! 내 땅이야.”

티아의 말이 자신의 땅 싱가포르에 도착하며 크게 한숨을 돌렸다.

살짝 아쉽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와 퓨이.

“퓨이!”

이번엔 퓨이가 꼬리로 두 개의 주사위를 던졌다.

나온 주사위의 숫자는 10.

말이 10칸 전진하고 도착한 곳은 구석의 사회복지기금 칸. 퓨이는 기분 좋게 쌓여 있는 30만 원을 가져갔다.

지금 가장 돈과 땅이 많은 퓨이였기에 더욱 얄미운 상황.

나는 부X마블 판 위를 살펴보며 상황을 살폈다.

현금과 땅을 가장 많이 소유한 퓨이가 독보적 1위.

그나마 비싼 몇 개의 땅을 유지하며 내가 2위.

티아가 파산 직전으로 3위였다.

애들과 재미 삼아 하는 게임이라도 꼴등은 피하고 싶었다.

티아와 퓨이는 오늘 처음 하는 게임이지만, 나는 이 게임을 접한 지 벌써 15년이 넘었다.

15년 경력에 꼴등은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 내 말의 위치에서 위험한 건 통행료가 200만 원이나 되는 서울. 바로 퓨이의 땅이다.

티아가 파산 직전까지 몰리게 된 것도 퓨이가 소유한 서울을 한 번 밟았기 때문이었다.

서울만 피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어느 정도 안정권이다. 오히려 퓨이가 비싼 내 땅을 밟아준다면 역전도 가능한 상황.

티아와 퓨이는 내심 기대하는 표정으로 내 주사위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

나의 서울 여행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만약 주사위의 숫자가 10이 나오면 내가 서울에 걸리게 되어 나도 파산 확정인 상황.

쫄깃한 순간.

나는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미안하지만 친구들. 15년 부X마블 경력을 얕보지 말라고.”

나는 거침없이 주사위를 굴렸다.

-도르르륵.

두 개의 주사위가 판 위에서 구르다 멈춰 서고 숫자를 드러냈다.

주사위의 눈은 2와 4를 나타냈다.

“아아.”

“퓨이.”

내 말은 서울에서 떨어진 황금열쇠 칸에 도착했고, 퓨이와 티아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황금열쇠 카드를 1장 집어 들었다.

‘후후. 뭐가 나오려나? 우대권? 아니면 노벨상 수상?’

집어 든 카드의 내용을 확인하고 소리 내어 읽었다.

“관광 여행! 88 올림픽 개최지인 서울로 가십시오. 통행료 200만 원 지불…….”

텐트 안은 잠시 침묵이 흐르고.

“퓨이! 퓨이!”

“꺄하하! 세진이 꼴등이야.”

“…….”

내가 가장 먼저 파산해버리고 말았다.

꼴등 한 벌칙으로 게임의 뒷정리는 내가 맡게 되었다.

내가 정리를 하는 동안 티아와 퓨이는 텐트 구석에 짐들을 뒤지며 새로운 놀이를 찾고 있었다.

저번에 오연우가 가져다준 선물들 속에 장난감이나 재미있는 즐길 거리가 잔뜩 있었다.

티아가 그중에 하나를 꺼내 신나는 표정으로 말했다.

“퓨이야. 이거 재미있지 않을까?”

“퓨이!”

태블릿PC의 결제 사건이 있고 난 뒤, 티아는 스스로 공주라는 의식을 많이 내려놓고 조금 더 평범한 소녀같이 변했다.

아직도 무의식중에 과거의 버릇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나도 퓨이도 무시하는 행동은 일절 하지 않게 되었다.

전에는 공주라는 위치 때문인지 조금 얌전하게 있으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말괄량이 소녀가 돼버렸다.

조금 텐트가 소란스러워지기는 했지만 내 눈에는 지금 티아의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다.

부X마블의 정리가 끝났을 때, 티아가 품에 무언가를 안고 내게 뛰어왔다.

“세진. 이거 어디서 구했어?”

그녀가 가져온 것은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균열.

??? 균열을 클리어하고 가져온 균열핵이었다. 팔 곳도 마땅치 않고 혹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보관해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사용할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텐트 구석에 박혀 있는 거지만.

“그건 왜 물어?”

“이거 세진이 새로 얻은 능력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이 균열핵을 쓸 수 있다고?”

“응. 여기에 세진의 문양을 새겨넣기만 하면 돼.”

나는 티아의 설명을 들으며 균열핵을 받아들었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이 균열핵에 원래 주인이 새겨놓은 문양이 있을 거야. 그 문양을 지우고 세진의 문양을 새겨넣으면 돼.”

굉장히 간단한 티아의 설명에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균열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Sanye(질서)”

마석보다 훨씬 복잡한 균열핵의 구조를 따라 내부를 관찰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문양의 기운을 따라 균열핵 가장 안쪽에 의식을 집중했다.

