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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29화 (29/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9화

“세진아.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아뇨. 괜찮아요.”

아저씨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내가 뒤늦게 대답했다. 나의 어색한 대답에 나머지 일행도 내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오빠. 설마 쟤네 보고 긴장한 건 아니죠?”

“아냐. 잠시 딴생각한 거야.”

어색한 변명에 일행은 여전히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때, 타이밍 좋게 센터 직원 두 명이 이곳에 도착했다. 안경을 쓴 중년 남성과 20대 남성이었다.

중년 남성 직원이 굵직한 목소리로 파티장을 불러모았다.

“파티의 대표분께서는 잠시 모여주시겠습니까?”

우리 쪽에서는 아저씨가, 저쪽에서는 한창호가 센터 직원 곁으로 모여들었다.

중년 직원은 서류 가방에서 서류와 펜을 꺼내며 설명을 시작했다.

“두 분 모두 경력이 꽤 있으신 분들이니 간략하게만 설명하겠습니다. 오늘 균열은 한창호 님과 정대훈 님의 파티. 2개의 파티가 진입할 예정이고, 센터 직원 1명이 동행합니다. 균열 내에서 분란을 일으키거나, 비협조적인 행동을 할 시에 동행한 직원의 판단에 따라 불이익이 있을 겁니다. 두 분 모두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창호와 대훈 아저씨는 직원의 설명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균열에서 나오는 전리품은 균열 제거가 끝난 뒤 한꺼번에 처리할 예정이고, 특이사항이 없는 한 5:5 배분을 기본으로 합니다. 두 분 모두 동의하시면 이 서류에 서명해 주시면 됩니다.”

직원의 안내대로 파티 대표의 서명까지 끝나고, 직원 1명씩 나뉘어 각 파티원의 신원확인이 이루어졌다.

신원확인까지 모두 끝냈을 때, 균열 발생 시각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우우웅

낮은 진동음과 함께 D등급 3단계 균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직접 눈앞에 생겨난 균열을 보니 불쾌한 기분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함을 느끼고 있을 때 한창호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먼저 들어간다.”

한창호 일행이 먼저 균열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말려야 하나?’

속으로 균열 진입을 막아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했지만, 그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4명의 인형이 균열 입구로 진입했다.

그들이 균열에 들어가고 나서도 불안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았다.

“우리도 들어가자.”

아저씨의 말에 따라 우리도 균열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 뒤를 젊은 센터 직원이 뒤따랐다.

“건투를 빕니다.”

중년 센터 직원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균열 입구로 진입했다.

완전히 균열 내부로 진입하고. 눈앞에 보인 모습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D등급 균열의 모습이었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건가?’

먼저 진입한 한창호 일행은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 있었다. 대충 보아도 그들은 굉장히 좋은 장비와 무기인 것 같았다.

우리도 한창호 일행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장비와 무기를 점검했다.

“세진아. 이거 받아둬라.”

“에. 이게 뭐예요?”

아저씨가 건넨 조그마한 유리병에 연한 붉은색을 띠는 용액이 담겨 있었다.

“회복 포션이야. 이번 균열은 좀 걱정이 돼서 비상용으로 애들이랑 네 것까지 준비했다.”

“아저씨…….”

회복 포션은 등급이 낮은 것도 꽤 가격이 비쌌다. 그래서 낮은 균열에서는 다치더라도 포션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저씨의 배려에 살짝 마음이 뭉클해졌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감동한 내 시선을 느낀 아저씨는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마 안 하는 거야.”

“그래도 공짜는 아닐 거 아니에요?”

“괜히 포션 있다고 무리하지 말고, 얌전히 뒤에 있다가 포션 그대로 반납해.”

“크큭. 알겠습니다.”

괜히 퉁명스럽게 말하는 아저씨의 모습에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두 일행 모두 최종 점검을 끝내고.

15분이라는 대기시간이 지나 균열 입구가 닫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균열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구구구구궁.

바닥을 뒤흔드는 엄청난 진동이 시작되고. 주변을 밝히던 균열석이 일제히 꺼지며 내부는 어둠으로 뒤덮였다.

“아앗!”

“뭐야?!”

어둠 속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명과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균열 내부의 모든 인원은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흔들림에 자연스럽게 자세를 낮추고 황급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나 역시도 곧바로 아티팩트의 마법을 발동할 준비를 하고 주변을 경계했다.

