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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23화 (23/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3화

9. 파티에 합류하다

오전에 작업해야 할 오늘 목표 물량을 전부 완료하고,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아티팩트 공방.

신지아는 최근에 문양이 들어간 아티팩트를 만들다 영감을 얻어 개인 연구에 몰입해 있었다.

말을 걸지 않으면 퇴근할 때까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집중력으로 연구 중이었다.

지금도 오전에 열심히 일하고, 오후에는 연구 노트를 붙잡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웬만하면 그녀의 집중을 깨고 싶지 않았지만, 궁금한 점이 생겨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지아 씨.”

“네. 왜요?”

신지아는 책상의 노트에서 눈도 떼지 않고 대충 내 말에 대답했다.

나를 무시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는 어디까지 먹힐까요?”

“먹히다뇨?”

“그러니까 균열 전투에서요. 예를 들어 D등급 몇 단계, C등급 몇 단계 이런 식으로.”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하신데요?”

“아는 파티가 균열 제거 일을 하는데, 제가 조금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그 문양이 들어간 아티팩트는 세진 씨가 아니면 쓰지도 못하잖아요.”

“네. 그래서 제가 직접 전투에 참여해 보려고.”

-탁!

그녀는 내가 직접 전투에 참여한다는 말에 손에 있던 펜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내게 시선을 옮겼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신다고요?”

신지아는 전투에 참여한다는 내 말이 영 마뜩잖아 보였다. 약간 불안과 불만이 뒤섞인 표정.

“네. 뒤에서 마법 지원만 좀 해줄 수 있을까 해서. 힘들까요?”

“균열 등급이 뭔데요?”

“D등급 2단계요.”

“D등급이요? 에이. 난 또 뭐라고.”

D등급 2단계라는 말을 들은 신지아가 김샜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그 정도는 문제없어요. 지원 충분히 되고도 남을 테니까.”

“그런가요? 아무래도 이쪽은 아직 아는 게 많이 없어서.”

“흐음.”

그녀는 보고 있던 노트를 아예 덮어버리고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제가 제일 처음 줬던 아티팩트 기억나세요? 세진 씨가 제대로 고장 냈던 거.”

“네. 기억나죠.”

“사실 그 정도만 있어도 D등급 균열 정도에서는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어요. 전투 스킬이 따로 없어도 아티팩트 하나로 1인분은 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정말요?”

“물론이죠.”

나는 생각보다 대단한 아티팩트의 위력에 깜짝 놀랐다.

“대신 D등급 균열에서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요.”

“왜 그렇죠? 1인분은 충분하다면서요?”

“그럼 돈이 안 되니까요. 아티팩트도 소모품에 가깝고, 유지하려면 마정석 비용도 들어가는데 누가 D등급 균열에서 사용하겠어요.”

“아…….”

“그래서 대부분 C등급 균열 이상에서만 아티팩트를 사용해요. 물론 C등급 이상이라고 해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지만요.”

“그렇군요.”

새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세진 씨가 처음에 받았던 아티팩트도 그렇게 무시할 만한 물건이 아니에요. 다른 데서 팔면 100만 원 이상은 족히 받을 만해요.”

“그렇게 비싸요?”

“그럼요. 수제 아티팩트인 데다가 부품도 꽤 좋은 걸 썼으니까요. 요즘은 공장에서 찍어낸 보급형 아티팩트들이 꽤 싼 가격에 나오지만 퀄리티는 아직 수제에 못 따라오거든요.”

놀라는 표정을 짓는 내 모습에,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더 놀라운 사실 알려드릴까요? 세진 씨가 가지고 있는 문양이 들어간 아티팩트. 그거 팔 수만 있으면 천만 원 이상은 거뜬히 받아낼걸요?”

“네? 진짜요?”

“그래서 제가 아쉽다고 한 거죠. 만약 세진 씨 말고 다른 사람도 사용할 수 있었으면 아티팩트 제작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을 거라고요. 그럼 세진 씨 떼돈 벌었을 텐데.”

“…….”

“간단한 마법 회로라 안정성 좋고, 사용하는 마정석 등급도 낮아 유지비 적게 들어가고, 대신 위력은 빵빵하고. 그럼, 말 다 했죠. 뭐.”

나는 신지아의 말에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문양의 힘을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쓸 수만 있으면 엄청난 가치의 아티팩트가 탄생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는 방법이 없는 상황.

