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5화
10. 너튜브 채널 개설
오늘은 균열 제거 일도 없고, 아티팩트 공방도 쉬는 날.
휴일에 나는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의 고물상에 들어와 두리번거렸다.
도심 외곽지역에 위치한 고물상.
내부는 넓은 공터에 갖가지 물건들이 종류별로 산처럼 쌓여 있었다. 플라스틱, 고철, 폐지 등등.
물건의 산들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봄 햇살을 받으며 막걸리 한잔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으응? 무슨 일로 오셨소?”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내 모습을 발견하고 물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오면 균열에서 나온 잡동사니 아이템을 좀 구할 수 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잡동사니? 그거 구해서 어디다 쓰려고?”
남자는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제가 좀 필요한 데가 있어서.”
“자네도 그 연금술산가 뭔가 하는 사람인가?”
“네? 아, 예. 비슷합니다.”
“따라와.”
남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나를 이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공터의 물건 산들을 몇 개 지나, 어떤 물건 더미에 멈춰선 남자는 물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있는 거 다 잡동사니 아이템들이야. 필요한 만큼 가져가.”
“네? 돈은 따로 안 내도 됩니까?”
“여기 있는 것들은 우리한테 돈이 안 되는 것만 모아놓은 거야. 어차피 버릴 것들이라 돈 안 받아. 가져가 주면 우리야 좋지.”
“아.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뭘. 저쪽에 물건 담을만한 자루도 있으니까 알아서 챙겨가.”
남자는 할 말을 마치고 휙 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자루를 가지고 물건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목장갑이라도 하나 챙겨올 걸 그랬다.’
어쩔 수 없이 맨손으로 하나하나 물건을 꺼냈다.
[랫맨의 너덜너덜한 가죽][잡동사니]
-공격을 받은 랫맨의 가죽.
-냄새가 심함.
[랫맨의 부러진 이빨][잡동사니]
-공격을 받아 부러진 랫맨의 이빨.
-냄새가 심함.
‘아니, 이 랫맨 놈들은 냄새가 왜 이렇게 심해?’
정말 쓰레기 같은 냄새가 나는 랫맨들의 아이템들을 피해, 다시 가져갈 만한 아이템을 뒤적거렸다.
[놀(Gnoll)의 가죽][잡동사니]
-놀의 가죽.
[랫맨의 조잡한 몽둥이][잡동사니]
-랫맨이 사용하던 몽둥이.
[스켈레톤의 부러진 뼈][잡동사니]
-스켈레톤을 이루던 뼈.
최대한 냄새가 안 나고 깔끔해 보이는 것으로 자루를 묵직하게 채웠다. 꽤 무거워진 자루를 가지고 아까 남자를 만났던 곳으로 향했다.
아직도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남자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는 나에게도 막걸리를 권유했지만,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하고 고물상을 빠져나왔다.
오늘 이렇게 고물상에서 잡동사니 아이템을 구한 이유는 E등급 마석 때문이다.
최근에 정 씨 가족 파티와 2단계 이상의 균열을 돌면서 D등급 마석을 더 많이 찾게 되었다. 덩달아 수익도 올라갔지만.
대신 E등급 마석은 점점 적게 나와버리는 바람에 남아 있는 E등급 마석을 구할 방법이 없어졌다.
그래서 잡동사니 아이템을 따로 구해서 퓨이의 능력으로 E등급 마석을 추출할 생각이다.
따스한 봄 날씨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 균열에 도착할 수 있었다.
-털썩.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바닥에 자루를 내려놨다.
“아오. 그냥 택시 탈걸 그랬다.”
“퓨이. 퓨이.”
나를 발견한 퓨이가 텐트에서 튀어나와 나를 반겨주었다.
자루를 뒤집어 잡동사니 아이템을 털어놨다.
“퓨이야. 마력 추출 좀 해줄래?”
“퓨이! 퓨우우우우!”
