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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35화 (35/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35화

오성(五星)길드. 검은 마녀 서율희.

강력한 저주 능력과 그에 못지않은 뛰어난 마법 실력.

뛰어난 전략, 전술과 냉철한 판단력을 겸비해 20대 후반의 나이에 길드 조장 자리에 오른 그녀.

힘든 균열 전투 속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그녀를 보며 어떤 이는 감탄하고 어떤 이는 꺼리기도 한다.

그런 그녀에게는 아주 극소수만 알고 있는 비밀 취미가 있었으니…….

“하아아.”

서율희는 자신의 방안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에 있었던 사건으로 조장급 간부 회의가 소집되었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회의실에서 2시간이나 자리를 지켜야 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베테랑들에 비하면 경험도 딸리니 보통 조용히 있는 편이지만, 오늘 회의에서 몇몇 조장이 내뱉는 헛소리는 들어주기 힘든 정도였다.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그녀는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내 너튜브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 속에 귀여운 슬라임이 나타나자 서율희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졌다.

최근 그녀의 유일한 삶의 낙은 이렇게 혼자 조용히 ‘퓨이’가 나오는 너튜브 영상을 보는 것이다.

원래 그녀는 고양이, 강아지 같은 귀여운 동물들을 좋아해 영상을 가끔 챙겨봤었다. 영상에 댓글도 남기고, 기회가 되면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퓨이가 나오는 영상을 본 뒤로는 퓨이 영상만 챙겨 보게 되었다.

저 말랑말랑하고 부들부들해 보이는 생명체가 귀엽게 울 때마다 심장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영상을 챙겨보던 서율희는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 채널의 영상을 전부 정주행해버린 것.

‘도대체 새 영상은 언제 올라오는 거야?’

일주일에 한, 두 편씩 느릿하게 올라오는 영상 업로드 속도는 서율희의 애간장을 타게 했다.

기존의 영상들을 이미 재탕, 삼탕까지 마친 그녀에겐 새로운 퓨이 영상이 너무나도 필요했다.

최근에는 편집자를 잡아다 강제로 영상을 만들게 하는 상상을 할 정도로 간절했다.

‘길드의 힘을 이용하면 개인 연락처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퓨이를 직접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곧이어 스스로 조장의 권한을 남용하려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화들짝 놀라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깨웠다.

‘아아. 정말. 이게 다 퓨이 때문이야.’

그녀가 퓨이 때문에 절망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저에요.”

서율희는 황급히 표정 관리를 했다.

평소와 같은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들어와.”

그녀의 직속 부하인 부조장 윤동현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회의는 좀 어떠셨어요?”

“뭐. 평소대로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어. 특히 오늘은 더더욱.”

그녀의 냉소적인 반응에 윤동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그 사건에 대해 아직도 아무런 결론을 못 내린 건가요? 이거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아저씨들도 꽤 관심이 있나 봐. 지금은 보는 눈이 많으니 최대한 조용히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인 것 같아.”

“길드장님과 부길드장님이 관심을 가지셨다면 확실히 쉽게 넘어가지는 않겠네요.”

윤동현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한창호 조장님은 왜 아무 말도 안 하시는 걸까요?”

“…….”

“분명 여왕 거미 균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거기다 증거물도 있고.”

“나야 모르지. 한 조장님이 길드에 소속돼 있다고 해도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면, 길드도 균열에서의 일을 추궁할 수 없으니까.”

여왕 거미 균열을 8명의 인원으로 클리어한 사건은 아직도 수많은 의문 속에 있다.

한창호가 소속된 오성 길드는 가장 먼저 사건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바로 전세진이 강화한 아이템들.

한창호의 아이템은 그대로였지만 나머지 조원들의 아이템은 불가사의한 힘으로 엄청나게 업그레이드돼 있었다.

이를 발견한 길드 관계자들은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마법 등급의 아이템이 희귀 등급 이상의 효율을 가지게 된다니!

하지만 한창호를 포함한 조원들은 아이템에 관한 이야기에 입을 다물었다.

