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8화
12. 불길한 균열
아윤은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빠. 그 반지 좀 변한 것 같은데?”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은은하게 광채가 나고 뭔가 변한 것 같아.”
예리한 아윤의 지적에 나는 짐짓 모른 척했다.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계속 내 반지를 들여다보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아윤이는 눈썰미가 대단하네.’
‘Anna(부여)’ 스킬로 빛 문양을 새긴 반지는 은은히 새어 나오는 광채를 제외하면, 겉모습은 똑같았지만, 능력적인 면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빛나는 놀(Gnoll) 대장의 증표][마법][Cala(빛)]
-집중or마력 +6(+3)
-저항 +6(+3)
-마법 피해량 15% 증가
-마법 저항 관통 15% 증가
원래 능력치를 집중과 저항을 3씩 올려줬었는데, 빛 문양을 새긴 뒤 두 배 상승했다.
거기다 마법 피해량 증가와 마법 저항 관통 능력까지.
능력치 증가량과 추가 효과까지 따져보았을 때, 도저히 D등급 2단계 균열에서 나온 마법 아이템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찾아본 바에 의하면 최소 마법 등급보다 한 단계 이상.
E등급 마석 15개를 이용해서 마법 등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정말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거기다 아직 부여해 보지 못한 다른 문양들과 여러 종류의 아이템들.
아직 연구가 많이 필요하겠지만 분명 무궁무진한 활용법이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해?”
“아빠. 세진 오빠가 끼고 있는 반지, 뭔가 변한 것 같지 않아?”
“응? 그대로 인 것 같은데. 광택제라도 발랐나?”
“아니라니까. 분명 뭔가 달라졌는데…….”
아윤은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내 반지에 집착했다. 아저씨는 반지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내게 말했다.
“세진아. 오늘 시간 되지?”
“네. 센터 들리실 거죠?”
“그래. 오늘은 꼭 등록하자.”
오늘은 균열 제거가 끝나고, 지난번 하지 못했던 파티 등록을 위해 다시 센터에 방문하기로 했다.
첫 D등급 2단계 균열 전투에 참여한 후에, 나는 지속적으로 아저씨 파티와 함께 전투를 치렀다.
레벨도 내가 1레벨, 퓨이가 2레벨이 올라 각각 Lv.12, Lv.8을 달성했다.
특히 전투의 팀워크도 한 파티라 부르기 손색없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딜러가 한 명이라 딜이 부족한 문제점을 나의 합류로 보강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아티팩트 마법의 위력을 일행들 몰래 조금씩 끌어올리고 있다.
딜량만 따지고 봤을 때는 이미 파티원 최고의 딜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아저씨는 며칠 전부터 계속 정식 파티 합류를 재촉했고, 오늘 다시 균열 관리 센터를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그럼 가볼까?”
나와 정 씨 가족이 센터에 도착하고.
“영식아. 나 왔다.”
“오. 그래. 파티 등록 맞지?”
“그래. 여기 있는 이 친구 좀 파티에 등록하려고.”
대훈 아저씨 친구이면서 센터 직원인 영식 아저씨가 나에게 종이를 건넸다.
“거기에 있는 항목들 다 적어주시고, 첫 장과 두 번째 장에 서명 두 번 해주시면 돼요. 그리고 신분증 제출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가 건네받은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영식 아저씨가 대훈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D등급 2단계는 할 만해?”
“우리 가족만 있었으면 조금 힘들었을지도, 이 친구가 새로 합류해줘서 생각보다 할 만해.”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직 다음 균열 일정 안 잡았지?”
“어. 아직 안 잡았는데. 왜?”
영식 아저씨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른 건 아니고. D등급 3단계에 파티 배정이 안 끝나서. 지금 당장 단독으로 배정받을 만한 파티가 없어서. 협동 의뢰로 진행할 것 같아서.”
“쉬는 파티 하나도 없어?”
“저번 주에 D등급 3단계를 전담하던 파티 2개가 동시에 해체되는 바람에. 갑자기 구멍이 생겼어. 그래서 말인데.”
“……?”
“혹시 너희 파티 D등급 3단계 균열에 들어가 볼 생각 있냐?”
살짝 낮은 목소리로 대훈 아저씨의 의중을 물어왔다.