꺼내놓은 잡동사니 아이템들이 하나둘 마석으로 변해갔다.
“퓨우. 퓨우.”
한꺼번에 아이템의 마력 추출을 해서 그런지, 퓨이가 약간 힘들어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한꺼번에 추출하는 건 한 자루가 한계구나.’
“퓨이야 수고했어.”
“퓨우…….”
나는 퓨이를 안아 들어 텐트의 퓨이 전용 쿠션에 내려주었다. 퓨이를 쉬게 해주고, 땅바닥에 떨어진 마석들을 수거했다.
‘한 자루에 E등급 마석이 15개 정도.’
아이템들을 꽤 많이 챙겨온 거에 비해 마석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용달차라도 대여해서 한꺼번에 다 실어와야 하나?’
앞으로 E등급 마석을 수급할 계획을 세우던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고물상에 방문하기 위해 아침 일찍 나섰는데, 벌써 점심때가 지나가고 있었다.
‘슬슬 준비해야겠네.’
나는 손님 맞을 준비를 위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 * *
“형. 안녕하세요. 퓨이도 안녕!”
“그래. 오랜만이다.”
“퓨이!”
정말 오랜만에 다시 균열에 방문한 오연우.
그는 활기찬 모습으로 우리에게 인사했다.
“근데 왜 이렇게 연락이 없었어. 나는 바로 영상 찍자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하하. 그게 말이죠.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거든요.”
오연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번에 형 도와주려고 아버지 회사 이름으로 전화 돌린 걸 아버지한테 걸려가지고…….”
“…….”
“한 달 동안 집에 감금당하다시피 잡혀 있었어요. 정말 고등학교 때 이후로 아버지한테 처음 맞을 뻔했어요.”
“쩝. 조금 미안하네.”
오연우 덕분에 정 씨 가족과 좋은 인연도 만들었는데, 정작 도와준 오연우가 그동안 고초를 겪었다고 하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내 미안한 표정에 그는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괜찮아요. 제가 하겠다고 한 일이었으니까. 대신 약속은 잊지 않으셨겠죠?”
“그래. 거래는 거래니까. 그럼 오늘부터 영상 찍는 거야?”
“일단 그전에. 형 계정으로 채널부터 개설하죠.”
“채널 개설?”
“네. 원래 제가 쓰던 채널 말고, 형이 새로 만들 채널에 영상 올릴 거예요.”
“그래? 그럼 뭐부터 하면 되는데?”
“물론 채널 이름부터 정해야겠죠?”
오연우는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더니 본인이 생각해 놓은 채널 이름들을 쭉 써 내려 가기 시작했다.
일단 대부분의 이름에 ‘퓨이’의 이름이 들어갔다.
“대부분 다 이름에 퓨이가 들어가네?”
“당연하죠. 우리 채널의 마스코트는 퓨이라고요.”
“퓨이?”
퓨이는 마스코트라는 말이 뭔지 몰라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퓨이에게 마스코트에 관해 설명해 주자.
“퓨이! 퓨이!”
마스코트 역할이 마음에 드는지 폴짝폴짝 뛰며 기쁨을 표했다.
나는 오연우에게 살짝 의견을 내보았다.
“그래도 내가 주인인데 나도 어느 정도 역할이 필요하지 않나?”
“원래 강아지, 고양이 같은 채널의 주인공은 동물들이지 애완동물 주인이 아니에요.”
“그럼 나는?”
“고양이 캔 따개라고 불리는 집사랑 비슷한 거죠. 대충 ‘퓨이 쓰다듬어주는 존재’ 정도?”
“…….”
여러 가지 채널 이름에 관한 대화가 이어졌고, ‘균숙자네 퓨이’라는 이름이 가장 무난한 것 같았다.
나는 ‘균숙자’라는 표현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오연우는 이게 좋다며 강력하게 주장했고.
결국, 새롭게 만들 너튜브 채널의 이름은 ‘균숙자네 퓨이’라는 걸로 결정되었다.