특히 조원의 관리는 길드 규칙상 조장의 불가침 권한이었기에 더욱 답답한 상황이었다.

“한창호 조장님이 혹시 협박을 당하고 있는 걸까요?”

“그건 절대 아니야. 위협에 굴복하실 성격은 절대 아니니까. 누군가 위협해 왔더라도, 오히려 조원을 위해서 먼저 말씀하셨을 거야.”

“그럼 도대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실 분도 아니고. 아마 개인적인 약속이나 신의를 지키는 일이 아닐까 싶어.”

“누나. 한 조장님에 대한 평가가 엄청나게 후하시네요? 지금 그 사건으로 뒤에서 한 조장님 욕하는 사람 한두 명이 아닌데.”

서율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D등급 균열에서 뉴비들 교육하는 조장이라 누군가는 낮게 취급할지 몰라도 길드에서는 정말 중요한 자리야. 너도 한 조장님 밑에서 배웠지?”

“예. 그렇죠. 처음에 만났을 때 엄청 무서웠는데.”

“아저씨들도 한 조장님의 공로를 인정하기 때문에 지금 크게 압박 못 하고 계신 거야.”

그녀의 말에 윤동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아저씨들이 직접 나선다면 한 조장님도 마지못해 입을 열거야. 지금은 한 조장님을 배려해서 잠시 쉬게 해드리는 거고.”

서율희의 말을 마지막으로 방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윤동현은 잠시 그녀의 눈치를 보고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바람 좀 쐴 겸, 카페에 커피 한잔하러 갈래요? 새로운 디저트 메뉴 나왔던데 엄청 맛있어요.”

분위기를 바꾸려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 서율희가 고개를 끄덕이려 할 때.

-띠링!

“…….”

“휴대폰 문자라도 오셨어요?”

“커피는 너 혼자 마시러 가라. 나는 혼자서 쉬어야겠다.”

그녀의 반응에 뭔가 눈치를 챈 윤동현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또 혼자 뭐 보려고 하는 거죠? 같이 봐요.”

“까분다. 장난치지 말고 나가.”

“누나.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요. 검은 마녀도 귀여운 동물 영상 좀 볼 수도 있지.”

“죽는다.”

서율희가 내뿜는 진득한 살기에 윤동현이 움찔 몸을 떨었다.

“누나. 장난이에요. 진심으로 살기까지 내뿜는 건 좀…….”

“5……. 4……. 3…….”

“커피는 저 혼자 마시러 갈게요. 편안히 쉬세요.”

윤동현는 짧게 인사만 남기고 황급히 그녀의 방을 빼져 나갔다.

서율희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자리에 앉아 휴대폰 알람을 확인했다.

‘균숙자네 퓨이’ 채널에서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는 알람이었다. 그녀는 알람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채널로 들어가 영상을 재생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균숙자네 퓨이’ 채널의 퓨이.

-퓨이!

-그리고 이쪽은 균숙자님.

-…….

-저는 연우 PD입니다.

연우 PD의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영상이 시작되었다. 물론 서율희의 눈은 오로지 퓨이를 향해 있었다.

-오늘 해볼 컨텐츠는 바로 액체괴물 만들기입니다.

-퓨이!

-직접 액체괴물을 만들어서 우리 액체 귀요미 퓨이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번 비교해 볼 예정입니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구독과 좋아요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영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두 사람과 슬라임 한 마리가 액체 괴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액체 괴물의 재료를 큰 그릇에 넣고 비벼주자 밀가루 반죽 같은 질감에서 점점 탱탱한 형체를 가지기 시작했다.

-퓨우우우

퓨이는 눈앞에서 조금씩 완성되는 액체괴물을 보며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자. 이제 완성입니다.

퓨이와 비슷한 색깔의 액체괴물 한 덩이가 턱 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퓨이는 꼬리로 살짝 만져보기도 하고, 몸으로 직접 비벼보기도 하며 액체괴물을 가지고 놀았다.

-그럼 제가 직접 만져보고 액체 귀요미와 액체 괴물의 차이가 어떤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연우 PD가 슬쩍 퓨이에게 손을 가져가자, 퓨이가 슬쩍 몸을 피하며 꼬리로 찰싹 그의 손을 쳐냈다.

