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37화
생각보다 쉽게 달성한 만족도 덕분에 나는 한결 여유를 되찾았다.
‘70%는 달성했으니 능력을 뺏길 걱정은 없고, 이제 추가 보상만 노리면 되는 건가?’
높은 만족도를 달성하면 얻을 수 있다는 추가 보상을 떠올리며, 어떻게 남은 만족도를 채울지 생각해 봤다.
초콜릿 과자 하나로 70%나 채웠으니 나머지 만족도도 손쉽게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잠시 나갔다 올게. 둘이 잠시 놀고 있어.”
“응. 알았어.”
“퓨이!”
옷을 챙겨 입고 가벼운 마음으로 균열을 빠져나왔다. 공물로 뭘 준비해야 할지 계속 고민해 봤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평생 어린 여자아이에게 뭘 사준 적이 없다 보니 어떤 걸 좋아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짧은 고민 끝에 이런 쪽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진이 형? 웬일이에요. 먼저 전화를 거시고.
“아. 물어볼 게 좀 있어서.”
전화를 건 사람은 오연우였다.
그는 너튜브를 운영하다 보니 연령별 관심사에 대해서도 많이 아는 편이었다. 유행에도 민감하니 뭔가 좋은 해답을 내줄 것 같았다.
-뭔데요?
“여자애들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거요?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요?
나이를 묻는 그의 질문에 티아 공주의 모습을 떠올렸다.
크기는 인형처럼 작지만, 겉모습과 행동은 초등학생 정도의 느낌이었다.
“9살 정도?”
-9살이요? 형 무슨 일인데 갑자기 그런 걸 물어요?
9살이라는 내 말에 오연우가 놀라며 되물었다. 나는 살짝 머뭇거리다 다급히 거짓말을 대충 지어냈다.
“어. 잠시 아는 사람 아이를 맡게 돼서. 선물 좀 하려고.”
-흠. 그래요?
다행히 오연우는 내 변명을 크게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정보를 줄줄 내뱉기 시작했다.
-먹는 게 가장 무난하겠죠? 달달한 디저트 종류라던가, 형 사는 곳 근처에 맛있는 츄러스 가게 생겼던데 거기도 괜찮을 것 같고. 먹는 거 말고는 예쁜 캐릭터 스티커도 좋겠네요.
“으음. 츄러스. 가게 위치 좀 알려줄래?”
-알았어요.
나는 오연우에게 츄러스 가게 위치를 전해 받아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그의 말대로 꽤 맛있는 가게인지 몇몇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가게 안에서 솔솔 흘러나왔다.
시간이 흘러 내 차례가 되고 메뉴를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다양한 메뉴에 직원의 도움을 받아 주문을 완료했다.
티아 공주와 퓨이 몫까지 생각해 넉넉하게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물건을 받을 수 있었다.
막 나온 따뜻한 츄러스와 밀크쉐이크를 가지고 균열로 되돌아갔다.
티아 공주와 퓨이는 텐트 안에서 태블릿 PC를 가지고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급하게 돌아온 덕분에 아직 뜨끈한 츄러스와 밀크쉐이크를 꺼냈다. 내가 꺼내놓은 츄러스를 둘 다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달달한 설탕 가루가 뿌려져 있는 츄러스 하나를 퓨이에게 건넸다. 퓨이는 능숙하게 꼬리로 츄려스를 받아 들고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퓨이!”
처음 먹는 츄러스가 마음에 들었는지 특유의 밝은 울음소리를 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티아 공주도 눈을 빛내며 츄러스를 바라보았다.
작은 체구 때문에 츄러스를 잡기 힘들어 보여서, 내가 직접 먹기 좋게 잘라 그녀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티아 공주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내가 건넨 츄러스 조각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나도 츄려스 한 조각을 떼어내어 입안으로 가져갔다.
달달한 설탕의 맛이 느껴지고, 바삭하면서 쫄깃한 식감의 츄러스가 씹으면 씹을수록 묘한 중독성을 불러일으켰다.
확실히 가게 앞에 줄을 서서 먹을 만큼 색다른 맛이 느껴졌다.
“세진. 더 줘.”
티아 공주는 츄러스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미에게 먹이를 재촉하는 아기 새처럼 나에게 달라붙었다.
나는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츄러스와 밀크쉐이크를 손수 먹여 주었다.
[아라스티아 공주의 만족도가 85%를 달성했습니다.]
[추가적인 공물로 더 높은 만족도를 달성하십시오.]
‘음. 15% 올랐네.’
생각보다 적게 오른 만족도로 살짝 실망했다.
그래도 15%만 더 올리면 100% 달성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 * *
[아라스티아 공주의 만족도가 98%를 달성했습니다.]
[추가적인 공물로 더 높은 만족도를 달성하십시오.]