채널 이름이 정해지자 이번엔 가방에서 카메라와 휴대용 조명을 꺼내기 시작했다.
오연우는 찰영 장소와 배경, 구도를 살피고, 조명을 셋팅에 노출과 초점을 확인했다.
프로필 사진, 채널 아트에 쓸 사진 등등. 퓨이와 나를 모델로 여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가면을 썼고.
퓨이를 안고 있는 사진이라든지, 퓨이와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이라든지.
오연우는 프로필에 쓸 거라며 퓨이의 독사진을 꽤 정성 들여 찍었다.
퓨이는 사진 찍는 게 꽤 즐거운지 오연우의 지시에 제법 잘 따르며 귀여운 모습의 사진을 여러 장 만들어 냈다.
내 독사진은 없었다.
* * *
이런저런 사진 촬영을 끝내고.
“이제 끝난 거야?”
“네. 본격적인 촬영은 아직이지만, 채널 꾸미는데 쓸 사진은 대충 찍은 것 같아요.”
“할 일이 생각보다 많네.”
“그래도 대충은 다 끝냈어요. 형이 채널 개설해 주시고 저한테 편집자 권한 넘겨주시면 프로필 사진, 채널 아트, 기타 필요한 설정까지 제가 다 해놓을게요.”
찍은 사진들을 확인한 오연우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 형. 하나 또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요.”
“뭔데 그렇게 뜸 들여?”
“다름이 아니라 수익이 생겼을 때,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아.”
“보통은 편집자한테 일정 월급을 주거나, 아니면 비율로 수익을 나눠 가지던가 하거든요?”
오연우는 대략적인 편집자와 수익을 나누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줬다.
너튜브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대충 생각해 말을 꺼냈다.
“그럼 5:5로 하면 안 되나?”
“그건 좀 비율이…….”
내가 말에 오연우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렇지? 네가 편집도 다 하고, 장비도 다 가지고 있는데. 그럼 4:6 정도?”
“아뇨! 형. 제 말은 그 반대예요. 형 채널이고 형과 퓨이가 주인공이니까 형이 많이 받으셔야 한다는 이야기였어요.”
4:6 제안에 당황한 오연우가 다급히 자기 생각을 말해 주었다.
“제가 너튜브 영상 제작에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고,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오연우는 진지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 나갔다.
“형이 직접 너튜브 만들겠다고 편집자 구하면 저 같은 편집자 쉽게 구할 수 있어요. 하지만 형의 능력이나 퓨이는 누구도 가지지 못한 특별한 것이에요.”
“흐음.”
“제가 억지 부려서 시작한 것도 있고. 저는 7:3 정도가 괜찮은 것 같아요. 채널 규모가 더 커지면 비율은 더 낮춰도 상관없어요.”
아주 조심스럽게 7:3을 제시하는 모습에 나는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내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오연우도 조용히 내 대답을 기다렸다.
대충 머릿속을 정리하고, 나는 나름대로 내가 생각한 바를 오연우에게 말했다.
“금방 수익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성공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만약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네 공이 크겠지.”
“…….”
“네가 아니었으면 너튜브 시작할 생각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른 편집자랑 일할 생각 없으니까. 딱 5:5. 반띵하자.”
“그래도 될까요?”
“어차피 보잘것없는 수익이면 7:3이나 5:5나 비슷할 거 아냐? 나 후회하게 만들고 싶으면 열심히 해.”
“알았어요. 형! 저 진짜 열심히 영상 찍고, 편집할게요.”
오연우는 내 말에 감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두 눈은 열정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격렬한 반응에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같이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럼, 형. 바로 첫 번째 영상 찍어볼까요?”
“지금 바로?”
“네. 첫 번째 영상은 어떤 컨텐츠로 할지 이미 다 생각해 뒀다고요.”
오연우는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보여주었다.
“닭강정?”
“네. 맛있겠죠? 우리 첫 영상 컨텐츠는 먹방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