그녀는 내 씁쓸한 표정을 읽었는지 화제를 돌려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무튼. 세진 씨가 가지고 있는 그 아티팩트는 최소 C등급 균열에서도 통할만 한 위력이니까. 크게 걱정 않으셔도 될 거예요. 오히려 힘 조절을 해야 할지도?”

“감사합니다. 이야기 잘 들었어요. 연구 중에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하네요.”

“괜찮아요. 어차피 잠시 막히는 부분이라 기분 전환할 겸 이야기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알았어요.”

“아. 그리고 아무리 아티팩트가 있어도 절대 무리하면 안 돼요. 거기서 다쳐도 공방에서는 당연히 산재처리 안 해줄 거예요. 무조건 세진 씨 안전이 중요해요. 알았죠?”

신지아가 엄한 표정으로 내게 경고했다. 나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크큭. 알겠습니다, 사장님.”

* * *

오늘은 정 씨 가족 파티의 첫 2단계 균열에 도전하는 날.

균열 입구에 입장해 장비를 점검하고 준비를 하는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없어 보였다.

아윤과 선우는 평소와 다름없었고, 오히려 경험이 많은 대훈 아저씨가 가장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아마 남매가 걱정되는 모양이다.

나는 방패를 점검 중인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대훈 아저씨?”

“어, 세진아. 무슨 일이야?”

잠시 방패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번 균열은 저도 따라 들어가도 될까요?”

“네가? 전투 능력도 없으면서 뭐 하려고.”

“제가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데 조금 도움이 될까 해서요.”

나는 팔에 장착한 아티팩트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저씨는 가볍게 놀라며 내게 물었다.

“어디서 이런 걸 구했어?”

“제가 아티팩트 공방에서 일하는데, 거기 일하는 지인에게서 받았어요.”

“흐음.”

아저씨는 미심쩍은 눈으로 아티팩트를 유심히 관찰했다. 아마 질이 나쁜 아티팩트가 아닌지 의심하는 듯했다.

‘하긴. 지인에게 아티팩트를 받아왔다는 말을 들으면 의심하는 게 당연하겠지.’

“아빠. 무슨 문제 있어?”

아윤과 선우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저씨는 남매에게 방금 들은 내 이야기를 전했다.

내가 따라가겠다는 말에 남매 역시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세진 오빠. 도와주려는 마음은 알겠는데. 굳이 무리 안 해도 돼. 2단계라고 해도 1단계랑 크게 차이는 없을 거야.”

“맞아요. 형.”

내 마음은 고맙게 생각하지만, 비전투 각성자다 보니 도움을 꺼리는 것 같았다.

“아저씨. 절대 무리 안 하고 아티팩트로 지원만 할게요. 그래도 안 될까요?”

“흐음.”

“…….”

“그래. 알겠다. 대신 무조건 내 말에 따라야 한다.”

“물론이죠.”

나는 결국 아저씨의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고, 전투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는데.

“퓨이!”

“퓨이는 안돼. 오빠. 설마 퓨이까지 데려갈 생각인 건 아니지?”

내가 나서자 자연스럽게 퓨이가 따라붙었고. 평소에 퓨이를 엄청나게 이뻐하는 아윤이 당연히 반대하고 나섰다.

“퓨이. 퓨이!”

퓨이는 자신 나름대로 쓸모가 있음을 온몸으로 어필했지만, 오히려 그 귀여운 모습을 본 아윤이 더욱 화를 냈다.

“아니. 이렇게 귀여운 애를 전투에 데려가겠다는 거예요?”

“괜찮아. 무조건 안전한 곳에 있을 테니까.”

“퓨이!”

퓨이 때문에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결국 퓨이도 함께 따라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 * *

균열 내부를 따라 이동한 지 5분.

선두는 대훈 아저씨. 그 뒤를 차례로 아윤, 선우, 내가 뒤따랐다.

먼저 괴물을 발견한 아저씨가 정지 수신호와 함께 낮게 속삭였다.

“놀(Gnoll)이다.”

-그르르르.

개과 하이에나를 닮은 2족 보행 괴물 놀(Gnoll).

놀 3마리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잡해 보이는 갑옷과 한손 도끼를 든 모습이 랫맨과도 비슷하지만, 근력은 훨씬 세고 특히 입으로 무는 공격이 치명적이다.

근접해서 싸울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괴물.

“평소대로 간다. 준비해.”

고유 능력으로 바람의 정령을 사용하는 정선우의 버프가 먼저 사용되었다.

-바람의 가호.

