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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31화 (31/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31화

“앞쪽 조심해!”

한창호의 외침과 동시에 대훈 아저씨 방패에 거미가 달려들었다.

-콰앙!

“크읏.”

충격에 비틀거렸지만, 금방 균형을 되찾은 아저씨.

그는 곧바로 눈앞의 거미에게 도끼를 휘둘렀다.

-파지직!

-키엑.

도끼에 아른거리는 푸른 뇌전과 함께 거미는 두 동강 나버렸다.

아저씨뿐만 아니라 아윤이도, 쌍검을 든 남자도, 검과 방패를 든 남자도 무기에 번쩍이는 뇌기를 두르고 거미를 상대했다.

괴물 거미들을 처치하고 나온 마석을 모아 일행들의 무기를 하나씩 업그레이드해준 결과이다.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놈들의 공세는 무서웠지만, 그만큼 많은 마석이 시체에서 발견됐다.

모든 일행의 무기 위주로 업그레이드를 해줬다.

그러던 중에 쌍검을 업그레이드해 주다 둘 중의 하나가 실패하는 바람에 아이템이 깨져버리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 두 개의 검 말고 하나의 검을 예비로 가지고 있어서 계속 쌍검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 한 번의 실패를 제외하고, 운 좋게도 나머지 문양 부여는 모두 성공했다.

그 결과, 일행의 전투력은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상승할 수 있었다.

-키에엑!

마지막 거미 괴물의 비명과 함께 또 한 번의 전투가 종료됐다.

주변을 경계하던 한창호가 대검을 내리며 일행에게 말했다.

“더는 없는 것 같다. 잠시 휴식.”

그의 전투 종료 선언과 함께 일행은 모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3시간 넘게 이어지는 괴물 거미와의 전투.

무기 업그레이드로 전투력은 강해졌지만, 일행의 체력까지 업그레이드된 게 아니었다.

거기다 뒤로 갈수록 거미 놈들은 점점 강해졌다.

가면 갈수록 더 빠르게 움직이고, 더 강한 힘을 가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전투가 힘에 부치는 상황.

자리에 앉지 않고 선 채로 주변을 경계하는 아저씨와 한창호 역시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다.

그나마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센터 직원이 가장 생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일행이 쉬는 중에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거미들의 사체 속에서 마석을 수집했다.

휴식을 취하던 나머지 일행도 센터 직원을 따라 마석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마석과 내 능력 덕분에 그나마 버티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일행 모두 열심히 마석을 찾아 헤맸다.

잠시 후.

일행은 20개가 조금 넘는 마석을 모아왔다.

한창호 일행의 여자 마법사가 다가와 내게 마석과 나무 지팡이를 건넸다.

무기의 등급이 높아 업그레이드를 못 하는 한창호와 지원가 포지션인 선우를 제외하고.

그녀가 무기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은 마지막 일행이었다.

“그럼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쌍검이 실패했을 때 아이템이 깨져버리는 것을 목격한 뒤라, 나도 마법사 여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석 25개에 성공확률 80%.

‘제발.’

문양 부여가 시작되고, 내 손안에 나무 지팡이가 빛나기 시작했다.

일행 모두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나무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지팡이의 정보를 확인했다.

“성공…… 인가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결과를 묻는 여자 마법사.

나는 씩 웃으며 그녀에게 지팡이를 돌려줬다.

“성공입니다.”

빛 문양이 성공적으로 부여된 지팡이는 마법 피해증가와 마법 저항 관통 그리고 능력치 상승까지 이뤄졌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 지팡이를 확인한 그녀는 나에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일행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문양 부여 성공 덕분에, 암울한 상황 속에서 그나마 희망의 끈을 이어갈 수 있었다.

“끝났으면 다시 움직인다.”

한창호의 말과 함께 휴식은 종료되었다. 일행은 다시 무기를 들어 올리고 균열 내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작은 규모의 거미 떼와 몇 번의 전투가 이어졌다.

균열 내부로 향할수록 주변은 온통 거미줄로 가득했다. 온몸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거미줄을 털어내며 일행은 계속 나아갔다.

-휙!

앞서던 한창호의 정지 수신호와 함께 일행이 모두 멈춰 섰다.

그는 아저씨와 눈빛 교환을 한 뒤, 최대한 소음을 줄이고 홀로 정찰을 나섰다.

남은 우리는 숨죽이고 그의 귀환을 기다렸다.

몇 분 뒤.

한창호가 다시 일행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는 눈을 빛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 거미의 둥지다.”