[남은 시간 : 1시간 14분 30초.]
“…….”
나는 눈앞에 떠오른 만족도 수치를 보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공물을 바칠수록 올라가는 만족도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만족도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츄러스를 시작으로 제과점의 비싼 과자, 유명 맛집의 떡볶이, 가까운 편의점에서 사 온 갖가지 종류의 과자와 간식 등등.
티아 공주는 대부분 맛있게 먹었지만, 만족도는 98%에서 더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작은 체구 때문인지 공주는 입이 짧아 남은 공물은 모두 퓨이의 몫이 되었다.
덕분에 갖가지 종류의 먹을거리를 원 없이 즐기고 있었다.
퓨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은 좋았지만, 겨우 2% 때문에 만족도 100%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찝찝했다.
‘2%…… 2%…….’
남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나는 마지막으로 균열을 나섰다.
주위는 어느덧 밤이 되어 있었다.
일단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걸으면서도 어떤 공물을 바쳐야 할지 더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도움이 될만한 오연우, 정아윤, 정선우에게 이미 도움을 요청 때문에 더 이상 전화할 만한 사람도 몇 없었다.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살펴보다가 신지아에게 전화를 연결했다.
뚜…… 뚜…… 뚜…….
조금 길게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고.
내 쪽에서 먼저 통화를 끊으려고 할 때쯤 신지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그녀는 약간 피곤함에 잠긴 목소리였다.
“저에요. 지아 씨, 혹시 바쁘세요?”
-잠시 통화할 시간은 있어요. 무슨 일이에요?
나는 최대한 짧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는 별다른 고민 없이 내 질문에 대답해 줬다.
-아이스크림이 좋지 않을까요? 저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여러 가지 맛을 시켜놓고 하나씩 맛보는 거 좋아하거든요.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괜찮을 것 같네요.”
-그렇죠? 잘 풀렸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신지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황급히 근처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할 수 있었고, 나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여기 전부 종류가 몇 개죠?”
“어……. 지금 판매하고 있는 건 총 25개입니다.”
“전부 주세요.”
가게 직원은 다짜고짜 전부 달라는 내 주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밝은 미소와 차분한 목소리로 12가지 맛을 한꺼번에 주문할 수 있는 세트를 알려주었다.
“그럼 그걸로 2세트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번거로운 주문을 친절하게 응대한 직원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이스크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세트의 준비가 완료될 때쯤.
“잠시만요. 혹시…….”
* * *
나는 양손 가득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균열로 되돌아왔다.
[남은 시간 : 21분 15초.]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티아 공주와 퓨이 앞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꺼내놨다.
용기에 담겨 있는 형형색색의 아이스크림들은 단번에 둘의 관심을 끌었다.
“세진. 이게 뭐야?”
“아이스크림이라고. 차갑게 먹는 간식이야. 한번 먹어볼래?”
“응. 나는 그럼 이것부터.”
“퓨이!”
“알았어. 천천히 하나씩 줄게.”
나는 작은 숟가락으로 한입씩 떠서 차례로 공주와 퓨이에게 먹여 주었다.
입속에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맛보자 둘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곧바로 느껴지는 달콤한 맛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이번엔 될 것 같아.’
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차례로 먹여 주며 성공을 확신했다.
하지만.
[아라스티아 공주의 만족도가 98.2%를 달성했습니다.]
[추가적인 공물로 더 높은 만족도를 달성하십시오.]
[남은 시간 : 7분 2초.]
2세트의 모든 아이스크림을 맛봤지만 공주의 만족도는 겨우 0.2%만 올랐을 뿐이었다.
‘도대체 뭐지? 뭐가 부족한 거지?’
분명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맛봤는데도 오르지 않는 만족도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티아 공주. 아이스크림 마음에 안 들었어?”
“아니. 맛있었어.”
“퓨이!”
티아 공주와 퓨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근데 평범한 맛. 뭔가 공주에게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었어.”
“…….”
그녀의 알 수 없는 감상평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공주에게 어울리는 느낌이라.
그때 티아 공주가 내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진. 저건 뭐야?”
“아. 이게 있었구나.”
2개의 세트 아이스크림 말고 직원에게 부탁해서 따로 1개 더 받아온 아이스크림.
평소 같았으면 시키지 않았을 아이스크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이미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남아 있는 아이스크림을 열어 보여주었다.
“먹어볼래?”
-끄덕끄덕
나는 아이스크림을 한입 떠서 티아 공주의 입에 넣어줬다.
“으응?!”
공주는 아이스크림을 맛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곰곰이 맛을 음미하더니 눈을 빛내며 내게 말했다.
“세진. 더 줘.”
전에 없던 반응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다시 아이스크림을 떠줬다.