[‘바람의 가호’ 효과를 받습니다.]

[회피율, 공격속도, 이동속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다음은 버프를 받은 정아윤이 화살을 활시위에 걸어 공격을 준비했다.

-팟!

-쐐에에엑!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가장 가까이 있던 놀의 가슴에 적중했다.

-크아악!

-그아앙!

화살의 맞은 녀석과 주변 놀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위협의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살짝 비켜서 있던 아저씨가 앞으로 나서며 방패를 세웠다.

흥분한 놈들이 다가오는 사이 아윤이 두 번째 화살을 날렸고, 놀의 가슴에 두 번째 화살이 박히고 녀석은 주춤거렸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나머지 놀 2마리를 아저씨는 녀석들을 뒤로 보내지 않기 위해 방패와 도끼로 놈들을 상대했다.

-크엉!

-캉!

아저씨는 놀의 공격을 능숙하게 방패로 받아내며 도끼로 반격까지 시도했다.

“세 발째!”

아윤의 외침과 함께 세 번째 화살이 활시위를 떠났고, 가슴에 3대의 화살이 박혀 든 놀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회오리바람!

선우가 일으킨 회오리바람이 놀 2마리를 덮쳤고, 놈들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아저씨는 틈을 놓치지 않고 외쳤다.

“왼쪽부터!”

비틀거리는 놀을 향해 아윤의 화살과 아저씨의 도끼가 날아들었고 순식간에 두 번째 놀도 바닥에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놀이 정신을 차리고 공격을 시도했지만.

-방패 밀치기!

-꽝!

아저씨의 강력한 방패 밀치기에 다시 비틀거리며 물러났고, 기절 상태에 빠졌다.

“내가 마무리할게. 일곱 발째.”

-사냥꾼의 눈.

-쐐에에엑!

-크헝!

아윤의 마지막 화살이 놀의 머리를 꿰뚫으며 놀 3마리와 전투는 그대로 종료되었다.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전투가 끝나버렸다.

아저씨는 전투가 끝난 뒤에도 주변을 경계하며 지시를 내렸다.

“부상자 없지? 아이템 챙기고, 이번엔 휴식 없이 바로 출발하자.”

“네.”

“네.”

확실히 오래 합을 맞춰온 파티라 그런지 호흡이 정말 좋았다. 따라온 내가 도저히 끼어들 순간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템은 모두 잡동사니여서 전부 챙기지 않고, 일행은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균열 통로를 따라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놀 무리와 만나게 되었다.

이번엔 5마리의 놀.

그중 1마리는 조잡해 보이는 석궁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아저씨는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전투 지시를 내렸다.

“아윤이는 먼저 석궁 든 녀석부터. 이번엔 숫자가 좀 있으니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잡는다. 선우도 적절하게 스킬 써주고. 알았지?”

“네.”

“네.”

지시를 들은 남매의 짧은 대답과 함께 일행은 다시 전투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그때 내가 나서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아저씨?”

“왜? 세진아.”

“이번엔 제가 선제공격해도 될까요? 범위 공격 마법이 있는데.”

“그래?”

아저씨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대신 마법 사용하고 나면 바로 후위로 빠지는 거다?”

“네. 알았어요.”

“그럼 아윤이가 마법 발동과 동시에 공격하는 거로 하자.”

아저씨의 지시가 끝나고, 품 안에 퓨이를 잠시 바닥에 내려준 뒤 일행 맨 앞으로 나섰다.

-힘 조절을 해야 할지도?

며칠 전에 신지아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너무 무리 말고 최대한 약하게 써보자.’

일단 탐색전을 한다는 느낌으로 최대한 아티팩트의 출력을 낮췄다.

-에너지 볼트

-파지지직!

번개 문양의 힘이 깃든 에너지 볼트가 발동되었다.

‘가랏!’

위협적인 전기 스파크 소리에 놀들이 내 존재를 알아챘지만, 이미 전기 구체는 빠른 속도로 놈들을 향해 날아갔다.

-퍼벙! 콰지지지직!

-커어어어억!

‘어어어?’

분명 출력을 최소한으로 했는데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고. 놀 5마리는 고통스러운 괴성과 함께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

“…….”

“…….”

정 씨 가족은 멍한 표정으로 쓰러진 놀들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퓨이. 퓨이.”

퓨이는 쓰러진 놀들을 보고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내 다리에 붙어 울음소리를 냈다.

살짝 뻘쭘해진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어…… 생각보다 좀 약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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