“급하게 배정될 것 같아서 수당이 꽤 괜찮거든. 거기다 최소 2개 파티 투입할 예정이라 크게 위험하지도 않을 것 같고. 어때? 하고 싶으면 내가 너희 파티에 먼저 배정되도록 해볼게.”
“으음.”
대훈 아저씨는 예상에 없던 D등급 3단계 제의에 살짝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수당이 얼만데?”
“최소 2단계 수당의 3배.”
“끄응.”
생각보다 더 높은 수당에 아저씨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
옆에서 대화를 들으며 묵묵히 서류 작성을 완료한 내가 서류를 건넸다.
“다 작성했습니다.”
“네. 잠시만요. 대훈아 너도 여기 서명해라.”
대훈 아저씨까지 서명을 끝내고. 나의 파티 가입 절차가 완료되었다.
“네. 완료되었습니다. 여기 신분증 다시 받으시고요. 지정된 파티 일정을 따르지 않거나, 단독 행동으로 파티에 피해를 주면 나중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알겠습니다.”
영식 아저씨는 나에게 간단한 주의사항을 이야기해 주고 고개를 돌려 대훈 아저씨에게 말했다.
“대훈아. 한번 생각해봐라. 급한 일이라 1시간 이내로 연락 안 주면 다른 파티 먼저 배정할 거다.”
“고맙다. 생각해 보고 연락 줄게.”
“알았어. 연락 기다릴게. 다음 분 오세요.”
나와 아저씨는 직원 창구를 벗어나 남매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세진아. 너도 들었지?”
“3단계 균열 제안이요?”
“그래.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만약 내가 아티팩트 능력을 전력으로 사용한다면 3단계 균열도 큰 문제 없겠지만, 아티팩트 능력을 조절한다고 가정하면 3단계 균열은 일행에게 아직 버거운 단계였다.
하지만 2개의 파티가 협력해서 전투한다고 생각하면 영식 아저씨의 말대로 크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글쎄요. 아윤이랑 선우 의견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걔들은 돈 많이 준다면 무조건하려고 할 거다.”
“으음. 괜찮을 것 같아요. 2개 파티가 동시에 들어가는 거라면.”
“나도 그런 것 같다. 영식이가 나한테 무리한 제안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파티 등록을 기다리고 있던 남매에게도 이 소식을 알려주었고, 아저씨의 예상대로 높은 수당을 보고 주저 없이 찬성했다.
조금 급하게 결정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우리 파티의 다음 일정은 D등급 3단계 균열로 결정되었다.
* * *
“지아 씨. 여기 회로 작업 다 끝났는데, 확인 한번 해주세요.”
“벌써요? 세진 씨. 요즘 작업 속도가 엄청나게 빨리진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정말이에요. 불량도 거의 없고. 요즘 제가 신경 안 써준다고 다른 데서 과외라도 받으시나.”
“하하. 설마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의 말을 받아넘겼다.
‘과외를 받은 건 아니지만, 어디서 배워오긴 했죠.’
갑자기 빨라진 작업 속도의 비결은 Sanye(질서) 문양 덕분이었다.
원래는 작업 기계를 써야 하는 일도 질서 문양을 사용하면 손도 대지 않고 작업이 가능했다.
거기다 특수한 안경을 낀 것처럼, 회로의 잘못된 부분이라든지 불량 난 부분을 바로 확인하고 수정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한, 두 번만 사용해도 두통 때문에 계속 사용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사용에 익숙해져서 꽤 오랜 시간 질서 문양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에서만 편해진 것이지, 이론적인 부분은 아직 공부가 많이 필요했다.
“세진 씨. 어제 맡기신 아티팩트 점검 다 끝내놨어요. 가져가세요.”
“바쁘실 텐데 감사합니다.”
“연구하다가 잠시 머리 식힐 겸 한 거니까 괜찮아요.”
‘머리 식힐 겸 아티팩트 점검을 하는 사람은 지아 씨 밖에 없을 겁니다.’
나는 그녀 몰래 질린 표정을 지으며 점검이 끝난 아티팩트를 가져왔다.
“그리고 새로운 마법도 추가했어요.”
“그래요?”
새롭게 추가된 마법을 생각하면 기대되는 표정을 지었다.
한편 신지아는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번에 또 한 단계 높은 균열에 들어가신다면서요? 말리지는 않겠지만, 몸조심하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단계가 높아지는 만큼 다른 파티랑 협동해서 들어가는 균열이니까.”
내 말에도 신지아는 불안한 듯 한숨을 쉬었다.