“…….”

“…….”

“꿀꺽.”

일행의 싸늘한 침묵 속에 누군가의 침 넘기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수백 마리가 넘는 새끼 거미에 성체로 자란 놈들도 꽤 많다. 거기에 성체 거미보다 더 거대한 덩치의 거미들이 여왕을 호위하듯 지키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여왕의 둥지답게 이전과 차원이 다른 규모의 괴물들이었다.

한창호의 말이 끝나고 대훈 아저씨가 질문했다.

“여왕 거미는 예전에 우리가 봤던 놈과 같은 놈인 거야?”

“그래. 예전의 그놈이다.”

“잘하면 한 번의 기회는 노릴 수 있겠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딱 한 번.”

아저씨와 한창호는 곧바로 작전 설명에 들어갔다.

“이번 전투의 목적은 단순하다. 거미 여왕을 죽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모든 게 달렸다.”

한창호는 품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 여왕의 위치와 놈들의 상황을 바닥에 표시했다.

“아마 우리를 발견하면 새끼와 성체 거미만 우리를 공격해 올 거다. 여왕의 호위부대는 움직이지 않겠지. 여기서 최대한 버티면서 호위부대가 전투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얼마나 버텨야 하죠?”

그의 설명에 아윤이 질문했다.

“여왕이 전투가 불리하다고 판단할 때까지. 전투가 불리하다고 느끼면 호위부대를 전투에 투입할 거다.”

한창호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세진이라고 했던가?”

“네. 맞습니다.”

“아까 그 광역 마법. 몇 번 더 사용할 수 있겠나?”

“딱 한 번이라면. 사실 한 번도 아슬아슬합니다.”

“좋아. 우리가 버티고 호위부대가 전투에 참여했을 때, 네가 그 광역 마법으로 놈들의 전력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킨다.”

그는 마지막으로 여왕이 있는 곳에 단검을 찍으며 말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화력을 집중해 여왕의 약점. 배 부분에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작전은 이게 전부다.”

“…….”

“…….”

잠시 이어지는 침묵을 깨고 센터 직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에 여왕을 처치 못 하면 어떻게 됩니까?”

한창호는 비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품속의 단검 집을 꺼내 단검을 넣더니 그대로 센터 직원에게 건넸다.

“싸움이 치열할 겁니다.”

직원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단검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한창호의 뜻을 이해한 듯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해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일행은 마지막 전투를 대비해 마지막 점검을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포션을 모두 모아 아저씨와 한창호에게 몰아줬다. 둘 중에 하나라도 무너진다면 일행의 전열을 유지할 수 없을 테니.

한창호는 일행 하나하나 둘러보고 출발을 지시했다.

“끝났으면 출발한다.”

“창호야.”

“……?”

“그래도 네가 있어서 든든하다. 정말 고맙다.”

“……전투 전에 쓸데없는 잡담은 그만둬라.”

한창호는 고개를 휙 돌리고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그런 그를 보며 키득거렸다.

“큭, 녀석 여전하구먼. 출발하자.”

일행은 그 모습에 아주 약간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일행은 온통 거미줄로 뒤덮인 여왕의 둥지에 도착했다.

둥지 안은 수많은 거미 괴물들로 가득했다. 가장 안쪽에 배가 커다란 여왕 거미와 거대한 거미 호위부대가 위치했다.

여왕은 계속해서 알을 낳았고, 알에서는 쉴 새 없이 새끼 거미들이 태어났다.

눈앞에 벌어지는 유쾌하지 못한 장면에 일행은 자연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한창호의 지시에 따라 여자 마법사, 아윤 그리고 내가 공격을 준비했다.

-에너지 볼트

-파지지직!

나의 전격 구체와 함께 여자 마법사의 불덩어리가 허공에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거미들이 우리의 존재를 인식했다.

“공격해!”

한창호의 외침과 동시에 전격 구체와 불덩어리가 놈들의 한가운데에 작렬했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수십 마리의 거미들이 사라졌지만, 더 많은 숫자가 밀려와 빈자리를 메꿨다.

-바람의 가호.

[‘바람의 가호’ 효과를 받습니다.]

[회피율, 공격속도, 이동속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놈들과 부딪히기 직전 선우의 버프가 발동되고.

“간다!”

“우와아!”

-츠르르르

-키엑!

일행의 함성과 놈들의 괴성이 뒤섞이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마지막 전투답게 놈들의 공세는 거칠게 이어졌다. 일행은 그동안의 전투 경험을 통해 꽤 능숙하게 놈들을 막아냈다.