곧이어 진동이 잠잠해지고. 벽면의 발광석이 하나둘 다시 빛을 내뿜어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주변 시야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주변을 경계하면서 일행의 안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센터 직원을 포함한 모든 인원이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일행의 안전을 확인하고 안심하려는 순간, 모두의 표정은 다시 당황과 불안으로 변해갔다.

“이게 도대체…….”

잠시 어두워진 사이에 균열 내부의 모습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평범한 D등급 균열 사이즈의 동굴이 아니라, 천장의 발광석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확장되어 있었다.

갑자기 변해버린 균열에 모든 사람이 패닉에 빠져 있을 때, 내 눈앞에 알람이 떠올랐다.

[‘??? 균열’에 입장했습니다. 균열을 제거하십시오.]

[균열을 제거하지 못하면 페널티를 받습니다.]

‘역시. 또 이건가?’

불길했던 예감은 결국 적중하고 말았다.

만약 내가 좀 더 확신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면, 아저씨 가족이 이 균열에 들어오는 것을 어떻게든 말렸을 거다.

하지만 단순히 예감이 안 좋다는 이유로 균열 입장을 거부하게 할 수 없었다.

배당받은 균열 입장을 거부하면 파티원 모두에게 꽤 큰 불이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혹시 이 현상은 나를 노리고 일어나는 걸까?’

지난번 임 경사의 도움으로 위험했던 균열을 제거했을 때는,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했지만.

또다시 나에게 평범하지 않은 두 번째 현상이 일어났다.

만약 내 생각이 맞는다면 나 때문에 일행이 위험에 빠진 상황이 된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져 있을 때, 모든 일행 중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한창호와 대훈 아저씨였다.

대훈 아저씨는 주변을 자세히 살피며 한창호에게 말했다.

“창호야. 여기 어쩐지 익숙하지 않냐?”

“…….”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악몽에서 가끔 보던 그 장소와 너무 흡사해.”

슬픔이 뒤섞인 아저씨의 말에 한창호의 안색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곧바로 표정을 굳히고 냉정하게 대답했다.

“그건 옛날 일이다. 우리는 D등급 3단계 균열에 들어왔을 뿐이야. 약간의 혼란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창호야.”

“네가 아직 그 일 때문에 이곳이 두렵다면, 여기서 기다려도 된다. 나는 내 일행만으로 충분하니까.”

한창호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일행과 함께 균열 내부로 향했다. 센터 직원은 우리의 눈치를 살피더니 한창호 일행을 따라갔다.

아저씨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균열 입구에는 나와 정 씨 가족만 남게 되었다.

주변에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한 아윤이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며 말을 꺼냈다.

“아빠.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아빠랑 창호 아저씨. 뭔가 알고 있는 거죠?”

“그래.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저씨는 흐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마 내 생각이 맞는다면, 이곳은 과거에 나와 내 친구들이 같이 들어왔던 C등급 균열인 것 같다.”

“C등급 균열?!”

“그래. 그때 나와 내 친구들은 아주 처절한 전투 끝에 살아 나올 수 있었지. 한 명만 빼고 말이야.”

아련함과 씁쓸함이 뒤섞인 아저씨의 대답.

그 말을 들은 선우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럼 먼저 간 창호 아저씨 일행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선우의 물음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따라가자.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해줄게.”

조금 늦었지만, 우리 일행은 앞선 한창호 일행을 따라 균열 내부로 향했다.

* * *

아저씨는 균열 내부를 걸으며 과거에 있었던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저씨가 젊었을 적 친구 4명과 파티를 만들었다고 한다.

아저씨, 한창호, 균열 관리 센터의 최영식 그리고 신동현이라는 사람까지.

젊은 패기로 한창 승승장구하던 파티는 D등급을 넘어 C등급 균열에 도전하게 되고, 한 길드에 소속된다.

“그 길드에서 너희 엄마를 처음 만났었지.”

아저씨는 정령 능력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 각성자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문제는 친구였던 한창호 역시 같은 여성에게 사랑에 빠졌던 것.

친구의 우정 때문에 서로 눈치만 보던 두 사람은 한 C등급 균열에서 운명이 엇갈리게 되었다.

생각보다 강력한 괴물들의 출현으로 길드의 전력은 무너졌고, 아저씨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사랑하는 여성을 목숨 걸고 지켜내고 호감을 얻게 되었다.

한창호는 함께 있던 신동현을 지켜내지 못하고 눈앞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겨우 빠져나온 나머지 세 사람은 친구의 죽음에 큰 충격에 빠졌다. 최영식은 그길로 균열 제거 일을 그만두게 되고.