-퓨! 퓨! 퓨!

퓨이는 연우 PD를 향해 울음소리를 냈다.

마치 왜 마음대로 만지려고 하냐고 화내는 것 같았다. 연우 PD는 퓨이의 쌀쌀맞은 반응에 시무룩 해졌다.

“푸훗.”

서율희는 영상 속 도도한 퓨이의 반응에 작게 웃음 지었다.

-제 손길은 퓨이가 싫어하는 관계로 비교는 균숙자님이 직접 해주시겠습니다.

이번에는 가면 쓴 남자가 손으로 퓨이와 액체괴물을 동시에 만지기 시작했다.

퓨이는 연우 PD의 손을 쳐낼 때와는 다르게 행복한 미소로 남자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서율희는 영상 속 남자를 부럽게 쳐다봤다.

‘아. 나도 저렇게 퓨이 만져보고 싶다.’

-어떤가요? 균숙자님?

-말랑거리는 느낌은 꽤 비슷하네요. 대신 퓨이는 기분 나쁘게 끈적거리는 느낌이 없고 조금 더 부드럽고 매끈거리는 느낌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퓨이가 백배 더 귀여운 것 같습니다.

-퓨이!

퓨이는 더 귀엽다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하하. 그렇군요. 오늘은 이렇게 액체 괴물을 직접 만들어 저희 채널의 귀요미, 퓨이와 한번 비교해 봤습니다. 오늘 영상은 여기까지고요. 다음에 더 재미있는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모두 안녕!

-퓨이! 퓨이!

-…….

짧은 영상이 끝나고 서율희는 영상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댓글 창을 읽어봤다.

-백배가 아니라 백만 배 퓨이가 더 귀여운 듯.

-액체 귀요미 퓨이 ㅋㅋㅋ

-연우 PD 함부로 만지려다 퓨이한테 꼬리로 맞고 시무룩 하는 거 봐. 표정이 진짜 속상한 듯.

-아오. 퓨이 영상 왜 이렇게 늦게 올려줘요. 현기증 나니까 빨리 좀 올려줘요.

서율희는 댓글들의 반응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도 짧게 댓글을 남겼다.

-잘 보고 있습니다. 귀여운 퓨이 영상 자주 올려주세요.

댓글 작성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묻었다.

* * *

“퓨이야. 재밌어?”

“퓨이!”

퓨이와 함께 새롭게 올라온 너튜브 영상을 시청했다. 그 옆에는 구슬도 함께 자리했다.

나는 퓨이와 구슬에게 영상을 틀어주고 댓글을 확인했다.

대부분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어주는 댓글들이 주류를 이뤘지만, 가끔 정신병자 같은 사람들의 악의적인 비방과 욕설도 존재했다.

처음에 이런 악플들을 보았을 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무덤덤하게 악플들을 삭제해 나갔다.

최근에 퓨이가 글도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되면서 혹시라도 이런 나쁜 글들을 읽을까 봐, 매번 영상이 올라오면 이렇게 악플들을 관리해 줬다.

그런 극소수의 악플을 제외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퓨이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고 있었다.

그런 댓글을 하나하나 읽을 때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많은 댓글들의 반응이 영상 좀 자주 올려달라는 의견이 정말 많았다.

‘연우에게 이야기해서 촬영 횟수를 좀 늘려야 하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니, 자연스럽게 의무감? 비슷한 감정이 생겨났다.

앞으로 있을 촬영 횟수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새하얀 구슬이 내 앞으로 굴러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응? 구슬아. 왜 그래?”

-우우웅.

[정체불명의 존재가 당신에게 요구합니다.]

[‘균열 탐색’ 스킬 Lv.3 달성하기.]

[‘균열 획득’ 스킬 Lv.3 달성하기.]

[‘보금자리 생성’ 스킬 Lv.5 달성하기.]

[요구를 들어주지 못할 시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으응?!”

갑자기 눈앞에 떠오르는 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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