나는 계속 아티팩트의 상태를 살피며 마법 지원을 계속했다.

쏟아지는 화살 세례와 불덩이, 전격 구체.

계속된 거미의 공세 속에 일행은 수세에 몰리지 않고 전열을 유지했다.

그때, 여왕 곁을 지키던 호위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 키만 한 덩치의 거미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아니야! 모든 호위부대가 움직여야 해!”

한창호의 외침대로 아직 절반의 호위부대는 움직이지 않고 여왕 곁을 지키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자. 모두 힘내!”

아저씨의 일행을 격려하며 굳건하게 전열을 지켜냈다.

하지만 여왕의 호위부대는 다른 거미들과 차원이 다른 강력함을 가지고 있었다.

“크윽!”

호위부대를 막아내던 검과 방패를 든 남자가 힘에 밀려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한창호가 재빨리 대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물러나!”

“윽. 감사합니다.”

조금씩 전열이 밀리기 시작하자 그 틈을 뚫고 거미들이 일행 뒤쪽을 노리기 시작했다.

“꺄아악!”

미처 놈들의 접근을 피하지 못한 여자 마법사가 넘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나는 재빨리 그녀를 감싸며 마법을 시전했다.

-쉴드

-우우웅!

회색빛 방어막이 놈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 사이 쌍검을 든 남자가 거미들을 처리했다.

나는 품 안의 여자 마법사를 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예. 감사합니다.”

다행히 그녀는 상처를 입지 않았고 다시 일어서 마법을 시전했다.

합류한 호위부대 놈들로 인해 아저씨와 한창호마저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아윤의 화살 세례와 마법 공격 속에서도 호위부대 놈들은 특유의 맷집으로 밀고 들어왔다.

-크에엑!

“흐읍!”

결국 한창호마저 놈들의 공세에 밀려 쓰러졌다.

-키엑!

“끄아악!”

무방비 상태의 한창호의 다리에 거미의 공격이 들어왔다.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창호야!”

아저씨는 비명 소리를 듣고 다급히 몸을 움직였다.

-방패 밀치기!

-꽝!

강력한 충격에 거미가 비틀거리고, 아저씨는 곧바로 도끼로 놈의 머리를 쪼개버렸다.

아저씨는 품속에 포션을 한창호에게 던지며 외쳤다.

“잠시 뒤로 빠져. 여긴 내가 맡는다.”

“너 혼자서는…….”

“시끄러. 내가 말했지, 그때 있었던 일 또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이 빌어먹을 균열에서 친구가 죽는 일. 더는 못 본다.”

타이밍 좋게 센터 직원이 뛰어와 한창호를 부축해 뒤쪽으로 데려갔다.

정말 모든 일행이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을 때, 여왕 곁을 지키던 나머지 호위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여요! 아저씨.”

“세진아 준비해. 나머지는 조금만 더 버텨!”

나는 곧바로 마법을 준비했다.

[명경지수(明鏡止水)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집중의 효율이 상승합니다.]

이미 과부하 상태인 아티팩트가 덜덜거리며 마법을 준비했다. 그리고 출력이 올라갈수록 그 흔들림은 계속 커져만 갔다.

[명경지수(明鏡止水)의 효과가 최대로 적용됩니다.]

“준비됐어요!”

뒤쪽에서 치료 중인 한창호가 말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짧은 몇 초가 수십 분 같이 느껴졌다.

“지금!!”

“모두 물러나요!”

일행이 뒤로 물러나고, 그 자리에 순식간에 수많은 거미가 밀려들었다.

-라이트닝 필드!

-우우우웅!!

-콰과과과광!!

다시 한번 발동된 라이트닝 필드!

엄청난 번개 폭풍이 몰려오던 거미들을 한꺼번에 밀어내기 시작했다.

한창호는 천둥소리에 묻히지 않도록 목이 터져라 일행을 향해 외쳤다.

“폭풍이 끝나면 바로 여왕의 배를 노려야 해!”

여왕의 둥지를 뒤덮던 번개 폭풍이 가라앉았다.

대부분의 거미들은 폭풍에 휘말려 죽었지만, 여왕의 호위부대는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아까만큼 화력이 안 나왔어.’

처음 마법을 사용했을 때만큼 나오지 않은 화력 때문일까?

여왕의 호위부대는 재빨리 여왕을 지키기 위해 되돌아가고 있었다.

“서둘러. 호위부대가 돌아간다.”