‘있다!’

티아의 말대로 균열핵 내부에는 누군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문양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때.

-화아아악!!

문양을 지우려 의식을 집중하자 아주 불쾌한 기운이 문양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은 순식간에 내 의식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컥. 쿨럭!”

갑작스러운 공격에 집중을 잃고 헛기침을 내뱉었다. 머리가 찡하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다.

“세진. 괜찮아?”

“퓨이.”

내 이상한 반응에 티아와 퓨이가 걱정스러운 듯 내 상태를 물었다.

“아, 괜찮아. 잠깐 실수했나 봐. 다시 해볼게.”

나는 아이들을 안심시킨 뒤 다시 균열핵에 의식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이번에는 아까와 다르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최대한 집중을 끌어냈다.

[명경지수(明鏡止水)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집중의 효율이 상승합니다.]

명경지수 특성까지 발동시키며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문양을 향해 접근했다.

이번에도 문양에서 불쾌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지만, 아까처럼 순순히 당해주지 않았다.

천천히 포위하듯 기운을 억누르고 문양을 조금씩 지워나갔다. 불쾌한 기운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반항했지만 내 압박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파아아앗!

문양이 모두 지워지자 불쾌한 기운은 연기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비워진 부분에 내 문양을 새겨넣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에 내 이마와 등에는 진땀이 흘러내렸다.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오로지 문양을 새기는 작업에 집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완성했다.’

뿌듯한 성취감에 미소 지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전세진의 균열핵’을 완성했습니다.]

[‘아르키트 회로 이론’에 1포인트를 얻습니다.]

손안에서 은은한 광채를 내뿜는 균열핵.

티아는 완성된 균열핵을 보며 외쳤다.

“잘했어. 이제 그 균열핵을 받침대에 놓아두면 새로운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럼 바로 가볼까.”

나는 균열핵을 가지고 곧바로 받침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티아의 말대로 균열핵을 조심스럽게 받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손을 놓음과 동시에 균열핵에서 엄청난 마력의 파동이 흘러나왔다.

퓨이는 불안한 듯 내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고, 티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내 어깨 위에서 균열핵을 응시했다.

나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균열핵은 강렬한 빛을 뿜어 내기 시작했고, 주변은 온통 새하얀 빛으로 가득해졌다.

빛이 사그라들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놀랍게도 주변 배경이 전혀 달라져 있었다.

갑작스럽게 변한 배경에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눈앞에 알람이 떠올랐다.

[균열의 지배권을 얻었습니다.]

[균열의 이름을 지정해 주십시오.]

“어…… 집?”

[균열의 새로운 이름은 ‘집’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지배권을 얻은 균열에서 ‘개발’, ‘합병’, ‘건설’이 가능해집니다.]

[자세한 사항은 균열 관리 창에서 확인하십시오.]

눈앞의 알람에 이어서 ‘균열 관리’ 창이 떠올랐다.

≪균열 관리≫

[지배 중인 균열] (1/1)

[소유 중인 균열] (2/3)

[균열 : 집](1/3)

-현재 시설물 : 중심부 Lv.2, 보금자리 Lv.5.

-2개의 균열을 추가로 합병 가능함.

-현재 개발, 건설 가능한 균열 없음.

균열 관리창을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원래의 동굴 같은 E등급 균열의 모습이 아니라, 커다란 하나의 공간으로 합쳐졌다.

한쪽에는 텐트의 모습이 다른 한쪽에는 균열핵이 놓여 있는 받침대가 보였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균열 입구가 존재했다.

퓨이도 갑자기 변한 균열의 모습이 신기한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기웃거렸다.

“세진. 내가 준 새 능력 어때?”

내 눈높이에 둥둥 떠 있던 티아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긴 했는데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마음대로 진행해 보기로 했다.

‘흠. 균열 합병이 가능하다고?’

나는 균열 관리창의 균열 합병을 선택했고 곧바로 알람이 떠올랐다.

[현재 소유 중인 ‘C등급 균열’을 ‘균열 : 집’에 합병하시겠습니까? (Y/N)]

나는 고민하지 않고 합병을 선택했다.

내 선택과 동시에 또다시 균열핵에서 마력의 파동이 퍼져 나왔다.

아까보다는 훨씬 잔잔한 파동이 이어졌고, 파동이 끝남과 동시에 또 다른 균열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운 균열 입구로 입장하니 또 다른 균열의 모습과 함께 알람이 떠올랐다.

[새롭게 합병된 균열에 ‘균열 탐색’이 가능합니다.]

나는 새롭게 변한 ‘균열 탐색’ 스킬을 확인했다.

[균열 탐색 Lv.3](최대)

-집중30 필요.

-E등급의 균열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위험한 균열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소유한 균열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티아에게서 받은 새 능력 중 하나.

소유한 균열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능력.

새롭게 합병된 균열에 균열 탐색을 시전했다.