“아마 당분간만 의뢰를 받고, 한동안은 작업 주문을 안 받을 생각이에요.”
“왜요?”
“한 달 정도 뒤에 꽤 큰 규모의 아티팩트 경연대회가 열려요. 저도 이 공방의 이름으로 참가하려고 해요. 그때까지 제 연구가 완료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아.”
“그때 아티팩트 시연자로 세진 씨가 같이 대회에 참가해 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대회에 같이 참가해 달라는 말에 조금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런 중요한 역할을 제가 해도 될까요?”
“원래 대회 참가는 개발자와 시연자 두 명이 참가해요. 저는 개발자로 참가할 생각이고요.”
“…….”
“세진 씨도 우리 공방의 직원이니 자격은 충분해요. 그리고 저는 이번 경연대회에 우리 공방의 운명을 걸 생각이에요.”
공방의 운명까지 언급하며 결연한 의지를 내보이는 신자아.
“그러니 세진 씨도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개 드세요.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도 여기 직원이니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고마워요. 세진 씨.”
신지아는 고개를 들고 나를 보며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세진 씨.”
“네?”
“대회 한 달도 남았는데 시연자가 다치면 안 되겠죠? 그렇죠?”
분명 웃으며 말하는데, 묘한 박력이 섞인 그녀의 물음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물론이죠. 사장님.”
* * *
D등급 3단계 균열 발생 당일.
나와 정 씨 가족은 균열 발생 장소에 미리 도착해 대기하는 중이었다.
협동이라고는 하나, 첫 3단계 균열 전투다 보니 일행 모두 살짝 긴장한 분위기였다.
장비와 무기를 꼼꼼하게 점검하는 도중, 또 다른 일행이 이곳으로 다가왔다.
일행 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한 명 포함되어 있었다.
“창호. 같이 가는 파티가 너였구나.”
“그래. 나도 방금 알았다.”
균열 관리 센터에서 대훈 아저씨와 마찰을 빚었던 한창호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3명. 총 4명이 우리와 같이 균열에 들어갈 인원들인 듯했다.
신기하게도 저쪽 일행도 우리와 비슷하게 한창호를 제외한 인원 모두 젊은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안녕하세요.”
아윤, 선우 남매가 한창호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는 그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대뜸 명령하듯 말했다.
“우리 쪽 인원도 경험이 많이 없는 신인들이지만. 길드에서 밀어주는 유망주들이다. D급 3단계 정도는 우리 전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괜히 뒤엉켜 전투에 혼선을 빚는 거보다 그쪽이 우리 지시를 따르거나, 아니면 전투에서 아예 빠졌으면 좋겠군.”
지시에 따르지 않을 생각이면 전투에 참여하지 말라는, 우리를 무시하는 듯한 일방적인 통보를 해왔다.
울컥한 아윤이가 뛰쳐나오는 걸 대훈 아저씨가 가로막았다. 그리고 허허 웃으며 한창호에게 대답했다.
“뭐. 우리도 돈 받고 하는 일인데 한 손 거들어야 하지 않겠어? 전투에 방해될 생각은 없으니까 각자 알아서 하도록 하지.”
아저씨의 완곡한 거부에 한창호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휙 돌리고 일행과 함께 다른 곳으로 떠나가 버렸다.
“아오. 아빠. 저 아저씨는 왜 저렇게 항상 재수 없는 거야?”
“큭. 원래 그런 놈이야. 너도 괜히 흥분하지 말고 균열에 들어갈 준비나 해. 저쪽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 할 일만 생각하면 되는 거야.”
아윤은 아저씨의 타이름에도 흥분을 쉽사리 가라앉히지 못했다.
“세진이 좀 봐라. 저렇게 진지한 얼굴로 집중하고 있잖아. 좀 본받아라. 안 그래, 세진아?”
“…….”
“세진아? 무슨 일 있어?”
이상한 내 모습을 발견하고 아저씨가 거듭 나를 불렀다.
그때 나는 한창호 일행에게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균열 발생 예상 장소에 눈을 고정하고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와 느낌이 비슷해.’
예전에 임 경사의 도움을 받아 제거했던 정체 모를 균열.
그때 느꼈던 불쾌한 기운이 또다시 느껴졌다.
균열 발생 예정 시각이 다가오면서 불쾌한 기운이 점점 짙어졌고, 내 불안감도 점점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