여자 마법사와 아윤, 선우가 공격을 준비했다.

“13발째!”

-쐐애애액!

-회오리바람!

아윤의 화살을 시작으로.

회오리와 마법사의 화염구가 뒤를 이었다.

아윤의 화살이 여왕의 배에 정확히 명중했다.

-끼이에에에엑!

섬뜩한 여왕 거미의 비명.

곧이어 나머지 공격들도 여왕의 배를 향해 나아갔다.

-콰쾅!

화염구의 폭발과 함께 여왕 주변이 불타며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해치웠나?”

센터 직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머지 일행 역시 기대하고 연기가 걷히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끼이이에에엑!

연기 속에서 끔찍한 여왕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모든 일행의 얼굴이 굳었다.

연기가 걷히고 상처 입은 여왕의 배 앞에 호위부대 거미 사체가 하나 쓰러져 있었다.

‘이런! 한 마리가 공격을 막았어.’

모든 공격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호위부대 한 마리가 공격 일부분을 중간에 막아버렸다.

여왕 주변으로 호위부대가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고, 새끼거미도 계속 충원되고 있었다.

일행은 절망에 빠졌다.

이미 만신창이나 다름없는 일행을 이끌고, 저 거미무리를 뚫기는 어려워 보였다.

“아빠.”

“…….”

아윤의 부름에도 아저씨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한창호는 아직 쓰러져 있었고, 나머지 일행도 거의 탈진 상태.

거미들은 여왕을 지키기 위해 공격을 멈추고 수비로 돌아섰지만, 금세 수를 불려 공격해 올 것이다.

“형. 다시 한번 더 안돼요?”

선우가 간절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안타까지만 아티팩트는 사실상 기능 정지 상태나 다름없었다.

위력은 약했지만, 라이트닝 필드를 펼쳐낸 것만 해도 신기할 정도로 아티팩트의 상태는 처참했다.

“끝났다.”

한창호의 나지막한 한마디가 일행 가슴 깊숙이 박혀 들었다.

“마지막 기회였다. 여왕이 호위부대를 전투에 투입하게 만드는 작전은 이제 안 통할 거다. 계속 수비적으로 나오면서 소모전만 벌이겠지.”

“…….”

“이제 남은 방법은 두 가지다. 계속 여기서 소모전을 벌이던지, 후퇴해서 여왕이 우릴 좇지 않길 기도하던지.”

그의 절망적인 말에 모든 일행이 고개를 떨궜다.

“그게 끝이에요?”

“……?”

아윤이 한창호를 향해 날카롭게 외쳤다.

“입구에서는 그렇게 잘난 척하시더니. 이게 끝이냐고요.”

“…….”

“저는 포기 못 해요. 여기서 이렇게 끝낼 수 없어요. 분명 마지막 기회가 있을 거예요.”

옆에서 눈치를 보던 선우도 아윤의 말을 거들었다.

“저도 아직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아저씨도 포기하지 마세요.”

그녀의 날카로운 힐난과 선우의 격려에 한창호는 돌연 웃음 짓더니 대훈 아저씨를 향해 말했다.

“하하하. 많이 닮았네. 정말이지 쏙 빼닮았어.”

“흐흐. 그렇지?”

“그래. 그렇군.”

한창호는 상처 입은 다리로 절뚝이며 일어났다. 그는 그의 조원과 일행을 둘러보며 사과했다.

“미안하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서.”

“알면 됐어요.”

아윤이 톡 쏘듯 말했지만, 한창호는 오히려 기분 좋은 듯 미소 지었다.

덕분에 일행들 마음속에 살짝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계속 뭔가를 생각하던 내가 나서 말했다.

“마지막 기회. 있을지도 몰라요.”

“오빠?”

“세진아. 생각이 있는 거냐?”

“확실한 건 아니에요. 사실 도박이나 다름없어요.”

나는 자신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의 자신 없는 행동에 일행이 망설이는 순간 한창호가 나섰다.

“지금껏 말할 기회가 없었지만.”

“……?”

“우리가 이곳까지 온 데는 네 역할이 가장 컸다. 엄청난 아티팩트에 놀라운 장비 업그레이드까지. 솔직히 정체가 궁금할 정도로 대단한 활약이었어.”

그는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생각에 마지막 기회를 준다면 이 중에서는 너밖에 없다. 나는 너에게 목숨을 걸겠다.”

한창호의 뒤를 이어 대훈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세진아. 솔직히 예전부터 네가 우리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채고 있었어. 그 아티팩트도 그렇고, 이상한 능력도 그렇고.”