[균열 탐색에 성공했습니다.]

[‘온천 Lv.1’을 발견했습니다.]

[‘나무 톱니바퀴’ 1개를 사용해 ‘온천 Lv.1’을 개발하시겠습니까? (Y/N)]

‘갑자기 온천?’

약간 뜬금없는 온천 발견에 당황하며 빨리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가지고 있는 나무 톱니바퀴 개수를 확인해 보았다.

현재 가지고 있는 나무 톱니바퀴는 15개.

가지고 있는 개수가 넉넉하니 1개 정도는 사용해볼 만한 것 같았다.

“오케이. 1개 사용할게.”

[‘온천 Lv.1’을 개발합니다.]

내 대답과 동시에 알람이 떠올랐고, 균열에는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그리고 균열 바닥 한가운데가 갈라지더니 뜨거운 온천수가 콸콸콸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와!”

“퓨이!”

티아와 퓨이는 땅밑에서 솟아오르는 온천수가 신기한 듯 탄성을 내뱉었다.

주변 땅과 바닥이 자연스럽게 다져지고, 온천수가 넘치지 않도록 검은 바위들이 주변에 솟아올라 온천의 모양을 갖췄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텅 빈 균열이 온천으로 변신을 끝마쳤다.

뽀얀 김이 솟아오르는 탕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몸이 근질근질 해졌다.

* * *

“으어어어.”

“퓨우우우.”

옷을 벗어두고 뜨거운 온천탕 안에 몸을 담그자, 자연스럽게 뱃속 깊은 곳에서 특유의 목욕탕 소리가 흘러나왔다.

퓨이도 나와 같이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편안한 표정이 되었다. 원래 말랑말랑했던 퓨이의 몸이 흐물흐물해져 탕 위에 둥둥 떠올랐다.

“퓨이야. 괜찮아?”

“퓨우우우. 퓨우우이!”

다행히 퓨이 나름대로 온천을 즐기는 모양이었다.

“앗! 뜨거.”

몸을 수건으로 가린 티아가 뜨거운 온천에 들어오지 못하고 울상을 짓고 있었다.

“너무 급하게 들어오려 하지 말고. 천천히 발부터 담가봐.”

“응. 알았어.”

티아도 천천히 온천의 뜨거움에 익숙해지더니 어느새 온천 깊숙이 몸을 맡겼다.

티아의 얼굴이 약간 붉게 달아올랐지만, 온천이 주는 기분 좋은 느낌에 곧바로 편안한 얼굴로 변했다.

“하아. 좋다.”

온몸에 온천의 뜨거운 기운이 스며드는 느낌과 함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온천 Lv.1’의 효능으로 피로, 상처 회복력을 상승시킵니다.]

[‘슬라임젤 Lv.3’의 효능으로 피로, 상처 회복력이 더욱 상승합니다.]

눈앞에 떠오른 알람은 대충 넘겨버리고, 온천의 뜨거움을 편안하게 즐겼다.

* * *

나와 아이들은 온천을 빠져나와 텐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나는 시원한 캔맥주를, 아이들에게는 음료수를 하나씩 꺼내주고 곧바로 원샷했다.

“크으! 죽겠다. 죽겠어.”

시원한 맥주가 뜨거워진 뱃속으로 들어오자, 기분 좋은 부글거림과 함께 나른했던 정신이 깨어났다.

온천 특유의 미끈거리는 느낌과 반질반질해진 피부.

피로를 씻어내고 적당히 나른해진 몸까지.

정말 중독될 것 같은 기분 좋음이었다.

티아와 퓨이는 나른한 기분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나는 웃으며 아이들의 잠자리를 펴고 편안히 자리에 눕혀주었다.

혼자 유유자적하게 캔맥주를 홀짝이고 있을 때, 휴대폰으로 오연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잠시 맥주를 내려놓고 통화를 연결했다.

“연우야. 무슨 일이야?”

“어? 형. 바로 연락받으셨네요. 지금 집 아니세요?”

내가 전화를 받자 오연우가 오히려 의아한 듯 되물었다.

“나 집인데. 텐트에서 기분 좋게 맥주 한잔하고 있었다.”

“네? 균열에서는 통화 안 되잖아요?”

“아아. 그게 말이야. 최근에 능력을 얻어서 통화도 인터넷도 가능해졌거든.”

“…….”

“어? 연우야?”

갑자기 조용해진 오연우.

통화가 끊겼나 싶어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려는데.

“아니. 형! 그렇게 중요한 걸 이제 말하면 어떻게 해요?”

“어엉?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아. 정말 이러면 일정 다시 짜야겠네.”

오연우는 투덜거리며 혼잣말로 뭔가를 정리하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형! 우리 채널의 다음 컨텐츠는 라이브 QnA방송이에요.”

“뭔 방송?”

“라이브 방송이요. 생방송으로 컨텐츠 진행할 거라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