슬픔에 빠져 있던 아저씨는 그 모습을 안타까워한 정령 각성자 여성과 만남이 이어져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한편 친구, 사랑, 우정을 모두 잃은 한창호는 길드를 탈퇴하고 홀로 균열 제거 일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그때 내 잘못이 컸어. 사랑의 눈이 멀어 친구를 내팽개친 거나 다름없으니까.”

“…….”

“…….”

“…….”

아저씨의 긴 과거 이야기를 들은 나와 남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저씨와 우리에게 까칠하게 대했던 한찬호의 모습이 왠지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감상의 젖을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눈앞에 수많은 괴물의 시체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미의 형태를 한 괴물의 시체 수십 구가 바닥에 널려 있었다.

전투의 흔적을 발견하고 다급해진 아저씨는 서두르기 시작했고, 우리도 발걸음을 재빨리 움직였다.

-츠르르륵.

-키이익!

소름 돋는 괴물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곧이어 거미 괴물 수십 마리와 전투 중인 한창호의 일행이 보였다.

“선우야. 버프!”

“네!”

-바람의 가호.

[‘바람의 가호’ 효과를 받습니다.]

[회피율, 공격속도, 이동속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선우의 버프로 부드러운 바람이 휘감기며 온몸이 살짝 가벼워졌다.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 근접한 우리는 힘겹게 괴물을 상대 중인 일행의 상태가 보였다.

특히 일행 가운데 사색이 된 얼굴로 벌벌 떨고 있는 센터 직원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곧바로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에너지 볼트

-파지지직!

빠르게 날린 전기 구체에 적중당한 놈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감전되어 죽었다.

아윤의 화살 세례와 선우의 지원이 이어졌고, 아저씨의 든든한 방패가 놈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우리의 합류로 불리하던 전투를 한순간에 분위기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키에에엑!

-키에에엑!

수세에 몰린 거미 괴물들이 갑자기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동시에 내기 시작했다.

이 끔찍한 소리는 균열 곳곳에 울려 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백 마리의 거미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누구 입에서 나온 말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지금 내 생각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었다.

수백 마리의 거미가 기분 나쁜 울음소리와 함께 우리를 포위해 공격해 오는 모습은, 정말 꿈에 나올까 무서운 광경이었다.

“화염 마법을 계속 사용해! 놈들의 약점은 화염 공격이야!”

한창호의 외침에 여자 마법사는 곧바로 거대한 불덩이 3개를 생성해 다가오는 놈들에게 날렸다.

-휘이익. 콰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주변이 뜨거운 열기로 뒤덮였다.

-츠르르륵.

-키에엑!

하지만 압도적인 물량으로 몰아붙이는 거미들을 모두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자 마법사는 곧바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지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폭발에 휘말렸던 거미의 사체를 밟으며 더 많은 거미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저씨에게 외쳤다.

“조금만 막아주세요!”

“방법이 있어?”

“일단 해봐야죠.”

아저씨에게 모든 걸 맡긴 채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아 씨가 장착해준 새로운 마법.’

귓가에 괴물의 비명과 일행의 외침이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명경지수(明鏡止水)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집중의 효율이 상승합니다.]

‘최대 출력으로 한 방을 노린다.’

내 아티팩트 역시 연속적인 사용은 불가능하므로 한꺼번에 최대한 녀석들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세진아. 아직 멀었냐?!”

다급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눈을 감은 채로 아티팩트에 집중했다.

“조심해.”

“꺄악!”

다급한 외침과 비명 소리가 들려올 때쯤.

[명경지수(明鏡止水)의 효과가 최대로 적용됩니다.]

‘됐다!’

“모두 저에게로 모이세요!!”

내 외침에 사람들은 거미에게 밀려나듯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라이트닝 필드!

-우우우웅!!

마법이 발동됨과 동시에 아티팩트에서 전에 없던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곧이어.

-콰과과과광!

귀를 멎게 할 정도로 큰 천둥소리와 함께 일행 주변으로 엄청난 번개 폭풍이 발생했다.

무자비한 번개 폭풍이 괴물들의 비명마저 집어삼키며 수많은 거미를 처치해 나갔다.

천둥소리가 사라지고 일행의 주변은 번개에 타버린 거미들의 사체가 즐비하게 쌓여 있었다.

“휴. 아슬아슬했다.”

내가 이마의 진땀을 닦으며 말하자, 거미 사체를 바라보던 나머지 일행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로 쏠렸다.

심지어 한결같은 표정의 한창호마저 멍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왜요?”

일행은 마치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얼굴이 식은땀 범벅인 센터 직원의 한마디에 모두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X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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