“죄송합니다.”

“솔직히 조금 서운한 적도 있지만 괜찮아. 대신 언젠가는 말해줄 거라 믿는다. 그러니 나도 너에게 걸겠어.”

뒤이어 나머지 일행들도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오빠. 뭔지 몰라도 해봐.”

“저도 최대한 도울게요. 형.”

나는 일행의 믿음이 담긴 시선을 받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녀석들이 점점 늘어난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나는 한창호의 물음에 간단히 대답했다.

“최대한 여왕 가까이 가주세요. 그리고 제가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시면 돼요.”

정말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부탁.

그럼에도 일행은 주저 없이 전투 준비했다.

“저……저도 가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새끼 거미 몇 마리 정도는 뒤에서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도 가겠습니다.”

결국 센터 직원까지 9명 모두 다시 놈들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다가서자 여왕과 거미무리가 경계하며 울음소리를 냈다.

-키에엑!

-츠르르륵.

조금씩 일행과 놈들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놈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앗!”

“하앗!”

다시 한번 놈들과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나는 일행의 보호를 받으며 한 손을 아티팩트 위에 올려두고 눈을 감았다.

“Sanye(질서)”

질서 문양의 힘을 사용하자 아티팩트 회로가 선명히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한계 이상의 과부하로 회로는 엉망진창이 돼버린 상황. 다행히 장착된 마정석에는 아직 마력이 조금 남아 있었다.

나는 문양의 힘으로 마정석의 마력을 이끌어 회로를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마치 불에 타는 것처럼 머리가 뜨끈뜨끈해졌다.

아티팩트에 새겨진 매직 미사일의 회로와 빛 문양의 회로를 따라 마력이 거칠게 흘러갔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Ita(번개)’

머릿속에 번개 문양을 떠올리며 마력의 흐름을 이어나갔다.

두 개의 문양이 동시에 이어지자 결렬한 반발력과 함께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은 충격이 발생했다.

“끄윽!”

꽉 깨문 이사이로 고통에 찬 신음이 비집고 나왔다.

‘아직이야.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마력이 들끓는 와중에도 나는 집중을 잃지 않고 그 흐름을 이어나갔다.

[명경지수(明鏡止水)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집중의 효율이 상승합니다.]

“허억. 허억. 세진아!”

“오빠. 아직이야?”

“조금만 더 버텨!”

나를 부르는 소리가 먹먹하게 귀를 울렸지만, 나의 집중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뇌가 녹아내리는 기분과 함께 코에서 뜨끈한 액체가 주룩 흘러나왔다. 입가에 흘러들어온 액체에서 씁쓸하고 비린 맛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제발.’

[명경지수(明鏡止水)의 효과가 최대로 적용됩니다.]

-번쩍!

내가 눈을 뜨는 순간 눈동자에서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매직 미사일 -.

-파앗! 콰지지직.

뇌기를 품은 5발의 빛나는 매직 미사일이 내 머리 위에 떠올랐다.

나는 고통으로 흐릿해져 가는 의식을 붙잡으며 여왕 거미의 배를 응시했다.

-키에엑!

여왕 거미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꼈는지 주변으로 호위부대를 불러모았다.

‘죽어라!’

의식의 마지막을 살기로 불태우며 5발의 매직 미사일이 빛과 같이 여왕을 향해 쏘아졌다.

-파아앗!

“안 돼……. 놈들이.”

“아아아.”

이미 호위부대가 겹겹이 여왕의 배 부분을 지키는 상황에 일행은 탄식을 내뱉었다.

겨우 5발의 매직 미사일로는 뚫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콰직콰직!

-키에에엑!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매직 미사일은 단단한 호위부대의 몸을 처참하게 꿰뚫으며 나아갔다.

쏘아진 매직 미사일은 마치 다섯 줄기의 벼락같이 거침없이 여왕을 향해 쏘아졌다.

-파밧! 파바바밧!

-콰지지지직!!

매직 미사일은 그대로 여왕의 배를 꿰뚫었고, 사방으로 체액을 튕겨내며 고통에 울부짖었다.

-키에에에에엑!

여왕의 비참한 비명에 모든 거미들이 공격을 멈추고 여왕을 향해 돌아갔다.

겨우 버티던 일행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돌아가는 거미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도끼를 의지한 채 겨우 서 있던 아저씨가 말했다.

“해냈어…… 세진이가 해냈다고.”

나는 쓰러지는 와중에 아저씨의 멍한 중얼거림을 들으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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