“흐으음. 정말 독특한 맛이야. 달달하면서 이렇게 상쾌한 맛이라니.”
“…….”
“많은 디저트를 맛봤는데 이런 맛은 처음이야. 정말 마음에 들어.”
[아라스티아 공주의 만족도가 99.5%를 달성했습니다.]
[추가적인 공물로 더 높은 만족도를 달성하십시오.]
[남은 시간 : 3분.]
남은 시간이 딱 3분 남은 시점에 만족도가 99.5%까지 치솟았다.
남은 만족도는 겨우 0.5%.
티아 공주는 계속해서 아이스크림을 받아먹었지만 더 이상 만족도는 오르지 않았다.
뭔가 마지막 한 방이 필요한 상황.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나머지 0.5%를 채우지?’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방금 전 공주의 한마디.
-뭔가 공주에게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었어.
스스로가 공주임을 강조하며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던 공주의 모습.
나는 티아 공주에게 주워들었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티아 공주.”
“응. 왜?”
“이 아이스크림의 유래가 뭔지 궁금하지 않아?”
“말해줘. 궁금해.”
내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공주의 모습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외국의 유서 깊은 왕가, 그곳의 공주 결혼식에 사용할 디저트 경연대회에서 뽑힌 아이스크림이야.”
“정말?”
“정말이야. 유서 깊은 왕가에서 인정을 받은 디저트라고 할 수 있지.”
내 설명을 들은 티아 공주는 정말 마음에 드는지, 환한 미소와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 아이스크림이야말로 공주에게 어울리는 디저트라 할 만하지.”
[아라스티아 공주의 만족도가 100%를 달성했습니다.]
[최대 만족도를 달성해 추가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허허. 티아 공주가 민트 초코 애호가였다니.’
평소였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그 맛.
바로 민트 초코.
시설에서 자랐기 때문에 뭐든지 잘 먹고 편식이 없는 편인데. 민트 초코는 예외로 두는 음식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맛있게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는 티아 공주가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도 민트색이었군.’
만족한 표정의 티아 공주가 허공에 떠오르더니 새하얀 광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구슬이 깨질 때처럼 강렬하진 않지만, 은은하고 성스러운 분위기의 광채가 그녀의 몸 주변에 넘쳐흘렀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평소의 발랄한 소녀의 목소리가 아니라, 위엄 넘치는 여신과 같은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아르키트 왕가의 공주인 나. 아라스티아의 이름으로 전세진에게 정식으로 이름과 능력을 하사한다.”
주변의 광채가 모여들더니 하나의 문양을 이루기 시작했다.
아르키트 회로 이론서와 아르키트 왕가 징표에서 봤던 문양.
바로 아르키트 왕가를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왕가의 문양이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쑤욱! 하고 내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뜨겁고 거센 기운이 내 온몸 구석구석에 차올랐다.
몸이 터질 듯이 가득 찬 기운은 순식간에 내 몸을 빠져나와 다시 하나의 문양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문양.
하지만 익숙하면서 어색한 느낌의 문양.
바로 ‘전세진’.
눈앞의 문양은 나를 상징하고 있었다.
-파아앗!
나의 문양은 빛을 내며 다시 내 가슴속에 박혀 들어갔다. 마치 영혼에 문양이 새겨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균열 탐색’ 스킬이 추가능력을 얻습니다.]
[‘균열 획득’ 스킬이 추가능력을 얻습니다.]
[‘보금자리 생성’ 스킬이 추가능력을 얻습니다.]
내가 눈앞의 알람을 확인하기도 전에 티아 공주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나를 구해준 공적과 공물의 정성을 인정해 아르키트 왕국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왕가의 기술자임을 선언한다.”
[‘천민’ 등급에서 ‘평민’ 등급으로 상승합니다.]
[‘불법 체류자’에서 ‘초급 기술자’로 변경됩니다.]
“마지막으로 왕가의 허락으로만 얻을 수 있는 권능을 두 가지 하사하겠다.”
[‘아르키트 왕가의 권능’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를 선택해 주십시오.]
<대지주>
-추가로 5개의 균열을 더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균열 소유 최대개수에 영향받지 않음.)
2. <문양 수집가>
-임의의 문양 5개를 곧바로 획득합니다.
(문양 최대개수 영향받지 않음.)
3. <균열 특이점>
-차원의 비틀림을 만들어 두 개의 차원을 연결합니다.
(통신망 연결 가능. 균열끼리 연결 가능.)
4. <균열 차원문>
-원하는 위치에서 소유한 균열 입구를 열 수 있습니다.
(하루 3번 사용 가능.)
5. <왕가의 기술>
-아르키트 왕가의 기술책 중 임의로 1권을 획득합니다.
(최소 중급 이상.)
나는 떠오르는 알림 속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